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하라!" 시청부터 광화문까지 울려 퍼진 함성

117차 촛불대행진-제5차 국민행동의 날-시민행진대회

촛불행동 "윤석열은 김건희 방탄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식인들 향해…"이제 모이면 시국선언을 해야 할 때" 
김민석 "트럼프가 취임 전인 6개월 안에 승부를 내자"

부모, 노동자, 환경운동가 입 모아서 "윤석열 탄핵" 

 

30일 오후 3시 촛불승리전환행동은 서울 시청역 앞에서 '117차 촛불대행진'을 진행했다. 2024.11.30. 이호 작가
 

일반 국민과 야당 의원, 시민단체가 모여 "윤석열 거부" "김건희 특검"를 외쳤다. 이 구호 소리는 서울 시청에서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하며 김건희 특검법을 거듭 촉구했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비까지 내렸지만 시민들은 우비를 입고 집회에 참가했다. 

"윤 정권 향한 분노를 행동으로 바꿀 때"

3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시청역 앞에서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7차 촛불대행진, 건희방탄 우크라 개입 윤석열을 타도하자!'를 기치로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6000여명의 시민(주최 쪽 추산)들은 직접 제작한 파란 풍선을 흔들며 "건희방탄 우크라개입 윤석열을 타도하자!" "김건희 방탄 거부권 남발 윤석열을 몰아내자!" 등 준비한 구호를 외쳤다.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기조 발언을 통해 "윤석열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윤석열은 김건희를 특검해야 한다는 압도적인 여론을 거부했다. 이로써 김건희를 처벌하는 법은 이제 더욱 확실해졌다"고 질타했다. 또 "거부권을 남발하는 윤석열을 탄핵하면 되는 것"이라며 "윤석열은 오로지 김건희 방탄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개입하고 있고, 연일 오물 풍선이 날아오고 접경지 주민은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데도 전쟁만 보는 윤석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공동대표는 "탄핵으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며 "일본은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사과도 안 했다. 일본이 과거사를 미화할 수 있었던 것도 윤석열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인천·연수 촛불행동 이은지 대표가 30일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1.30. 이호 작가
 

인천·연수 촛불행동 이은지 대표는 "국민들은 지난 2년 7개월 동안 윤석열 정권의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며 "이제 국민들은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총동원해서 국민 목소리를 틀어막는 윤석열 정권에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윤석열 정권의 독선과 국민 착취에 대한 분노를 행동으로 바꿀 때"고 말했다.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너무 많았다. 민생경제연구소 임세은 소장은 "윤석열 정권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아야 할 정권"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거짓말과 조작을 밥 먹듯 했다. 여론조사 조작,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임 소장은 "윤석열 정권의 가장 큰 거짓말은 김건희"라며 "아내 역할만 한다고 했는데 이런 요란한 내조가 어디 있냐. 불법 선거사무소도 만들었다. 지난 대선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탄핵 노래방' 코너에는 박상철의 무조건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다.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무조건 탄핵될 거야. 탄핵을 향한 나의 촛불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라고 노래를 불렀다.

대학 시국선언의 문을 연 가천대학교 남명진 교수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는 "현재까지 전국 70개 대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며 "가천대가 보수적인데 이런 학교에서 먼저 발표하면 다른 대학교도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식인과 종교인들 모두 시국선언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촛불대행진 참가자들은 "친일사대 굴욕외교 매국노 윤석열을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파도타기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마지막 순서로 방영식 목사는 "윤석열은 이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며 "윤석열은 끝났다. 탄핵은 이미 끝났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며 가곡 '청산을 살리라'와 가요 '고래사냥'를 불렀다.

집회가 마친 뒤, 촛불대행진 참가자들은 시청역에서 출발해 프레스센터, 세종대로 사거리, 포시즌호텔, 세종문화회관 뒤 외교부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제5차 국민행동의 날'에 합류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30일 '제5차 국민행동의 날'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2024.11.30. 이호 작가
 

"김건희 특검, 윤석열 심판, 이재명 무죄"

민주당이 주최하는 '제5차 국민행동의 날'은 이날 5시에 시작했다. 촛불행진이 광화문까지 행진한 뒤 정리 집회를 하고 민주당 집회에 동참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명령이다. 김건희를 특검하라" "정치검찰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지도부가 무대에 올라 함께 손을 잡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제5차 국민행동의 날과 시민행진대회에 참석한 시민은 총 10만 명(주최 쪽 추산)에 달한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주술 약발이 끝났다"며 "김건희 여사는 '나 감옥 가나요'라고 물었다. 그 쉬운 걸 왜 물어보냐, 김건희는 감옥에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주술로 청와대 옮기고 숫자 2000(의대 입학생 증원)에 집착했다"며 "우크라이나 불길을 못 끌고 와서 안달 내고 있다. 부자 감세 말고는 하는 정책이 없고 검찰을 김건희의 따까리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주술 카르텔인 저들 끝까지 버틸 수 없다"며 "국회 임기는 윤석열보다 1년 길고 국민 임기는 영원하다. 이승만, 전두환, 박정희 모두 다 못 버텼는데 무슨 수로 버티냐"고 말했다. 또 "트럼프 취임 전인 52주 6개월 안에 승부를 내자"며 "'김건희를 특검하라' '윤석열을 심판하라' '이재명은 무죄다'는 같은 말이다. 내 맘대로 수사하고 골라잡아서 기소하는 것은 검사가 아니라 조폭"이라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윤석열 심판, 김건희 단죄해야 한다"며 "박 대령을 지켜주고 이재명과 함께하는 싸움이다. 정권 심판 농단 심판 검찰 심판이 모두가 하나의 민주주의 투지다. 반드시 승리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겠다"고 외쳤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원들과 함께 대열 중간에서 제 5차 국민행동의 날에 참가했고, 행진까지 함께한 뒤 3차 시민행진대회까지 자리를 지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5차 국민행동의 날'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4.11.30. 연합
 

"박정훈 대령은 부모 마음으로 수사한 것"

오후 5시 30부터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이하 전국비상행동)은 민주당 집회에 이어 같은 자리인 광화문 광장에서 '김건희·채상병 특검 추진! 국정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3차 시민행진대회'를 열었다.

첫 발언은 군에 자녀를 보낸 어머니부터 시작했다. 아프지말고 다치지말고 무사귀환 부모연대 이민림 회원은 "고 채 상병이 구명조끼 하나 받지 못해 물속에 들어가 사망한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나라"라며 "박정훈 대령도 군인이기 전에 부모로서 같은 마음으로 수사에 임했을 것이다. 국방 혁신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박 대령 같은 지휘관들에게 달린 것이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박정훈 대령은 무죄'라고 외쳐 달라"고 촉구했다.

거제에서 배를 만들었던 하청 노동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하청 노동자 김영수 씨는 "2022년 여름 거제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의 투쟁을 기억하고 있냐"며 "윤석열 대통령은 차별을 개선해달라는 하청 노동자에게 공권력을 투입하고 협박했다. 5명의 하청 노동자는 47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손해배상과 실형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다단계 하청 구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12월 11일은 51일 파업 투쟁에 있는 선고가 있는 날"이라며 "올해만 한화오션에서 일한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윤석열이 내려오고 노동자의 삶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 인근에서 열린 3차 시민행진에서 시민들이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있다. 2024.11.30. 연합
 

환경단체에서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이동희 씨는 "윤석열 정부의 환경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플라스틱 생산 협약을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행사장에 일회용 컵이 깔려 있다. 윤석열 정부는 환경 정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도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과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이재희 씨는 "윤석열이 조장해서 대남 풍선과 대북 확성기마저 시작됐다"라며 "전 정부보다 100배는 더 심하다. 윤석열은 평화를 위해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와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자유 발언을 마친 뒤, 전국비상행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국정농단은 헌법 파괴 행위"라며 "시민 여러분에게 호소한다.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모두 나서자"고 밝혔다. 또 "(무도한) 권력은 반듯이 무너진다"며 "우리 시민들은 항상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었다. 주권자의 이름으로 다시 외치고 또 외치자"며 '김건희 특검법 추진' 구호를 거듭 외쳤다.

오는 12월 7일에는 '118회 촛불대행진'과 민주노총의 '윤석열 퇴진! 사회대전환! 윤석열 정권 퇴진 3차 총궐기'가 예정돼 있다.                         < 민들레 김민주 기자 >

 

윤, 군 안보 태세 점검했다’고 밝혀... 군 일정 차질빚어가며 골프 연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9일 충남 계룡대 전시 지휘시설을 방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여름휴가 당시, 휴장일을 맞아 시설을 점검해야 하는 군 골프장을 찾아 골프를 즐긴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당시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휴가기간 군 안보 태세를 점검했다’고 밝혔는데, 군의 일정 차질까지 빚어가며 골프 연습을 강행한 것이다.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인한 제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인 8월8일 충남 계룡시 구룡대 체력단련장(골프장)을 찾아 골프 라운딩에 나섰다.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8월8~9일 이틀간 계룡대 전시지휘시설을 찾아 ‘2024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준비 상태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며 “육·해·공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안보 태세를 점검하는 ‘안보 휴가’였다”고 밝혔는데, 이틀 중 상당한 시간을 골프 연습에 할애한 것이다. 통상 18홀 골프장의 라운딩 시간은 4시간가량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방문한 8월8일은 구룡대 골프장이 두 달에 한번 시설과 장비 등을 정비하려고 문을 닫는 휴장일이었다는 점이다. 대통령경호처 쪽은 7월에 ‘대통령 행사가 있다’며 골프장 이용을 문의하고 7월 하순께에야 일정을 확정해 통보했다는 게 추 의원 쪽 설명이다. 군 골프장 내부의 일정과 운영 계획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에 맞춰 업무를 진행한 셈이다. 당시 구룡대 골프장의 배정 현황을 보면, 8월8일은 새벽 5시대부터 일정이 빼곡하지만 오전 8시24분 이후부터는 일정이 통째로 비어 있다. 정확한 시간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윤 대통령은 이후 라운딩에 나섰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간 윤 대통령의 부적절한 골프 라운딩 사실이 알려진 뒤 ‘대통령의 골프 연습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대화를 위해 8년 만에 재개한 것’이라며 거짓에 가까운 해명을 하거나 “1997년 아이엠에프(IMF) 시절 박세리 선수로부터 국민들이 큰 힘을 얻었다”며 궤변에 가까운 방어를 펼쳐왔다. 그러나 미국 대선 일정이 마무리되기 전부터 윤 대통령이 휴장한 골프장까지 열어가며 라운딩을 즐겨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추미애 의원은 “8월초 군 골프장 이용이 공식 확인되었으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의 외교 골프를 위해 골프 연습을 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엄지원 기자 >

애초 괴롭히기가 목적이었던 22년 전 사건 재활용


통화 녹취록 짜깁기에 증인과 형량거래 의혹까지
엉망진창 기소에도 뻔뻔한 검찰 '법정 최고형' 구형

재판부 "통상적 증언 요청" "상식적 피고인 방어권"
"김진성 신문에 이재명 관여했다고 볼 증거도 없어"
검찰 주장 맞춰 증언 바꾼 김진성만 벌금 500만원

기사회생 이재명 "죽이는 정치보다 살리는 정치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차에 타기 전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4.11.25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위증교사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위증교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 된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위증교사 정범으로 기소된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 출신 김진성 씨는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시작부터 '괴롭히기' 목적…'억지·짜깁기 기소' 논란

앞서 검찰은 지난해 9월 이 대표에 대한 두 차례의 구속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살라미(얇게 썰어먹는 소시지)식 쪼개기 기소'를 단행했다. 당시 그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 '위증교사 재판'이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재판을 늘려 괴롭히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사건은 22년 전인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남시민 모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 대표는 분당 파크뷰 특혜 의혹을 취재하던 <KBS> '추적 60분' 최철호 피디(PD)가 검사를 사칭하는 데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2004년 12월 대법원에서 공무원자격사칭죄 등으로 벌금 150만 원이 확정됐다.

이후 이 대표는 2018년 5월 경기도지사 선거 TV토론에서 "PD가 사칭하는데 제가 옆에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걸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 "저는 보복 당했다고 생각한다" 등의 발언을 했는데, 이 발언이 허위사실 유포라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대법원이 무죄 선고한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려 2018년 12월 22∼24일 이 대표가 김진성 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과거 자신의 '검사 사칭 사건'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서 위증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하며,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유·무죄 판단이 끝난 22년 전 사건을 또다시 불러들여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낸 셈이다.

 

2018년 12월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진성 전 성남시장 수행비서가 전화 통화로 나눈 대화의 녹취록. 뉴탐사 화면 갈무리
 

대법원은 판례에서 증인이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는 경우에만 위증죄가 성립하고, 기억나는 대로 진술할 경우 위증이 아니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이 대표는 22년 전 사건을 '기억나는 대로 진술해 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넘겨지자, 전형적인 '억지 기소'라는 비판이 나왔다.

2018년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이 대표는 김 씨와 통화에서 "안 본 거 그런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고 (…) 시장님 쪽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그런 거나 좀 한번 상기해 봐 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허위진술이 아닌 기억나는 부분을 진술해달라고 했지만, 검찰은 이같은 발언은 삭제한 채 이 대표가 자신의 변론 요지서를 김 씨에게 전달했다고 위증 교사로 몰았다.

그러나 이 대표가 김 씨에게 전달했다는 변론 요지서 역시 왜곡돼 해석된 정황이 드러났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씨는 이 대표에게 "(변론 요지서를) 잘 쓰셨더라고요"라고 칭찬했다. 김 씨의 기억에 반하는 내용이 변론 요지서에 담겼다면 김 씨가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이 대표가 김 씨에게 보낸 변론요지서를 보고 김 씨가 중압감을 느껴 위증을 했다"고 해석했다.

특히 이 재판에서 논쟁이 컸던 부분은 2002년 검사 사칭 문제를 놓고 김병량 성남시장 쪽과 KBS 간부들 사이에서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면 최철호 PD는 고소를 취하해주겠다'는 이면협의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이 대표는 당시 성남시와 KBS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누명을 썼다'고 했고, 김 씨도 이 대표와의 통화에서 "그때 실제로 그런 분위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통화 녹취록에서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김 씨의 발언 부분을 모두 생략하고 '짜깁기'해 공소장을 썼고, 김 씨 역시 당초 '위증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검찰 조사가 진행돼 가면서 검찰의 주장과 동일하게 위증을 시인하는 방향으로 진술을 180도 바꿨다.

 

검찰 공소장에 누락된 녹취록 속 김진성의 중요 발언

민주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김 씨가 사기·알선수재 등 3건의 혐의로 수사를 받은 사실을 지목하며 "정치검찰의 거미줄에 걸린 나비 신세나 다름없다"면서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플리바게닝은 피고인이 자신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수사기관과 협상하는 것을 말하는데, 현행법상 불법이다.

이처럼 위증교사 재판은 '22년 전 사건 억지 기소' '왜곡·짜깁기 기소' '플리바게닝' 등으로 논란이 됐음에도 검찰은 지난 9월 30일 결심공판에서 이 대표에게 대법원 양형기준 상 최고 형량인 '징역 3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 "방어권의 정도를 벗어났다 보기 어려워"

이날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증언에 대해 일부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진성 씨에게, 김병량과 KBS 사이의 이재명을 검사 사칭 사건의 주범으로 모는 고소취소 약속을 아는지에 관해 물었는데, 김 씨가 이를 모르겠다고 답변하자, (…) 더 이상 이재명을 주범으로 모는 합의에 관한 증언을 요청하지 않았다"면서 "증인이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 바에 대해 확인하는 방식의 통상적인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증언에 관해 언급했다고 해 위증을 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나아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자신을 주범으로 모는 협의 내지 합의가 있어, 누명을 썼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했던 이 대표가 김 씨에게 당시 처했던 상황 및 자신의 의문을 설명하고 변론 요지서를 제공해 확인하게 하는 것이 상식에 반한다거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방어권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대표는 김 씨가 알지 못한다고 한 '고소취소 약속'과 김 씨가 모를 수 있는 내용인 '김병량 측과 KBS 측 사이의 협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 증언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이 대표가 대화 과정에서 김 씨가 모른다고 하거나 부인하는 내용은 배제한 채 김 씨가 기억하거나 동조하는 사항 또는 적어도 김 씨가 명백히 부정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만 명시적으로 증언을 요청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의 증인신문사항 작성에 이 대표가 관여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한 점 ▲김 씨가 진술서 초안 및 수정본을 작성하면서 '이재명을 주범으로 모는 합의'에 관한 내용은 기재하지 않고 ▲변호사(신○○)와의 통화에서도 '이재명을 주범으로 모는 협의 내지 합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미뤄볼 때, 위증교사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김 씨의 위증 여부를 판단한 제1~6증언(아래 표 참고) 가운데 제2~3증언에 대해서는 위증이 아니라면서도, 나머지 제1 증언과 제 4~6 증언에 대해서는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만일 이에 대해 위증을 요청한 사실이 성립할 경우, 위증 교사 부분도 인정될 수 있다.

재판부 설명자료 중 김진서 발언 부분. 재판부는 김진성의 제2~3발언은 무죄로 나머지는 유죄로 판단했다. 2024.11.25. 서울중앙지법
재판부 설명자료 중 김진서 발언 부분. 재판부는 김진성의 제2~3발언은 무죄로 나머지는 유죄로 판단했다. 2024.11.25. 서울중앙지법
 

그러나 재판부는 각각의 발언에 대해 "이 대표가 개입했음을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점, 이 대표와 김 씨의 통화 당시 김 씨가 증언을 할 것인지 여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증언을 할 것인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을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대표가 김 씨의 위증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범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재판부는 김 씨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않은 구체적인 사실에 관해 마치 김병량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위증을 했다"면서 "이는 국가의 사법기능을 방해하고 법원의 실체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저해하는 행위로서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김 씨 입장에서는 애초 증언한 대로 이 대표와 동일한 진술을 했다면 무죄를 선고받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검찰과의 형량 거래 의혹을 받으면서까지 검찰의 주장에 맞춰 '위증했다'고 증언을 180도 바꾸면서 도리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됐다.

이날 위증교사 재판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이 대표는 이른바 '사법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낼 수 있게 됐다. 다만 공직선거법 1심 재판부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고, 여전히 5개 재판이 이 대표에게 걸려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 보수화한 사법부를 고려하면, 대통령의 '정적 말살' 의도에 맞춰 언제든 민주주의 전체의 위기를 불러올 판결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11.25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이 대표는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진실과 정의를 되찾아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이 참으로 어렵고 길긴 하지만 창해일속이라고 제가 겪는 어려움이야 큰 바닷속 좁쌀 한 개에 불과하다"면서 "국민들께서 겪는 어려움과 고통에 비하면 제가 겪는 어려움은 미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드리면서, 이제 정치가 이렇게 서로 죽이고 밟는 게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함께 가는 그런 정치면 좋겠다"며 "죽이는 정치보다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하자고 정부·여당에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추도식에 참석하는 일본 정부 대표의 야스쿠니 참배 이력 문제

 

                                   사도광산 갱도 모습. 연합
 

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 일본 사도광산에서 일하다 숨진 조선인 강제노동자 등을 기리는 희생자 추도식과 관련해 23일 “제반 사정을 고려해 24일 예정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나라가 합의해 일정을 확정했던 행사가 하루 전 사실상 일방 파기되면서 ‘외교 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 당국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지난 20일 추도식을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24일 오후 1시부터 1시간 가량 개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전격적인 불참 결정에는 추도식에 참석하는 일본 정부 대표의 이력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추도식에 차관급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에서 정무관은 차관급 인사로 외무대신(장관), 외무부대신(차관) 바로 아랫급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지난 11일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2기 내각에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외무성 정무관으로 기용됐다.

특히 이쿠이나 정무관은 참의원에 당선됐을 당시 일본 패전일인 8월15일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논란을 빚었다. 참의원 선거 전 “(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한일이 대립하는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지난 21일 정무관 이·취임식에선 “한국과는 많은 과제가 있는 만큼, 일본으로서 할 말은 확실히 하고 일본의 평화를 실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쪽이 준비한 추도사에 한국 정부가 인정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애초 일본 정부가 추도식 대표로 차관급 정무관을 보내기로 하자, 한국 정부는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가 참석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에 생존해 있는 사도광산 유족 11명도 이번 추도식에 함께 참석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 이들 유족들은 정부가 추도회 불참 입장을 밝힌 23일 당일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사도섬 현지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  한겨레 도쿄 홍석재 특파원 >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결정…‘굴욕외교’ 비판 피하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 유가족, 별도 추도식하기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출구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도섬/연합
 

정부가 24일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불참을 결정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자부해온 ‘한일관계 개선’이 ‘대일 굴욕외교’의 상징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23일 오후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정부는 추도식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24일 예정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하였다”면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교부가 언급한 ‘제반 사정’은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력이 있는 극우 인사를 보낸다고 발표한 것을 비롯해 추도식과 추도사 내용 등에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추도하는 내용에 대해 한일 외교 당국간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24일 오후 1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이번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한국의 등재 동의를 얻기 위해 약속한 후속 조치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들을 비롯해 전체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열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약속이었지만, 행사와 관련한 한일 외교당국의 협의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태도는 전혀 달랐다.

일본 쪽에서는 이 행사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 추도와는 무관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는 행사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일본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행사 명칭에 ‘감사’라는 취지의 표현을 넣겠다고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포함된 추도식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해 우여곡절 끝에 ‘사도광산 추도식’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일 하나즈미 히데요 일본 니가타현 지사는 정례 기자회견에서 “(추도식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는 것을 관련된 분들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급기야 22일에는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참배 각료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무관 이상 참석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확답을 미뤄오다가 추도식을 이틀 남기고 결국 극우 인사를 보내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런 인물을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보낸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은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반발이 확산되었다.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이쿠이나 정무관 페이스북
 

특히 이런 상황을 한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제대로 알고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외교부는 22일 오후로 예정되었던 사도광산 추도식 관련 브리핑을 예정 시각을 불과 5분 앞두고 취소했다. 그만큼 당혹스러웠다는 뜻이다. 기자들의 질의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외교부는 22일 밤 늦게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하여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측에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하여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며 “동 정무관은 일본 정부대표로서 추도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이날 밤까지도 한국은 추도식 참석을 고수하면서 이쿠이나 정무관이 추도사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들을 추도하는 내용을 밝히게 하는 쪽으로 협상을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3일 오후 결국 추도식 참석 취소 결정을 밝힌 것은, 추도사와 추도식 식순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를 추모하는 내용을 반영하는 것조차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23일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측에 불참을 통보하였고, 외교 당국 간 상세 논의사항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자 한다”며 자세한 협의 상황은 공개하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석하려던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11명 가운데 9명은 이미 사도섬에 도착해 있는 상태다. 정부는 25일 오전 한국인 유가족들과 함께 사도광산 현장에서 별도의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조태열 외교장관은 23일 방송에 출연해 “(추도식까지 시간이 촉박해) 양측이 수용가능한 합의 도달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해서 일단 추도식에는 우리측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면서 “추도식에는 불참하고 우리 유가족분들과 정부 관계기관들이 별도의 추도식을 하고 관련시설과 광장과 박물관 등을 시찰하는 별도 일정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가족이 ‘사도광산 유네스코 유산 등재’ 행사에서 들러리를 서서 모욕을 감수하는 상황이 될 뻔했다는 점에서 일본 쪽에 끌려가는 행사 참석보다는 불참이 나은 결정으로 보인다. 일본이 협상에서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 그대로 공개될 경우,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약속한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추모’마저도 이런 식으로 왜곡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자부해온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협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하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석하는 추모식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성과”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이 약속한 후속조치 가운데 또다른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전시도 ‘강제동원’ 표현이 빠진 데 이어, 추도식마저 한국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인 행사가 되어버렸다. 일본 정부가 약속했던 매년 추도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하여 일본 정부와 지속 소통해나가고자 한다”고만 했다.   <  박민희  신형철 기자, 도쿄 홍석재 특파원 >

 

‘야스쿠니 참배’ 인사 온다는 사도광산 추도식…‘굴욕 외교’ 상징될 판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이쿠이나 아키코 페이스북
 

외교부가 22일 오후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열려던 사도광산 추도식 관련 브리핑을 취소했다. 외교부의 조처는 일본 정부가 24일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력이 있는 극우 인사를 보낸다고 발표한 뒤에 이뤄졌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사도광산 추도식 관련 브리핑 취소를 공지했다. 브리핑 예정 시각을 불과 5분 앞둔 시점이었다. 외교부는 브리핑 취소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한 당국자는 취재진에 “현재 상황에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는 사정이 됐다"고 했다.

외교부의 브리핑 취소에는 24일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참배 각료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보낸다고 발표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결정은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로한다는 추도식의 의미에 전혀 맞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찬성하면서 “외교 성과”로 내세웠던 추도식이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전락할 판이다. 추도식은 24일 오후 1시부터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일본 유명 걸그룹 ‘오냥코 클럽' 멤버 출신 아이돌로, 배우로도 인기를 끌었다. 2022년 참의원(상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고, 이달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제2차 내각에서 외무성 정무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인식도 매우 우려스럽다. 참의원 선거 전 마이니치신문의 조사에서 ‘한일이 징용과 위안부 문제로 계속 대립하고 있는 데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립하는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지난 21일 외무성 부대신과 정무관 이·취임식에 참석해서는 “내년은 전후 80년, 그리고 일-한(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지만 한국이나 중국과는 많은 과제가 있는 만큼, 일본으로서 할 말은 확실히 하고 일본의 평화를 실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외무성에서 정무관은 차관급 인사로 외무대신(장관), 외무부대신(차관) 바로 아랫급이다. 일본 외무성에는 3명의 정무관이 있고 이쿠이나 정무관과 다른 1명은 야스쿠니 참배자이지만, 그렇지 않은 정무관도 있다.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무관 이상 참석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확답을 미뤄오다가 추도식을 이틀 남기고 결국 극우 인사를 보내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일본이 왜 유독 야스쿠니 참배자를 일본 정부 대표로 보내기로 결정했는지, 한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자들의 질의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외교부는 이날 밤 늦게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하여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측에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하여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며 “동 정무관은 일본 정부대표로서 추도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이번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한국의 등재 동의를 얻기 위해 약속한 후속 조치다. 일본이 약속한 후속조치 가운데 또다른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전시도 ‘강제동원’ 표현이 빠진 데 이어, 추도식마저도 정부 설명과는 다른 석연치 않은 행사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야스쿠니 참배 인사가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직 이 행사의 성격과 추도사의 내용도 불분명하다. 한일 정부간 합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이 계속 확답을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쪽에서는 이 행사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 추도와는 무관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는 행사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행사 명칭에 ‘감사’라는 취지의 표현을 넣겠다고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포함된 추도식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해 우여곡절 끝에 ‘사도광산 추도식’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일 하나즈미 히데요 일본 니가타현 지사는 정례 기자회견에서 “(추도식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는 것을 관련된 분들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은 이 추도식이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행사라는 인식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것은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인데 일본 중앙 정부 차원이 아닌 니가타현의 지자체 관계자와 민간단체 등이 중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22일까지도 추도사 내용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과연 이 행사가 정부가 사도광산 등재 찬성 당시 국민에게 설명한 ‘강제동원 피해자를 애도하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 추도식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11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일본측 실행위원회가 조선인 희생자 가족 초청도 하지 않아 한국 정부가 참석 의사를 밝힌 유가족들의 경비도 모두 부담한다.

‘한일 관계 개선’을 성과로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는 당시 사도광산 등재에 찬성하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석하는 추모식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성과”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추도식이 ‘굴욕 외교’의 상징이자, 강제동원 피해 유가족들을 들러리 세우고 모독하는 행사로 변질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도광산에서는 조선인 1500명 이상이 강제동원되어 노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은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제대로 추모하지 않는 행사라면 정부가 추도식 참석 자체를 보이콧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앞서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일본과 협의 결과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추도식 불참도 고려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일측과 협의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  박민희 기자 >

 

일본 명부 안 주자 사도광산 추도식 갈 피해자 찾아헤매는 정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왼쪽)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민원실에 사도광산 강제동원 조선인 명부 공개 요청 서명서를 전달하고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외교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등을 통해 일본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에 참석할 피해자와 유족들을 수소문하고 있는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추도식 주최자인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명부를 제공하지 않자 ‘우회로’를 찾아나선 것이다.

‘강제성’ 표현이 없는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해 굴욕 외교 논란을 자초한 데 이어, 이번엔 명부 제공의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를 설득하는 데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외교부는 지난달 8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공문을 보내 “추도식 준비에 참고하고자, 귀 재단에서 파악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중 사도광산에 동원된 인원의 명단 및 생존자와 유가족의 명단과 연락처 제공을 요청드린다”고 협조를 구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가운데)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조선인 명부 공개 요청 서명서를 외교부에 전달하기에 앞서 배경 설명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이에 재단은 닷새 뒤 피해자와 유족 10명의 명단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당시는 7월 말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로, 일본은 등재에 합의해준 한국에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의 추도식을 올해 9월에 열겠다고 약속했었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공문에 “추도식이 이른 가을 개최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 가급적 조속한 회신 희망”이라고 적었다. 비슷한 시기에 외교부는 언론사와 다른 시민단체 등에도 사도광산 피해자·유족의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9월 추도식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명부를 제공하는 데도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 사도시 세계유산추진과는 추도식의 준비상황, 사도광산 피해자 명부 제공 여부 등을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사도시에서 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는 조선인 약 1500명이 강제동원됐다. 현재 일본 니가타현립문서관에는 ‘1414번 자료’로 ‘반도 노무자 명부’가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소장되어 있지만, 사도광산을 운영하는 미쓰비시골든사도는 이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명부가 미쓰비시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미쓰비시 동의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 일본 측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쓰비시골든사도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한국 정부가 손을 쓸 여지가 없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조정식 의원은 12일 “명부 공개 없는 추도식은 일본 정부 과거사 세탁에 부역하는 꼴”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에 명부 공개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기자회견을 열어 “명확히 있는 명부도 입수하지 못하는 게 진정한 한-일 관계 개선인지 의문”이라며 “추모할 희생자의 이름도 모른 채 추도식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정부에 강제동원 조선인 명부 확보·공개를 촉구하는 시민 2404명의 서명을 외교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 한겨레 신형철  박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