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처, 공무원들에 ‘윤 대통령 퇴진 투표’ 불참 압박···“불이익 받지 말라” 경고

‘전공노 관련 근무기강 확립 철저’ 공문 배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인사혁신처가 감사원·방송통신위원회·검찰청 등에 보낸 공문에서 국가공무원법을 언급하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가 주도하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국민투표에 사실상 참여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야당에서는 “공포감을 조성해 퇴진 촉구 투표 불참을 압박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인사혁신처는 지난 5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련 근무기강 확립 철저’라는 제목의 공문을 배포했다.

인사혁신처가 지난 5일 발송한 공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국민투표 참여 선언을 언급하며 “불이익을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적혀있다.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인사혁신처는 이 공문에서 전공노의 윤 대통령 퇴진 촉구 국민투표 참여 선언을 언급하며 “이와 관련해 각급 기관에서는 소속 공무원들로 하여금 국가공무원법상 제56조(성실 의무), 제57조(복종의 의무), 제58조(직장이탈 금지),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 제65조(정치운동의 금지),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 등 각종 의무를 철저히 준수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 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인사혁신처는 이어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여 불이익을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여 달라”고 했다.

인사혁신처는 “최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000 퇴진 국민투표 참여 선언’(11.4. 보도자료 배포)을 하였다”며 윤 대통령의 이름을 ‘000’로 처리하기도 했다. 앞서 전공노는 지난 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와 5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 참여 선언’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인사혁신처는 이를 인용하며 윤 대통령 이름을 ‘000’로 표기한 것이다.

이 공문은 국가정보원, 국무조정실 등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이태원참사 특조위) 등에 발송됐다.

김 의원은 “인사혁신처가 국가공무원법을 들먹이며 윤 대통령 퇴진 촉구 투표에 불참하도록 공포감을 조성한 것”이라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은 전공노가 왜 대통령 퇴진 투표 참여를 선언했는지 그 이유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경향 신주영 기자 >

 

7일 국립부경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찬반을 묻는 대학생들의 국민투표가 진행된 가운데, 학교 측이 경찰을 불러 대응하고 있다. ⓒ 부산대학생겨레하나관련사진보기


국립부경대학교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사실상 불허하자 대학생들이 총장직무대리 면담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진행 중이다. 학교 측은 지침에 따른 당연한 대응이란 입장이지만, 학생 측은 "과거로 퇴행"이라며 반발했다.

'정치적인 건 안 돼' 가로막힌 윤석열 퇴진 투표

8일 <오마이뉴스> 취재를 정리하면, 국립부경대 학생 등 10여 명은 하루 전 대학본부 총장실 앞에서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농성에 들어갔다. 이는 학교 측이 7일 대연캠퍼스 백경광장에서 펼쳐진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 활동을 제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날 오전 11시 20분께 부스를 설치한 뒤 투표에 들어갔으나, 학교 측은 시설물 지침에 어긋난다며 이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대학 내로 순찰차가 출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신분 확인을 위해 경찰을 불렀다. 종교나 정치적 목적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단 내용을 담은 지침을 적용한 결과다.

"경찰 불러 학생 쫓아내다니 말이 되나"

마찰이 빚어지자 학생들은 투표소 운영을 중단하고 항의를 위해 총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직무대리를 만나지 못하자 그대로 문 앞에 주저앉았다. 이들의 농성은 자정을 지나 다음 날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이런 활동을 하기 위해 허가나 승인이 필요하단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발끈했다.

부경대 4학년인 왕혜지씨는 "정당한 목소리를 탄압하는 건 민주주의 시대와 맞지 않는다"라며 "총장직무대리의 답변을 들으려 여기서 밤을 새웠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앞서 그는 학내 광장 주변 100미터 내 투표 진행을 담은 집회신고서를 부산 남부서에 접수했다. 면담 확정부터 요구한 왕씨는 "날짜가 잡히지 않는다면 물러설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국립부경대학교가 시설물 지침 등을 들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막아서자 대학생 단체들이 7일 대연캠퍼스 총장실 앞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부산대학생겨레하나
 


이들과 함께하는 윤석열퇴진부산대학생행동(준)과 부산대학생겨레하나는 학교 측이 과도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치 활동을 이유로 2024년에 설마 경찰을 불러 학생들을 쫓아내려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독재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학교 측은 "정당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해당 지침에 정치 종교적인 행사가 금지돼 있어 정해져 있는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해명했다. 농성에 대해선 "학생들에게 신분을 밝힌 뒤 정식적으로 요청하면 날짜를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직무대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해 난감하다. 현재 원만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이번 소식을 접한 국립부경대 졸업생들은 "있을 수 없는 사태"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변청숙 부경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은 "1980년대에서나 볼법한 장면인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정치기본권은 학생의 당연한 권리"라며 "부당하다고 보고 같이 연대해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대학생행동 등은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라며 지난달 24일 부산대 앞을 찾아 1만 명을 목표로 한 국민투표 돌입을 알렸다. 학생들에게 윤 대통령에 대한 퇴진 찬반을 물어 이를 12월에 공개하겠단 계획이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대학본부의 반대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 >

 

민주당 “전 국민 아연실색”…국힘 유승민 “건심이 민심 이겼다”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음성 녹음이 공개된 31일 오전 윤 대통령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러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건희 여사가 11월 중순에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국외 순방 일정에 동행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 부부가 취임 전부터 써온 개인 휴대전화 번호도 바꾸기로 했다. ‘대통령 부부와 외부인의 사적 소통’ 논란에 대한 수습책이지만, ‘김건희 특검’ 수용 요구로 분출되는 성난 여론을 다독이는 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의 후속 조치”라며 “김 여사가 이달 중순에 있을 윤 대통령 순방에 함께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민 다수의 ‘김 여사 외부 활동 자제’ 요구에 대통령실이 내놓은 응답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취임 전부터 써온 개인 휴대전화 번호 역시 곧 교체할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와의 연락은 최대한 공식적인 창구로 하겠다는 뜻이다. 전날 윤 대통령은 명태균씨 등 외부인과 사적 연락을 유지해온 것과 관련해 ‘여론을 가감 없이 듣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취임 전 썼던 휴대전화를 안 바꿔서 벌어진 일’이라며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 했다. 설치를 미뤄온 제2부속실도 장순칠 시민사회2비서관을 실장으로 발령내 가동하기로 했다. 김 여사의 집무실은 따로 마련하지 않고, 직원 사무실과 외국 정상 배우자들과 대화할 접견실만 운영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후속 조처에 더해 인적 쇄신 작업도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내각과 대통령실에서 일할 새로운 인물에 대해) 물색과 검증을 하고 있지만, 시기는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강훈 전 대통령실 정책홍보비서관이 한국관광공사 사장 지원을 자진 철회한 것도 그 일환이란 해석이 나온다. 강 전 비서관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1일 윤 대통령과의 ‘81분 차담’ 당시 인적 쇄신이 필요한 ‘김건희 여사 라인’의 한명으로 지목했던 인물이다.

대통령실의 이런 움직임은 일정을 앞당겨 진행한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이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나왔다. 전날 논란이 된 윤 대통령 기자회견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지만, 이날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례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17%로 취임 뒤 최저치(이전 19%)를 경신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조처들로 악화된 민심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이 밝힌 김 여사의 대외 활동이나 국외 순방 동행 중단도 항구적인 조처가 아니다. 외교 상황과 방문 상대 등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전화번호 교체도 사적 소통을 아예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줄이겠다는 상징적 조처에 가까워 보인다.

정치권 반응은 싸늘했다. 근본적이긴커녕 중단기 미봉책도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부인의 국정농단에 대해 사과하랬더니, 부부싸움과 휴대폰 변경으로 해결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언에 전 국민이 아연실색했다”고 꼬집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건심(김건희 여사의 마음)이 민심을 이겼다”며 “앞으로가 문제다. 뒤늦게 휴대폰을 바꾸고 김 여사가 순방에 안 가면 국민이 납득할까”라고 적었다.         < 한겨레 이승준 기자 >

돌아온 트럼프, 바뀌어야 한국이 산다

● 칼럼 2024. 11. 9. 02:1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더 세진 트럼프의 귀환, ‘한국 패싱’ 우려도


북미 핵군축 협상, 한미동맹 재조정 가능성도 높아
가치 외교에서 국익 외교로 대외정책 대전환 불가피
한국을 위험에 빠뜨린 외교안보라인 전면 쇄신해야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미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승으로 끝났다. 친민주당 성향의 미국 언론이 보도한 것과 달리 누가 이기든 박빙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승리해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다. 이로써 그동안 트럼프가 내뱉었던 말들을 실천할 수 있는 실탄을 갖게 되었다. 더 세고 꼼꼼해진 트럼프가 돌아온 것이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이 한반도 정세에 몰고 올 경제·안보적 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 경제리스크로 인해 벌써 한국증시는 크게 폭락했다. 경제리스크 못지 않게 우려되는 것이 바로 안보리스크이다. 트럼프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이미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책구상들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북미 직접대화 및 핵군축 협상 가능성

트럼프 후보는 지난 7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을 다시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만약 북‧미 직접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윤석열 정부는 북·미 대화에 먼 산 불구경하듯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평양에서 워싱턴을 가려면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들, 거래적 동맹관을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 행정부가 지지율 바닥의 윤석열 정부의 말에 귀 기울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정강정책에서 ‘한반도(북한) 비핵화’ 문구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은 2020년 정강정책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목표”라고 밝혔으나 2024년도 정강에는 빠져버렸다. 미 공화당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가역적 해체(CVID)” (2020)라는 대북정책의 목표에서 ‘비핵화’를 아예 빼버렸다.

 

6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선물가게에 블라디미르 푸틴,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을 그린 마뜨료스카 인형이 진열돼 있다. 이날 치러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함으로써 제47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24. 11. 6.  EPA 연합뉴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났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한반도/북한 비핵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2023년 SCM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대화와 외교를 추구하는 노력을 위한 공조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년 10월 SCM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키는 것으로 ‘비핵화’가 빠졌다.

향후 북·미 핵군축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그 합의 내용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타결이 예상되던 합의안 초안이 바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북·미는 △한국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기 위한 평화선언, △한국전쟁 중 사망한 미군 유해의 추가 송환, △준대사관 성격의 연락사무소 설치, △영변 핵시설의 생산 중단 및 일부 대북 유엔제재 해제, 한국과의 공동경제계획 추진 등을 담은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었다.

새로운 합의문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약속됐던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미국의 대규모 한미군사연습 중단과 같은 ‘쌍중단’과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조치가 명문화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핵탄도미사일잠수함의 정기 방한을 약속한 「워싱턴선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 재배치를 위해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북·미 직접대화가 됐든, 핵군축 협상이 됐든 관건은 북한의 태도이다. 미 대선을 닷새 앞둔 10월 31일 ‘최신형 전략무기체계’라고 자평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9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 강화 로선을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전향적인 태도와 별개로 북한의 국제정세 판단과 입장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주한미군, 연합훈련 등 재조정 여지

북미 핵군축 협상에 못지 않게 한국 안보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과 그와 관련된 한미동맹의 재조정 가능성이다. 트럼프 후보는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 부자)이라고 부르며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과 한국이 합의한 것을 뒤집었다고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매년 100억 달러(한화 14조 원)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정부간에 체결된 행정협정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기존보다 5~6배 인상한 50억 달러를 요구했다가 한미 실무협상에서 5년간 매년 13%인상안 합의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 간에 2020~25년 국방비증가율을 반영한 인상안에 합의하였다. 한·미는 트럼프 리스크를 감안해 2026년부터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 5,192억 원으로 정하고, 2027~2030년 소비자 물가지수 증가율을 반영해 분담금 인상에 조기 합의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합의를 뒤집을 경우 한미관계는 큰 파란이 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이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해 실시하는 정례 연합 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습을 시작한 19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이동하고 있다. 2024.8.19. 연합뉴스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 파기와 대폭 인상을 압박하기 위해 북·미 대화와 연계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쓸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미 국가방위전략(NDS)」의 해외미군재편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의 일부 조정 가능성은 열려있다. 「국방수권법」은 22,000명 이하로 주한미군 병력을 줄일 때는 미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해 트럼프가 북핵 협상, 방위비 인상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안을 쓰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상하 양원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국방수권법」을 개정해 6,500명 이상으로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 대규모 한미군사연습인 프리덤 쉴드(FS), 을지 프리덤 쉴드(UFS)가 재개되었다. 그 뒤 윤석열 정부는 「워싱턴선언」(2023.4)에 따른 핵전략자산 방문 정례화, 한·미·일 안보협력네트워크의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엣지’, 유엔사 회원국의 FS, UFS 연합연습 참가 등으로 한미 군사훈련의 다국화를 추진해 왔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핵실험장 복구에 이어 ICBM 등을 시험발사하는 등 ‘쌍중단’ 합의를 파기하였다. 하지만 트럼프-김정은 직접대화로 새로운 북미 합의가 이뤄질 경우 대규모 연합군사연습의 ‘일부 중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몇 안 되는 성과 중의 하나로 내세웠던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도 제한을 받게 되고 만다. 더 나아가 「워싱턴선언」의 내용 일부가 수정될 경우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등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트럼프발 안보리스크가 증폭되는 것이다.

망가진 한국 외교안보 전면 고쳐야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승리 선언에서 “망가진 미국을 고쳐 놓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망가진 한국’을 고쳐 놓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북·미 대화가 재개되어 본격적인 핵군축 협상이 진행될 경우 ‘한국 패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자 대북 강경론을 펼쳤던 한국정부가 정작 협상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비용 총46억 달러 가운데 30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을 적대시하는 ‘8.15통일독트린’의 공식 폐기와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추진 등 대북정책의 근본 전환을 통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북·미 핵군축 협상에 대비해 북한 핵문제의 단계적‧점증적 해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야 한다. 또한 자체 핵무장론은 실효성도 없이 국제적 불신만 조장할 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반대 입장을 명확히 천명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주한미군 대규모 감축, 한미 군사훈련의 축소 등 트럼프 안보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응해 방위산업의 강화 및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자주국방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취하고 있는 동맹국의 안보 자율성 확대 정책에 대응해 제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평가를 조기에 실시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정세의 불안정, 불확실성을 고려해 당분간 한‧미‧일, 한‧일 안보협력의 기본틀은 유지하더라도 더 이상 확대 및 강화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 유엔사의 인‧태지역 통합사령부화와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가입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러‧우 전쟁의 조기종식에 대비해 북‧러 접근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며 한‧러 관계를 악화시킬 조치에 신중해야 한다. 특히 북한군의 러-우 전쟁 파병설에 따른 살상무기 제공 등 과잉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또한 한‧중 관계 복원을 통해 북핵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한반도 정세악화를 예방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가치·이념이 아닌 국익 중심의 외교를 내걸고 있다. 그런 만큼 윤석열 정부도 자신이 집권 초기부터 내걸어 왔던 ‘가치, 이념’ 중심외교에서 벗어나 ‘국익’ 중심외교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전면 쇄신을 위해 그동안 이념외교, 진영외교을 기획하고 추진해 왔던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등의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할 것이다.  <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