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땅 비리 의혹은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말에 이르러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 등으로 곤욕을 치른 적은 있지만 대통령 자신이 직접 의혹의 한복판에 선 적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대통령 가족 국고횡령 의혹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도 지나치지 않다.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해법도 통상적 수준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와대 비서실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경호처장이나 총무기획관이 물러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으며, 수습해야 할 사람도 이 대통령이다. 본인은 물론 부인 김윤옥씨, 아들 이시형씨마저 연루돼 있으니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한마디 대국민 사과도 없이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고 우긴다. 오히려 ‘내곡동 사저 백지화’가 대단한 결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화자찬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일수록 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으나 정작 본인과 가족 비리 의혹에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한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이 대통령 본인의 육성 해명이다. “대통령은 모르는 일” “실무진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거짓 변명이 아닌 이 대통령의 진솔한 자기고백과 참회를 원한다. 퇴임 후 자신이 돌아갈 집이 어딘지도 몰랐다는 말에 속아 넘어갈 만큼 우리 국민은 어리숙하지 않다. 아들이 논현동 집을 은행에 담보로 잡혀 대출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는 말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많은 국민은 오히려 이번 사건을 ‘부동산 박사’인 이 대통령 본인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는 형편이다. 이 대통령 부부가 내곡동 사저 땅 매입 뒤 직접 현장을 둘러봤다는 보도마저 나온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이 나오면 비상식적 해명만 늘어놓으며 뭉개기로 버텨왔다. BBK 사건을 비롯해 사례를 꼽자면 한이 없다. 하지만 내곡동 땅 사건도 그렇게 어물쩍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나마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큰 화를 면하는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

 
지난 15일 세계 80여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졌다. 9월17일 탐욕스런 금융자본에 항의해 미국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시내 곳곳에서도 금융세계화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양했지만 그들은 모두 ‘1 대 99 사회’에 분노했다. 
이번 시위는 ‘분노한 사람들’이 전지구적으로 한목소리를 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구호도 ‘월가를 점령하라’에서 ‘다 함께 점령하라’로 바뀌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로 전세계의 분노한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앞으로 금융세계화에 항의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 전세계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양극화 심화다. 한때 20 대 80 사회라고 불리던 게 이제는 1 대 99가 됐다고 주장한다. 1%가 99%의 사회적 자산을 독점하는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일 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특히 탐욕스런 거대 금융자본은 이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거대 금융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다 함께 점령하라’ 시위에서는 금융자본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빈곤 철폐, 반원전, 비정규직 철폐 등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됐다. 한마디로 각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이는 현재의 사회경제체제를 전세계인들이 거부하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 함께 점령하라’는 시위를 단지 사회불만세력의 일시적인 행동으로 보아넘겨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이번 시위가 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지구적으로 일어난 시위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비조직적이고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현행 체제를 단시간에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사회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런 시위가 쉽게 잦아들 것 같지도 않다. 이제 전세계 지도자들은 이들의 분노를 억누르려고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의 분노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해결책 모색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오랜만에 찾은 숲이다. 
어느새 가을인가, 햇살이 따갑고 바람은 쌀쌀하다. 후덥지근하던 공기에서 습기를 걷어내어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그래도 아직 여름을 버리지 못했는지 숲은 온통 농염한 초록이다. 숲 길 바로 곁에는 강물이 호위하듯 발걸음을 따라 흐른다. 제법 큰 소리를 내며 제가 거기 있다고,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물소리가 큰 걸 보니 강물이 불었나 보네, 하며 강둑으로 올라서는 내게 남편이 등뒤에서 혼잣말하듯 한다.
“물이 깊으면 조용히 흐르겠지. 얕으니까 소리를 내는 거야.” 물이 깊으면 조용하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관심 받고 인정 받고 싶어 목소리를 높이는 게 생물의 특성이라면 강물은 무슨 연유로 그러는 것일까.
 
곁길에 들어서니 쓰러져 누운 나무가 눈에 띈다. 수령이 꽤 된 듯 힘겨운 삶의 껍데기를 벗어버린 몸이 공허하면서도 왠지 평온해 보인다. 한때 영혼을 가두었던, 그러나 이제는 빈 주머니에 불과한 몸체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가만, 나는 그 순간 숨을 들이킨 상태에서 내뱉지 못해 절절맨다. 검은 고목에 돋아난 새싹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주검을 뚫고 올라오는 새 생명이라니. 나는 생명의 그악스러움에 진저리를 치며 한 걸음 물러선다. 고목이 제 몸에 돋은 싹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푸르렀던 제 젊음을 다시 본 듯 반가울까. 죽은 듯한 고목에서 돋아난 새싹을 통해 육신의 빈 주머니를 내려놓고 맞게 되는 생의 부활이나 윤회를 설명하려는 것일까. 어쩌면 죽음이란, 삶에 대한 기억은 타인의 가슴에 남기고 영혼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꽃은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버려야 바다가 되고, 새는 둥지를 버려야 날 수 있다.”는 <법화경>의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버림’에 대해 수없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나는 죽음을 수용하고 생을 버렸기에 태어났을 새 생명에 자꾸 마음이 붙들린다. 죽음이란 완전한 종결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임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음산한 샛길을 나와 햇빛이 따가운 길로 접어든다. 가을이긴 가을이구나. 메뚜기 몇 마리가 정신 못 차리게 여기저기서 튀고 있다. 큰 것들은 꽤 멀리까지 날아간다. 부지런히 쫓아가 메뚜기 턱 밑에서 땅바닥을 발끝으로 톡톡 건드려도 보고 깨끼발로 콩콩 울려서 날려보냈다가 따라잡고 다시 날려보내며 장난을 걸어본다. 어른에겐 이곳만큼 재미있는 놀이터도 없을 것 같다. 빨간 고추잠자리도 보인다.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역 땅에서 만나니 눈물이 핑그르르 돌만큼 반갑다.
 
잠자리 한 마리로 그리움에 울컥 가슴이 젖는다.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우리만 빠지고 다들 한자리에 모이겠지.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코끝에 살아난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북적이는 집안에서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빈 방을 지키고 계실 팔순의 어머니는, 오지도 않을 맏이를 기다리며 종일 현관 문 언저리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시겠지. 자식이 모두 모이지 못하는 명절은 아무리 북적거려도 가슴 한 쪽은 텅 비게 마련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박혀있다. 
울적해진 기분에 도중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더 가면 또 뭘 하나 싶어서다. 남편도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아니면 남편 역시 고추잠자리를 통한 심리적 연상(聯想)이 나와 같았던 것일까. 왜냐고 묻지 않고 함께 돌아서준 게 고맙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쓸쓸한 정경(情景)에 말없이 고개를 들어 애꿎은 하늘만 올려다본다. 가을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고는 하나, 오늘따라 어찌 저렇게 파랄 수가 있을까.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