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23일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최전방 지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적으로 중단했다.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2년 3개월 만이다. 사진은 지난 2004년 6월 16일 서부전선 오두산전망대에서 대북확성기가 철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군 “정상회담 계기 군사긴장 완화와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 위해”

국방부가 4·27 남북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군사분계선 일대 최전방 지역의 대북 확성기 선전 방송을 중단했다.

국방부는 이날 ‘2018 남북 정상회담 계기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관련 발표문’을 내어 “국방부는 2018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오늘 0시를 기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번 조처가 남북 간 상호 비방과 선전 활동을 중단하고 ‘평화,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나가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남쪽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월 북쪽의 4차 핵실험 대응 조처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2년3개월 만이다.

청와대는 앞서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3대 의제로 밝힌 바 있다. 또한 정부 안팎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간 먼저 할 수 있는 조처로 적대행위 종식 선언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제훈 기자>


[한마당] 인생이 반전의 연속이려니

● 칼럼 2018. 4. 11. 13:05 Posted by SisaHan
몇 해 전 어느 정당의 회의실 뒷 벽면에 ‘정신 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문구가 등장한 적이 있다. 얼마 후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써 붙인 그대로 되었으니, 적중한 ‘백보드의 명 예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였던 것이, 미투 운동이 활발한 요즘 ‘한 순간 훅 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있어서다.
차기 대통령 후보군으로 촉망받던 인물이 절제를 못한 ‘욕망의 덫’에 걸려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날아갔다.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의기충천하던 한 인물은 7년 전의 ‘입맞춤 미수사건’으로 졸지에 ‘자연인’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에게 ‘제왕같은’ 존재였다는 잘 나가던 연예인 교수는 돌연 목숨을 끊어버렸고, 평생을 조연에 머물다 ‘근검한’ 일상이 알려진 덕에 겨우 주연급 반열을 넘보게 된 한 방송인은 10년 전의 추행 한 건에 치명타를 먹고 갑자기 조연조차 못하게 되어 동정을 사기도 한다.

‘급전직하’의 반전은 ‘미투’에서만 보고 느끼는 게 아니다. 겨우 석달 만에 한반도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급변의 소용돌이를 연출하고 있다. 폐쇄와 은둔의 왕국, ‘벼랑 끝 전술’로 생존을 담보하던 북녘의 돌변은 비단 남북간 소통뿐 아니라 미국과 마주앉게 되고, 중국을 전격 방문해 놀라게 했다. 부인을 동반한 북의 지도자가 언제 국제무대에 등장한 적이 있던가, 현란하고 요염한 걸그룹의 공연을 보고 싶었다며 그들과 손을 맞잡고 사진도 찍는 모습과, 취재 방해를 정중히 ‘사죄’하는 전례없는 일까지, 달라진 저들의 파격은 언제 핵무기와 유도탄으로 위협하던 때가 있었나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사람들 뇌리에 ‘한방에 훅 간다’ 혹은 ‘전혀 예상못한 급변사태’ 라는 느낌으로 와닿는 이들 현상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운동이나 첨예한 대결구도였던 북핵문제 등 비상한 관심을 끄는 사안들이어서 더욱 강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돌연변이적 현상은 우리들 일상 도처에 널려있고,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공연히 생겨난 조어인가. 지난 밤 건강한 모습으로 잠자리에 든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세상으로 가버린 충격적 경우의 수는 결코 제로가 아니다.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지진은 없다. 느닷없는 천재지변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목숨까지 잃는 사례가 드문 일은 아니다.

내일 일을 미리 아는 사람은 없다. 아니 몇 분 몇 초 후의 일도 잘 모르는 게 우리들 인간이다. 갑자기 졸도하기도 하고, 화장실을 달려갈 일도 생기고,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화재로 폭망하는가 하면, 주식 폭락으로 패가망신하는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날벼락’ 같은 일들은 ‘미투 돌풍’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어도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 사람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한 존재들인가. 전혀 알지 못하고 대비도 할 수 없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도 있고, 낭떠러지를 구를 수가 있고, 저세상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 물론 거꾸로 추락만이 아니라 급상승하는 벼락출세나 횡재의 인생역전이 찾아오기도 한다지만.
성경에도 ‘한 순간에 훅 간’ 사례가 등장한다. 구약 에스더서의 하만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는 권력도 재물도 감히 대항할 자가 없는 글자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대신이었다. 왕권을 넘볼 정도로 등등한 권세에 자만한 나머지 그는 왕을 살린 숨은 공신인 줄도 모르고 왕후 에스더의 인척인 모르드개를 매달고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무리수를 꾀한다. 그의 교만과 이기심, 안하무인의 악행은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순식간에 급반전, 다음 날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한 나무에 오히려 자신이 매달려 죽는 비참한 멸족의 참화를 당한다.

하만의 일화에서 떠올리는 반전도 요사이 빈번한 ‘한 방에 가는’ 사례들에서 느끼는 공통의 인생무상과 허욕의 결말이다. 너도나도 성공에 목을 매달고 출세하겠다며 발버둥치는 세태, 남 보다 위에 앉으려 깔아뭉개고, 더 갖고 더 벌고 더 즐기려고 기를 쓰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망과 가식과 이기의 끝은 어디인가. 한 순간 하루 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는 인생들임을 잊은 채… 그렇다고 기 죽어 무기력하게 요행수만 바라며 살 일도 아닐 터인즉, 공연히 과욕을 부리거나 허세를 좇지 않고 언제든 호사다마(好事多魔)에 청천벽력도 있다는 심적 여유와 평상심(平常心), 그리고 비움의 각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저 바르고 겸허하게 늘 삼가며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받아들이는 삶의 지혜가 절실한 것 같다.

< 김종천 편집인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개헌안’ 초안을 만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몇가지 쟁점 사안의 여론 수렴을 위해 3월 초순 숙의형 시민토론회를 열었다. 4개 권역별로 시민 200명씩을 뽑아 기본 자료를 제공하고 한나절 토론을 진행한 뒤 토론 전후의 의견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정책 결정을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열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개헌 주체는 국민’이라고 누구나 말하지만, 시민이 직접 깊숙이 참여한 건 놀랍게도 이 토론회가 거의 유일하다. 국회가 끔찍이 싫어하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과 ‘대통령의 국무총리 임명권 유지’(국회의 총리 선출권 반대)라는 대통령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이렇게 결정됐다. 국회 개헌특위가 1년간 활동하며 시·도별 토론회를 열긴 했지만, 정치인·학자들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는 세미나 형식이었다.


토론을 전후한 시민들의 의견 변화를 살펴보는 건 흥미롭다. 국회의원 임기 중에 국민이 그 직을 중단시킬 수 있는 ‘국민소환제’에 대해선 토론 전과 후 모두 찬성 의견이 70%를 넘었다. 하지만 토론 전에 비하면 토론을 거친 뒤에 ‘반대 의견’이 10%포인트 늘어난 게 눈에 띈다. 반면에 국무총리 선임 방식에 대해선, 자유한국당이 요구하는 ‘국회의 총리 선출’에 반대하는 의견이 토론 전보다 토론 후에 월등히 높아졌다. 토론 전엔 절반 못 미치는 시민(48.3%)이 ‘국회의 총리 선출’에 반대했지만, 토론 이후엔 그 비율이 68.3%까지 솟았다.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면 장관 제청권을 총리가 쥐고서 사실상 이원정부제와 같은 형태로 권력이 양분될 수 있다. 반대로 총리 임명권을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주는 건, 앞으로도 국무총리를 대통령의 바람막이 또는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엔 보기 힘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문 정치면엔 ‘방탄 내각’이니 ‘친위 내각’이니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극단적 예시이긴 하지만, 두 사례 중 어느 게 더 바람직한가. 숙의 토론의 결과는,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손에 권력을 쥐여주는 게 국회에 권력을 넘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시민들의 판단을 담고 있다. 국민의 국회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정식 발의했다. 이제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현재 의석 분포에서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세운 3일간의 개헌안 설명이 ‘정치 쇼’라는 야당과 보수언론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발의가 의미있는 건, 1년 넘게 물밑에서만 떠돌던 ‘개헌 문제’를 국민의 관심권으로 끌어올렸다는 점 때문이다. 3일간의 ‘정치 쇼’로 개헌안 주요 쟁점이 비로소 국민의 시야에 명료하게 들어왔다. 국회와 헌법을 무시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정식 발의하지 않았다면 ‘개헌’은 지금도 여의도 의사당 주변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개헌안과 관련해 국회가 극적인 타협을 이룬다면, 그 고리는 아마도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 문제일 것이다. 정부형태의 핵심인 총리 선임 방식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토지공개념을 비롯해 다른 쟁점 사안들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타결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국회의 ‘총리 추천제’를 단지 여야 정치협상으로만 풀려고 해선 곤란하다. 그런 식의 타협은 여론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국회가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서, 이 사안에 관한 사전 정보를 제시하고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건 어떨까 싶다. 선거구제 개편을 비롯해 국회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안들과 연계해서 ‘총리 추천제’를 시민 토론에 부치는 방식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관한 의견이 토론을 거치면서 상당히 변했듯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토론은 어느 쪽이든 의미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28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주요 기관 신뢰도 여론조사’를 보면, 국회 신뢰도는 15%였다. 조사 대상 17개 기관 중 최하위다. 행정부(41%)와 비교해선 물론이고 개혁 1순위로 꼽히는 검찰(31%)에 비해서도 월등히 낮다.
언제까지 정치가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댈 것인가. 국회와 정치권은 지금 당장 ‘국민 뜻’에 기반해서 뭐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 박찬수 - 한겨레신문 논성위원실장 >


[칼럼] ‘촛불시위’ 앞에 선 아베

● 칼럼 2018. 4. 11. 13:00 Posted by SisaHan

일본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 대한 국회 집중 심의가 열렸던 지난달 19일. 저녁 7시께가 되자 중의원회 회관 주변 인도를 시민들이 가득 메웠다. 인원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최소 1000명은 넘어 보이는 인파가 아베 신조 정부의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모리토모학원이 소학교를 설립한다며 국유지를 정부 감정가(9억5600만엔)의 14%에 불과한 1억3400만엔에 사들인 곳인 오사카 도요나카시의 기무라 마코토 시의원이 “아베 총리는 지금 당장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시민들은 “그렇다”, “바로 그거다”라며 호응했다. 기무라 시의원은 2015년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 강행 처리한 안보법제 제·개정 이야기를 꺼내면서 “안보법제 통과 때도 헌법학자들이 (안보법제가) 모두 위헌이라고 했는데, 아베 총리는 ‘내가 괜찮다면 괜찮다’는 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무라 시의원의 발언에서 한때는 ‘아베 1강’이라 불릴 만큼 견고해 보였던 아베 정부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공문서 조작 스캔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일 재무성이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내부 공문서 14개에서 300곳 이상을 고쳤다고 보도하면서 아베 정권의 위기가 표면화됐지만,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공문서 조작을 계기로 분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공문서 조작 항의 시위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한국의 촛불시위를 언급하는 발언도 자주 들린다. 19일 시위에서도 “한국에서 촛불시위로 부정부패에 휩싸였던 정부가 무너졌다”, “옆나라 한국에선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갔다. 아베 총리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전부터 한국 촛불시위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심포지엄 등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 신문사 소속이라고 소개하면 촛불시위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일본에서 1960년대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가 추진한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 30만명이 운집한 적이 있지만, 80년대 이후 일본에서 대규모 시위는 드문 일인데다 촛불시위가 정권 퇴진까지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에서도 한국의 촛불시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베 총리는 공문서 조작 스캔들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야당인 자유당의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 2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총리 언제 그만둘 겁니까?”라고 묻자,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신임을 얻었다. 약속한 것을 추진하는 게 나의 책임이다”라며 사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자민당 파벌인 ‘누카가파’의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다케시타 와타루 의원은 “솔직히 말해서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라는 존재가 정권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의혹에 관여되어 있다는 것과 폐를 끼친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아베 총리 본인과 정권 차원의 문제와는 선을 그으려는 발언이다.


아베 총리가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각할지 아니면 돌파구를 찾아서 장기 정권을 이어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아베 정부가 국회 앞과 신주쿠역에서 모여 정권의 오만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민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시민의 힘이 아닐까.


< 조기원 - 한겨레신문 일본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