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대표에 8일 문재인 의원이 선출됐다. 새정치연합 당원과 지지자들이 문 의원을 새 대표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 1400만표를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권교체의 희망을 보여달라는 뜻일 것이다. 문 대표는 앞으로 130석의 제1야당을 이끌며 박근혜 정권을 견제하고 내년 4월 총선에서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선, 새 대표 선출을 계기로 새정치연합은 집권 비전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믿음직한 야당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는데도 이번 전당대회가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한 이유를 뼈저리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야당이 대안세력으로서 분명한 자리매김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치상황에서 이렇게 전당대회를 치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처한 정확한 현실이고, ‘정치인 문재인’이 야당 대표로서 첫발을 내디뎌야 할 출발점이다.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더 나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하며, 이런 경쟁을 여야가 벌여나갈 때 야당도 살고 우리 정치도 정상화될 것이다. 현 정권의 실수에 기대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


문재인 새 대표는 도를 넘은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야당의 기본 사명은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일이다.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야당마저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면 국정 난맥을 막을 도리가 없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고 인사 쇄신을 하라고 그토록 얘기해도 듣지 않는 대통령을 제대로 이끌 책임은 제1야당 대표에게도 있다. 무조건 비판과 반대만 하라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대통령을 만나서 담판을 짓든 또는 치열한 투쟁을 하든, 야당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한 축이 돼야 한다. 대통령은 저 높은 데서 ‘국정’을 논하고 야당은 여당과만 경쟁하는 식이 돼선 야당이 대안 정치세력으로 설 수가 없다.


이번 전당대회는 네거티브 공방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친노-비노’ 를 둘러싼 뿌리깊은 갈등과 불신이 확인됐다. 문 대표는 높은 국민 지지에도 불구하고 당원·대의원 투표에서 고전한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파를 뛰어넘는 포용력과 헌신성을 먼저 보여줘야 당내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박지원·이인영 후보 역시 분열이 아닌 화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한다. 그래야 여러 갈래로 나뉜 범야권의 맏형으로서 새정치연합이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야당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매우 무겁다는 걸 문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 모두가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후보들을 지지·비방하는 댓글·트위터 활동을 벌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큰 흠이 있음을 사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18대 대선이 심각한 불공정 선거로 치러졌고, 박 대통령이 불법선거의 최대 수혜자였음도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대변인에게도 아무 말을 안 할 자유와 권리를 주면 좋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청와대의 당혹감과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가뜩이나 대통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정통성마저 도마 위에 올랐으니 정신이 아득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작정 외면하고 침묵한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해결될 수는 없다. 청와대가 ‘아무 말을 안 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부터가 큰 착각이다. 정치인, 그것도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민주당의 모략”이니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느니 하는 발언들에 대해 우선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다.


박 대통령의 잘못은 단지 말뿐이 아니다. 이 정권은 그동안 국정원이 저지른 국기문란 행위의 실상을 호도하고 진상규명을 막는 데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임을 확신한다”는 말을 한 사람들이 아직도 권력 곳곳에 포진해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진상규명을 방해한 사람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후속조처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추가 수사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원세훈 전 원장에게 누가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를 밝히기 위해 필요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


사실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 대통령이 걸어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었다. 선출 과정의 흠을 인정하고 더욱 겸허한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갔어야 했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면서 탄생한 대통령이니 민주주의를 더 소중히 가꾸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아야 했다. 만약 박 대통령이 그랬다면 ‘정통성의 흠이 있기에 오히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180도 반대의 길만 걸었다. 그리고 이런 참담한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아직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는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져들 뿐이다. ‘부정선거가 아니었으면 당선되지도 못했을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역사의 냉엄한 평가가 정녕 두렵지 않은가.



[칼럼] 대통령은 그때 왜?

● 칼럼 2015. 2. 15. 14:42 Posted by SisaHan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의원들께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풀타임으로 일하고도 한해 1만5000달러(약 16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면, 당신이 그 돈으로 한번 살아보시라고. 그게 아니라면, 미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수백만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데 찬성표를 던져주세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월20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시간당 최저임금을 10달러10센트(1만1000원)로 올리자며 한 말이다. 오바마는 “우리한테 필요한 건 ‘일하는 미국인’들을 실제로 도울 세금정책”이라며 ‘상위 1% 부자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을 거듭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이나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이런 ‘아름다운 연설’을 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리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한 법들이 많이 있는데 ‘떼법’이라는 것도 있고, 이런 게 없어져야 ‘짠’ 하고 선진 대한민국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 대통령이 1월22일 교육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환경부•문화체육관광부 합동 업무보고를 들은 뒤 한 종결발언의 일부다. 청소년은 자살하고(10대 자살률 세계 1위), 청년들은 ‘4포 세대’(취업·연애·결혼·출산 포기)라 불리고, 40~50대 가장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늙을수록 가난해지는 이상한 나라. 그런데 대통령은 ‘떼법’만 없애면 ‘선진 대한민국’이 탄생한단다. 검사와 경찰을 모아놓은 자리도 아니고, 노동·교육·복지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떼법’ 비난이라니. 벌어진 입이 아직도 다물어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지속이 불가능해 보이는, 극소수 대기업과 부자의 나라다. 기업유보금이 국내총생산(GDP)의 34%(4400억달러)다.(<이코노미스트>)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한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86.6%(1200조원)로, 한국 사회에 언제 괴멸적 타격을 가할지 모를 핵폭탄이다. 대기업엔 돈이 넘치고 개인은 빚더미에 질식사 직전인데 일자리의 질은 갈수록 나빠진다. 시간당 5580원인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12.1%, 180만여명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한달에 3시간 적게 일하는데, 임금은 절반 수준이다. 이런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45.2%, 852만명이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추산) 청년 노동자의 첫 일자리 가운데 36%가 비정규직이다. 장그래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만기친람’하거나 ‘불통’이다. 대통령은 너무 꼼꼼하다. 어느 상가에 조화를 보낼지, 중앙부처 국·과장 인사를 어찌할지까지 챙긴단다. 기자의 질문 따위는 좀체 받지 않는다. 기자회견은 취임 뒤 두차례뿐. 질문자는 미리 정해져 있고, 같은 기자의 추가 질문 기회는 결코 없다. 사람들은 이를 일러 ‘불통’이라 하는데, 실은 ‘무능에 따른 회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며칠 전 민망한 이야기를 들었다. 2013년 11월13일 박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 경제권으로 발전시키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길게 설명한다. 푸틴 대통령은 무반응. 다른 얘기가 오가는데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거듭 강조한다. 박 대통령을 멀뚱히 바라보던 푸틴이 입을 뗀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실현하실 계획이지요?” 그런데 “박 대통령은 순간 멈칫하더니 주위를 돌아보더라”는 게 한 회담 참석자의 전언이다. 박 대통령은 왜 바로 답변하지 못했을까?
< 이제훈 - 한겨레신문 사회정책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