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광교회, ‘놀라운 은혜’ 마쳐

● 교회소식 2017. 4. 19. 11: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염광교회(담임 이요환 목사)는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프로그램인 알파코스 ‘제11기 놀라운 은혜’를 지난 4일 마쳤다. 참가자들은 말씀과 찬양, 소그룹 토의 등과 맛있는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며 유익한 신앙훈련을 소화했다. 한편 염광교회는 노년성도들을 위한 골든칼리지를 4월12일(수) 오전 10시30분에 개강하며, 좋은 부모되기 세미나는 4월20일부터 5월18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12시30분에 진행한다.


< 문의: 905-415-9115 >


[기쁨과 소망] 진짜? 가짜?

● 교회소식 2017. 4. 19. 11:0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읽었던 글입니다. 물건을 살 때, 나라별로 묻는 질문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은 “가격이 얼마냐?”고 묻고, 영국 사람은 “그 물건이 얼마나 질기냐?”를 묻고, 프랑스 사람은 “최신 유행이냐?”를 묻는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이렇게 묻는답니다. “이 물건 진짜냐?”
한국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이제 정말 그렇게 물어야 할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티벳을 방문하고 오던 길에 중국 상해에서 가짜들만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빌딩을 구경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게가 한 두개가 아니라, 아예 고층 빌딩 전체가 가짜만 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파는 물건들이 진짜와 같은 가짜들, 진짜보다 더 좋아보이는 가짜들이었습니다. 이 정도 제품이면 자신들의 이름으로 물건을 내 놓아도 될 것 같은데...


물건에만 가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부터 불거진 듯 합니다만, ‘가짜 뉴스’도 많아졌습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정보들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거짓 정보에 놀아나는 우매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가짜가 주는 역설이 있습니다. 가짜들은 가치있는 것, 중요한 것, 의미있는 것들을 모방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의 가치가 얼마쯤 되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가짜의 수효를 가지고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흉내내지 않는 것은 모방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서 한국 기독교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9.7%에 달하는 967만여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2005년도와 비교해서 123만명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한국 기독교인의 숫자가 정체에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관적인 통계만 접해오던 우리들에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뻐할 수 많은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숫자 안에 한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교회들에 속한 이들이 1/5정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단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염려스러운 통계 결과 앞에서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해 봅니다. 이단들을 비난하는 일에 열을 올리기 전에, 우리 자신들을 먼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 진짜입니까?”
세상의 불의와 거짓은 외면한 채, 종교적 피안의 세계에 도피한 채 자족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지극히 작은 자들’에 주어야 할 관심을, 자신의 성공, 부에 온통 쏟아 붓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거세게 몰아치는 세속화와 반기독교적 물결 앞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지요? 소수의 권리를 주장하느라, 기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어설픈 지성인의 흉내를 내려다 본질을 훼손시켜 버린 것은 아닌지요?


연방경찰(R.C.M.P)이 위조지폐를 구분하기 위한 훈련의 방법으로 오직 ‘진짜 화폐만 연구’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가장 중요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위조지폐를 분별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연구할 경우, 그는 결국 진폐도 의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폐만 열심히 연구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다 위폐이기 때문입니다.
이단이 많아졌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참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 줍니다. 문제는 그 ‘참이며 진리’인 신앙 앞에 ‘진짜’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변질되고, 왜곡되고, 타협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신앙의 기준인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의 부재’입니다. 말씀에는 소홀하면서, 그 외의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소돔성에 들어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고, 변명이 필요하고, 핑계가 많아진다면... 어쩌면 우리는 ‘진짜’의 자리에서 이탈하고 있는 중인지 모릅니다. 진짜는 설명이나 변명이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입니까?’

< 장성환 목사 - 런던 한인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다시 아이러니와 쇼의 선거판

● 칼럼 2017. 4. 19. 10: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탄핵에 그치지 않고 인신구속까지 되어 인간적으로는 참 안된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국민을 그만큼 괴롭히고 속여왔기에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말 한국민들을 지독히도 힘들게 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특히 지난 6개월여 동안은 과오가 양파껍질처럼 증빙되는 데도 질기게 버티면서 2천만에 가까운 시민을 길거리와 차가운 땅바닥에 내몰아 촛불을 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전혀 반성은커녕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이기와 오만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의 자기 합리화 고집은 가히 알아 줄만 하다.


그의 그런 무지와 고집불통으로 인해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따져보면 거기에 공평과 인과응보는 없다는 역설을 떠올린다. 상식적으로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사람들이 잘못 선택한 ‘죄값’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그를 원하고 표를 주었던 많은 사람들은 실상 거리에서 촛불을 들지도 않았고, 그의 온갖 적폐를 규탄하려고도 않았으며 지금도 그에게 동정을 보내면서 탄핵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지지하는 정치인이 추락하는 것을 보는 안타까움은 있었을지언정, 혹한의 거리에서 함성을 지르는 심신의 고통은 겪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아무런 애정도, 표를 준 적도 없고 그를 선택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표를 안주었던 죄’로 엄혹한 고통을 당한 게 아닌가.
이제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면에서도 그런 아이러니는 계속되고 있으니, 세상만사가 다 아이러니의 연속인 것일까. 이번 대선은 박근혜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다수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비박(非朴)’과 ‘반박(反朴)’세력 및 그를 택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와 비전이 득세를 해야 옳다. 다시 말하면, 적폐세력에게 국정을 맡겨 나라를 망친 ‘원죄’가 있는 사람들은 사죄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당한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선거판이 그런가. 가령 탄핵된 지도자를 배출하고 엄호해 온 ‘보수의 아성’이라는 지역의 사람들은 한때 “잘 못 뽑았다”고 반성하는 듯 하더니, 요즘은 예전의 기개가 되살아나서 후보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일테면 “보수 후보들이 지리멸렬 하니 차악(次惡)후보에게 몰아주자”라느니, “누구를 택하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로 지지를 공개적으로 유도한다. 최근 여론 흐름을 보아도 지역민들 역시 그런 주장에 상당히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바탕에는 지역 이기와 보수본색의 패거리 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정농단의 원인을 제공한 묻지마 투표의 잘못을 어느 새 잊어가면서, 인물과 정책을 따져 나라의 장래를 맡겨야겠다는 현명한 표심은 다시금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표심의 회귀를 간파한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은 재빨리 변신하여 영합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목소리를 바꾸고 헤어스타일과 표정을 바꾸고, 아예 공약을 언제 그랬냐는 듯 바꾸고, 당 정책마저 변경한다. 그러면서 현실 정치감각이 좋다느니,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느니 미사여구로 포장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 아예 도우미가 되어 부추기는 영혼없는 저널리스트와 미디어의 꼴불견도 횡행한다.


우리 한국민들이 왜 고통을 당하고 나라가 망가진 것인가. 장사꾼 기업인 이명박과 함량미달 박근혜를 미화하고 포장한 속임수에 다수 국민이 아무 생각없이 빠져들어 표를 준 때문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알고도 또 그런 우를 범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인가. 대통령 한사람 잘못 뽑은 죄과로 국민의 고통과 국가적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엊그제 생생히 보았는데, 또 다시 달콤한 쇼와 변신으로 속이려는 후보들에게 표를 도둑맞을 작정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치가 쇼여서는 안된다. 영화배우나 성우 같은, 혹은 성인(聖人)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니다. 잠시의 변신과 약속을 뒤집어 표를 얻고 난 다음 원래로 돌아가 버리는 쇼맨들을 한 두번 보았던가.
고전적인 이야기지만, 늘 되새겨야 한다. 그 사람이 걸어 온 삶과 인품을 보고, 정책과 소신과 철학을 따져보고, 그 주변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최소한 이전의 나라 망친 두 대통령 같은 지도자는 뽑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