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부활과 재집권, 왜 재앙은 반복됐는가

● WORLD 2024. 11. 9. 02:0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바이든의 약속이 깨지면서 이어진 트럼프의 부활


뒤늦게 사퇴한 바이든과 차별화도 포기한 해리스
공화당에서 빼내 오기에 매달려 온 해리스의 패착

두려움과 원한 감정을 부추긴 트럼프의 혐오 정치
더욱 위험한 공격과 탄압이 예고되는 트럼프 2기

극우 정치의 대안으로는 부족한 민주당을 바꿔야

 

민주당 해리스 후보의 패배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참패할 것을 예상한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는 선거인단도 훌쩍 앞서는 결과를 보이고 있지만 총득표수에서도 해리스를 꽤 뛰어넘었다. 이제 행정부, 상·하원, 대법원 등을 모두 틀어쥐게 된 트럼프 2기 정부가 다가오고 있다.

이 결과 앞에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와 퇴행적 대자본가 일론 머스크 등이 기뻐하는 반면, 이민자와 무슬림,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들의 절망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기분은 매우 우울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것은 국제적 차원에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동적 극우정치의 득세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이것은 그 대안이나 경쟁 상대가 되기 어려운 중도적 자유주의 정치의 쇠퇴 과정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적 중도정당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갈수록 약화하면서 더 왼쪽이나 더 오른쪽의 정당들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라는 게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미국 폭스뉴스는 6일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인 277명을 확보해 226명을 확보 중인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누르고 승리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2024. 11. 06 [폭스뉴스 캡처]
 

미국 민주당의 주류는 8년 전에는 사실 트럼프를 막는 것보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건 버니 샌더스의 돌풍을 차단하는 데 더 열심이었다. 샌더스의 '좌파적 포퓰리즘'은 트럼프의 '우파적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는 카드였지만, 민주당 주류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버니 샌더스를 주저앉히고 민주당 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은 결국 트럼프에게 패배했다.

집권한 트럼프는 경제적 민족주의, 극우적 복음주의, 소수자 혐오 선동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를 뒤흔들면서 강력한 분노와 반감을 일으켜냈다. 그래서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은 반트럼프 정서에 의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의 진보적 정책과 공약들을 일부 흡수해서 힐러리의 패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바이든이 집권한 후에 샌더스는 상원 예산위원장이 되는 등 힘이 커지고 더 중요한 위치로 올라갔다. 그런데 바이든은 그로부터 4년 동안 다시 원래 민주당의 한계로 돌아왔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바이든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공화당도 막아섰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발목을 잡았다.

결국 경기침체와 인플레 속에서 4년이 지난 지금 미국 대중 대다수는 트럼프 정부 때보다 '더 살기가 힘들어졌다'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CNN의 여론조사에서도 45%가 "4년 전보다 상황이 나빠졌다"라고 했고, "나아졌다"라는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이것이 4년 전에 패배하고 사라질 줄 알았던 트럼프가 다시 부활하게 된 배경이 됐다.

 

바이든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며 인기가 추락했고, 특히 이스라엘 학살 지원으로 '제노사이드 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미국 반전운동가들이 만든 포스터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이런 상황과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게 아니라 각종 불법과 범죄 혐의를 이용해 트럼프를 사법적으로 제거하는 것에 매달렸다. 그것은 실패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풍을 낳았다. 트럼프는 더욱더 목소리가 커졌고, 노쇠하고 무능력한 바이든은 그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갈수록 모두에게 분명해졌다.

바이든은 빨리 물러나고, 경선을 통해서 누가 바이든의 약점과 한계를 뛰어넘어서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후보인지를 가려내야 했다. 그 과정 자체가 새로운 희망을 불러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기득권 주류세력은 자신들의 요구와 이해를 대변한 바이든을 쉽게 버리지 못했고, 바이든도 미련과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결국, 바이든은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자신의 무기력과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후에도 더 버티다가 뒤늦게 마지못해 물러났다. 이제는 너무 늦어서 내부 경선을 통해 후보를 가려낼 수도 없었다. 바이든의 말 잘 듣는 부통령이고 충성스러운 부하이던 해리스가 그냥 지목됐다. 무색무취한 해리스는 ‘바이든과 선 긋기’에 나서지도 않았지만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바이든과 무엇이 다른가?' 물어보면 아무 답을 못하다가 '내각에 공화당 인사를 받아들이겠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나마 4년 전에 바이든은 ‘최저임금 15달러, 그린뉴딜, 학자금 탕감’ 같은 진보적 공약이라도 있었다. 해리스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세액 공제를 확대하거나 주택 구매 시 선불금을 지원하겠다는 '소확행' 같은 공약 정도만 있었다.

4년 전보다 나빠진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획기적 공약은 없었다. '모두를 위한 공공의료, 저렴한 주택 공급, 공공 일자리 보장, 노조 지원 강화, 기업과 부유층 과세' 등의 공약으로 트럼프에게 흔들리는 저학력 저소득 노동자들을 잡아야 한다는 조언들이 많았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럼프를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인가, 바이든의 뒤를 따를 것인가에서 해리스는 후자를 선택했다고 풍자하는 만평/ 출처 X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일 뿐 아니라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기득권 주류, 민주당을 지지하는 메이저 언론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것은 '다시 트럼프가 되면 큰일난다'라는 공포 마케팅이었다. 덧붙여서 민주당과 해리스가 주력한 핵심적 선거 전략은 '공화당에서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빼내 오기'였다.

그래서 해리스 선거 유세의 단골손님은 공화당 전 하원의원 리즈 체니였다. 리즈 체니는 이라크 전쟁의 책임자인 악명높은 네오콘 딕 체니의 딸이었고 부녀가 모두 해리스를 지지한다는 것이 강조됐다. 8월 전당대회 때 내세우던 버니 샌더스나 자동차노조 위원장 숀 페인 등은 지지 유세에서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문제는 철저히 무시했다.

전쟁에 반대하고 사회정의를 바라는 진보적 유권자층을 민주당의 지지 기반으로 다지고 그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확대하는 것은 과제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민, 낙태, 물가 등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학살에 무기를 공급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 활동가와 청년들이 민주당에서 가장 진취적인 활동가들이었다는 데 있다.

이들은 해리스를 원망하면서 민주당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발을 뺐다. 그중에서 일부 사람들은 트럼프가 너무 싫어서 ‘그래도 해리스를 상대로 무기 금수를 요구하며 싸우기가 더 낫지 않겠냐’라며 떠나는 주변 동료들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한 표가 아쉬운 선거 시기에도 약속하지 않는 것을 나중에 할 것이라는 말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이렇게 지지층의 활성화와 외연 확대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아랍계 미국인들은 민주당의 이스라엘 정책에 분노해 대거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 '세계는 지금'에서 화면 갈무리 
 

반면 트럼프의 극우적 포퓰리즘과 반이민 인종주의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단순한 답처럼 보였다. '우리는 먹고살기 힘든데 우리 것을 빼앗은 무임승차자들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고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더럽힌다', '민주당의 엘리트 정치인과 억만장자 후원자들은 우리보다 이민자나 트렌스젠더들을 더 챙긴다.' 트럼프는 이런 식으로 두려움과 원한 감정을 부추기면서 기반을 확대해 갔다.

복음주의 교회의 영향력이 크고 극우 라디오 방송이나 유튜브가 인기인 농촌과 도시 변두리에서는 이게 더욱 잘 먹혔다. 리즈 체니와 함께 해리스 유세에 자주 등장하던 억만장자 암호화폐 투자자 마크 큐반, 소수자나 이민자 출신이지만 이제는 어마어마한 인기와 부를 누리는 셀럽들이 해리스 유세에 앞장서는 모습은 이런 악선동을 더욱 그럴듯하게 들리게 했다.

트럼프는 지지 기반을 인종적으로도 확대해 갔다. 올해 트럼프 선출 공화당 전당대회 때는 4년 전과 달리 주요 연설자로 여성, 흑인, 라틴계도 있었다. 트럼프의 주된 표적은 이민자, 무슬림, 트랜스젠더이기에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은 이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줬고, 그것은 우파적 대안의 자양분이 돼 버렸다.

물론 트럼프를 지지하는 저학력, 저소득의 노동계층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로 찌든 한심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절망과 냉소 속에서 반동적 대안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결국 이번 미국 대선은 최악과 차악(또는 차선)의 대결이 아니라 '노골적 최악'과 '위선적 최악'의 대결처럼 됐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과 민주당의 지원에 분노하던 소수의 사람들과 상당수 아랍계 미국인들은 제3의 후보인 녹색당의 질 스타인 후보를 택했다. 결선투표제가 없는 현실에서 그것은 거꾸로 트럼프에게 도움이 됐다. 하지만, 스타인의 존재감과 목소리를 키워 준 장본인은 바로 이스라엘 무기 금수 조치나 공약을 끝까지 거부한 해리스였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 동부시간으로 6일 오전 2시25분쯤 지지자들이 집결한 플로리다 팜비치 컨벤션센터에 도착, 승리 연설을 했다. 2024. 11. 06 [로이터=연합]
 

이제 곧 시작될 트럼프 2기에는 더 위험한 공격과 탄압이 예고되고 있다. 혐오와 폭력, 극우 무장민병대까지 부추기던 트럼프 1기의 더 극단적 버전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세 기간에 트럼프는 여성의 권리 박탈,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권리 축소, 재생 에너지 연구 개발 자금 삭감, 탄소 감축 목표 폐기 등을 시사했다.

트럼프 2기를 위한 집권 시나리오로 알려진 <프로젝트 2025> 보고서에는 대규모 감세, 불법 이민자 추방뿐 아니라 노조, LGBTQ, 사회보장 제도들에 대한 광범한 공격 계획들이 담겨 있었다. 또 트럼프 싱크탱크가 ‘미국 내부의 반유대주의에 대응’한다며 구상한 <프로젝트 에스더>에는 버니 샌더스나 민주당 진보파들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글로벌 하마스 지원 네트워크”로 규정하고 "타격"하고 "해체"한다는 내용도 있다.

따라서 미국의 진보세력은 당분간 힘겨운 방어적 투쟁에 주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트럼프 1기는 충격과 공포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최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투쟁들인 여성 대행진, 미투 운동,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모두 그때 폭발했었다. 즉, 더욱 우경화한 공화당이 권력을 잡고 폭주하는 것은 강력한 반발과 분노를 낳을 수 있다.

그러면 공화당은 지지를 잃게 되고 그 반사이익으로 민주당이 다시 희망과 개혁을 약속하며 성장하게 된다.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공화당은 멋대로 개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이어서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고 다시 권력을 잡게 된다. 집권한 민주당은 다시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파들에 가로막혀 약속을 어긴다. 이 모든 것은 너무 익숙하게 반복되는 그림이다.

이 무한 반복의 악순환을 끝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미국에서 트럼프주의적 극우를 이기려면 민주당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 늙은 백인 남성인 바이든이 사퇴하고 흑인이며 여성인 해리스가 후보로 나섰지만, 형식만 달라진 것이고 내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라는 게 확인됐다.

다만 그 대안이 민주당의 성격과 구조를 탈바꿈하는 것일지, 민주당이 깨지면서 밖에서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일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8년 전에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걸고 도전했던 버니 샌더스는, 4년 전에는 바이든과 손잡았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왼쪽 날개가 된 버니 샌더스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에 버니 샌더스와 민주당계 좌파적 여성 하원의원들(스쿼드)은 해리스의 대선 운동이 실패로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연대나 해리스 후보 지지에서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이들은 대부분 이번에 다시 상·하원 의원으로 재선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을 택할지는 알 수 없고, 무엇이 최선인지는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대안이 아니라고 확인하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실질적인 힘과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외치고 싸울 뿐 아니라, 민주당이 과연 진보적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고 건설할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한계를 채워나갈 것인지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가 백악관에 앉아 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누가 거리에, 카페에, 정부청사 홀에, 공장에 ‘앉아 있느냐’다. 누가 투쟁하고, 누가 사무실을 점거하고, 누가 시위에 나서느냐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결정할 것이다"(<미국 민중사>를 쓴 역사학자 하워드 진)                         < 민들레 전지윤 기자 >

 

전문가 "유권자, 스타들 지지에 영향 받지 않아... 의미 없는 행위" 분석도

 

테일러 스위프트

 

지난 5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던 스타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결과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스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최고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롯해 비욘세, 빌리 아일리시, 카디 비, 에미넴, 스칼렛 요한슨, 레이디 가가 등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할리우드 배우와 가수들이 해리스 부통령 편에 섰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선거가 트럼프 당선인의 압승으로 결론 나자 "공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트럼프 시대'가 두려운 스타들... "압제에 맞서 싸우자"

지난 1일(현지시간) 해리스 부통령 지지 연설한 래퍼 카디 비      연합/AP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배우인 제이미 리 커티스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트럼프의 당선은) 더 통제적인,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시대로의 분명한 복귀를 의미한다"라며 "많은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거부당할 것을 두려워한다"라고 썼다.

이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깨어 있으며 싸운다는 것"이라며 "여성들과 우리 아이들, 이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압제에 맞서 날마다 싸우자"라고 촉구했다.

인기 배우 존 쿠삭도 "미국 국민이 유죄 판결을 받은 강간범이자 파시스트에게 투표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하라고 선택한 것은 깊은 허무주의의 표시"라며 "이번이 마지막 자유선거였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여배우 릴리 라인하트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범죄를 언급하며 "수많은 여성이 그에게 투표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빌리 아일리시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팬들을 향해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여성에 대한 전쟁(a war on women)"이라며 "여성을 너무나, 너무나 미워하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됐다"라고 한탄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유세를 함께하기도 했던 카디 비는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당선인 측을 향해 "난 너희가 정말 싫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당신(해리스 부통령)은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원했고, 나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다"라며 "당신은 불리한 모든 역경에 맞서 싸웠다"라고 격려했다.

두 딸을 가진 카디 비는 "유색인종 여성이 미국 대통령으로 출마하는 날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라면서 "당신은 나와 내 딸들, 미국의 여성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강조했다.

'미국판 블랙리스트' 나올까... 떠나겠다는 스타들

                                  ▲지난 10월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밝힌 에미넴 연합/AP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전 내내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스타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하자 지난 9월 <폭스뉴스>에 출연해 "나도 스위프트 팬은 아니었다"라면서 "스위프트가 항상 민주당을 지지하는 듯 보이는데, 아마도 시장에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을 앞장서 지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카디 비를 "말도 못 하는 꼭두각시"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 당선인 측의 보복 우려까지 나오자 에미넴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라며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 걱정하는 미국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맞섰다.

일부 스타들은 아예 미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에미상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 아메리카 페레라는 트럼프 당선인 확정 후 "짐을 싸고 있다"라며 가족들과 함께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샤론 스톤도 페레라의 글에 공감하면서 "미국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라며 "이탈리아로 이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썼다.

가수 겸 배우 셰어는 지난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첫 임기 때 위궤양이 생길 뻔했다"라면서 "그가 백악관으로 돌아온다면 정말 이 나라를 떠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해리스 패배 막지 못한 '스타 파워'... "투표까지 바꾸진 못해"

                                 ▲미국 연예인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영향을 분석한 영국 <가디언> 기사가디언


스타들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해리스 부통령이 낙선하면서 이들의 지지가 실제 선거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AFP통신은 7일(한국시각) "스위프트와 비욘세, 조지 클루니와 해리슨 포드 등 수많은 유명인도 해리스 부통령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라며 "스타들의 지지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분석했다.

마가레타 벤틀리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유권자는 스타들의 지지가 아닌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라고 말했다.

뉴욕대 예술학 교수 로렌스 마슬론도 "유권자는 비욘세나 조지 클루니가 자신들처럼 휘발유나 계란값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면서 "(스타들의 지지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오프라 윈프리, 비욘세, 레이디 가가, 마돈나,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스타들의 팬들은 이미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려는 사람들이었다"라며 이들의 지지가 득표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유명인이 유권자의 정치 참여와 투표를 독려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투표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연예인의 영향력: 정치, 설득, 이슈 기반 옹호>의 저자인 마크 하비는 "유명인의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라며 "그들이 유권자의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가디언>은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스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것"이라며 "스타들의 지지가 해리스 부통령의 선거 캠페인에 손해를 끼쳤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여가수(비욘세)가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는 훨씬 더 나빴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오마이 윤현 기자 >

 

 

트럼프 당선 후 SNS에 소개 영상 퍼져

“한국 여성들처럼 4B 운동을 고려해야”

 

미 대선 후 한국의 4B 운동 유행을 소개한 가디언 기사. 가디언 갈무리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이후 미국 여성들이 한국 페미니즘의 ‘4B 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젊은 여성 유권자가 이번 대선 결과를 자기 결정권과 생식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저항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8일 현재 워싱턴포스트(WP), 가디언, NBC, CBS, 타임지, 인디펜던트 등 해외 언론은 대선 이후 미국 내에서 한국 여성들이 탄생시킨 4B 운동을 향한 관심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4B는 네 가지 ‘비’(非) 실천을 뜻하는 것으로, 비연애·비섹스·비출산·비혼으로 구성된다. 2016년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조류를 탄 이후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이성애자 여성들이 남성과의 연애, 성관계, 결혼 등을 거부하자는 것이 골자다.

영어권 매체에서는 이를 ‘4가지 노(4 Nos)’, ‘4B 무브먼트(4B Movement)’ 등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인디펜던트는 ‘bihon’(비혼), ‘bichulsan’(비출산) 등 한국어 발음도 표기했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틱톡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미국 여성들이 4B 운동을 소개하고 독려하는 영상이 퍼졌다. 한 틱톡 영상은 “여성들아, 이젠 모든 남성을 거부할 때다. 너희들은 권리를 잃었다. 4B 운동이 이제 시작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영상은 34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엑스(옛 트위터)에서도 4B 운동을 설명하고 “우리는 한국 여성들처럼 4B 운동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게시글이 ‘좋아요’ 약 47만개를 받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6일 구글에선 4B 운동 검색량이 450% 급증했으며, 특히 워싱턴DC, 콜로라도주, 버몬트주, 미네소타주에서 검색량이 많았다.

미 대선 결과가 나온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워드대에서 한 민주당 지지자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패배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

 

한국의 4B 운동은 메갈리안과 여성혐오 ‘미러링’ 탄생,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교제폭력, 성별 임금 격차, 불법촬영, 경력단절 등과 같은 한국적 맥락 위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4B 운동이 미국에서까지 호응을 얻는 현상을 두고 미국의 여성 유권자가 이번 대선 결과를 자기 결정권과 생식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임신중지권 축소를 옹호한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하는 걸 보면서 회의를 느꼈다는 것이다.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미셸라 토마스(21)는 4B 운동이 “원인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P에 밝혔다. 그는 4B 운동을 알게 된 건 1년 전쯤이지만, 최근에 젊은 남성들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투표하는 것을 보며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토마스는 “젊은 남자들은 섹스를 기대하면서도 우리(여성들)가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길 바란다. 그들은 둘 다 가질 순 없다”고 했다. 이어 “젊은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 남성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남성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보수 성향 주에 거주하는 케나(24)는 주말에 예정된 데이트를 취소했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그는 “이 나라에선 당신이 이성애 백인 남성일 때만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를 알게 되는 건 슬프다. 내 권리를 되찾을 때까지 남성이 내게 손대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네바다주에서 선거 유세를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

 

또한 극우·반페미니즘 성향 남성들이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고, 당선인이 이에 호응한 것도 여성 유권자의 분노를 유발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백인 민족주의자 닉 푸엔테스가 선거 이후 임신중지권을 두고 “당신의 몸은 내 선택이다. 영원히”라는 글을 엑스에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푸엔테스는 “이상적인 아내는 16살”이라고 주장하고 히틀러를 찬양한 인물로, 2022년 트럼프 당선인의 마러라고 리조트에 초대돼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가디언은 “이런 식의 폭력적인 표현은 현재 데이트 상대인 대부분의 젊은 미국 여성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리조나주립대 브레엔 파스 교수는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생식권이 안전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와 몸에 대한 권한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WP에 밝혔다.

인디펜던트는 한국과 미국의 성별 임금 격차, 친밀한 관계에서 살해된 여성 통계 등 유사점과 차이점을 언급하했다. 이어 “4B 운동을 하는 이들은 결혼을 여성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타당하다”며 “미국 여성이 4B 운동에 동참할지 아니면 트럼프 2기에 자신들만의 저항을 만들어낼지 질문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지난 5일 치른 미 대선 출구조사에서 남성 유권자의 55%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여성 유권자 53%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 경향 김서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