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그림자도 받아들여 전하는 유산이어야"

아사히 "역사, 국가 독점물 아냐…그늘 포함 전체 역사 수용해야 유산 가치 높아져"

마이니치 "한일, 지지율 낮은 정상 향한 비판 피하려 '정치색 억제 실무대화' 중시"

 

세계유산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 소다유코 출구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의 28일 소다유코 출구 모습. 사도 광산 내부는 에도시대 흔적이 남은 '소다유코'와 근현대 유산인 '도유코'로 나뉜다. 2024.7.28 [연합]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아사히신문이 30일 "애초 일본 측이 한반도 출신자 고난 역사와 진지하게 마주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 주요 언론인 아사히는 이날 게재한 '빛도 그림자도 전하는 유산으로' 제하 사설에서 이같이 언급하고 일본 정부를 향해 "외부에서 들을 것도 없이 자신이 주체적으로 역사와 마주하는 것이 당연한 자세"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국도 위원국으로 포함된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27일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자 이튿날인 28일 한국이 요구한 '전체 역사 반영' 조치로 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실을 마련해 공개했다.

전시실에는 1940∼1945년에 조선인 노동자 1천519명이 사도 광산에서 근무했으며 그들은 일본인보다 암반 뚫기 등 위험한 작업에 종사한 비율이 높았다는 설명문이 게시됐다. 또 당시 조선총독부 관여로 노동자 모집, 징용 등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른바 '군함도'(하시마 탄광) 등을 소개하는 전시 시설과 비교해 다소 진전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강제성'을 명시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사히는 "강제노동인지 아닌지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강제' 표현을 피하면서 (조선인이) 가혹한 노동환경에 있었음을 현지에서 전시한 것은 양국 정부가 대화로 타협한 산물"이라면서도 "(조선인 노동이) 직시해야 할 사실이라는 점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사도 지역 주민들이 전시(戰時) 중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증언을 발굴했다면서 "세계유산 등재에서 시민이 더 폭넓게 관여하는 구조가 검토돼도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역사는 국가의 독점물도, 빛으로만 채색된 것도 아니다"라며 "그늘진 부분도 포함해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유산 가치를 높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선인 노동자' 전시된 일본 사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 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이 28일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이 있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공개했다. 사진은 박물관 외관 모습. 2024.7.28 [연합]

 

또 다른 진보 성향 언론인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사도 광산 관련 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군함도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2015년 외무상으로 재직해 양국 간 역사 인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보수파 압박을 받아 2022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사도 광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 동의를 얻어내며 '연착륙'에 성공한 데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셔틀 외교' 재개 등으로 구축한 개인적 신뢰 관계, 그에 따른 한일관계 개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한국 측에 '협력 안건으로 진행해 보자'라고 하며 협의해 왔다"며 "한국도 냉정하게 '해보자'고 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마이니치에 말했다.

이 신문은 "(협의에서) 중시한 것이 정치색을 억제한 '실무적 대화'였다"는 간부 발언을 소개하고 "(양국이) 정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은 지지율이 낮은 기시다 총리, 윤 대통령이 직접 비판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마이니치는 별도 사설에서 양국이 사도 광산 등재 과정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면서 "대화를 거듭해 안정된 관계를 만드는 노력을 지속해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 도쿄=연합 박상현 특파원 >

일 언론 ‘한·일 정부, 강제노동 표현 사용 않기로 사전 합의’ 보도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

 

우원식 국회의장이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표현이 삭제된 것과 관련해 정부에 소명을 요청했다.

국회 관계자는 “일본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성 표현이 빠진 것과 관련해 우 의장이 국회 수석전문위원을 통해 정부에 확인을 요청해, 관련 보고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이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정부가 이를 부인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외교부 쪽에 경위를 파악하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국가유산청에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고 한다.

국회 관계자는 “경위를 파악한 뒤 우 의장이 공식 입장을 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독립운동가 김한의 외손자인 우 의장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한·일 역사 문제에 앞장서 왔다. < 엄지원 기자 >

 

세계유산 등재 동의 후폭풍

일 언론 “강제 표현 않기로 합의
대신 전시실 만들고 생활상 설명”
외교부 “표현문제 전혀 사실무근
2015년 군함도 때 이미 정리” 부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참가국 정상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놈펜/윤운식 기자]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운데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노동자 강제성 표현 문제는 일본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우리 외교부의 주장과 배치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8일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가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와 관련해 현지 전시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의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에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일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어, 양 정부 관계자에게는 새로운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물밑 교섭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 시설에서 상설전시를 하고, 전시 중 한반도 출신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 노동환경의 가혹함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 수용했다”고 전했다.

이는 외교부의 그동안 주장과 상반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성’이 빠진 것과 관련해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이미 정리됐다. 표현 문제를 놓고 (이번에)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7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하시마)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엔 일본 정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을 했다”라고 밝히는 등 강제성을 명확히 한 바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기자들을 만나 “되풀이해서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2015년) 과거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강제노역’ 등 과거 약속을 이어가겠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도 사실이 아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날 산케이신문에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 등에 대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저녁 한-일 간 ‘강제노동’ 표현을 빼기로 사전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외교부는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며, 앞으로도 한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일본 쪽 대표의 발언문을 참고해달라고 했고, 이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비극적인 역사 현장(사도광산)이 군함도에 이어 또다시 세계적인 명소로 조명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 도쿄=김소연 특파원, 신형철 기자, 비엔티안=박민희 기자, 엄지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