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겠다’는 대자보들 잇달아 실명 게시2일 학생 시국선언 예정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캠퍼스에 ‘학생 시국선언’을 제안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노민영(20)씨 제공
 

‘시끄러운 세상 속, 대학가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합니다. 고려대학교에서 먼저 침묵을 끝냅시다’

25일 낮,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캠퍼스 곳곳에 ‘침묵을 깨고, 함께 외칩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고려대 생명공학부 재학생 노민영(20)씨가 ‘고려대 학생 시국선언’을 제안하기 위해 붙인 대자보다. 노씨는 이날 한겨레에 “정부의 지난 모습을 보면,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고,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목소리 낸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교수님을 이어 대학생으로서 ‘퇴진 시국선언’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고려대 교수 152명은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국정농단을 철저히 규명할 특검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노씨는 “교수님들이 학교에 시국선언 대자보를 붙이신 이후 그 옆에 ‘교수님들의 용기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더는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다’ 등 학생들이 수십 개의 포스트잇을 붙였다”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그냥 포스트잇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 시국선언을 제안하는 대자보를 썼다”고 말했다.

고려대 재학생 노민영(20)씨가 25일 ‘시국선언 제안’ 대자보를 붙인 이후 하루도 안 돼 ‘함께하겠다’는 대자보들이 붙었다. 노씨 제공
 

하루도 안 돼 노씨의 대자보 옆에 ‘함께하겠다’는 대자보들이 잇달아 실명으로 게시됐다. 바이오시스템과학부 24학번 박정환씨는 ‘윤석열 퇴진 고려대학생 시국선언에 함께합니다’는 제목의 대자보에 ‘1987년 민주화 이후 40년도 되지 않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저는 비록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그럼에도 과거로 퇴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좌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함께 진행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식품자원경제학과 22학번 임장표씨가 붙인 ‘윤석열 퇴진 고려대학생 시국선언에 함께합니다’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지금 목소리 내지 않고 침묵한다면,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을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망가뜨릴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노씨는 “일주일간 연서명을 받은 후 오는 2일 고려대에서 ‘학생 시국선언’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 고나린 기자 >

 

고려대 교수 152명 “윤석열-김건희 국정농단 특검하라” 시국선언

“권력 사유화한 윤 대통령 퇴진하라”

 

 
 
10월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촛불전환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12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LED촛불과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있다. 연합
 

고려대학교 교수 152명이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하고 국정농단을 철저히 규명할 특검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고려대 교수들은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고려대학교 교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문에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다. 특검을 즉각 시행해 그간 벌어진 국정 농단과 파행을 철저히 규명할 것도 엄중히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고 했다. 우선 윤 대통령 부부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며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농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고, 정당성도 실리도 없는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지속”했다며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짚었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고려대학교 교수들이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교수들은 “이태원 참사,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올해 무책임한 의료대란까지 일으켜 전 국민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군인 한 사람의 목숨도 명예롭게 지키지 못하는 권력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켜 전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대통령 권한 정지와 퇴진에 따른 일시적 혼란은 민주적인 제도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나, 더 이상의 국정 농단은 우리 사회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며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게 권한을 계속해서 행사하도록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시국선언 전문.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고려대학교 교수 시국선언

고려대 서명 교수 일동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다. 특검을 즉각 시행하여 그간 벌어진 국정 농단과 파행을 철저히 규명할 것도 엄중히 촉구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번영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20세기 제국주의와 냉전 이념이 남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변 열강의 이해에 따라 부침을 반복할 것인가, 그 기로를 결정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거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대신, 대통령 부부의 국정 농단을 보며 우려와 당혹감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게 권한을 계속해서 행사하도록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대통령 권한 정지와 퇴진에 따른 일시적인 혼란은 민주적인 제도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나, 더 이상의 국정 농단은 우리 사회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상식을 이루는 가치관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더 고조되고 있는 현 상황이 이러한 우려를 심각하게 만든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첫째,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했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독재에 항거하고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현 대통령 부부의 국정 농단은 일제 식민 지배,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힘들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통치제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된 각종 게이트는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농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둘째,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현 정권은 소위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고, 정당성도 실리도 없는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지속하였다. 반면, 불온세력, 반국가세력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용어를 써가며 국민을 몰아세우고, 검찰을 동원하여 반대 세력을 탄압하였으며 언론을 장악하여 시민들을 통제하려 하였다.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과거를 왜곡하고 현실을 통제하며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가 대통령과 그 주변의 안위와 이권 카르텔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진정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올해 무책임한 의료대란까지 일으켜 전 국민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고 나아가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정치 세력과 권력자는 더 이상 국민의 곁에 머물 자격이 없다. 더구나 군인 한 사람의 목숨도 명예롭게 지키지 못하는 권력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켜 전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막아야 한다.

지난 7일 대통령의 기자 회견은 이 정권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다. 이를 본 국민은 모욕감과 참담한 심정으로 불의와 무지, 무능으로 가득한 현재의 권력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무너진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품격을 회복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안녕과 번영을 위해 현 상황을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고려대 교수 일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과 특검 시행을 다시 한번 엄중히 촉구한다.

2024년 11월 14일

고려대학교 서명 교수 152명 일동

강은주, 곽경민, 고영규, 고점복, 구상회, 권내현, 권혁용, 김갑년, 김동욱, 김동현, 김문일, 김민주, 김범수, 김범석, 김선민, 김선혁, 김성룡, 김성환, 김수한, 김신곤, 김영근, 김옥매, 김완배, 김용현, 김용철, 김우영, 김우찬, 김원섭, 김윤태, 김은성, 김응주, 김장훈, 김정숙, 김진규, 김진배, 김진영, 김철규, 김충호, 김태성, 김한웅, 김형수, 김효민, 남호성, 노애경, 류지훈, 류태호, 류홍서, 문두건, 민경현, 민경훈, 박경남, 박경화, 박대재, 박상수, 박선웅, 박성철, 박우준, 박유희, 박종천, 박창규, 박헌호, 배상우, 배종석, 서병선, 서승원, 성영배, 손기영, 손주경, 송규진, 송상헌, 송양섭, 송완범, 송혁기, 송호빈, 송효종, 신명훈, 신은경, 신정화, 양원석, 양승룡, 엄태웅, 염석규, 오유정, 유경철, 유난숙, 윤조원, 윤봉준, 윤태웅, 이기호, 이도길, 이동은, 이동섭, 이동호, 이명현, 이상원, 이성호, 이세련, 이순영, 이순의, 이영훈, 이용숙, 이용호, 이재명, 이진한, 이찬, 이창희, 이형대, 이형식, 이호정, 이화, 임준철, 임춘학, 임형은, 장경준, 장동천, 장유진, 장정선, 전경남, 전재옥, 전현식, 정병욱, 정순일, 정우봉, 정의환, 정재관, 정재호, 정재화, 정지웅, 정호섭, 조대엽, 조석주, 조윤재, 조재룡, 조재우, 조철현, 지영래, 천철홍, 최기항, 최보승, 최석무, 최용석, 최은수, 최정현, 최종택, 최태수, 한재준, 허은, 허지원, 홍금수 홍세희, 홍용진, 홍정호.

총 152명(가나다 순)

전 정권 인사들에게 타격을 주려는 정치적 목적의 수사

 

 

 

 
2022년 6월15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세계 1% 과학자’다. 최근 10년간 논문 인용 횟수가 전 세계 상위 1%에 해당한다. 노벨상 예측 후보 발표로 유명한 글로벌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가 해마다 집계하는 통계다. 신소재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해외 학회와 강연, 세미나에 자주 초청된다. 지난 6일에도 유럽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재료 학회’(MATSUS) 초청으로 일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다. 올해에만 8번째 해외 출장이다.

‘세계 1% 과학자’가 출국허가신청서 내야 하는 까닭

그의 해외 출장은 다른 학자에겐 필요 없는 절차를 요구한다. 법원과 검찰의 출국 허가를 받는 일이다. 그는 현재 재판받는 피고인 신분이라서 출국금지 돼 있다. 해외 출장 때마다 ‘출국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뒤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의 첫 출국 허가는 검찰이 출국일이 임박해서 내주는 바람에 출장 직전까지 애를 태워야 했다. 담당 검사는 별다른 이유 없이 차일피일 허가를 미뤘다.

백운규는 1심 재판만 4년째 받고 있다. 재판을 받는 데에는 시간과 돈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기소되면 인생이 결딴난다”라는 말에 역설적으로 100% 공감하게 됐다. 윤 대통령의 경고(!)대로 피고인이 되면 일상이 파괴되고 인간관계가 단절될 위기를 맞는다. 그도 처음에는 인생이 결딴날 것만 같았다. 수사가 시작되자 그에 대해 온갖 악의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보수언론은 그를 영혼 없는 ‘어용학자’로 몰아갔다. “그동안 쌓아온 학자로서의 명예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소 후에는 기자들이 그가 몸담은 학교 쪽에 징계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왔다. 마치 해고가 당연하다는 뉘앙스였다. 다행히 학교 재단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의 교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백운규는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과 함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강요한 혐의(직권남용)로 2021년 6월30일 기소됐다. 재판이 한참 진행된 2023년 7월에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소됐다. 문재인 정권의 실세였던 김수현이 무려 2년 뒤에 기소된 건 이 수사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가급적 더 많은 전 정권 인사들에게 타격을 주려는 정치적 목적의 수사였다.

삼중수소 다량 배출 노후 원전을 ‘멀쩡한 원전’ 전제한 수사

검찰은 설계수명(30년)이 2012년에 끝나 가동이 중단됐다가 2015년 수명연장으로 재가동된 월성1호기를 ‘멀쩡한 원전’으로 전제하고 수사를 했다. 월성1호기의 경제성이 충분한데도 이를 불합리하게 저평가해 조기 폐쇄했다는 논리였다. 안전성은 제쳐두고 손실이 얼마인지만 따졌다. 하지만 안전성을 평가하면 월성1호기를 멀쩡한 원전으로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 원전은 2000년대 들어 노후화로 인해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설계수명을 연장한 뒤에도 고장은 계속됐다. 재가동 1년 만인 2016년 5월 압력조절밸브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됐고, 2017년 5월에도 원자로냉각재펌프 2대가 고장나 정지됐다.

더욱 심각한 건 방사성 물질 노출 위험이다. 월성 1~4호기는 중수로형 핵발전소다. 경수로형보다 삼중수소를 10배나 더 많이 배출한다. 삼중수소는 사람 몸속에 흡수되면 세포 돌연변이 발생률을 높여서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 몸속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경주시 월성원전 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가 2014년 2월부터 15개월 동안 이 원전 인근 주민 246명, 경주시 주민 125명, 울진핵발전소 인근 주민 124명을 대상으로 체내 삼중수소를 조사한 결과 원전 주변의 주민이 경주 시내 주민보다 검출 평균치가 2.6배 이상 높았다. 앞서 다른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무려 25배나 차이가 났다(2011년). 월성원전 주변 지역 빗물과 지하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다른 원전 지역보다 5~10배 높다는 조사(2010년)도 있다.

월성1호기가 고장으로 멈출 때마다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특히 2016년 9월12일 경주 일대에 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참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지진 발생 1시간 후 “원전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4시간 뒤 월성 1~4호기가 모두 멈춰 섰다. 한수원은 “정밀 안전 점검을 위해 정지시켰다”라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았다. 지진 발생 이튿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해 지역을 방문한 뒤 주민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주민들은 문재인에게 “대통령이 되거든 원전 문제를 꼭 해결해달라”고 했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가 문재인 정권의 공약이 된 배경이다.

법원 2017년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처분은 위법” 판결

 

2017년 2월7일 서울행정법원이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후 소송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2017년 2월7일 서울행정법원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지역 주민 2000여명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원안위의 수명연장 처분이 절차를 안 지켰을 뿐만 아니라 안전성 평가도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특히 안전성 평가의 위법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봤다. 원자력안전법령에는 수명연장을 위한 안정성 평가 때 최신기술 기준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월성 1~4호기를 한국에 수출한 캐나다는 원자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원자로 격납용기에 수문과 이중 밸브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규정(R-7)을 1991년 도입했다. 이 규정에 따라 1997년~1999년 건설된 월성 2, 3, 4호기에는 안전장치가 설치됐다. 그러나 이보다 10년 전에 건설된 월성1호기에는 이 장치를 설치할 수 없었다. 법령에 따르면 2015년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을 결정할 때 수문과 이중 밸브 등의 설치 여부를 따져야 했지만, 원안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안위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5월 각하 판결을 했다. 앞서 2019년 12월24일 월성1호기가 폐쇄됐기 때문에 더 이상 소송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월성1호기는 안전성 면에서 ‘불안한 원전’이었다.

‘탈원전’ 수사는 정치적 편향성 시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도 당시 한수원은 경제성은 물론 안전성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들어 영구 정지를 결정했다. 고리1호기 폐쇄가 월성1호기와 다른 점은 보수정권이 원전 폐쇄를 주도했고,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 “한수원은 손실, 국가는 이득” 이유로 배임 적용

검찰은 백운규와 함께 기소된 정재훈에게 한수원 사장으로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를 적용했다(백운규는 배임 교사 혐의가 나중에 추가됐다). 검찰은 공소장에 “백운규 등 산업부 관계자들의 지시에 따라…(중략) 월성1호기의 가동중단을 실행함으로써 회사에 1481억원 상당의 손해를 가하고, 국가에 이 손해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라고 썼다. 국가 사정기관이자 ‘공익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검찰이 한수원의 주주나 할 법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백운규와 채희봉은 노후 원전을 계속 돌려 돈을 벌려는 공기업(한수원) 경영진에게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도록 한 것이다. 검찰은 국민의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공기업의 탐욕을 막은 공직자를 처벌하려고 한다.

이처럼 모순투성이인 검찰 수사가 별다른 제약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무죄가 난 산업부 공무원들의 ‘감사 방해’ 프레임이 먹힌 탓이다. 월성1호기 폐쇄가 관련 자료를 폐기해야 할 만큼 불법이었다는 인식을 퍼뜨려 검찰 수사가 힘을 받을 수 있었다. 때마침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사태까지 겹친 것도 윤석열 사단엔 호재였다. 윤 사단은 ‘현 정권이 범죄를 감추기 위해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한다’고 여론전을 폈다. 여론도 호응했다. 징계 사태가 윤석열의 판정승으로 끝난 뒤 2021년 1월15일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38%)과 부정(53%)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 윤석열은 여당의 정권 재창출을 막을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선 출마 선언 이튿날 ‘탈원전’ 기소

윤석열은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한지 석 달여만이다. 그는 출마 연설에서 밑도 끝도 없이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한 탈원전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주민을 공포에 떨게 한 노후 원전 폐쇄가 ‘세계 일류 기술’을 고사시킨다는 주장은 지나친 침소봉대였다. 검찰은 이튿날 백운규 등을 전격 기소했다. 윤석열의 출마 선언에 힘을 실어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심판하겠다”는 출사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돈 지난 11일 그의 지지율은 17~20%대를 기록했다. 그가 심판하겠다던 문재인은 물론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에 견줘 가장 낮다. 검찰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검찰 정권’의 예고된 몰락인가.    <  한겨레 이춘재 기자 >

 

친한동훈계와 친윤계 당직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설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연합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친윤석열계가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 글과 관련해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면충돌했다. 친윤계인 김민전 최고위원은 한 대표 면전에서 “8동훈”을 언급하며 ‘가족 연루설’에 대한 입장 표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한 대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하라”고 반박하는 등 날 선 반응을 보였다. 15분가량 진행된 비공개회의에서도 당원게시판 의혹을 두고 친한동훈계와 친윤계 당직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설전이 벌어졌고, 한 대표는 회의 직후 당원게시판 논란 자체를 조직적인 ‘당대표 흔들기’로 규정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8동훈’은 당원게시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동훈’ 이름의 당원이 8명 있다고 친한계가 밝힌 뒤에 생겨난 말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한 대표와 가족들이 당원게시판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 최고위원 등 당직자가 (게시판에 한동훈이란 이름으로 글을 쓰는) ‘8동훈’이 있다는 얘길 언론에서 하는데, 어떻게 8동훈이 있(다고 확인했)는지 궁금하다”며 “(게시판에 글을 쓴 당원) 자료를 일부 최고위원은 보는데 왜 저희는 못 보는지, 그걸 어떻게 확인했는지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당법상 익명 게시판에 글을 쓴 당원 신상은 확인할 수 없다고 버텨온 친한계가 ‘한동훈’이라는 이름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가 8명이란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는지 ‘논리적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어 “당에서 ‘한 대표 사퇴(요구)’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을 고발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고발한다면, 저한테 무수하게 많이 사퇴하라는 문자가 와 있는데 같이 고발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이 언급한 기사는 “한 대표를 향해 사퇴하라거나 추가 의혹 폭로하겠다는 식의 글을 올린 사람을 고발하는 방안을 친한계가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 24일치 채널에이 보도다.

 한 대표는 발끈했다. 김 최고위원 말이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켜고선 “사실관계 좀 확인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런 고발 준비하는 사람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최고위원이 “기사가 있다”고 하자, 한 대표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며 “참…”이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당내 게시판 의혹을 두고 친한계와 친윤계 당직자들이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이후 기자들에게 “최고위원이 아닌 사람들끼리 언쟁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회의 참석자는 “친한계 당직자가 비속어에 가까운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 앞에서 긴 시간을 할애해 게시판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드릴 말씀이 없다”고 언급 자체를 피해온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는 “대통령을 비판한 글(을) 누가 썼는지 색출하라는 건 자유민주주의 정당에서 할 수 없는 발상이고, 그 자체로 황당한 소리다. 그 정도 글도 못 쓰나. (지금이) 왕조시대인가”라고 반문했다. 익명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라는 게 권력을 쥔 사람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가 넘치는 법이니, 도를 지나친 비방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누가 썼는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란 논리다.

 게시판 논란을 주도적으로 제기하는 당내 인사들의 정치적 배경도 거론했다. 한 대표는 “최근 (당원게시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보면 대개 ‘명태균 리스트’에 관련돼 있거나 김대남(전 대통령실 행정관) 건에 나왔던 사람이거나, (논란을 키워) 자기 이슈를 덮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어떻게든 당대표인 저를 흔들어보겠다는 의도 아닌가. 그런 뻔한 의도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당원게시판 논란 자체가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조직적인 ‘한동훈 흔들기’라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나경원 의원, 김은혜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등 최근 당원게시판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침묵을 비판한 이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김 최고위원이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당이 한동훈 대표 비판 글 작성자를 고발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저에게 ‘여성 속옷을 입었다’는 원색적 성희롱성 발언도 했다. 해당 행위이고 공개 모욕인데, 제가 법적 조치를 했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친윤계는 ‘의혹에 제대로 해명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친윤계 중진 의원은 “그동안 본인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면 직까지 걸면서 강하게 얘기하지 않았나. 남들에게 한 것처럼 자기한테도 (엄정하게 기준을 적용) 해보라”고 했다. 또 다른 영남권 재선 의원도 “그래서 (가족이) 글을 썼다는 거냐, 안 썼다는 거냐. 본인이 의혹을 더 크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 한겨레  서영지 신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