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베토벤의 초상화

● 칼럼 2014. 2. 24. 13:55 Posted by SisaHan
대학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베토벤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어느 날 학교 앞 서점에서 로망 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를 발견하고는 당장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이 나에게 줄 엄청난 감동과 흥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그런데 책의 서문을 끝내자마자 나는 잠시 읽기를 멈춰야 했다. 우연히 아주 소중한 어떤 것의 단서를 발견했을 때처럼, 뒤이어 발견하게 될 그것을 감지하면서 숨을 가다듬어야 했던 것이다. “생활은 냉엄하다. 영혼의 평범함에 자기 자신을 떠맡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생활은 나날의 고통스러운 싸움이다. 그리고 흔히 그것은 위대함도 행복도 없는 고독과 침묵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울한 싸움이다.” 서문의 이 한 귀절은 서서히 나의 방어벽을 허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두 구절들은 순식간에 내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다. “사상이나 무력으로 승리를 거둔 사람들을 나는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음으로 위대했던 사람들 뿐이다.” “성공은 우리에게 중대한 것은 아니다. 참으로 위대한 것이 중요한 것이고, 위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베토벤의 생애>에 푹 빠져들게 된 나에게 베토벤은 내 정신세계의 한 우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해 여름방학, 고향인 익산에 내려가게 된 나는 베토벤 사랑앓이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익산에서 전주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가서 액자에 담긴 베토벤의 초상화를 구해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초상화는 대학 시절 내내 나와 함께 자취방과 하숙방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 초상화에 그려진 베토벤의 모습은 이랬다. 헤어드라이어로도 도저히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사자 갈기 머리칼에, 굳게 맞물린 턱과 꼭 다문 입. 이 세상의 모든 비애와 홀로 맞서는 듯한 비장한 표정. 로망 롤랑의 표현을 빌자면, 감내(堪耐)하는 반신(半神)의 강철 의지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힘들 때마다 내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던 이 초상화는 아쉽게도 결혼 후에 ‘꿈자리 사납다’는 불가사의한(?) 이유로 어느 박스 속으로 은퇴 당했다가 결국 분실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지금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으로 DNA 검사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베토벤의 사망 원인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랫동안 난무해왔는데, 매독이 사망의 원인이었다는 것이 오랜 정설이었다. 그러나 러셀 마틴이 쓴 ‘베토벤의 머리카락(Beethoven’s Hair)’이라는 책과 동명의 다큐멘터리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근거해서 납중독이 사망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내어놓았다. 1827년 3월, 베토벤이 사망할 무렵, 15세의 독일계 유대인 페르디난트 힐러는 평소 존경하던 베토벤을 문상하러 갔으며, 며칠 후 그가 숨을 거두자 그 당시의 관례에 따라 그의 머리카락을 간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머리카락은 그의 아들에게 선물로 주어졌고,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마침내 경매장에서 이를 사들인 미국인 이라 브릴러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으며, 그의 분석의뢰로 인해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머리카락은 우리 몸에서 뼈 다음으로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고, 따라서 세포 안에 담긴 다양한 정보들을 매순간 빠르게 기록한다고 한다. 특히 머리카락의 외부에는 큐티클이라는 코팅층이 있어서 안에 담긴 정보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간직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모발분석기술은 마약 복용 여부를 밝혀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기술을 이용한 연구 결과, 정상인의 100배인 평균 60ppm의 납이 검출되었던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그 자체로서 매우 흥미롭고, 나아가 베토벤의 사망 원인과 그의 삶의 일부였던 만성 복통과 소화불량, 우울증 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이 단지 그가 겪고 있던 그런 고통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베토벤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초월하는 방법을 음악을 통해 표현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로망 롤랑은 쓰고 있다. “불행하고 가난한 병자인 고독한 한 사람의 인간, 마치 고뇌 그 자체와도 같은 인간, 세상 속에서 환희를 거부당한 그 인간이 스스로 환희를 창조해낸다. 그것을 전 세계에 선물로 주기 위해서.” 지금은 영영 잃어버리고만 그 초상화의 뒷면에 내가 연필로 옮겨 놓았던 다음 구절은 내 영원한 좌우명이 되었다. “고뇌를 뚫고 나가 환희에 이르라!” (Durch Leiden Freude.)

< 노승문 시인 - ‘시.6.토론토’동인,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