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믿음·소망·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래서 서로 축복할 때에 “당신은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라고 노래한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게 되면 자꾸 주고 또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 아직도 적게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주었어도 마음속에는 늘 아쉬움이 있다. “내가 더 많이 베풀어주어야 하는데 이것 밖에 못 줘서 되겠는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사랑하지 않으면 조금만 주고도 많은 것을 주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에는 성급하게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조금밖에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이 만큼 해주었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왜 하는 것이 그 모양인가?”  이러한 마음을 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 투자하는 마음이 된다. 
예전에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을 사랑했기에 약 사천 명 가량의 유대인을 구출해 주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팔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유대인 생명을 구했다. 쉰들러의 이러한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서 그에게 반지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 반지에 다음과 같이 글이 새겨져 있다.『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은 온 세상을 구한 것이다.』
 
쉰들러는 선물을 받고 충격을 받았고,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빨을 뽑아서 만든 선물을 받은,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내뱉은 한마디 “아, 나는 충분히 하지 못했다. 내가 이 차를 팔았더라면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을 텐데, 이 넥타이핀을 팔았더라면 세 명은 더 건질 수 있었는데.” 쉰들러는 유대인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베푼 뒤에도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 사랑이란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사랑과 환희의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 참 사랑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며 동화시킬 것이다. 사랑하게 되는 최고의 길은 먼저 사랑을 받는 데 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버린 위대한 희생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멋진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문창준 목사 - 호산나 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