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장병 골프 금지된 기간에 군 골프 시설을 이용했다는 의혹 여럿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16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야구장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어린이 야구교실에서 유소년 야구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타격해 보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의 부적절한 골프 의혹이 불거진 뒤 ‘경찰이 영장도 없이 골프장 관계자의 신상정보를 가져갔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경찰이 해명을 거부하면서 ‘영장 없는 사찰’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11일 경찰 광역수사대가 영장도 없이 (태릉) 골프장 관계자들의 신상정보를 가져갔다고 한다”며 내부자 제보 내용을 전했다. 윤 대통령이 군 골프 금지 기간 등 부적절한 시기에 골프를 쳤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영장 없이 찾아온 경찰이 ‘대통령실 요청으로 가져가야 한다’며 태릉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캐디와 직원들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수집해 갔다는 내용이다.

‘영장 없는 사찰’ 의혹에 대해 경찰은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날 김 의원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묻는 한겨레 질의에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경찰이 영장 없이 군 골프 시설에 방문한 것이 맞는지, 어떤 근거로 골프장 관계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는지, 대통령실 등의 수사 의뢰가 있었는지 등 질문에 경찰은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 군 장병의 골프가 금지된 기간에 군 골프 시설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골프 논란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커지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골프 외교’를 위해 8년 만에 골프 연습에 나섰다”며 한-미 정상외교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한겨레  이지혜 기자 >

 

‘윤 골프 의혹’에 김병주 “제보자 색출에 혈안…민간인 사찰”

“영장 없이 관계자 신상정보 가져가”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7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적절한 골프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정권은 이 와중에 반성은커녕 제보자 색출에 혈안”이라며 “경찰 광역수사대가 영장도 없이 골프장 관계자들의 신상정보를 가져갔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 13일부터 윤 대통령이 군 골프 금지 기간 등 부적절한 시기에 골프를 쳤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간인 사찰 아니냐”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통신조회라도 해서 국회 보좌진이나 언론인들과 통화했는지 찾아내겠다는 것이냐. 수사권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이냐”며 “반복된 거짓말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도자는 그 자리 또한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이 제보를 받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8월부터 최소 7차례 골프를 즐긴 것으로 보인다”며 “골프 그 자체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8월24일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으로, 10월12일은 ‘한국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했다’며 북한이 내놓은 강경 대응 성명으로 군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현역 군인들에겐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는데 국군 통수권자는 골프를 쳤다”며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8월24일은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부천 호텔 화재 사고 이틀 뒤고, 10월12일은 군에 대비태세 유지 명령이 내려진 때이기도 하다.

김 최고위원은 또 “(윤 대통령이) 9월28일엔 예약도 없이 당일에 (골프장을) 방문했다”며 “골프장 규칙도 어기고 카트를 타고 페어웨이를 누볐다는 구체적인 제보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11월2일과 9일 골프와 관련해서는 “국민과 국회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자세를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0월31일엔 공천개입 정황이 담긴 윤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됐고, 11월4일엔 윤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11월7일은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열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등을 사과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이틀 후인 9일, 윤 대통령은 또 골프를 즐겼다”며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국민의 분노와 정의를 향한 간절한 외침엔 귀를 막고 골프장에 울려 퍼지는 ‘나이스샷’ 소리에만 귀를 열었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기민도 기자 >

 

추미애 “윤, 군 골프장서 개인 전용 카트 직접 공수해 사용” 제보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휴가 마지막 날인 9일 충남 계룡대 전투통제실을 방문해 근무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부적절한 시기 군 골프장에서 여러 차례 골프 라운딩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군 골프장에서 본인 전용 카트를 공수해 사용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이 군 골프장을 이용할 때 골프장 카트를 이용하지 않고 대통령 전용 골프 카트를 대통령 경호처에서 직접 공수해 이용한다는 제보가 있다”며 “특히 (전용 카트 사용 당시) 구룡대 골프장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 혈세로 (본인이 사용하는 건물의) 변기를 뜯어내고 전용 변기를 설치해 ‘변기 공주’라고 조롱을 받았는데, (전용 카트 사용은) 박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고 덧붙였다.

추 의원의 질문에 경호처장 출신인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저는 확인해드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구룡대 골프장을 이용했냐는 질문에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룡대 골프장에 전용 별장을 만들고 거기 머무셨다”며 “현 대통령은 휴가 때 한번 이용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구룡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의혹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으나, 휴가차 구룡대 골프장 내 별장을 방문한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계룡대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바 있다.    < 한겨레 엄지원 기자 >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등 대정부 요구안 관철을 위한 투쟁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소속 의대생들이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센터에서 확대전체학생대표자 총회를 하고 있다. 연합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휴학 중인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등 대정부 요구안 관철을 위한 투쟁을 내년에도 이어가기로 했다.

조주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의장은 15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에서 확대전체학생대표자 총회 후 언론 브리핑을 열어 “정부의 비과학적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독단적 추진을 의료 개악으로 규정한다”며 “이를 저지하고자 의대협의 8대 대정부 요구안 관철을 위한 투쟁을 2025학년도에 진행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총회에서 해당 안건은 찬성 267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포함한 기존의 대정부 요구안을 관철할 때까지 집단 행동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또 향후 투쟁 종결 여부도 총 회원 의사가 반영되는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조 의장은 “2020년 의정갈등 당시 대한의사협회가 전공의와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의정 합의를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발표했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기존의 휴학과 같은 투쟁 방식을 유지할지는 오는 16일 의대협 대의원들이 모이는 전체학생대표자총회 정기총회에서 결정한다. 조 의장은 내년도 입학하는 신입생의 투쟁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선택은 자율에 맡긴다”며 “다만 의학 교육 현장 붕괴로 교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이를 고려해 선택하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서는 “대통령실이 수차례 의대협 요구안은 논의 불가능하다고 하는 등 이미 결론을 정해놨기 때문에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다”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올바른 거버넌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대학들이 의대생들의 휴학을 자율적으로 승인하도록 하며 내년 3월 복학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날 의대협의 결정으로 의대생들의 내년 3월 복학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게 됐다.           <  한겨레 이우연 기자  >

총 129개 부대 배치 중  88%에 이르는 113개 부대가 완진복

 

 
 
지난 9일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퇴진운동본부)가 진행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총궐기)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 합류하려고 하자 경찰이 막는 모습.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총궐기’(총궐기)에 배치된 경찰의 88%가 ‘완전진압복’을 착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집회 대응에 나선 경찰 부대의 완전진압복 착용 비율은 7% 수준이어서, 경찰이 총궐기 진압을 위해 과잉대응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양부남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총궐기에 경찰은 총 129개 부대를 배치했는데, 이 가운데 88%에 이르는 113개 부대가 신체보호복을 착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보호복은 경찰이 시위를 진압할 때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장착하는 헬멧과 상·하의 방검복 등을 일컫는데, ‘완전진압복’(완진)이라고도 불린다. 이날 총궐기에 배치된 완전진압 경찰은 올해 들어 최대 규모였다.

집회 대응에 나서는 경찰이 완전진압복을 착용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다. 올해 집회 대응을 위해 동원된 경력인 1만3603개 부대 가운데 완전진압복을 착용했던 부대는 914개로 6.7%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난 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장외 투쟁 집회에서도 총 46개 부대가 배치됐지만, 완전진압복을 착용한 부대는 없었다. 민주노총과 같은 날 한국노총이 서울 여의대로에서 연 대규모 집회에도 완전진압복을 입은 경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9일 총궐기에서는 경찰과 집회 참가자 사이의 충돌이 빚어지며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불법집회로 변질돼 공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양부남 의원은 “민주노총 등의 퇴진 집회에는 113개 부대가 사전에 무장하고 준비하고 있었다”며 “올해 가장 많은 부대가 완전 무장한 채 투입된 이날 집회는 과잉진압을 하기 위해 사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장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법 판례 역행한 채…경찰, 윤 퇴진 집회 ‘과잉진압’

신고 범위 넘으면 무조건 ‘불법’이라는 경찰 논리
대법, 20년 전 “직접적 위험 있어야만 제한 조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진보대학생넷 등이 속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퇴진운동본부)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1차 총궐기)를 열어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총궐기’(총궐기)에서 경찰이 과잉 진압에 나섰다는 지적이 거세지만 경찰은 ‘불법집회에 따른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경찰이 진압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논리도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이어서, 경찰이 탈법적으로 시위 진압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은 12일 총궐기 당시 경찰과 충돌해 공무집행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청구된 민주노총 조합원 4명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신고 범위 벗어났으니 무조건 ‘불법 집회’?

경찰은 총궐기 주최 쪽이 애초 허가받은 집회장소를 넘어 세종대로 전차로를 ‘점거’하면서 “불법집회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대원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은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애초 세종대로 7개 차로를 쓰겠다고 신고했으나 경찰은 5개만 쓰도록 제한 통고를 했다”며 “당일에 인원이 넘쳐 위험하다고 경찰에 협조도 요청하고 (차로를 더 쓰겠다고) 추가 신고도 했지만, 경찰이 행진 자체를 막아 병목현상이 생기는 바람에 신고범위 일탈이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최초 집회 신고범위를 일방적으로 제한한 경찰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건 경찰의 의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는 “대규모 집회에서는 주최자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신고범위 일탈은 있을 수밖에 없고, 질서 유지를 제대로 못한 건 경찰”이라며 “애초 7개 차로가 필요하다고 했던 주최자에게 일탈의 고의가 보이지도 않고, 여러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경찰관과의 충돌 등) 일부 참가자의 행위로 전체를 불법이라 볼 수도 없다”고 했다.

판례로 봐도, 사전 신고 범위를 벗어난 순간 ‘불법집회’가 된다는 경찰의 단순 논리는 대법원에서 깨진 지 20년이 넘었다. 법원은 집회가 신고범위를 일탈했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해산명령을 내릴 수 없고, 집회로 인해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만 해산명령이 가능하다고 본다. 앞서 경찰은 1996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가 죄수복과 포승 차림으로 행진을 하자 ‘신고내용에 없는 행위’라며 저지했다. 민가협이 이에 반발하며 경찰을 상대로 낸 국가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은 2021년 “신고사항 미비나 신고범위 일탈만으로 곧바로 집회 자체를 해산·저지해선 안 된다”며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된 경우에만 제한조치를 최소한도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법리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절차만 지키면 해산명령 가능?

경찰은 법이 정한 해산명령 절차를 모두 지켰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11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은 (총궐기 진압 과정에서) 집회시위법의 절차를 다 준수했다. 주최측에 시정조치 요구, 종결선언 요청, 해산명령 3회를 했으나 참가자들이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계적 요건을 갖췄으니 적법한 진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원은 절차와 방식은 물론이고 ‘정당한 해산이유’까지도 엄격히 따져 해산명령의 정당성을 해석하고 있다. 해산명령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공권력 행사”라는 이유다.

나아가 법원은 ‘정당한 해산명령’이 아니면 응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2010년 평화적인 옥외집회를 연 노동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경찰이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해산명령을 내린 사건에서 대법원은 경찰 해산명령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미신고라는 사유만으로 집회·시위를 해산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사실상 집회의 사전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용하는 것”이라며 반올림 쪽의 해산명령 불응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교통소통의 공익

지난 11일 조 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께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을 민주국가가 부담해야 할 ‘당연한 비용’이라고 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시각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2009년 대법원은 건설노조의 삼보일배 행진을 정당행위로 판단하면서 “집회는 다수인이 공동 목적으로 모여 공공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등을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며 “어느 정도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득이해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통소통의 공익이 집회의 자유보다 언제나 더 크다고 단정할 순 없다는 행정법원 판례도 있다. 경찰은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대규모 도심 집회를 ‘교통소통’ 이유로 금지했는데, 이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에서 서울행정법원은 “다소간 불편이 발생할 수 있으나 수인 범위 내의 불편”이라며 “주최측 및 언론의 충분한 집회예고 등으로 도로 이용 인원 많을 것 같지도 않으며 우회로가 전혀 없지도 않다”고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례들을 종합해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는 ‘집회·시위 자유 보장’ 권고안을 내놓았고 이철성 당시 경찰청장이 나서서 이를 모두 수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경찰은 판례를 무시하면서까지 과잉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조 청장은 지난 11일 ‘경찰의 진압이 집회의 자유 판례를 거스르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영미법 판례와 달리 우리나라 판례는 개별 사안에 대한 판결”일 뿐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륙법이나 영미법이나 판례는 똑같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판례 데이터베이스가 점차 쌓이고 판례의 중요성도 더 부각되고 있어서 사실상 ‘판례법 국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라며 “조 청장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 한겨레 이지혜 기자 >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이제 가해자로

"굶기기를 하나의 전쟁 수단으로 사용"
'AI 조준' 활용…민간인 보호 의무 방기

언론 검열, 언론인 표적 살해 "의도적"
응급시스템 붕괴…당나귀 수레로 이송
사망 4만3736명, 부상자 10만3370명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대대적 파괴 행위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특징에 부합한다." 유엔총회 산하 '이스라엘 조사 특별위원회'는 14일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작년 10·7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은 올해 초반까지 핵폭탄 2개에 맞먹는 2만5000톤의 폭탄을 가자에 투하해 식수·위생 시스템 붕괴, 농업 황폐화, 유독성 오염 등을 초래했으며 이는 향후 몇 세대에 걸쳐 가자 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피해 있는 가자시티의 한 학교를 폭격한 이후 주민들이 피해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 2024. 11. 14 [로이터=연합]
 

"이스라엘군 파괴, 제노사이드 특징 부합"

유엔 이스라엘 조사특위, 연례보고서 공개

특위는 또한 "이스라엘군은 고중량 폭탄과 결합해 인간의 감독을 최소화한 'AI(인공지능) 조준'을 활용함으로써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분하고 민간인 사망을 예방할 적절한 조처를 취할 의무를 무시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라고 비판했다.

특위의 정식 명칭은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인민과 다른 아랍인의 인권에 영향을 주는 이스라엘의 행태에 관한 조사 특별위원회'다. 작년 10월에서 올해 7월까지 기간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례보고서는 18일 제79차 유엔총회에 공식으로 제출될 예정이다.

인류 최악의 범죄인 '제노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는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이 자행한 유대인 홀로코스트이다. 1948년 채택된 유엔 제노사이드 범죄 방치·처벌 협약(CPPCG)에는 "통상 국민적, 종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 저지른 행위"라고 규정돼 있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이 이제는 또 다른, 아니 더 처참한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로 탈바꿈한 셈이다. 앞서 작년 12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자 대학살과 초토화 작전을 벌인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제소했다.

 

가자에서 지상작전을 벌이는 이스라엘 병사들. 2024. 11. 14 이스라엘군 제공. [AFP=연합]
 

'AI 조준' 활용해 민간인 보호 의무 방기

"굶기기를 하나의 전쟁 수단으로 사용"

특위는 "이스라엘은 유엔의 반복된 호소와 국제사법재판소의 구속력 있는 명령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들이 있었지만, 민간인과 구호 요원에 대한 조준 공격, 민간인 살해와 더불어 가자 봉쇄, 인도주의 구호 방해를 통해 의도적으로 죽이고 굶기고 중상을 입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굶기기를 하나의 전쟁 수단으로 사용했고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집단적 처벌을 가했다"라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 지구 내에서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여성과 어린이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인간화하고, 사악하고, 치욕을 주는 행동"을 한 것이 드러났다. 특위는 그 사례로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조롱하고 망신 주는 사진들을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한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이스라엘 조사 특위는 1968년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설치됐고, 말레이시아, 세네갈, 스리랑카 3개국 대표로 구성됐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 전쟁을 틈타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골란고원(시리아) 서안·동예루살렘(요르단) 가자(이집트) 등에서의 인권 상황 점검이 그 목적이다.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가자 중부의 데이르 알-발라에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나눠준 구호 상자를 옮기고 있다. 2024. 11 .04 [로이터=연합]
 

이스라엘의 팔 난민구호기구 불법화 비판

언론 검열, 언론인 표적 살해 "의도적"

이에 따라 특위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영구적 휴전, 모든 자의적 구금자와 인질 석방에 긴급히 합의하고 억류자에 대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제한 없는 접근 제공, 가자 주민의 생명을 살릴 대규모 인도주의 구호 제공을 위한 모든 국경 관문의 개방 등을 촉구했다.

특위는 또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중상모략 캠페인'을 비난하고 가자 분쟁 관련 보도에 대한 의도적 침묵 강요에 우려를 표명했다. 특위는 이스라엘에 의한 "미디어 검열 확대"와 "반대자 탄압과 언론인 타게팅은 관련 정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을 봉쇄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특위는 또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폭력을 선동하는 포스트들과 비교할 때 '친팔레스타인 콘텐츠'는 불균형적으로 삭제해왔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를 축하하는 배너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걸린 가운데, 7일 한 이스라엘 청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배너에는 "축하합니다! 트럼프,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세요!"라고 씌어 있다. 2024. 11. 07 [AFP=연합]
 

가자 79%가 즉각적 소개 명령 받아

응급시스템 붕괴…당나귀 수레로 이송

한편 유엔 구호협력기구인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지난 12, 13일 이틀만 해도 이스라엘군이 연일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는 북부 가자에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진 어린이들을 위한 심리 치료와 식량과 식수 등 주민의 생명을 살릴 구호를 제공하려던 6번의 시도가 차단됐다. 또한 가자의 약 79%가 현재 소개 명령을 받은 상태로서 팔 주민들은 기본적 인프라와 필수 서비스가 부재한 남부 가자의 알 마와시 안팎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루이즈 워터리지 UNRWA의 긴급 구호책임자는 "주민들이 거주 건물 내에 갇혀 있고, 계속되는 군사 작전을 피해 숨어 있다. 식량이 고갈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가자 북부에서 길거리에 시체들이 있고 응급 치료 제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여서 가까스로 가동되는 병원들로 가기 위해 당나귀 수레를 이용하고 있다고 소속 요원들과 주민의 목격담을 전했다.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9일 억류된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등장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얼굴을 본 뜬 모형들. 문구에는 "유죄"라고 적혀 있다. 2024. 11. 09 [AFP=연합]
 

가자 사망 4만3736명, 부상 10만3370명

안보리, 파국 처한 가자 위기 완화 모색

가자 보건부의 최신 집계에 따르면, 작년 10·7 사태 이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에서의 사망자는 최소 4만3736명이고, 부상자는 10만3370명이었다. 지난 24시간만 해도 24명이 죽고 112명이 다쳤다. 반면,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선 약 1250명이 숨지고, 250명이 납치돼 억류됐다.

이스라엘 옹호 일변도의 자세를 보였던 미국의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런 내용의 특위 보고서에 대해 "그러한 표현과 비난에 분명히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 알제리를 포함한 안보리 10개 비상임 이사국은 14일 파국적 상황에 처한 가자의 인도주의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촉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마련해 미국, 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에게 전달했다. AP 통신이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생존에 필수적인 인도주의 구호와 서비스에 대한 가자 주민의 즉각적 접근을 요구하는 한편, 이스라엘이 최근 법률 제정을 통해 불법화한 UNRWA가 가자 내 인도주의 대응의 중추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