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 2013. 10. 19. 16:36 Posted by SisaHan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세파 속의 민초들로선 어지럼증에 속이 뒤집히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다시 ‘남북 정상 회의록’ 문제로 돌아갔군요. 돌고 돌아 원점이 아니라 왔다갔다 원점입니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엔 있고, 봉하에도 있었는데, 국가기록원에는 없고, 최종본은 있는데 초본은 없고, 초본이 최종본이라고도 하고, 온갖 이야기가 검찰에서 정신없이 쏟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초본엔 ‘저는’으로 되어 있던 호칭이 최종본에선 ‘나는’으로 되어 있다 따위를 두고 대단한 발견인 양 자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의록이 국정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있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됐고, 북방한계선(NLL)은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면 됐지 또 무슨 칼질할 게 그렇게 있는지 착잡합니다. 청와대 안보실장인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북쪽과 협상에서 북방한계선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됐지 뭐가 또 문제인 거죠?
‘사초 실종’이라고? 제발 웃기지 말라고 하십시오. 음원도 있고 그것을 정리한 기록물도 두 군데나 있는데 무엇이 실종됐다는 겁니까. 기록물 관리의 원조 격인 미국이나 영국의 대통령(혹은 수상) 기록물은 퇴임 후 개인적인 대통령기념관에 보관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후임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에 한 부 남기라고 ‘폼’을 잡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어떤 사기꾼이 후임자가 되어 농락할지 모르는데, 폼을 잡은 거죠. 사초 실종을 주장하는데, 기록을 이렇게 남겨놓은 게 낫습니까, 아니면 아예 중요한 건 모두 없애는 게 낫습니까.
 
들춰보기 좋아하는 측근들은 지금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혹시 그 중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과 관련한 기록,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기록, 쇠고기 수입개방 대가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했던 회담과 관련된 것 중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보다 멀리 가볼까요. 쿠데타 후 박정희 장군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나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 나눈 대화록은 도대체 있기나 합니까? 대통령님도 마찬가집니다. 2002년 야당 정치인 시절이지만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 동안 비밀회동을 했죠. 그때 나눈 대화록은 있기나 합니까? 있다면 그것을 우리 시대 정치인과 행정가를 위해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까? 군더더기에 불과하지만, 그때 자신을 부를 때 ‘나는’이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저는’이라고 했습니까. 세상에 외교적인 만남에서 자신을 낮추는 게 예의이고 관례이지, 상대를 하대하는 표현을 쓰는 멍청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새누리당이나 친정부 황색 매체들더러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십시오. 특히 이런저런 내용을 흘리는 검찰더러는 낯뜨거우니 주구 노릇은 좀 신중하게 하라고 하십시오. 어렵게 시녀로 되돌려놨는데, 다짜고짜 흘레부터 붙는다면 누가 곱게 보겠습니까.
 
검찰 이야기가 나왔으니 ‘검찰 정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을 처음 쓴 것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원회 산하 정치쇄신특위 위원이던 박민식 의원이었습니다. 말도 참 잘 지어내는데, 그건 야당이 아니라 이 정부가 집권하면서부터 한 짓이었습니다. 수사중인 검사에게 온갖 지침을 내리다가 여의치 않자, 검찰총장을 깝대기 벗겨 쫓아냈습니다. 검찰 정치를 제대로 한 것은 이 정부인데, 그렇게 해서 길들여진 검찰이 처음으로 정치 전면에서 나서서 하고 있는 일이 회의록 정치입니다. 이제 검찰은 국정원과 함께 집권여당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가 된 것입니다. 착잡한 것은 국정원이 실컷 우려먹은 대화록을 다시 고아내고 또 고아내는 일이니 보기 딱합니다. 아무리 뼈다귀를 좋아하는 개라지만, 이웃집 개가 버린 뼈다귀를 핥고 또 핥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정치 검찰의 ‘검찰 정치’ 하면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을 떠올릴 겁니다. 사실 그때는 정치검찰 왕국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더니,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사건 등 정권에 부담되는 이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행했습니다. 반면 BBK사건, 한나라당 대표 선거 돈봉투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 대통령 사돈 기업 사건 등 대통령 주변 사건에 대해서는 한없는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공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권의 이익만 대변했던 것입니다.
 
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설마 이전 정부보다는 낫겠지 기대를 했습니다. 대선 시절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점을 지우고 그가 한 것은 뒤집는 데 모든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작심하고 가장 먼저 벌인 일이, 국정원을 공작기구로 환원시키고, 검찰 정치를 부활하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권력이란 게 그런 건지, 대통령님이 그런 건지. 더러운 칼 노릇을 거부했다고 더러운 공작까지 벌인 것은 압권이었습니다. 직전 정권과 현 정권, 누가 더 더러운지는 아직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살림이 각박해지는 건 참을 수 있습니다만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 책도 읽고, 문화의 향기에도 젖어보고 싶습니다.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이 정도 여유와 행복은 꿈꿀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계속 소란을 피우는데, 이제 혼란을 틈타 우리 주머니에서 빼갈 것도 별로 없습니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

 

진성준 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이 15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옥도경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을 상대로 지난 대선 때 사이버사가 야당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을 올려 정치에 개입한 의혹을 따져 묻고 있다.


2011년 초 민군심리전부장이던 이종명 전 3차장 ‘핵심 역할’ 의심
연제욱 국방비서관도 주목
작년 선거 기간 ‘사이버사령관’ 전역 않고 이례적 청와대 발탁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합동참모본부의 심리전 부서인 민군심리전부 부장으로 근무할 때, 역시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이버사령부의 기획담당 1처장과 심리전단장이 그 휘하에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차장 등 국군의 심리전 부서 출신들이 국정원·사이버사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서 연결고리 노릇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지난 7일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은 육사 35기로 2011년 1월부터 국정원으로 발령나기 전인 같은 해 4월까지 국군 합동참모본부 민군심리전부장(소장)이었다. 현재 사이버사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사이버사 제1처장 ㄱ씨 또한 사이버사가 창설된 2011년 1월까지 합참 민심부에서 근무했다. 또 사이버사 심리전단인 530단의 단장 ㄴ씨도 사이버사 창설 전까지 민군심리전부의 사이버심리전 과장으로 있었다.
이들이 민군심리전부에서 어떤 업무와 역할을 했는지는 모두 비밀로 돼 있다. 민군심리전부는 평시에 대북 심리전을, 전시엔 적 지역 민심 안정화 정책을 주요 업무로 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종명 전 3차장이 현역 소장 신분으로 국정원 차장으로 발탁됐을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이 내정자는 군인으로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는 일을 계속한다”는 당시 청와대의 설명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사이버사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보면, 여러 대목에서 국정원과의 연계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사이버사는 국정원에서 2012년 45억원, 2013년 57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또 사이버사 요원들은 국정원 요원들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트들을 재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사이버사의 조직적 활동 방식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조직적 활동 방식을 빼닮았다.
따라서 이번 사이버사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서 이 전 3차장이 핵심 고리 노릇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그는 2011년 1월 합참과 여러 부대의 심리전 부서를 하나로 통합해 민군심리전부를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고, 초대 부장을 맡을 만큼 이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군인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 3명이 인연을 맺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국정원 심리전단과 사이버사 심리전단의 관계를 풀 열쇠를 가졌을 수 있다.

김현 민주당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조사 특별위원은 “이종명 전 3차장이 합참에 민군심리전부를 만들고, 국정원 심리전단을 확대·개편한 것은 같은 선상에 있다는 의심이 든다. 남은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을 추궁하고, 앞으로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말고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주목받는 인물이 또 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 기간에 사이버사령관이던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이다. 이와 관련해 김관영 민주당 대변인은 16일 “연제욱 소장이 국방비서관이 된 것은 사이버사를 통한 댓글 작업에 대한 보은인사가 아닌지 청와대는 대답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연 비서관이 사이버사령관으로 일했던 시기는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로 총선과 대선 시기를 모두 아우른다.

특히 그는 사이버사령관 임명 당시 임기제 준장이어서 1년 복무 뒤 전역을 해야 했지만, 이례적으로 국방부의 요직인 정책기획관으로 발령이 났다. 또 정책기획관 시절엔 사이버사령부의 지휘 부서가 정보화기획관실에서 정책기획관실로 바뀌기도 했다. 연 비서관은 또 자신을 발탁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같은 독일 육사 출신인데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도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연 비서관은 대통령 인수위 전문위원을 거쳐 소장으로 진급한 뒤 국방비서관으로 임명됐다.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그러나 연 비서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단언컨대, 저는 대선 개입 등 정치적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저 또한 전우들에게 그런 부당한 정치적인 개입을 지시한 적도 없다. 장관께서 합동조사를 통해 사실을 조사한다고 하니, 그 조사 결과에 따라 합당한 조처를 취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석진환 기자>

 
송전탑 갈등, ‘환경 불평등’ 문제다

“감 따랴 싸우랴 아주 정신없제. 그래도 ‘언제 암에 걸리노’ 걱정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 아입니꺼.”
주홍빛 감이 곱게 영글어가는 경북 청도군 삼평1리 주민들은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지역 특산물인 ‘청도반시’를 만드느라 바쁜 와중에 매일같이 마을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50㎡ 남짓한 움막을 찾는다. 주민들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송전탑 건설 공사를 막으려고 지난해 9월 만든 곳이다.
 
한전은 청도 일대에 345㎸(킬로볼트) 송전탑 40개를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39개는 이미 완공했다. 나머지 1개가 들어설 삼평1리의 주민 20여명은 송전선로 지중화를 요구하며 지난해 8월부터 공사를 막고 있다. 낮에는 할머니 대여섯이, 밤에는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움막을 지키며 ‘불시에 이뤄질지 모를’ 송전탑 설치를 감시한다. 빈기수(49) 주민대책위원장은 “송전탑이 마을 바로 앞에 생기는데다, 송전선이 마을을 가로지른다. 아예 짓지 말라는 게 아니고, 마을을 통과하는 720m만 땅에 묻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걷이로 바쁜 강원 삼척시 원덕읍 옥원1리 주민 7명은 지난 11일 오전 일손을 놓고 차로 1시간여를 달려 삼척시청을 항의방문했다. 마을에 들어설 154㎸ 송전탑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한전은 석탄화력발전을 하는 삼척그린파워발전소가 완공되면 수도권 등지로 송전을 해야 한다며 옥원1리 등 삼척 일대에 송전탑 51개를 더 설치하려 하고 있다. 주민들은 한전이 설명회도 제대로 열지 않고 ‘보상협의 요청서’부터 보내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9살 때부터 이곳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한숙(64)씨는 “한전에서 보상금을 찾아가라고, 찾아가지 않으면 강제로 공사를 시작한다는 공문을 3번이나 보냈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는 ‘또다른 밀양’들이 있다. 밀양 4개 면을 포함해 20곳에 이르는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직접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기 지역 4곳(이천·여주·광주·양평)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한전에 변전소·송전탑 설치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 협의 중인 곳까지 포함하면 해당 지역은 더 늘어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일각에서 ‘왜 다른 곳은 다 조용히 송전탑을 짓는데 밀양만 난리냐’는 시선이 있는데, 밀양이 더 많이 알려졌을 뿐 이전부터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은 곳곳에서 있었다”고 말했다.



환경·건강 우려시설 ‘힘없는 지방마을’ 떠넘겨 논란 자초

고령화된 시골마을 송전탑 집중, 건설 설명회 않거나 의견 안받아 
‘밀어붙이기 집행’ 곳곳 갈등 빚어
“비민주적 송전설비 건설과정 등 사회적 논의 거쳐 개선책 세워야”

갈등 지역은 읍·면·동·리 단위의 시골마을이 대부분이다. 환경오염 피해에 더 취약한 고령층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미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주민들은, 송전시설 설치 문제를 겪으며 정부를 향한 분노와 박탈감이 증폭됐다고 말한다. ‘가장 힘없는 마을에, 가장 손쉽게, 가장 적은 비용 들여서 공사하려고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고 여기는 것이다. “평생 못 먹고 못 쓰고 살았는데 왜 또 빈털터리가 되고 짓밟혀야 되노. 일제 경찰 식으로 우리 동네에 (송전탑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너무 억울하데이.” 청도군 삼평1리에서 30여년을 살아온 이차연(75)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마을을 둘러보면,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를 ‘지역 이기주의’나 ‘높은 보상비를 노리는 떼쓰기’로 치부할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다가온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환경 불평등’ 상황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하게 된다. 갈등 지역 주민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갈등을 발생시키는 송전탑 문제의 근본 원인인 △중앙집중형 전력공급체계 △송전설비 건설 과정의 비민주성 △집행 과정의 국가폭력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벌여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력은 충남·울진·고리 등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단지에서 상당 부분이 생산되는데, 소비는 주로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남부 해안가의 대형 공장 밀집지역에서 이뤄진다. 엄은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송전탑 건설 반대 목소리는 한국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가 갖는 지리적인 환경 불평등에 대한 자각과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송전선로 건설 반대운동은 대도시권과 다른 지역 간 전력 배분의 편익과 위험 부담에 내재한 불평등의 해결을 촉구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추진 과정에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의견도 반영되지 않는 점을 가장 답답해한다. 청도에서 7년째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은주(46)씨는 “2009년 처음 송전탑이 들어오는 걸 알고 한전에 정보공개를 신청해도 ‘비공개’라면서 안 줬다. 나중에 한전이 2006년 다른 지역 주민설명회 때 내준 자료를 구해 보니까 원래 선로가 우리 마을이 아니더라. 한전은 원래 선로가 지나는 산에 어느 문중의 산소가 있어 유교사상을 고려해 피했다고 하던데, 산 사람을 무시하는 건 이치에 맞나”라고 말했다. 옆에서 추호남(73)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우리 얼른 죽어뿌라 이 말이지. 무덤에 있는 사람만도 못한 거 보이.”
 
반대운동이 좌절된 곳도 있다. 지난 10여년간 한전을 상대로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다 올해 9월 공사 재개에 합의한 경기 포천시 일동면의 사례는 ‘강요된 합의’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5년 전까지 주민대책위원장으로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김인철(56)씨는 “한전이랑 싸우다 지치고 지쳐 이젠 다 끝난 일이다. 주민들은 동네에 리조트 하나 들어온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 바로 앞에 송전탑이 세워지게 됐으니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민단체 ‘포천의제21’ 임종석 활동가는 “한전은 주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국가 기간시설이라고 하면서 밀어붙이면 뜻대로 된다는 ‘자신감’이 있더라. 포천을 송전탑 건설 합의의 긍정적 롤모델로 삼겠다고 했다는데, 이곳은 한전이 밀어붙이기로 해서 형식적으로 합의한 나쁜 예”라고 말했다.
< 김효실 기자, 청도 삼척 이천 포천/이재욱 김미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