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GKYM 토론토에서

● 교회소식 2014. 7. 14. 16: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2월 28~31일 Congress Centre

2세 청년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전세계 미전도 종족 사역자로 헌신을 결단케 하는 젊은이들의 복음잔치인 세계 청년 선교축제(GKYM: Global Kingdom Young-adults Missions Festival) 제9회 2014년 대회가 토론토에서 열린다. 지난 해에는 미국 로체스터와 한국의 서울에서 동시에 열렸었다.
지난 2008년 캐나다 나이아가라에서 첫 집회를 가진 뒤 다시 캐나다에서 열리는 것은 6년만의 일로 토론토에서 다시 청년선교의 부흥을 기약하게 된다. 2014 GKYM대회는 토론토 콩그레스 센터(Toronto Congress Centre)에서 12월28일 주일부터 31일(수)까지 3박4일간 열린다. 올해 대회에는 청년과 함께 2012 시카고 대회부터 시작된 GKYM 청소년대회도 열리게 된다.
 
GKYM대회를 개최하는 GAP(Global Assistance partners)은 6월24일 낮 교계 목회자들을 Toronto Congress Centre로 초청, 올해 대회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GAP 대표인 임현수 목사(큰빛교회 담임)는 “GKYM 대회는 지난 2008년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개최된 후, 현재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각지와 서울에서 대회가 열림으로써 많은 세계 한인청년들이 선교의 비젼을 알게 되는 귀한 선교축제로 성장하고 있다.”면서 “2014년 GKYM 대회가 다시 한번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다는 것을 기쁨으로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모임에서는 한인 사역자 외에도 ‘월드비젼 캐나다’, 현재 Korean Christian Fellowship과 동역하고 있는 ‘Inter Varsity Christian Fellowship’, ‘The Canadian Bible Society’, ‘The peoples Church’ 사역자 등도 참석해, 2013년 ‘Korean’을 ’Kingdom’으로 발전적 변경해 글로벌화 한 GKYM의 비전 확장을 보여주었다.
 
< 문의: 905-677-7729, 647-969-7729 >


[기쁨과 소망] 좋은 친구가 되었는가?

● 교회소식 2014. 7. 14. 15:2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실 설교는 성경 말씀과 회중, 그리고 한 주간 말씀을 묵상하며 차곡 차곡 준비하며 기도로 써내려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한 말씀이 얼마나 성경과 하나님이 원하는 말씀일까? 고민하며 씨름을 합니다. 행여 지식 전달이 될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반추된 말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런데 칼럼은 다릅니다. 다양한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주제가 좋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아무튼 사람이 살아가는데 친구가 필요함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요사인 한국과 캐나다가 아니, 전 세계가 한 공간 안에 있는 느낌입니다. 매일 저녁이 되면 아내의 친구가 어김없이 보이스톡으로 연락을 해 옵니다. 사실 카톡오는 소리는 들어도 어떤 내용인지 여자들만의 공간 이야기입니다. 나눔의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연히 아내가 둔 전화기 액정에 뭔가 글이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다름 아닌 문학의 대가 톨스토이의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10가지 지혜의 글이었습니다. 1.일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성공의 댓가입니다. 2.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능력의 근원입니다. 3.운동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4.독서를 위해서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지혜의 원천입니다. 5.친절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6.꿈을 꾸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대망을 품는 것입니다. 7.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구원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8.주위를 살피는데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이기적으로 살기에는 너무 짧은 하루입니다. 9.웃기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영혼의 음악입니다. 10.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는 인생의 영혼의 투자입니다.…그렇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지려고 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주를 둔 할머니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참으로 아름다고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넉넉한 마음이 서로를 격려하며 비록 멀리 있지만 가까이서 숨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요.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나누는 넉넉한 글들이 더욱 삶을 풍요하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친구가 전해주는 고국의 소식과 삶에 대한 애환들을 읽으면서 아내가 흐뭇해 하는 모습은 더불어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내심 이와 같은 좋은 친구가 있는가? 친구가 많다기 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 단 한명이도 있는가? 곰 새겨 봅니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마치 황량한 광야 길을 걷는 동반자와 같습니다. 그래요. 외로움과 눈물도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고, 또한 기쁨을 함께 나누면 배로 늘어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 말 할 수 있습니다. 태평양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들은 자신의 곁에 좋은 친구가 없다고 탓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도록 시간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손 내밀어 일으켜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말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친구는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가리켜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이는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이 믿는 자들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당신들은 예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의 삶은 무엇보다도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친구의 개념을 다시금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탓하기 보다는 나 자신만이라도 좋은 친구가 되길 다짐하며,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시간을 한번 내어 봅시다.

< 안상호 목사 - 동산장로교회 담임목사 >


[평신도 글마당]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교회소식 2014. 7. 6. 17:2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복음서 누가복음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라는 예수님의 수사학적인 의문문을 접하면서 이번에는 특별히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황당하기도 하고 절망감마저 들게 했다. 주님의 말씀은 그의 재림에 앞서 세상의 영적 상태가 일반적으로 개선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식어져 희박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재림 시에 진실한 믿음의 신자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탄식의 말씀이기도 하다. 주님은 창세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계시면서 몸소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이 시간에도 한치의 착오도 없이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 나셔서 갖은 박해와 고통과 질고 속에서도 세상에서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을 위해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기적으로 사역하셨으나 주님의 임재와 권능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점점 식어져 가는 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생각해 본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면에서 믿음이 부족한 여섯가지의 비유를 직접 말씀하신 누가복음 18장 전내용을 분석해 보면 먼저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로 여기서 재판장은 로마인으로 치안을 담당하는 판사로 유추되며 유대인 소송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유대인 과부는 불신자이면서 이민족 재판장에게 까지 원한을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하면 들어주리라는 믿음에 기어코 해결을 보았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믿는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는 주님의 뜻은 끈질기게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 보다는 하나님에의 믿음이 연약하여, 다시 말해 반신반의로 하나님께 요구조차도 하지않는 부족한 믿음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비유에서도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 믿고 세리를 멸시하는 부족한 믿음을 보였고 세리는 자기가 죄지은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죄인임을 인정하여 의롭다고 간주는 되었지만 죄를 짓는 세리에서 떠날 수 있는 큰 믿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린 아이들과의 믿음의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부르실 때 아이들은 가식과 두려움 없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용납하시고 친절하게 대우한다는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완전한 믿음이 없이 부족한 믿음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 올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는 어른들의 부족한 믿음을 지적한 것이다. 부자관리의 비유에서 관리는 예수님께 내가 어찌 하여야 영생을 얻겠나이까? 물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켰으며 구제도 하고 선행도 많이 하였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고 하니 관리는 돈을 더 믿고 영생의 믿음을 경시하는 부족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다른 한 비유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방인들에 넘겨져 죽음을 당하고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 하셨으나 제자들은 이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으니 믿음이 얼마나 부족 한가를 알 수가 있다. 마지막 비유로 어느 맹인은 예수님이 많은 불구자와 병든 자를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은 나를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받는 믿음에는 이르지 못한 믿음으로 그나마 예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18장을 부족한 믿음의 장으로 부르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한 점의 죄도 없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온 생애를 보내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계속 증거하고 계신데도 오늘날 믿음의 우리들조차 아직도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다니?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계속 중보기도 하시면서 재림하시는 그때에도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겠으니 참으로 우리 믿는 자들이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어떻게 맞이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의 믿음이 의심많은 ‘도마’와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에도 믿음이 점점 식어져 가고 있으며 실족까지 하고 있으니 믿는 자들에게는 가슴 아픈 한탄 뿐이고 전도의 대상인 불신자들에게는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고 있으니 어찌 몸에 전율을 느끼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갖지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멀어지며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은혜는 오직 사랑으로 역사 하시는 믿음뿐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 이승고 - 토론토영락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자녀에게 비친 나의 자화상

● 교회소식 2014. 6. 30. 17:0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래 전 우리집 가족신문에 사진으로 된 가계도(family tree)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쩌면 나와 내 아내의 어릴 적 모습과 그리도 닮았을까요. 
사진을 보면 노래 하나가 생각납니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우리 가족 얼굴이 똑 같아요!!!~
 
가족은 닮는다고 합니다.
얼굴과 모양새가 닮지만, 마음과 습관도 닮습니다. 말투와 정서도 닮습니다.
 도로시 로 놀테는 “아이들은 생활에서 배운다”고 말합니다.
『꾸지람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미움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싸움을 배우고, 두려움 속에 자란 아이들은 근심을 배우고, 
동정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 연민을 배우고, 놀림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수줍음을 배우고, 질투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시기심을 배우고, 
부끄러워하며 자란 아이들은 죄책감을 배우고,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을 배우고, 너그러움 속에 자란 아이들은 인내심을 배우고, 
격려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고마워하는 것을 배우고,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고, 관심 속에 자란 아이들은 자긍심을 배우고,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목표 세우는 것을 배우고, 
함께 나누며 자란 아이들은 관대함을 배우고, 정직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진실된 삶을 배우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정의를 배우고, 
 친절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평안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다정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세상이 살기 좋은 곳임을 배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굴과 모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마음과 정서와 습관은 부모가 남겨 주는 몫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은 부모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삶에 남아있는 부모님의 흔적들을 봅니다. 그리고 어느덧, 내 자녀들에게 비쳐지는 나와 아내의 흔적도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녀로서 내 안에서 주님의 인격과 성품이 비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로부터 자녀들에게 남겨진 것이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흔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아버지께 잠시 눈을 감고 기도드립니다. 
이후로 내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소망하면서…
내 안에 더욱 빚어져야 할 아버지의 흔적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소원하면서…

< 이부형 목사 - 시온성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