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수사 범위 풀어야” “기소권 줘야” 의견
“수사·기소 가능해지면 ‘제2의 검찰’ 돼” 지적도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7일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은 조기 대선이 확정된 지난 4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대폭 강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사법체계 혼란을 해소하고, 공수처 수사권은 검찰·경찰에 이관하겠다”며 공수처 폐지를 주장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공수처에 대해 거대 양당 대통령 후보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공수처는 약 30년 전부터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깰 수 있는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꼽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추진됐지만 검찰의 강력한 반발에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손을 잡고 신속처리 안건 형식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을 힘겹게 통과시키면서 출범할 수 있었다.

 

힘겹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공수처법에는 허점이 적지 않았다. 공수처는 대통령, 대법관, 헌법재판관, 국회의원, 장관, 판검사, 장성급 장교 등 고위 공무원 범죄를 수사할 수는 있지만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만 기소할 수 있다. 수사만 가능하고 기소는 검찰이 해야 하는 구체적인 절차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다. 이런 법률적 미비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12·3 내란 수사다.

 

공수처법에서는 고위 공직자의 가장 중대한 범죄인 내란죄 수사권을 명시하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 이후 공수처는 직권남용 혐의의 관련 수사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내란 수사를 개시했다. 대통령은 또 공수처가 수사는 가능하나 기소할 수 없는 대상이어서 공수처는 수사 뒤 사건을 검찰에 넘겨야 했다.

검찰은 경찰에서 송치받은 사건에서 그랬듯 추가 수사를 위한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랴부랴 윤석열 전 대통령을 기소해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법률적 미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공수처의 수사 자체가 불법이라며 저항했고 결국 내란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이런 상황을 모두 고려해 윤 전 대통령 구속을 취소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공수처는 만성적인 인력난에도 시달려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연루된 채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의 검사 연임안을 지난해 12월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100일 가까이 재가하지 않았다. 공수처에서 검사로 일했던 한 변호사는 “우선 기소권·수사권을 일치시켜야 공수처의 책임도 강화된다”며 “검사 정원도 늘리고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공수처 검사의 임기(3년씩 3연임 가능)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공수처 강화에 대한 법조계 의견은 다양하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자만 제한하고 수사 범위는 풀어야 한다”고 했고,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소권을 동시에 주는 방식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공수처를 직접수사와 기소가 동시에 가능한 기관으로 만들면 제2의 검찰이 돼버린다. 공수처를 무조건 강화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현시점에서 공수처의 역할을 강화할 것인지, 권력기관화 방지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따라 처방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적·물적 제한을 뒀는데, 이러한 제한을 없애려면 공수처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 곽진산  정혜민 기자 >

대통령기록관 “특검팀이 요청하면 제출 가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기록관리단체협의회,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4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들머리에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정아무개씨의 대통령기록관장 임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달 대통령기록관장 채용 절차를 중단했다. 김혜윤 기자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골프 시설로 검토됐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내 미등기 유령 건물 자료를 대통령 경호처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해 대통령기록관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료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경호처장의 뇌물 혐의 수사에 필요한 것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유령 건물 존재를 처음 밝혀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 건물 공사 자료 일체(계약서, 시방서·견적서, 구매 물품 목록 및 가격표, 예산·지출 내역)를 제출해 달라고 경호처에 요구했다. 경호처는 17일 윤 의원실에 “지난 정부 자료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현재 경호처가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경호처는 윤석열 정부 시기 생산한 전자·비전자 기록물 527만4966건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임기 5년을 꽉 채운 문재인 정부 경호처가 47만5310건을 이관한 것과 비교하면 11배 이상 많다. 윤 의원실은 “경호처가 미등기 건물 자료 등을 5월9일부터 6월3일까지 일반기록물로 분류해 이관했다고 한다. 민주적 통제 등 자체 개혁안을 만든다고 홍보하던 시기에 대통령 직무와 무관한 공사 자료까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해 이관한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월 미등기 유령 건물 공사비 일부가 대납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고,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윤석열·김용현 두 사람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이전 및 공사 관련 불법 행위는 민중기 특별검사팀(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록관은 한겨레에 “일반기록물의 경우 경호처가 비공개로 분류했더라도 특검팀에서 요청하면 제출 가능하다”고 했다. 국회는 특검법을 만들 때 열람 조건이 훨씬 까다로운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경우 압수수색 영장 발부 기준을 완화(고등법원장→지방법원장)한 바 있다. 한국기록학회·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이 모인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지난 16일 “그간 경호처에 대해 기록물 폐기 등 증거인멸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며 “열람 요건 완화로 특검 압수수색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대통령기록관이 기록물 목록조차 공개하지 못한다면, 내란 등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윤 의원실은 12·3 내란 모의가 있었던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 리모델링 관련 자료도 요구했지만, 경호처는 이 역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 ‘개 수영장’ 의혹이 제기된 관저 내 시설물 공사 자료에 대해서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 김남일 기자 >

 

윤석열 부부, 국정원에 ‘공천 탈락’ 김상민 검사 자리 만들어줬나

국정원장 법률특보 ‘위인설관’ 의혹
검찰, 윤석열 직권남용 가능성 조사

 
김건희 여사가 2024년 9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공천 배제된 김상민 전 부장검사가 총선 뒤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된 과정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수사 중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은 최근 김 전 검사가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된 배경과 절차를 확인 중이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김 전 검사 공천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데 이어 국정원에 자리까지 만들어줬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김 전 검사는 김영선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 의창구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건희 여사가 김 전 의원 대신 김 전 검사를 이 지역구에 공천하려 했다는 게 공천 개입 의혹 중 하나다.

 

명태균씨 쪽은 지난해 2월16∼19일 사이에 김 여사로부터 “김상민이 의창구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가 김 전 의원에게도 “김상민 검사가 당선되도록 지원하면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얘기했다는 게 명씨 쪽 주장이다. 다만 총선 당시 윤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을 빚으며 김 전 검사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 전 검사는 공천에서 배제된 뒤인 그해 8월 국정원장 법률특보에 임명됐다.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도 김남우 국정원 기조실장이 검찰 출신인 상황에서 김 전 검사를 법률특보로 임명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은 법률특보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한 김 전 검사 임명을 위해 신설된 자리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위인설관 인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수사팀은 이런 인사가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가 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국정원 인사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김 전 검사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웅동학원 채용 비리 사건을 맡아 수사했다. 김 전 검사는 총선 출마 선언 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부인 빈소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윤 전 대통령이 “상민이 초임 때 부장으로 같이 근무하며 지켜봤는데 일도 잘하고 센스도 있어 어떤 일도 잘할 것”이라며 격려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명태균 수사팀은 김 여사의 도움으로 2022년 6월 지방선거의 경선 기회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김진태 강원지사도 지난달 말에 조사했다. 김 지사는 5·18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2022년 4월14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배제됐으나 ‘대국민 사과’를 조건으로 경선 기회를 부여받아 공천을 받았다. 김 지사는 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여부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건희 특검’을 이끄는 민중기 특별검사는 이날,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김 여사의 대면 조사와 관련해 “수사가 이뤄지리라고 생각한다”며 “(조사 방향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특검보 임명이 되면 차츰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배지현  김지은  이나영 기자 >

 

“그쪽서 주가 관리” 김건희 육성 나왔다…‘시세조종 인식’ 정황

검찰, 김건희 녹음 파일 수백개 확보
‘수익금 40% 과도 요구’ 취지 발언도

                        김건희 씨와 도이치모터스 건물 이미지 사진. 연합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김 씨가 주가조작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할 만한 녹음파일 수백개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김 씨의 계좌에서 주가조작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김 씨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으면 주가조작 범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17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고검 형사부(부장 차순길)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하고 김 씨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롭게 확보했다. 이 녹음파일에는 ‘그쪽에서 주가를 관리하고 있다’, ‘계좌 관리자 쪽에서 수익금을 40%가량으로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취지의 김 씨의 발언이 담겼다고 한다. 정상적인 수준보다 높은 수익금 배분을 약정하는 경우는 계좌를 제공한 ‘전주’(돈줄)가 시세조종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가 된다.

 

앞서 법원은 김 씨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컨트롤타워로 꼽히는 미등록 투자자문사 블랙펄인베스트에서 운용했다고 판단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시기 ‘주포’ 이아무개씨도 검찰 조사에서 2009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자신에게 “주식 수익의 30~40%를 주겠다”고 말할 당시 김 씨가 동석했다고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선 ‘현장에 김 씨는 없었다’고 말을 바꾼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
 

또 검찰은 김 가 자신 명의 증권 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등이 적힌 ‘김건희 엑셀 파일’을 미래에셋증권 직원에게 보낸 뒤 이를 함께 검토하는 내용의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블랙펄인베스트 압수수색을 통해 파일명 ‘김건희’라고 적힌 엑셀 파일을 확보했는데, 주가조작에 동원된 계좌 현황을 김 가 증권사 직원과 점검하는 대화가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씨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김 여사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은 최근 김 여사 쪽에 출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혜민 기자 >

 

윤 정부, 대통령실 홈페이지 자료 옮기면서 김건희 사진 싹 지웠다

“다른 자료 어떤 게 추가로 지워졌는진 알 수 없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2024년 10월9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나온 라오스 쪽 인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홈페이지 데이터를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겨 열람할 수 없게 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씨의 사진 등 일부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17일 대통령실이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대통령실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하며 “함께 있던 자료 중 어떤 자료가 추가로 삭제됐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실 홈페이지와 관련된 데이터, 홈페이지를 구동하기 위한 소스코드 등을 모두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같은 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된 이상 명확한 사유가 없으면 열람할 수 없다”며 “지금은 홈페이지 구동 매뉴얼만 열람 허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홈페이지를 만든 업체와 협업해 사이트를 복원하는 중”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현재 임시 홈페이지 리뉴얼을 완료한 상태로, 이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관계자는 “며칠 동안 날밤을 새며 완성했다. 급하게 완성한 만큼 오류가 생겨 국민께서 실망하실지 걱정되지만, 우선은 임시 홈페이지 상태로라도 공개하려고 한다”고 했다. 또 “복구 방안을 찾은 덕에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수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 정부 기조대로 (적은 돈으로) 기존 홈페이지를 잘 살려보겠다”고 했다. < 고경주 기자 >

드레스덴, 쾰른 지나 본에 정착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 앞에 설치됐던 평화의 소녀상. 이 소녀상은 지난 4일 독일 본 여성박물관으로 영구 이전됐다.

 

독일 쾰른에 임시 설치됐던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동마이’가 본 지역 여성박물관 앞에 영구 설치됐다. 4년 가까이 떠돌던 소녀상이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이다.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는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앞에 세웠던 소녀상을 지난 4일 본 여성박물관 부지로 이전했다고 17일(현지시각) 말했다. 지난 3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년을 맞아 준비한 기획 전시 일환으로 쾰른에 세워졌던 소녀상은 지난 1일까지만 박물관 앞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러나 쾰른과 30㎞ 이내 거리에 있는 본 지역의 여성박물관이 동상을 이어 받아 영구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여성박물관이 코리아협의회 제안을 수락하면서 ‘동마이’가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1981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본 여성박물관은 작가로 활동하는 마리아네 피첸(77)이 만든 사립 박물관이다. 옛 백화점 건물을 개조해 지어진 박물관은 여성의 관점에서 본 현대예술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진행한다.

 

이곳에 소녀상을 설치하려던 건 처음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재독 동포단체 풍경세계문화협의회 제안으로 본 여성박물관은 2017년 박물관 앞에 소녀상을 전시하기로 했다. 당시 박물관은 시유지였던 자리에 소녀상 설치를 추진했지만 일본 총영사관과 담당 시청의 강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해당 부지를 박물관이 완전히 매입하면서 일본 정부나 지자체가 압력을 행사할 명분이 사라졌고, 이번엔 갈등 없이 소녀상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소녀상은 지난 2021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으로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기간 처음 설치된 뒤 창고에 방치됐다가, 쾰른 전시를 계기로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한편, 베를린 미테구 공공부지에 설치된 소녀상 ‘아리’는 베를린 행정법원 결정으로 9월28일까지 존치 결정을 받은 상태다. 미테구청은 소녀상의 가치와 예술의 자유를 우선한 법원 결정은 존중하면서도, 사유지 이전을 제안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는 구청과 협의에 나서되 소녀상의 상징성을 고려해 사유지로 옮기는 것엔 부정적인 입장이다.

 

독일에 설치된 소녀상과 함께하는 행사도 활발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카셀 지역 교회인 ‘노이에 브뤼더키르헤’(새로운 형제들 교회)는 유엔(UN)이 정한 세계전시성폭력 추방의 날(6월19일)을 맞아, 교회 앞에 설치된 소녀상 ‘누진’과 19일 관련 행사를 열 계획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 시민모임은 예술가 그룹 ‘다섯번째 목소리(The Fifth Voice)’와 함께 27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소녀상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카셀, 본을 찾아 공연을 연다. 일본 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철거된 소녀상을 다시 세우는 정의와 저항을 예술로 표현하고, 이를 독일 시민들에게 알리는 목적이다.  <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