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 송달요청 받고도 반송하거나 무반응…8월 효력 발생
일제 강제징용 가해 기업의 국내 자산이 압류됐다는 법원 결정문을 일본 정부가 전달받고도 해당 기업에 송달하지 않자, 법원이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3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에 따르면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1일 PNR에 대한 압류명령 결정 등의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PNR은 포스코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합작한 회사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법원 결정에 따라 오는 8월 4일 송달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 압류사건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측에서 제기한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5명의 손해배상 채권을 근거로 올해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PNR의 주식 19만4천794주를 압류했다.
압류된 주식의 가치는 액면가 5천원 기준 9억7천300여만원이다.
법원은 이 결정을 일본제철에 송달하는 절차를 시작했으나 지난해 일본 외무성은 해외송달요청서를 수령하고도 아무런 설명 없이 관련 서류를 반송했다.
법원은 재차 송달 절차를 진행했지만 일본 외무성은 10개월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리인단은 일본 외무성의 행위가 헤이그 송달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법원에 공시송달 결정을 요청해 왔다.
헤이그협약은 '자국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에만 송달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리인단은 "법원의 공시송달 결정을 환영한다"며 "하지만 주식압류 결정이 내려진 지 1년 5개월이나 지나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은 아쉽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피해자들은 한국 법원에 2005년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이 지나서야 확정판결을 받았다"며 "이후의 집행 절차는 신속히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PNR의 주식 감정 절차가 신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즉각 보복조처 내비친 일본 “모든 선택지 놓고 대응”
법원, 일본제철에 첫 공시송달…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 입장 재강조
한국 법원이 일본 강제동원 기업의 자산 매각을 위한 절차인 ‘공시송달’을 결정하자, 일본 정부가 보복 조처를 시사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강제집행 절차가 마무리되면 실제 보복 조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4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법 절차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는 (한-일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과 관련한 지난 1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의 공시송달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스가 장관은 한국 법원의 공시송달 결정 효력이 일본 기업에도 미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본 기업의 정당한 활동 보호라는 관점에서도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계속해서 의연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선택지”라는 말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일본 쪽이 여러 차례 사용해온 표현이다. 일본이 이른바 “대응 조처”라고 표현하는 “보복 조처”도 고려한다는 뜻이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이춘식(96)씨를 비롯한 원고 4명이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강제동원 피해 배상과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역사적인 첫 확정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협정인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니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일본은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이 한-일 관계의 법적 기반이며, 대법원 판결은 이 기반을 흔드는 것임을 강조해왔다. 일본 정부도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는 일본 내 지적이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실체가 모호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차원이었다. 한국에서 일본 기업 자산이 이른바 ‘현금화’되면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보복 조처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4월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국 쪽 (일본) 자산 압류 및 (한국 제품) 수입 관세 인상 등 두 자릿수 이상 (보복 조처)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 쪽에선 한일 공동으로 재단을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소송을 내지 않은 피해자까지 포괄적으로 구제하는 방안을 제시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방안에 대해서도 냉담하다. 스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쪽에 빨리 (강제동원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입장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는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해결할 일이라는 뜻이다. < 도쿄/조기원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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