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불분명" "존재하지 않아"변명,  한국쪽 요구 묵살

 
 
                   사도광산 입구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연합]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사도광산 강제노동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명부를 제공해달라는 한국 쪽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조선인 노동자 명부는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공개를 요구해온 자료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도 지난 6일 “정부가 올해부터 사도광산 추도식을 열겠다는 일본 정부의 약속에 의미를 뒀는데 추도식에 앞서 누구를 추도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 ‘반도노무자 명부' 제공을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문제의 ‘반도노무자 명부’는 사도광산이 있는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에 ‘1414번 자료’라는 이름으로 보관되어 있다. 이 명부는 1983년 니가타현 지역 역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본 연구자들이 입수해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해 보존하고 있는데,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미쓰비시광업이 제공한 자료다. 원본은 아니지만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공식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사도광산사’에는 조선인 노동자 1519명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나오는데, 지금까지 이름이 공개된 것은 기숙사에서 연초를 배급한 명부에 기록된 490여명이다.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의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그동안 이 명부 공개를 계속 촉구해왔지만 사도광산과 니가타현은 처음에는 ‘원본 소재가 분명하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명부의 존재 여부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올해 일본과 사도광산 등재 협상 등을 계기로 이 명부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일본 정부와 사도광산 운영사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의 추가 소송 등을 우려해 자료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실상을 전시하고 추모식도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추모의 대상을 정확히 공개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 박민희 기자 >

일본은 “모든 노동자”라고만 표현
한국외교부 “한국인 노동자”로 변형
일본에 유리한 자료로 둔갑시켜

 
 
일본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광·은광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고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연합]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도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대표가 언급한 “모든 노동자”란 표현을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전달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 수석대표로 나선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등재 찬성을 설득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일본 대표 발언에 등장한 “모든”이란 형용사가 “한국인”이란 명사로 바뀌어 있었다. 외교부는 “긴 발언문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긴 표현 줄이려다 생긴 일”이라 변명하는 외교부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수석대표 발언문(국회 사무처 번역본)을 보면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물을 이미 현장의 설명∙전시 시설에 설치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외교부가 회의 하루 전인 2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같은 내용이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로 바뀌어있다. 

외교부는 이런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옮기며 너무 긴 표현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취지로 한겨레에 해명했다.

굴종외교 숨기려는 국민 기만 시도

그러나 외교부 설명과 달리 문제의 보도자료는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축약’한 것이 아니라 발언의 주요 부분을 뽑아내 소개한 것이다.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뉘앙스까지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외교가에서 상대국 대표의 발언 일부를 자의적으로 축약·변형해 보도자료에 소개했다는 것 역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문제가 된 발언이 한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양국 사이에 이뤄진 합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다.

조정식 의원은 ”이 사건은 단순 단어 왜곡을 뛰어넘어 대일 굴종외교를 감추고자 벌인 국민 기만이자 우롱“이라며 ”외교부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이 됐고, 용산 대통령실과도 소통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한국노동자를 모든 노동자라고 말하면서 물타기 하는 것을 한국 외교부가 그대로 묵과하는 것 자체가 한국이 일본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신형철 기자 >

8일 서울행정법원 결정, 현 이사진 26일까지 계속 업무

 
 
공영방송 3사 이사들이 지난달 5일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MBC) 경영센터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의 위법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법원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임명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문화방송 대주주) 이사 6명에 대한 임명 효력을 오는 26일까지 정지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8일 “피신청인(방통위)이 김동률, 손정미, 윤길용, 이우용, 임무영, 허익범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임명한 처분은 26일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지난달 31일 방통위가 임명한 방문진 새 이사진의 임기 시작일은 애초에 정해진 13일에서 최소 2주간 늦춰지게 됐다.

앞서 권태선·김기중·박선아 등 현 방문진 이사 세 명은 방통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새 이사 6명의 임명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임명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을 지난 5일 제기했다.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장·부위원장 ‘2인 체제’에서 이뤄진 새 이사 임명 처분은 법적 정당성이 없을 뿐 아니라 합의제 행정기관의 의사결정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심의’도 거치지 않은 만큼 위법성이 크다는 것이 이들의 신청 이유다.

법원은 9일 양쪽에 대한 첫 심문기일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피신청인인 방통위 쪽에서 기일 연기를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여 19일로 기일을 늦추되 법적 다툼 대상인 새 이사진의 임명 효력도 함께 정지했다. 현 이사진 임기는 12일까지로 만약 그 이후 첫 기일이 잡히면 당사자 간 “불필요한 분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새 이사진의 취임도 26일까지 정지시켰다는 게 법원 설명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집행정지 사건에서 처분 등 효력발생일이 매우 근접해 심문을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심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종 결정에 앞서 직권으로 단기간 집행정지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날 결정과 방송문화진흥회법(6조) 등에 따라 현 이사진은 26일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하게 됐다.

이와 별도로 조능희 전 엠비시플러스 사장 등 3명의 방문진 이사 지원자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임명처분 집행정지 건도 같은 이유로 기일이 연기됐다.   < 박강수 오연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