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년 전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낼 것이다. 부강하고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모든 것’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지 못했다.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을까? 있다. 실패하지 않으면 된다. 말장난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1987년 이후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점차 접고 있다. ‘대통령 한 사람 잘 뽑아서 팔자 고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체득해 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의 몇 가지 잘못을 고칠 수 있다면 남은 임기 4년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자신이 절대권한을 가진 통치자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안철수 의원을 돕고 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윤여준의 진심>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인 소통은 원형체험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아버지가 하던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니 속으로 당혹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정자의 언어’를 사용한다. 2월20일 경제 활성화 업무보고 모두발언을 살펴보았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확실히 바꿔서”,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뼈를 깎는 구조개혁을 해야”, “개혁에 저항하는 움직임에는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야”, “국민들께서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 “엄정한 집행과 제재를 통해 발본색원해야”,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하루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지시하는 절대자의 어법이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없다. 규정자의 언어는 박정희 시대의 유물이다. 그 시대에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무조건 따랐다. 없애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기라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조율사나 조정자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권력을 나눠야 한다. 권력은 쥘수록 작아지고 나눌수록 커진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언론의 특종이 사라졌다. 청와대, 행정부, 새누리당 어디에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는 권력에서 나온다.
권력 분산의 요체는 집권여당이다. 현실적으로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세력은 새누리당밖에 없다. 청와대와 행정부에 정치인들을 대거 기용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야망과 명예욕을 국정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인사권을 독점하지 말고 넘겨야 한다. 청와대 인사권을 비서실장에게, 행정부 공직 인사권을 장관들에게 넘겨야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 옆에는 ‘경제 민주화 김종인’, ‘반부패 안대희’, ‘세대통합 이준석’, ‘4대강 반대 이상돈’, ‘지역통합 한광옥’ 등 상징적 인물들이 많았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자 차례차례 어디론가 사라졌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국민 사기를 친 셈이다. 이들의 상징성만 표로 빼먹고 사람은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순수하게 애국심과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척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일 뿐이다.
셋째,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야당은 말 그대로 국정 동반자다. 국회법은 야당의 협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야당 요구대로 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통성이 훼손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행복해진다. 1년 동안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개인의 진정성과 열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힘을 모아 함께 가야 한다. 무려 4년의 임기가 남았다. 깊은 성찰과 변화를 기대한다.
< 성한용 - 한겨레신문 정치부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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