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대표와 각계 원로들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국정교과서 사태에 즈음한 시민사회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 등 각계 인사 620명과 305개 단체가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의 획일화와 위험한 역사왜곡을 강요하는 국정 교과서 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시국선언에는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과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신호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에는 현대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기획이 깔려 있다”며 “이는 과거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 치하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밝혔다. 역사 교과서에서 ‘단 하나만의 해석을 강요하려는 시도’는 역사 해석의 무오류성을 전제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역사 해석에 대한 통제를 권력을 통해 관철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왜곡된 역사 해석을 선전과 선동을 통해 대중 사이에 확산한 독일 나치가 가져온 역사적 폐해로 얼마나 오랫동안 전후 독일사회가 괴롭힘을 당했는가를 보아왔기에,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전체주의적 발상에 전율하고 있다”며 “역사해석의 다양성이 곧 민주주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정 교과서는 전체주의의 시작이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뉴욕타임스를 위시한 외국 언론들은 ‘일본과 한국 모두 교과서를 고치려는 위험한 시도는 역사가 주는 교훈을 부인하려는 위협’임을 지적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고 있다”며 “그간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눈부신 성과를 통해 한국이 쌓아온 국제사회의 신뢰와 기대를 박근혜 정부가 갉아 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국정교과서’라는 글씨가 적힌 천으로 눈을 가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종규 기자>



[한마당] 포용과 통합 - 갈등과 분열

● 칼럼 2015. 10. 16. 20:06 Posted by SisaHan

조선의 3대 왕 태종은 장남인 양녕대군이 왕세자로써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자유방탕하자 폐위의 칼을 빼든다. 조정 대신들은 지엄한 왕명에 눌려서, 또는 세자의 덕목을 분별하여 폐위청원에 동조한다. 그런데 그때 대담하게도 혼자서 강력 반대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조판서 황희 였다. 그는 “국본을 쉽게 바꾸는 건 옳지 않다”고 양녕의 폐위와 충녕(세종)의 세자책봉에 강한 제동을 걸었다. 고집을 부리다 그는 파주로 유배되고 말았다. 태종은 극한 반론을 펴던 황희가 얼마나 신경이 거슬렸는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는 황희의 유배지가 도성과 너무 가깝다며 전라도 남원으로 더 멀리 쫓아버렸다.


황희가 자신의 세자책봉을 극구 반대해 유배당한 사실을 잘 알고있는 세종은 그러나 왕위에 오른 뒤 황희를 불러들인다. 그의 강직함과 능력을 높이 사 관직에 복직시킨 것이다. ‘왕위를 가로막은 괘씸한 원수놈’ 정도로 박대했을 법한데도, 세종의 지혜롭고 너그러운 안목과 포용은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 영의정으로 18년을 봉직한 황희 정승은 세종의 많은 치적과 태평성대를 뒷받침한 가장 유능-원만하고 청렴한 재상으로 빛을 발한다.
몽골의 영웅 칭기스칸은 적지에서 얻은 인재로 인해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룬 지도자로 유명하다. 그가 죽을 때 “하늘이 우리 가문에 준 인물이니 그의 뜻에 따라 국정을 행하라”고 유언했다는 인물이 바로 야율초재(耶律楚材)라는 책사다. 그는 몽골에 정복당한 거란족 왕가 사람이었다. 칭기스칸은 정복지마다 피의 보복으로 초토화를 일삼아 죽일 대상이었지만, 뛰어난 인재로 소문난 그를 설득해 자기 신하로 만들었다. 야율초재는 ‘백성이 피눈물을 흘릴 때 같이 눈물 흘리고, 굶주릴 때 함께 굶을 수 있는지’를 칭기스칸에게 묻고 약속받은 뒤 충성을 맹세했다, 칭기스칸은 “힘으로는 천하를 차지할 수는 있으나 다스릴 수는 없다”는 그의 조언에 따라 정복지 몰살정책을 바꿔 세계제국을 이뤄갔고, 야율은 칭기스칸이 죽은 후까지 대를 이어 몽골천하를 뒷받침했다.


지난 역사에는 지도자들의 포용과 통합의 정치가 백성의 평안과 나라의 융성을 가져온 사례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영화와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충언과 충신을 적대시하며 간신배들의 감언이설을 즐긴 편협한 지도자들이 나라를 망친 사례 또한 많다.
근래 한국을 보면 지도자의 포용과 통합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일삼는 것 같아 나라 장래가 걱정이다. 고위공직자를 임용함에 있어 반대세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강직한 충신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쫓아내기도 한다. 자파와 일부 지역의 인사들로만 고위직을 채워 편중이 지나칠 뿐더러, 온갖 비위와 부정부패의 전력을 지닌 자들을 밀어부쳐 청문회 낙마가 잇달은 것은 익히 보아온 터다.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위한 정책보다는 가진 자와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힘을 쏟아 빈부격차는 날로 커지며 계층간 갈등은 심화일로다. 야당을 대화상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국회를 거추장스러운 발목잡기 기관이나 법률 거수기 정도로 여기는 의회주의 부정적인 시각이 배어있다. 남북 민족간의 적대 해소에는 소극적이면서 구시대적 이념대결과 편가르기로 국민들 간에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대결의 정치를 능사로 삼는 모양새다.


세계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일부 독재국가류의 국정교과서 제도를 강압적으로 밀어부치는 모습도 민주적 다양성을 싫어하는 퇴행적 지도자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독불장군처럼 반대를 억누르고 국민을 획일적으로 길들이려 하는 것인가. 다채로운 개성과 번득이는 재치들이 분출하는 치열한 도전과 경쟁의 광속시대에 그런 지도자를 가진 국민도 불행이요, 나라 앞날도 정말 걱정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정부가 12일 기어코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전환한다는 행정예고를 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2017년 1학기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국정 교과서를 실현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가 읽힌다. 역사 해석을 국가가 독점하는 국정체제의 세계적 후진성과 질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준비기간도 무시한 채, 정권의 욕망에 맞춰 국가 백년대계를 흔들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날 낸 자료에서 발행체제 전환의 첫 번째 이유를 “역사교과서 검정제 도입 이후 헌법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건전한 국가관과 균형 있는 역사인식을 기르는 데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헛소리가 또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가족사를 위한 교과서’ 만들 것인가
누누이 지적돼 왔듯이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제 지구촌에서 희미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가는 독재•전체주의의 폐습이다. 북한을 비롯한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과정에서도 다양한 교과서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유엔의 권고이기도 하다. 역사 왜곡에 혈안이 돼 온갖 수단으로 교과서에 개입하려 드는 일본의 극우정권조차도 국정화라는 ‘마지노선’은 넘지 않고 있다. 국정체제 전환은 집권세력이 특정 역사관을 국민에게 강제로 주입해도 괜찮다는 ‘불건전한 국가관’, 즉 독재를 정당화하는 국가관을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이것이 집권자 개인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박 대통령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반민주적이고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 한풀이를 위해 유신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이 세간에 가득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가족사를 위한 국정 교과서’가 탄생하는 셈이다.

교육부도 교과서 검정제의 취지가 ‘다양성’에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집필진이 다양하게 구성되지 못하는 바람에 그 다양성이 퇴색했고, 그래서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양성 훼손을 바로잡기 위해 단일한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니, 초등학생도 놀라 쓰러질 논리의 모순이다. 교육부가 말하는 집필진의 편향성이 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정 그렇게 판단한다면 다양한 검정 교과서가 나오도록 정책을 펴면 될 일이다. 한 나라의 교육부가 이런 창피한 궤변을 버젓이 발표 자료에 수록하는 걸 보면 얼마나 논리가 궁색한지 알 법하다. 또 ‘국정 교과서’라는 용어를 애써 피해 가며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명명한 데서도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국정화 논란은 ‘역사전쟁’이니 ‘이념대결’이니 하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역사논쟁과는 거리가 멀다. 힘으로써 민주국가의 상식을 파괴하고, 후진국을 자처함으로써 국격을 망가뜨리는 폭거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니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각 분야의 학자, 교사, 대학생, 학부모 등이 모두 나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 와중에 국정화에 찬동하는 교수, 교사, 언론인 등이 있다니 과연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실적으로도 2017년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부는 11월에 집필진을 구성해 1년 만에 집필 작업을 끝내겠다고 한다. 완전히 새로운 교과서를 쓰려면 3년도 빠듯하다는 전문가들 의견에 비춰보면 턱도 없는 일정이다. 또 집필이 끝난 뒤 겨우 한 달 안에 심의•수정을 마친다고 한다. 교육부 자체 정책연구 자료에서도 심의·수정 기간으로 11개월을 잡고 있다. 교육부 일정은 교과서를 날림으로 만들겠다는 공언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학계에서 권위와 전문성을 인정받는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하겠다고 하지만, 역사학계와 교사들이 일제히 반발하는 상황에서 어떤 권위자•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할지 의문이다. 집필진의 다양성을 갖추는 건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뉴라이트 등 극우적 시각과 사실 오류로 범벅이 된 허접한 교과서가 나올 공산이 크다.


교육현장 혼란 부를 ‘1년짜리 교과서’
교육 현장의 반발과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시·도 교육감들 사이에서는 벌써 대안 교과서나 보조 교재 개발 등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역사 교사들도 이미 불복종 운동을 선언한 바 있다. 야당은 국정화 금지 법제화를 공언하고 나섰다. 정권이 바뀌면 검정제로 되돌리라는 여론에 다시 맞닥뜨릴 테고, 워낙 상식과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국정체제를 다음 정권이 계속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결국 ‘1년짜리 교과서’에 그치리라는 지적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되는 만큼 국정·검정을 오락가락하는 것은 입시의 불안 요인으로도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명분과 실리에서 잃을 것밖에 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이토록 집착하는 정권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렇다 할 성과 하나 내지 못한 정권이 스스로 강조해온 다른 국정 현안을 모두 팽개친 채 쓸데없는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정권의 무능을 이념몰이로 덮으려는 속셈이라면 이만저만한 오산이 아니다. 짧은 안목으로 국격을 갉아먹고 교육을 혼란에 빠뜨린 교과서 국정화야말로 박근혜 정권의 실정 가운데서도 단연 백미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