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여당 의원석이 비어 있다. 연합
12·3 내란사태 수습을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국정 전반을 협의해 이끌겠다고 밝혀 ‘위헌’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튿날인 9일 국회 주요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 여당은 물론 각 부처 장관들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김완섭 환경부 장관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개최를 요구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회의 의사일정 조정에 응하지 않았는데 각 장관들도 “여야간 의사일정이 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출석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12·3 내란사태 수습을 위한 현안질의는 물론 법안심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여당과 정부의 불참에 대해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민주당)은 “교육부 장관과 관계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불출석한 것은 국회를 무시한 것이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경제·민생을 잘 챙기겠다고 한 약속은 모두 허언이고 거짓”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총리는 비상계엄 선포 관련 심의가 이뤄진 지난 3일 국무회의에 “연락을 받지 못해” 출석하지 못했다고 밝힌 이후, 내란 사태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백승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계엄령 선포의 정당성에 대해 “(이 부총리가) 동의하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탄핵이) 우리 국민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겠느냐”고 밝힌 바 있는 김문수 노동부 장관 역시 환노위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 장관의 이런 입장을 두고 이날 민주당 환노위 위원들은 “불법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선전과 선동에 해당한다”며 “김 장관을 내란죄 공범으로 환노위 차원의 고발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전에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무위원회 등도 장관과 여당 의원이 불참한 채 진행됐다. 김원이 산자위 민주당 간사는 “내란계엄사태가 탄핵정국으로 번지면서 금융시장 불안 실물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경제리스크 대응과 민생회복을 위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인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 국민의 삶을 챙겨달라”고 밝혔다.
한편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날 서면으로 국회에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개최 통보를 저녁 9시40분께 받았다”며 “늦게 도착해 충분한 의견을 개진하기는 어려웠으나 비상계엄 선포가 민생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오 장관이 처음으로 국무회의 입장을 공개해, 당시 뚜렷한 반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김해정 신소윤 박태우 기자
경제팀 “안정 총력”에도…외국인투자 빠지고 통상외교 ‘비상등’
계엄에 습격당한 한국경제
‘12·3 내란사태’ 직후인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은 비상계엄 사태 영향으로 2% 가까이 하락세를 보이며 출발했다. 연합
한국 경제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초유의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12·3 내란사태’ 책임이 있는 정부의 버티기와 정치적 불확실성 극대화로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가 무너지며 경제가 그 후폭풍을 맞게 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약해진 경제 기반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등 대외 악재가 동시다발로 덮치며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국내 증시와 원화 약세, 외국인 투자금 이탈은 정국·경제 불안의 신호탄이다. 당장 정부 정책이 추진 동력을 잃고 대외 개방 경제의 핵심인 경제 외교도 ‘올 스톱’ 될 처지다.
8일 관가에 따르면, 내년 1월20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한-미 간 정상급 회담은 장기간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우리 정부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죄 피의자로 전락한데다, 탄핵 절차마저 더뎌지면서 트럼프와 대화할 헌법적 맞상대도 찾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국무총리나 경제부총리 등 한 단계 격이 낮은 인사를 대상으로 회담할 가능성도 낮다. 한 수출 대기업 임원은 “지금처럼 통상이 중요한 시기에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파트(상대)조차 공백 상태이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에 대응할 국제 공조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달 초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방한이 비상계엄 여파로 갑자기 연기된 데 이어, 이달 차기 집행부가 본격 출범하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동남아 등을 방문해 무역·통상 현안을 논의하려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해외 출장 일정도 보류됐다. 외교정책 사정을 잘 아는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관세 정책에 맞서 다른 나라와 공동 대응을 해야 하지만, 외국 실무진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정부와 협상하겠다고 나서긴 쉽지 않다”며 “탄핵 정국 해소 전까진 정상적인 대외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외환시장 불안과 내수 침체 등에 대응해야 하는 정부의 위기관리도 녹록지 않다. 이미 훼손된 대내외 신뢰와 정치 정상화 지연 등으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국정 현안 대처는 물론, 투자·소비 심리 회복 여부 등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당장 내년도 사업 계획을 짜는 데 트럼프 등 대외 변수와 국내 불안 등을 고려해 매출 목표 등을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내란 사태 직후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경고하며 국내 증시 투자에 부정적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경제부총리인 제가 중심이 돼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외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도 지난 3일 비상계엄 심의를 위해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만큼 내란 사태 관련 수사 대상자로 수사당국이 분류할 공산이 높다. 경제 사령탑으로서의 지위가 불안하다는 뜻이다.
미국 포브스는 6일(현지시각) “엉터리 계엄령이 한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는 최 부총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면서도 “진짜 문제는 앞으로의 몇년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에 대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외국인 투자자와 국제사회에선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 장기화되면 한국의 정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이 법과 원칙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는 신뢰를 국민들과 시장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 한겨레 박종오 남지현 최하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