한·미·일 세 나라를 순방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과 직접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머잖아 대북 특사를 보낼 수 있음을 내비쳤다.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맞은 북한도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 행위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모양새다. 케리 장관은 이번 순방을 통해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의 대북 특사 언급은 미국이 대화 노선을 세우고 관련국들과 조율하고 있으며 대화 시작에 필요한 조건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케리 장관은 일본 도쿄공대 연설에서 “북한은 이미 한 약속들을 존중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처를 북한의 공개적인 비핵화 약속, 핵물질 생산과 미사일 발사 중단 선언 따위로 해석한다. 이런 요구는 타당하다. 북한이 9.19 공동성명을 비롯한 기존 합의가 무효화했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뉴욕 채널 등 양쪽이 적절한 통로를 통해 접촉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케리 순방 과정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국과 공동행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전보다 적극 나설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에 배치한 미사일방어 체제의 감축이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중국은 북-미 대화 및 6자회담이 순조롭게 재개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던 일본이 대화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북한은 핵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최대 치적의 하나로 핵 역량 강화가 꼽히는 터여서, 북쪽이 공개적으로 이를 뒤집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쪽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한 자신이 강조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는 물론이고 경제 건설에 필수인 우호적인 국제 분위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쪽은 모처럼 조성되는 대화 분위기에 적극 호응하길 바란다.
우리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가 제의한 대화를 북쪽이 일단 거부해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지금으로선 남북 대화를 포기하지 않되 북-미 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한 방법이다. 다음달 초순 한-미 정상회담이 좋은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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