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는 없다

● Hot 뉴스 2013. 3. 8. 17:17 Posted by SisaHan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만인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회의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야당은‘백기투항 압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새누리당과 청와대 비서진들 도 “싸늘하고 비장, 소름끼쳐…”라고 평하는 등 박 대통령의 언성과 태도가 강경일변도여서 정치권이 꽁꽁 얼어붙었다.


박근혜 정부 2주째 ‘국정공백-압박정치’

정부조직법 야당 양보요구 강경 담화

취임 1주일째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여야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야당의 양보를 압박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화가 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시종일관 싸늘하고 굳은 표정이었고 높은 톤의 목소리에 주먹을 불끈 쥐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야당은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여당에 대해선 ‘타협 불가 가이드라인 제시’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야당이 취임 초반부터 ‘강 대 강’으로 물러섬 없이 대치하면서 여당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백기투항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조직 개편 문제는 정부조직법 개정 문제로, 국회에서 결정돼야 할 사안이다. 제아무리 국정철학이라고 해도 대야당 압박 일방주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근본적인 문제는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시도다.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매주 화요일에 열리던 국정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국무회의가 5일에도 열리지 않아 박 대통령 취임 이후 2주째 국정 공백이 이어졌다. 또 취임 뒤 나흘을 아무런 공식 일정 없이 보냈다. 국무회의 취소와 박 대통령의 ‘일정 공백’은 야당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로 보는 이들이 많다. 정치권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반쪽정부’의 공백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담화서 정부조직개편 불발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 드러내
수석 비서관들도 긴장…민주 “취임 열흘 안돼 국회 고립시키려해”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목소리는 시종일관 높은 톤을 유지했고, 때론 부르르 떨리는 느낌마저 전달했다. 내용 역시 국민을 설득하려는 담화라기보다, 꼬일 대로 꼬인 출범 초반 국정상황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격문에 가까웠다. 기자회견장 옆으로 나란히 배석한 수석비서관들도 입술을 꽉 다문 채 상기된 표정이었다.
박 대통령은 “산적한 현안과 국민의 삶을 챙겨야 할 이 시기에 저는 오늘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다”고 운을 뗐다. “여야 대표들과의 회동을 통해 발전적인 대화를 기대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큰 걱정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감 표명은 이뿐이었고, 이후 야당에 대한 강한 톤의 불만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안보위기와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금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로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고, 글로벌 경제위기와 서민경제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격한 감정마저 묻어났다. 외부 위기를 강조하며, 일사불란한 협조를 당부하는 패턴은 권위주의 시절 논리를 닮았다.
박 대통령의 이런 강경한 태도의 배경에는 담화문 발표 직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의를 표명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미래성장동력과 창조 경제를 위해 제가 삼고초려해 온 분인데 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의 ‘진심’을 믿어달라는 호소도 이어졌다. 욕심이 없고, 어떤 의도도 없으니 대통령의 선의를 이해하고 따라와 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미래창조과학부 업무와 관련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목적 이외에 어떠한 정치적 사심도 담겨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의 마음을 정치권과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미래창조과학부 업무와 관련해 정부조직법 원안 통과를 요구하는 데도 담화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경제를 새롭게 일으킬 성장 엔진의 가동이 늦어지고 있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기회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본 민주당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은 “취임한 지 열흘도 되지 않은 박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운영에서 국회를 고립시키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정 대변인은 이어 “박 대통령의 담화는 국회를 통법부로, 여당은 거수기, 야당은 거수기 보조자로 여기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매우 실망스럽다.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한다며 국회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권위주의 체제의 독재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매우 위험한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도 출범 초 박 대통령의 강경한 담화를 국민과 정치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아직 청와대에 남아 있는 전임 정부의 한 실무자는 “박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알겠는데, 표현이나 형식이 너무 거칠고 감정적이어서 갈등만 증폭되는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



문희상 "朴대통령,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

"상생정치 원칙에 어긋나…입법부 시녀화 시도"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무리 급하고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 해도 법률이 정한 원칙은, 정부조직 개편은 국회 논의를 거치고 국민 동의를 얻어야지 대통령의 촉구담화, 대야당 압박 일방주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이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상생정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법권과 법률을 무시하는 대국회관, 대야당관으로 어떻게 새 정부가 국민행복을 이루겠느냐"면서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또한 "과거 MB정부 때도 그렇지만 여야가 오랜 시간 (논의해) 끌어낸 합의를 청와대가 원안고수란 이름으로 압력을 가하고 여당은 직권상정, 야당은 단상점거하는 구태 정치를 또 하자는 말인가"라며 "어제 오후 2시 회동에 일방적으로 초청해 놓고 (그에 앞서) 대변인을 통해 원안고수를 주장하면 어쩌자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청와대 면담요청에 응해달라는 것은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다"면서 '이솝우화'와 장기에 비유, "여우가 두루미를 초청하고서 접시에 담긴 수프 먹으라는 격이고, 여야가 장기 두는데 훈수 두던 대통령이 장기판을 뒤엎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여야 상생정치를 위해 얼마든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밥 먹고 사진 찍는 자리에는 가지 않겠다"며 "국정파트너로 인정하고 어젠다를 놓고 상의할 수 있을 때 언제든 간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정 여야 상생정치, 민생정치를 바란다면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 달라"며 "원안고수라는 억지를 버리고 국회 합의안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해달라"고 덧붙였다.


“돈 맛 빠진 사회‥ 배고파도 밤무대는 안선다”

판금된 데뷔앨범 모던포크 명반 평가
잇단 실패로 이민 뒤 귀국‥단칸방 삶

재기음반 돈 까먹고‘거리 콘서트’도
힘들어도 정통·지성·깨침 음악 고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LP카페 피터폴앤메리. 1960~7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혼성 포크음악 트리오의 이름을 딴 이 카페에서 피터폴앤메리의 명곡 ‘Weep for Jamie’가 흘러나왔다. 앞에 있던 양병집(62)씨는 기자에게 “내가 신청한 곡인데 이거 죽이는 곡이야”라며 노래를 낮게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도수 높은 안경에 담배꽁초를 물고 시니컬하게 쳐다보는 눈초리의 재킷으로 유명한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에 ‘잃어버린 전설’로 번안해서 수록돼 있다. 70년대 명반으로 불리는 음반이건만, 카페 주인은 이 앨범의 주인공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70년대 3대 저항가수로 불리는 양병집씨는 그렇게 대중은 물론 제법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잊혀 있었다. 1974년 3월 나온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는 시대상황을 풍자하는 노랫말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불온음반’으로 분류돼 발매 3개월 만에 전량 회수 조처되면서 일부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고가인 30만~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는 자신의 노래 제목처럼 ‘잃어버린 전설’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타복네’ ‘소낙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원제 ‘역’) 등 제법 알려진 그의 노래들도 각각 서유석, 이연실, 김광석의 노래로 대중들에게는 각인돼 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한울 펴냄)라는 자전 에세이집을 냈다. 
책을 보면 밥 딜런,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등 미국 포크가수들의 명곡을 우리 현실에 맞게 풍자적으로 개사해서 만든 데뷔앨범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 증권회사 직원, 음반 제작자, 라이브카페 경영자로 변신했으나 잇따른 좌절과 실패를 한 뒤 1986년 가족회의 끝에 선택의 여지 없이 호주로 이민 갔다. 그곳에서 자동차 딜러, 청소부, 음식점·소주방 운영 등 각종 직업을 전전했으나 여전히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패한 뒤 거리의 음악인으로 나서고 자살까지 시도하고 결국 부인과 합의 아래 1999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그의 인생에는 반전이 없었다. 지금까지 일곱장의 음반을 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들국화, 해바라기 등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했으나 끝내 제작에는 좌절하고, 귀국해서는 손지연이라는 재능있는 여성 포크가수의 음반 제작을 했으나 실패해 돈만 다 까먹고 7평짜리 단칸방에서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달 8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서 드러난 그의 삶은 책의 내용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음반 제작 실패 뒤 2004~2005년 서울 이태원과 광화문, 강남 등지의 거리에서 ‘생계형 콘서트’를 벌여 하루 6만~7만원을 벌기도 했다는 그는 현재 서울 상도동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인 다세대주택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두 딸이 두달에 한번 꼴로 보내주는 1000호주달러와 간간이 들어오는 방송 및 행사 출연료를 바탕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통 모던포크음악은 지성의 음악이고 깨침의 음악”임을 누누이 강조하며 밤업소에 출연하지 않는 음악적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돈의 맛에 빠진 한국 사회”에 울분을 토하며 여전히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는 그는 자신은 평범한 기인 중의 하나라며 ‘70년대 3대 저항가수’라는 표현에도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 살아온 과정이 파란만장합니다. 한마디로 인생이 불우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이 ‘화살이 최소한 3개는 있어야 셋 중 하나라도 과녁을 맞힐 수 있는데 너는 왜 맨날 화살 하나만 있으면 일을 벌이다 실패하면 접느냐’고 했어요. 한대수씨 말로는 시대 톱니바퀴와 내가 맞지 않았다는 겁니다. 내가 추구한 것하고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 스스로 자책을 하자면 집요한 끈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 생계를 위해 거리공연에도 나선 적이 있다면서요? 
“우리 딸들이 변호사, 의사가 되기 전에 아주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2004년 손지연 판을 만들고 잘 안 팔렸을 때 4~6월 이태원에서 거리공연을 했어요. 하루 6, 7만원 벌이가 됐어요. 많은 때는 10만원도 벌었고요. 2009년, 2010년, 2011년도엔 광화문, 인사동, 강남 등지에서도 했어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지금은 하지 않아요. 자랑스런 이력이 못 되잖아요.”
그렇게 거리공연을 통해 어렵게 번 돈 일부를 노숙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음악을 하면 사회가 따뜻해져요. 나는 그들보다 가진 자이고 음악을 할 수 있죠. 제가 돈을 주면 처음에 안 받으려 하다가 나중엔 저에게 우유를 주고 반응이 와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였지만…. 정치인도 지식인도 음악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사회가 따뜻해지니까요.”
 
-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낼 생각은 없나요? 
“음반사업자 등록을 내기 위해 호주 시민권은 반납했어요. 원하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호주의 식객이 되기 싫고, 기여한 바가 없는데 노인복지혜택 받기 싫어요. 나는 한국의 편리한 시스템을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루 한번은 외식하는데 노량진에 가면 컵밥집에서 월남국수를 2500원에 팔아요. 컵밥은 안 먹어요. 서서 밥 먹는 게 슬퍼요. 월남국수 먹으면 얼마나 절약하느냐는 생각 들어요. 외식때 진짜진짜 그리워하다 먹는 게 8000원짜리 갈비탕이죠.” 
그는 “차는 없지만 스쿠터 타고 다니고 누굴 만나서 가수로서 체면을 손상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가난하지만 자족적인 생활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단 한가지 안쪽 치아 3개가 빠졌는데 임플란트 할 수 있는 돈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목돈이 천만~2천만원 필요한데 그런 돈이 없어요. 임플란트하고 가수로 벌 수 있는 돈이 많다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내가 1년에 버는 돈이 1000만원 이하라서 아직 못하고 있어요. 얼마 전 <한국방송> ‘7080’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섭외가 들어오는 게 두려워요. 혹시 (저의 이빨 빠진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까 해서요. 기피까지는 아니지만 텔레비전 매체는 자신이 없는 거죠.”
 
- 책에서는 3대 저항가수라는 평가에 대해 약간 저항감을 표시했습니다. 반항가수라고 자조적 표현도 했는데요. 
“금지곡 가수라는 것을 자랑거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우리 저항가수 특징이란 게 무엇입니까? 밤무대 출연하지 않고 방송 출연을 위해 방송사에 아부하지 않은 거예요. 김민기나 한대수가 밤무대 출연했습니까? 밤무대 제안은 있었지만 적어도 포크가수로서 품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응하지 않았어요. 많은 가수들이 ‘나도 저항가수는 아니지만 나도 금지곡 가수였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는 1970년대 서울공대생들 데모에 끼어 시위를 하다 경찰서에 연행됐을 때 학벌 때문에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서라벌예대(현재 중앙대) 중퇴라니까 ‘똥통대학 다니는 놈이 웬 데모야. 민기야 서울대라도 나왔지. 뭘 안다고 까불어’ 해서 꼬리를 내린 거죠. 저항가수 아니라고 하는 부분도 내가 우겨봐야 언어가 그 사람의 품격과 맞아떨어져야 힘도 있고 영향을 주고 하는데…. 오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꼬리를 내렸죠.”
 
- 데뷔 앨범은‘저주받은 명반’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저와 잘 매치됐으면 대중들도 더 좋아했을 거예요. 내가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경험이나 실력이 모자라 반주를 맡은 밴드 ‘동방의 빛’의 반주, 템포, 키(음역)에 맞춰 녹음하다 보니 어떤 것은 잘 나왔고 어떤 것은 못 나왔어요. 음악적으로 크게 만족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음악 관계자들이 수많은 음반 중 모던포크의 명반으로 평가해주는 것 같습니다. 비록 명작은 못 남기고 순수창작은 못했지만, 나름대로 내가 한 것은 포크의 정통성, 그것만은 고집하고 싶었던 거죠. 포크음악은 상당히 건방진 음악이에요. 메시지를 담고 지성을 던진다는 말이죠. 일반인들의 음악에 대한 의식은 즐겁고 슬프고 그러해야 하는데 내가 환영을 못 받은 이유는 가수가 사회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던진단 말이에요.”
 
- 유신정권에 의해 피해를 당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죠. 군사정권을 포함해 거의 20년간 철권통치한 독재자가 나중에 한국 경제를 살린 영웅으로 재평가되고 그런 대통령의 딸이 아버지 업적을 후광 삼아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당시 이 땅에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갈구하며 투쟁하다가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억울함이나 투쟁의 의미, 그리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지루하게 길었던 어두움의 세월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아버지의 공과를 심각하게 저울질해본다면 그렇게 쉽게 용서 내지는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핍박을 받아서 언짢고 그런 것은 전혀 없어요. 축하까지는 모르겠지만….”
 
- 데뷔앨범은 대부분 번안곡인데요. 
“솔직히 만약에 제 옆에 훌륭한 작곡자가 있었으면 번안곡 안 했을 거예요. 내가 내쉬빌(라이브하우스)에서 포크를 배울 때는 적어도 포크음악인은 지식의 선두주자로 일반대중의 의식을 깨우쳐주기 위해 음악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저소득층 착취, 고용자-피고용자 문제, 월남파병 문제 등 메시지를 곡에 담았거든요. 우리나라 배웠다는 사람들이 배움의 목적을 사회적 성공이나 부귀영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밥 딜런 등 아메리칸 모던포크 가수는 혁명가는 아니지만 메시지를 던져주거든요. ‘깨어라’는 메시지요.” 
대중음악 평론가인 박성서씨는 2004년 나온 <넋두리> 복각판 속지에 쓴 글에서 그의 번안곡에 대해 “그가 새롭게 편곡하고 노랫말을 입힌 이 노래들은 원곡과는 사뭇 다르다. 아메리칸 포크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외려 한국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부분의 원곡들을 애써 들으려 하지 않고 악보만을 기준으로 악상을 터득해 그만의 감성으로 해석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잃어버린 전설’에 대해서는 월남전 파병과 산업화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고 박씨는 평했다.
 
- 70년대 엄혹한 상황 속에서 노래에 시대의 메시지를 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를 이야기할 때 나쁜 게 어떤 거냐 하면, 경제성장의 부작용이나 산업부흥의 어쩔 수 없는 역효과이겠지만, 룸살롱 최초로 만든 게 그 사람들이에요. 경제가 커지고 차관 나눠먹고 접대문화가 생기면서 룸살롱이 생겼습니다. 당시 내 친구 중에 홍제동 산동네에서 물도 길어 먹는데, 한쪽에서는 어여쁜 여자가 미니스커트 입고 룸살롱 나가고 그랬거든요. 당시 이런 사회적 상황이 안타까워 ‘서울하늘 2’에 담았지요. 그런데 사십년이 된 지금도 사회적 상황은 변함없다는 거죠.” 
 ‘서울하늘 2’는 피트 시거 노래를 번안한 곡으로 당시 시대 상황을 풍자한 곡이다.
 
- 귀국 뒤 음반 제작도 실패했습니다. 
“가수의 꿈이 좌절되면서 방송에서 트는 곡이 맘에 안 들어서 비틀스를 만든 조지 마틴 같은 프로듀서 꿈을 꾸었어요. 제 인생에서 음악을 못 버리는 것은 생존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귀국해서도 음악 프로듀서 일을 했죠. 손지연 같은 신인을 발굴해서 기뻤어요. 기존 인디에도 사이비가 많은데 그를 만나면서 존재 의의를 느낀 거죠.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돈 5만달러가 줄어들다 어머니 유산으로 조금 생긴 돈으로 그냥 손지연 음반제작 했어요. 처음엔 천만원 예상했던 금액이 CD가 나올 때 3천5백만원 들어갔어요. 그런데 1500장 나가고 주춤해서 방송사 출연 섭외했는데 좌절만 맛봤습니다. 지금은 대형 기획사들이 프로그램을 블록별로 장악하고, 재능있는 신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고요.” 
인터뷰 말미 록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히트곡 ‘설튼스 오브 스윙’이 흘렀다. 양씨는 이 그룹명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극도의 궁핍입니다. 밥 딜런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죠. 김 기자도 한겨레의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되어주세요.”
< 김도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