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족, 한국인들 모두… 치유를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


혼자라고 느낄 때 더 큰 고통‥ 세심한 보호·치유필요
잘잘못 문책하되, 강하고 더 나은 사회 향한 희망 줘야

세월호 참사는 부실한 재난 대응 시스템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었다. 다시는 재발이 없도록 잘못된 제도와 체계, 인식 등의 개선과 동시에 이미 발생한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핵심은 재난 피해자에 대한 사후 관리와 지원이다. 이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이 무엇이고, 치유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상담 전문가들에게 들었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대형 재난을 겪은 모든 이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 4가지 요소에 따라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정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네 가지는 기존의 심리취약성, 사건의 강도, 대응능력, 지지체계 등이다. 서 원장은 “생존자들의 유형이 다양하다. 충격을 적게 받은 사람도 있고, 크게 받은 경우도 있다. 또한 기존에 불안하거나 우울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는지 여부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한 상황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대해 다루고 언급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서 원장의 의견이다. 그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트라우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였는데, 어느덧 전국민이 아는 단어가 됐다. 지금 언론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자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는 식으로 다룬다. 그렇게 할 경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극복한 사람이 오히려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회복력을 믿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그 상태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는 또 “피해자를 상처의 잣대로만 보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피해자들이 늘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굉장히 복잡다단한 존재이기 때문에 때때로 웃거나 즐거울 수 있다. 그럴 때 오해해서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고 한다면 심각한 2차 가해를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 대부분 사회적 관심서 멀어져
피해자들이 자연스럽게 애도를 하고, 각성 상태가 가라앉을 때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서 원장은 “꼭 치유로 접근하지 않아도 곁에서 안정적으로 마음을 지지해줄 사람이 있으면 자연치유력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문요한 더나은삶정신과의원 원장은 “고통 그 자체도 힘들지만, 고통 속에서 혼자 남겨질 경우 치유력이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 ‘왜 그리 약하냐’ 등의 말은 오히려 감정을 억압해 증상을 악화시킨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재경험, 회피, 과각성 등 크게 세 가지 증상을 보인다.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충격을 준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거나 악몽을 꾸는 것이 ‘재경험’이고, 사고와 관련된 것을 피하거나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회피’, 신경이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을 ‘과각성’이라고 한다. 이런 세 가지 증상은 슬픔, 분노, 죄책감, 두려움, 우울 등의 감정과 결합된다. 정운선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경북대 소아정신과 교수)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결국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라고 표현했다.
 
♣ ‘내가 이상한건가’ 생각 불필요
서 원장은 “학생들의 회복을 위해선 교사들이 먼저 안정을 찾고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 직후부터 단원고에 머물며 지원활동을 해온 서 원장은 “사건 직후 교사들이 자신감을 잃어 어느 것 하나도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교사들도 상당수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교사라는 지위로 인해 위로나 지지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혼자 살기에 힘이 벅차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강아무개(52) 교감에 대해 서 원장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기보단,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분은 보호조치하고 현장과 격리해야 한다. 재난 대응 매뉴얼이 부재해 소중한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닌가 싶다. 생존자 중에서도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 연구원은 “학생이나 친구들을 구한 사람들을 언론이 집중 조명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이들에 의해 구조받은 사람들이 크게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가 아니라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는 식으로 세심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언론 부주의, 트라우마 악화
전문가들은 언론이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 유가족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 직후 경황없는 상태에서 응한 인터뷰가 반복적으로 보도된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불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언론의 부주의한 취재와 보도가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 ‘보스턴 스트롱’을 기억하세요
대형 재난으로 인한 우울감과 불안이 지역사회로 퍼지고, 전사회적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전홍진 성균관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의 예를 들어 사회적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스턴 스트롱은 지난해 4월15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3명이 사망하고 183명이 부상당한 폭탄테러가 발생한 뒤 보스턴시가 내세운 구호다. 전 교수는 “지난 1년간 보스턴에선 어딜 가도 보스턴 스트롱이란 구호가 넘쳐났다. 이들은 테러라는 재난을 겪고 나서 위기대응 체계를 강화했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치유에 힘썼다. 보스턴은 상처를 치유하고 일어설 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소속된 체첸계 소수민족에 대한 공격이나 적개심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1년 뒤인 올해 4월21일 제118회 보스턴 마라톤은 지난해보다 더 큰 규모로 치러졌다. 출전 선수는 3만5755명으로 1만명이 더 늘었고, 관람객도 100만여명으로 예년의 두배 규모였다. 전 교수는 “이번 재난에서 잘잘못과 책임도 분명히 따져야 하지만, 우리 사회가 상처를 견디고 일어설 만큼 강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갈 수 있단 희망을 줘야 한다. 그게 결국 상처 입은 사람들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 뉴욕엔 아직도 ‘9.11 치유 광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 대한 치유와 관심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정 연구원은 “미국 뉴욕의 지하철에는 아직도 ‘9.11 테러로 심리적인(psychological)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도움을 얻는 방법’을 알리는 광고가 곳곳에 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지금도 혼자 고통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정부는 일회성 관심과 치료가 아닌 장기적인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재난과 재해뿐 아니라 전쟁과 학살, 범죄피해 등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한국 사회는 이미 트라우마를 양산한 환경인 셈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감정조절에 문제가 생기고,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전가해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외부로 표출해 분노를 발산한다.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근원이 사회에서 비롯됐음을 알려주고, 회복과 치유에 힘쓰는 일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 윤형중 기자 >


[평신도 글마당] 입(口)

● 교회소식 2014. 5. 10. 14:03 Posted by SisaHan
사람의 모든 기관중에 어느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것이 없다. 그런데, 그 모든 기관들이 ‘입’ 이라는 기관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선 먹여 주어야 온 몸이 살 수 있다. 사람의 손과 발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사실은 입이 일을 해 주어야 뜻이 통하여 일을 할수 있다. 생각을 잘 정리 하여 입을 통하여 그 생각이 전달된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표현하는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입들이니, 바로 가족이 아니겠는가. 
선박, 즉 큰 배를 일컬을때의 ‘선(船)’ 이라는 한자를 보면 기가막힌 글자 모양이다. 배 주(舟)변에 여덟팔(八)자와 입구(口)가 합하여 이루어 졌다. 배 한척에 여덟개의 입(가족)이 함께 하였으니, 이는 노아의 방주(方舟)를 말함이다. 나는 ‘방주가 네모일것이다’ 라고 글을 쓴적이 있다. 왜냐 하면 방주가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앞, 뒤가 필요 없을터이고, 빨리 갈 필요가 없었으니 유선형이 필요 없었을것이고, 면적 활용과 짓는데 더 유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주의 ‘방’자도 ‘모 방’ 으로 네모를 상징 한다. ‘방주교회’ 라는 글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음기회에 또 한번 올려 드릴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한자를 만들면서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 냈는지는 나에게 풀리지 않는 중요한 수수깨끼다.

아무튼 이 입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가운데를 일컷는 가운데 중(中)자도 가운데 있는 입을 반으로 나누어 그 중심이 되는부분이라는 뜻이 있다. 또 있다. 충성 충(忠)자도 마음을 입의 가운데에 두었음을 뜻한다. 함부로 주님께 충성 한다고 입에 올리기가 부끄럽게 만드는 글자 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것은 모두 깨끗하지만 온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은 더럽다고 하셨다. 특별히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말씀 하신 것이지만, 실재로, 배설하는 것이나, 땀, 콧물 등 냄새까지도 몸에서 나오는 것들은 깨끗하지 못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입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싶다.
 ‘역사’ 라는것은 세상 만물이 살아가고있는 현실을 통 털어서 말한다. 영어로는 History 즉 He’s story 의 준말로, 그분의 이야기 이다. 주님의 이야기가 바로 역사다. 그런데 한자의 표현이 아주 흥미롭다. 역(歷)은 지나온 것을 뜻한다. 사(史)는 ‘역사 사’ 자이지만 그 모형이 입구(口)에 사람인(人)을 그려 놓았다. 사람이 입으로 말해온 것이 역사이고, 사람이 입으로 먹었던 일들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정치와 권력은 사람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집단 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보호하기위한 방법에서 태어 났지만, 그것들이 도덕과 양심 보다는 인간의 입이 호사를 하기위한 욕망으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백성의 입을 기쁘게 해 주었던 권력은 망하지 않았으나, 입에 먹을 것이 없이 백성의 입이 굶주렸던 모든 권력은 역사속에 사라졌다. 사람의 입은 그래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입을 벌려서 혀를 움직이면 말이 된다. 그래서 한자에서는 ‘말한다’라는 뜻의 글자가 왈(曰) 이다. 공자왈, 맹자왈, 할 때의 그 ‘왈’이, 공자가 말 하기를, 맹자가 말하기를, 이런 뜻이다. 입을 벌렸을 때 혀가 보임을 글자화 한 멋있는 표현의 그림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생각을 말함이다. 글자가 만들어 졌기에 입으로 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하는데, 사실은 자기의 입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 생각은 이미 정리가 되었다고 안심하였는데 입에서는 이미 다른 말이 나와 버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나와버린 말은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입은 말을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부터 그 중요성을 알았기에 많은 속담이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값는다. 말이 사람을 죽인다. 혀를 잘 다스리는자가 세상을 다스린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제일 다루기 힘든것이 사람의 혀 이다. 성경에도 혀의 중요함을 많이 강조 하였다. 입구(口)자가 닫혀져 있지 않고 네모나게 벌리고 있음도 시사하는바가 크다. 입이 벌려져야 사람이 살 수 있기때문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입에서 나오는 것이 좋은 것들만 많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랑과 감사와 기쁨과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소원해 본다. 『호흡이 있는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 / 시편 150편 6절』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유상범 감리사(오른쪽)와 취임 문답하는 김주엽 목사.

강림교회, 김주엽 담임목사 취임예배 드려

토론토 강림교회(53 Madawaska Ave., North York, M2N 2R2)는 5월4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 김주엽 담임목사 취임 예식을 거행했다. 
김주엽 목사 인도로 드린 예배는 온 성도가 새 담임목사로 취임한 김 목사를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일꾼이 되도록 은총을 베풀어달라’는 중보기도와 서정순 장로의 회중기도에 이어 진행됐다.
 
유상범 감리사(엠마오감리교회 담임목사)가 집례한 취임예식은 박정민 권사의 담임목사 학경력 소개에 이어 유 감리사가 김주엽 목사에 대해 취임 문답하고 교우들을 대상으로 문답하여 서로 섬기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다짐으로 마쳤다. 
취임식에 이어 박선주 집사와 설욱 청년 및 성도들이 차례로 성경 이사야서 43장 1~7절과 누가복음 15장 11~24절, 요한복음 15장 1~14절을 봉독하고, 성가대가 특별찬양을 한 뒤 나구용 목사가 성구를 바탕으로 ‘인생의 목적’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강림교회를 향한 목적이 있으셔서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신앙으로 무장한 김주엽 목사를 담임으로 세우셨다”고 축하한 나 목사는 시편 97편을 인용,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실 목적으로 창조하셨다”면서 하나님 뜻에 맞게 밝고 기쁘게 살아 복을 받으라고 전했다. 이어 “복받는 자는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죄를 깨달아 회개하며, 이웃을 위해 살게 된다”고 강조, “모든 성도가 이같은 사랑의 열매로 30배 60배 결실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한편 강림교회에서는 캐나다지방 춘계 저녁집회가 5월14일(수) 오후 7시30분 정진호 목사(서울 세현성결교회)를 강사로 열리며, 이에 앞서 오전 11시 역시 정 목사가 인도하는 세미나가 ‘나는 제자훈련에 미친 목사이다’는 주제로 진행된다. 
강림교회는 또 브라질 아마존에서 사역중인 김철기 선교사 초청집회를 5월18일 주일 오전 11시와 오후 7시30분에 개최할 예정이다.
 
< 문의: 416-221-7550 >


이기적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내 몫으로 알고 나를 돌아보며 속죄하자

한 인간이 남에게 상처를 입게 되면 가면을 하나 덮어 쓰게 된다. 이는 상처 입은 나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한 보습을 감춘다. 상처가 깊을 수록 가면은 많아진다. 인간의 사회생활이란 바로 가면무도회이다. 거기서 만나는 이웃은 선한 이웃이 될 수 없다. 무엇인가에 의해 내면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있다. 이처럼 많은 인간이 가면을 쓰고 자유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가면이 벗겨지는 때가 있다. 세월호 선장처럼 위기를 만나면 ‘원래의 나’로 돌아간다. 알고보면 선장 역시 상처입은 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려 함이 아니라, 상처는 중독성이 강해 스스로 벗지 못함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만나면 우리가 쓴 가면을 스스로 벗게 된다. 그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바로 어머니의 품이다. 그곳엔 예수님의 마음인 ‘긍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사람은 자기를 받아주는 따뜻한 사람을 찾는다. 주님은 친구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주님께 데려왔을 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다. 그토록 고민하며 해결할 수 없던 문제가 주님 안에서 풀리자 그는 침상을 들고 걸어 갔다. 인간이 쓴 위선과 죄악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이는 직업적인 종교인인 제사장이나 레위인 속에는 없었다. 참된 이웃인 선한 사마리아인 속에 있었다. 결국 긍휼이 없는 자는 자신도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되지만, 긍휼히 여기는 자는 심판을 이기고 공동체를 구하게 된다.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아이들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죽었다. 세상은 배에 남아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고 달아난 선장을 정죄하고, 늦장 대처한 해경을 비난하며, 관련된 관원에게 책임을 묻는다.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내가 세월호 선장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내가 중1학년 때로 기억한다. 여름방학에 동생들과 함께 시골 할머니댁을 찾았다. 더위에 사촌들과 함께 호수에 물놀이를 나갔다. 여동생이 물장구를 치다가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팔을 다친 상태였고 수영을 배운 적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냥 물에 뛰어 들었다. 내가 동생보다 키가 크므로 동생을 쉽게 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동생이 나를 잡고 늘어지자 우리 둘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이러다간 모두 죽겠구나! 둘 중에 하나만 살 수 있다면, 하나님께 동생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내가 힘을 빼게 되었다. 이런 판단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의지는 내가 먼저 살려고 했다. 당시 나는 ‘살신성인’을 생각할 만큼 성인이 못 되었고, 너그러운 인격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성령님께서 긍휼의 마음을 내게 주신 것을 확신한다. 그러자 동생은 나를 밟고 물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1시간이나 지난 후에 내가. 깨어나 보니 둘 다 물밖에 구조되어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청년이 여동생을 먼저 건졌고, 20분이 지난 후에 하수구로 나가는 통로에 박혀 있는나를 건져 인공호홉을 시켰더니 서서히 깨어났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살다가 위기를 맞은 세월호 승객과 같다. 그때마다 참 좋은 선장을 만나 건짐을 받았기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주님은 선한 선장이시다. 성령님이 내게 그런 마음을 주지 않았더라면 내와 내 가족은 함께 무너졌을 것이다.
 
서로를 불신하고 정죄하는사회는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치유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사랑은 나처럼 되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먼저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검사요 판사이다. 죄인은 없어 보인다. 먼저 나를 돌아보며 속죄하자. 선한 사마리아인 처럼 그것을 자신의 몫으로 알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는 자리로 나아가자. 당신은 언제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가? 누군가가 자신도 다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짐을 내게 떠넘기며 의롭게 살라고 강요당할 때이다. 그들 자신은 십자가로 말미암는 고난을 면하고, 오히려 남의 희생으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상처를 받게 된 것은 외적인 요인도 강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나의 내면에 특정한 자극을 상처로 받아들이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처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나만의 기계장치 시스템을 가졌다.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 주님은 그의 병이 오래된 사람인 줄 아셨다. 그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다. 이는 당연한 질문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오랜 된 병자 중에 상처를 즐기며 병 낫기를 바라지 않는 환자도 있다. 특히 장기 환자인 경우는 상처가 치유되기 보다 상처를 되씹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찾아와도 그것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인간이 치료하기 위해 주신 십자가를 잡기보다 그냥 과거의 삶에 주저앉아 있다. 잘못된 신앙인은 죄책감만 씻고 자신은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다. 죄의 쓴 뿌리는 너무나 깊어 내가 죽을 때만 죄도 죽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이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었다. 나는 세월호 선장이 되어 승객이 물에 빠져 죽는 데 일몫을 했다. 나는 죽지 않고 교회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우리 민족이 치유공동체가 되려면 판단을 중지하고 상처를 품어야한다.우리 모두는 서로 한 몸으로 연결 된 지체이다.

< 박태겸 목사 -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