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라이벌’ 김연아-마오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김연아(23)는 2010년 펴낸 에세이집 <김연아의 7분 드라마>(중앙출판사)에서 아사다 마오(23)와 처음 맞섰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4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그랑프리 파이널. 당시 14살이었던 김연아는 주니어 최강자 마오와 맞섰다. 마오는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을 펼치는 등 압도적인 기량으로 합계 172.25점을 받아, 2위 김연아(137.75점)를 크게 앞질렀다. 아사다 마오는 열두살 때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천재. 점수 차이도 30점을 넘었다. 세계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마오를 넘어야만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 김연아의 심정이 불만스러웠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180도로 달라졌다. 17일(한국시각) 캐나다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와 마오는 15번째 맞대결을 펼쳤다. 그런데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의 환한 표정과 달리 3위를 한 마오의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여왕’의 자리를 확인한 김연아 옆에서 가끔씩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거워 보였다. 마오에게 김연아는 선의의 경쟁자이고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묵중하게 짓눌렀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이후에는 김연아의 존재가 큰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주니어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마오는 성인무대에서 최고의 자리를 두고 김연아와 끈질긴 승부를 펼쳐왔다. 성인무대 첫 맞대결은 2006~2007 시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이뤄졌다. 이 때 마오는 김연아에 1위 자리를 내줬고, 이후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다섯 번의 그랑프리 맞대결에서 2개씩의 금메달을 나눠가졌다. 상대 전적은 3승2패로 마오가 약간 우세했다.
 
본격적으로 명암이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 김연아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치고 나갔고, 여세를 몰아 2009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합계 207.71점으로 정상에 오른다. 김연아는 피겨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한 여자 선수가 됐다. 반면 마오는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에서 트리플 악셀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지 못하고 4위(188.09점)에 그쳤다. 마오는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본점수와 가산점이 높은 고난도의 트리플 악셀에 집착했다. 하지만 부담감이 더해지고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점수를 깎아 먹었다.
김연아와 마오의 인연이 악연의 절정으로 치달은 것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올림픽 무대를 꿈꿔온 둘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아사다 마오는 갈고 닦은 트리플 악셀을 세 차례나 구사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연기를 펼치면서 처음으로 합계 200점을 넘겨 205.50을 받는다. 하지만 김연아가 있는 한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었다. 김연아는 228.56점이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정상에 올랐고, 은메달을 목에 건 마오는 한 계단 높은 곳에 서 있는 김연아 옆에서 아쉬움을 삼켰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둘의 라이벌 대결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연아는 목표 의식을 잃었고, 마오는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둘의 드라마는 지난해 김연아의 1년8개월 공백 뒤 복귀를 시작으로 불꽃이 점화됐다. 김연아는 2012년 12월 독일에서 열린 NRW 대회에서 우승했고, 은근하게 실력을 끌어올린 마오는 2월 일본에서 열린 사대륙 선수권대회에서 합계 205.45점으로 정상에 오르면서 슬럼프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2004년 주니어 시절부터 시작된 둘의 끈질긴 인연은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처음에는 마오가 우세했고, 나중에는 김연가가 뒤집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김연아의 완승으로 1라운드가 끝났다. 하지만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만 1년을 앞두고 열린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마오의 기를 먼저 꺾었다.
허승 기자 >


▶고영민 노회장 앞에서 선서하는 (왼쪽부터) 여태동·최종식·김성민 목사.


KPCA 동노회 목사 임직식… “자기목회도 중시”권면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 동노회(노회장 고영민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는 3월10일 주일 오후 토론토 영락교회(담임 송민호 목사)에서 제62회 정기노회 속회를 열어 여태동(영락교회 한어권 중등부), 최종식(참좋은 복된교회 교육부), 김성민(큰빛교회 다운타운, 한어권 중고등부) 전도사의 목사 임직예배를 드렸다.
고영민 노회장의 속회선포로 시작된 예배는 노회서기인 석대호 목사(옥빌 한인교회 담임) 인도로 부노회장 고승록 목사(참좋은 복된교회 담임)의 기도와 영락교회 호산나성가대 찬양에 이어 노회장 고영민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고 목사는 ‘자기를 목회하라’(엡 5: 28~30)는 제목의 설교에서 “최근 지역에서 목사안수가 남발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연 뒤 “집사나 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목사가 되는 사례나 신학교 난립 등은 교회와 기독교전체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로, 의사나 변호사가 통신교육으로 될 수 없듯이 목사도 무분별하게 안수를 주는 것은 안 될 일이며 성직자는 뼈아픈 자기 성찰 및 더욱 엄격한 훈련과 과정을 거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 “우리 노회가 엄중하게 안수하는 전통이 이어지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기독교 위상을 높여나가게 되기를 축원한다”고 밝혔다.
고 목사는 이어 임직자들에게 “목회를 교회목회와 자기목회(Self Ministry)로 나눌 때 흔히 교회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목회에 소홀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 “목회는 일종의 사람 비즈니스이며, 목회현장의 문제들은 자신이 사람임을 잊는 데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 어떤 의미에서 교회목회 보다 자신의 육제적·정서적·영적인 것을 잘 돌보고 자신을 사랑하며 보양하는 자기목회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 목사는 또 “아내(남편)사랑이 곧 자기사랑인 만큼 하나님과 아내(남편)을 잘 섬기고 거기서 나오는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겨 나가자”고 임직자와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이어 임직식은 안수대상자 3인 소개와 서약, 안수, 선포 및 각 교회 담임목사들이 성의를 증정하고 기념패를 수여한 뒤 큰빛교회 윤병준·영락교회 중고등부 찬양팀이 각각 축가를 불렀다. 
직전노회장 이요환 목사(염광교회 담임)는 축사와 권면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로 사명을 다하여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예배는 여태동 목사의 축도로 마치고 고영민 노회장은 정기노회 폐회를 선포했다.
< 문의: 905-842-0938 >


교협 확인 방북단은 국경폐쇄로 일정 미뤄

온타리오 한인교회협의회(회장 임현수 큰빛교회 담임목사)와 토론토 한인회(회장 이진수)가 작년 12월부터 지난 1월말까지 공동으로 전개해 모금한 ‘북한 고아 2만명 돕기(동복보내기)’ 성금으로 만든 동복이 북한 주요지역의 고아원에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현지 배포상황을 확인하려던 임현수 목사 등 교협 방북단은 최근의 북한 핵문제로 인한 긴장심화로 국경이 폐쇄됨에 따라 중국 심양에서 대기하다 입북하지 못하고 일정을 미뤄 추후 확인키로 한 뒤 지난 9일 돌아왔다.
 
교협 임현수 회장은 11일 “이번 방문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예상되긴 했지만 (유엔 제재 등으로 인한) 북한 내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외부인 입국이 전면 금지돼 들어가지 못하고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그러나 ”고아들에게 전하는 동복은 원단을 구입해 보냈었고, 제조가 끝나 이미 해주와 원산 등 고아원에 2월까지 대부분 전달됐으며 분량이 워낙 많아 일부만 홀딩상태“라면서 ”상황이 풀리면 곧 들어가 전하고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교협과 한인회의 북한 고아돕기 모금운동에는 총24만 7,128달러가 답지했다.

< 문의: 647-209-2500 >

 

[1500자 칼럼] 바울 사도를 생각하며

● 칼럼 2013. 3. 15. 19:46 Posted by SisaHan
지난 2월에 필리핀에 있는 우리 교단 산하의 태평양 노회의 요청으로 부흥회를 다녀왔다. 그런데 막상 부흥회를 허락하고 난 뒤 갈 때 쯤 되어 연락이 왔는데 노회 내의 모든 교회들이 모두 선교지역으로 흩어져 있는지라 강사께서 노회 산하의 몇 지역으로 함께 가셔서 집회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이었다. 노회의 형편으로 볼 때는 수도인 마닐라 지역에서 집회하는 것이 편리하지만 노회의 구성원인 다른 지역의 교회도 노회가 누리는 혜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강사인 나로서는 난감했다. 보통 부흥회를 인도할 때 낮에는 쉬면서 건강을 관리했는데 낮에는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니 몸에 무리가 될 것은 뻔하고 그렇게 피곤한 몸에 시차 역시 만만치 않을 텐데 하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큰 걱정은 설교를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강사 나름대로 은혜를 받게 하고자 설교하는 흐름이 있는데 그런 어떤 흐름도 없이 다른 지역에서 설교를 해야 하고 매번 청중도 바뀌어지고 동행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시니 같은 설교를 계속할 수도 없고. 이젠 적지않은 나이에 모든 것이 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마닐라에서 하루 저녁 인도하고 다시 북쪽의 바기오라는 도시로 갔다. 거기는 영상 30도 이상의 마닐라와 달리 산위의 도시가 되어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다는 그대로 영상 20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마닐라에서 온탕을 하고 바기오에서 냉탕을 한 셈이랄까? 다음 날은 다시 바기오에서 내려와 앙겔레스라는 도시로 왔다. 다시 온탕이었다. 바기오까지 6시간의 운전에다 거기서 다시 앙겔레스까지 4시간을 타고 내려왔다.
음식도 그랬다. 나름대로 정성껏 대접해 주시는데 육신이 피곤에 지치니 음식의 맛도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괜히 매운 것 같고 괜히 짜게만 느껴지는 그런 식이었다. 전에는 잘 먹었을텐데.
이리 저리 자동차에 시달리면서 피곤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는 바울 사도가 생각이 났다.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세 번의 전도여행을 다닐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었던가? 지금 내가 힘들고 불편해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를 생각해 보았다.
 
바울이 필리핀에 와서 선교를 했거나 부흥회를 인도했다면 뭐라 했을까? 나이 타령? 피곤하다? 잠을 많이 못 잔다? 음식이 불편하다? 덥다 춥다 하는 말들을 했을까? 어느 것이나 모두 바울 사도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일 뿐 불평이나 불편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울 사도 당시 승용차는 물론 자전거가 있었겠나? 모든 길을 걸어 다녔을 것이고 기껏 빠른 길을 택했다면 배를 탈 뿐이었다. 바울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흥회 강사로 모시는 그런 대접이 있었겠는가? 그가 가는 길에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말씀하는 그대로 갖은 고난과 푸대접 또는 돌에 맞는 환난과 핍박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겠다.
물론 시대가 다르지만 그래도 내가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서 바울을 생각해보니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강사님 강사님 하는 대접을 받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바울 사도를 생각해내야 하듯이 우리보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항상 생각하며 고려하는 자세를 갖고 주의 일을 하면 어떨까?
그런데 부흥회가 끝나고 돌아오려는 데 내년에 또 오라고 하신다. 어떻게 할까? 물론 가야겠지.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