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미국 엄마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본사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자녀들과 함께 참가한 한인엄마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1074명 세월호참사 성명, 한국정부 피해자 치유등 대책촉구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활동하는 교수 1,074명이 공동 성명에서 한국 정부가 피해자 치유와 배상을 비롯해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교수들을 1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통해 사회 총체적인 비리와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주로 한인들로 구성된 참여 교수들은 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경제적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성명을 주도한 미국 메릴랜드주 솔즈베리대 정치외교학과의 남태현 교수는 이날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 외에 토론토대 한주희 교수와 남윤주(버팔로대), 김기선미(라마포칼리지), 유종성(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권경아(조지아 주립대) 등 6명의 교수는 지난 7일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울리는 경종 :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는 제목의 성명서(성명서 전문 : http://sewolscholars.weebly.com/5462044544-494574774949436.html )를 써 외국에 연구직에 종사하거나 교편을 잡고 있는 한국·외국 학자들에 회람해 서명을 받았다. 캐나다에서도 한 교수 외에 토론토대 주혜연, Mclean, Heather 교수 등 다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가 단순히 비도덕적인 선장과 선원들의 일탈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규제완화와 민영화, 무능력과 부패에서 비롯한 미비한 구조 노력의 결과라며 책임자를 처벌할 특검과 특별법 도입을 요구했다.
 
성명은 “규제 완화로 인한 노후한 선박의 수입, 부패한 정부 관료가 눈감아 준 구조변경과 무리한 화물 적재, 민영화한 선박 안전 검사 시스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선장과 선원을 채우는 고용 체계가 세월호 침몰을 야기했다”며 “정부는 배 안에 있던 승객 수백 명 중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수장시켰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철저히 이행하는 대신, 특정 민간구난업체의 독점적 권리를 보호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데에 전력을 쏟았다”며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관료들을 참다못해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경찰력으로 막고 심지어 사찰까지 자행하는, 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윤리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까지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어 박근혜 정부에 △생존자, 희생자와 이들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와 정당한 배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임을 인식하고 세월호 비극에 대한 책임을 질 것 △세월호 비극의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독립적 특검 및 특별법 도입 △최근 진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공적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철폐하고 안전 등 공익에 관한 규제를 강화할 것 △방송장악과 언론통제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할 것 등 5가지 요구 사항을 엄중하게 촉구했다.
< 이제훈 기자 >


오전 10시 ‘사원들과의 대화’도 취소
노조 출근 저지 과정에서 차 유리창 파손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19일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했다. 퇴진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계속 입을 닫고 있던 길 사장은, 기자회견 취소에 대해서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KBS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내부 사정으로 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문자를 통해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던 ‘사원들과의 대화’도 취소됐음도 함께 알렸다. 사원과의 대화가 열리는 장소에 있었던 한 기자는 “류현순 부사장 등이 현장에 나와 ‘사원들 감정이 격앙돼 있어 효율적 대화가 어렵다고 보고 사장과의 대화를 취소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KBS 관계자는 “오전 출근 과정 충돌로 일정이 틀어져 오후 기자회견까지 취소한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길 사장은 이날 오전 9시께 KBS본관 앞에서 기다리던 새노조·1노조 조합원 100여명에 의해 출근을 저지당했다. 이 과정서 길 사장의 에쿠스 차량의 앞 유리창이 파손되는 등 물리척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길 사장은 즉각 차를 돌려 KBS를 빠져나갔으나, 곧 다른 경로를 통해 회사 안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노조 관계자는 “양 노조가 길환영 사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출근 저지로 보여줬다. 팀장급 이상만 참여하려고 했던 오전 10시 사원과의 대화에도 못오게 됐고, 상황이 꼬이면서 변명이나 해명을 하려던 기자회견도 못하게 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국, 김효실 기자>


[1500자 칼럼] 오월에는

● 칼럼 2014. 5. 10. 16:24 Posted by SisaHan
봄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손녀 서현이와 데이트를 계획한다. 아니 계획이라기보다 불현듯 스친 생각이다. 세 살짜리 아이의 버릇을 바로잡기 위해 회초리를 들었다는 아들 마음이 안쓰럽고, 시시때때 그 앞에서 자지러질 아이를 떠 올리니 마음이 아려서 한 역할 하고 싶었던 게다. 여든 넘도록 성품 좋은 사람이 되려면 이 시기에 꼭 필요한 교육이지만 나에겐 일련의 과정들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데이트 장소는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가게로 정했다. 호기심에 빠진 아이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출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꿈의 궁전을 원 없이 돌다보면 부녀의 신경전이 조금이라도 느슨해 지지 않을까. 이제 겨우 세 번째 봄을 맞는 새싹과 함께 데이트 할 생각하니 고목에 초록물이 드는 것 같다.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옆자리에 좌정했다. 뽀송하고 보드라운 손을 입술에 갖다 대니 녀석은 나 보다 더 어른스런 미소를 짓는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윌리엄 워즈 워드의 무지개가 그 얼굴에 걸린 듯하다.
 
‘할머니 집 말고 장난감 가게 가는 거지요?’ 아이는 다짐하듯 묻는다. 아뿔싸.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 집 외출이 최고였는데 요즘은 인기가 시들해졌다. 덩달아 할머니 시세도 예전만 못함을 실감한다. 풍요의 시대, 전자기기가 만연한 시대에서 커가는 아이에게 반대 여건을 고집했더니 이제 먹히지 않는 시기가 된 모양이다. 지금 아이가 기억하는 할머니 집은 아마도 고장 난 텔레비전에 몇 안 되는 장난감과 내용을 달달 외우는 동화책 몇 권만이 있는 곳 일 게다. 부엌의 싱크대며 수납장, 화장대, 등 아이가 탐냈던 곳은 아낌없이 개방했고 숨바꼭질이며 춤, 노래까지 몸 개그도 불사했건만……. 무정한 녀석이다.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려면 절충안을 고려해야 할 지 말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차가 쇼핑몰로 진입하자 아이는 ‘여기 아니고 저기!’ 하며 눈에 익은 곳을 손짓하며 조바심을 낸다. 
남편과 나는 카트를 밀기보다 아이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매장으로 들어섰다. 부모와 함께 오면 으레 그러는 듯, 두어 번 스윙을 해 달래더니 걸음을 멈춘다. ‘하버지는 요렇게 할머니 손잡아요.’ 아이는 남편과 나의 손을 엮어주고 옆으로 빠져나와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곤 자유로운 한 손으로 장난감을 짚어가며 영상속의 캐릭터와 조잘거린다. 아이답지 않은 기특한 생각을 한다했더니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던 거다.
 
눈높이 데이트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아직 뭔가를 가지고 싶은 욕망이 적은 연령대라 품에 안는 것 보다 보는 걸 더 좋아했다. 아이가 이끄는 대로 다니며 보아주고 태워주다 보니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사내아이만 둘 키운 나는, 무기고 같은 장난감 코너가 삭막하게 각인되어 있는데 비해 여아들의 코너는 아기자기 하면서도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어서 다채로웠다. 아이는 과자 한 봉지, 우리는 공주님 드레스와 장난감 노트북과 알파벳 블록 쌓기 한 통을 골라서 차에 올랐다. 
손수 고른 과자 봉지를 안고 흡족한 표정으로 사각거리는 아이의 얼굴은 바로 천사의 모습이다. 밝고 맑은 순수함의 대명사, 저 얼굴을 위해 어른인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가. 여객선 참사 이후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식들 위해 나선 길이지만 오히려 위안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비통함 속에 어이없이 보낸 사월의 아이들은 가슴에 묻고 오월에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실추된 우리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저 어린 새싹들을 위해.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마당] 우리는 책임이 없는가

● 칼럼 2014. 5. 10. 16:22 Posted by SisaHan
세월호가 산 생명 300여명을 가둔 채 바다로 잠긴 충격 이후 3주가 지났다. 밤낮으로 홍수를 이루는 참사 이후의 소식들은 마치 진흙탕에서 실타래가 풀려나오듯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마다 국내외에 너무 큰 수치와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그래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설마 이 정도밖에 안되었던가….”
소중한 인명을 속수무책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너무도 무능하고, 비인간적이고, 무책임한 모습들, 뿌리깊은 부패와 부정의 먹이사슬에 얽힌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부끄러운 자화상을 똑똑히 보게 된 참담함이다.
 
온통 불신과 적의로 가득 차 곳곳에서 분노의 함성이 터지면서 당연히 참사를 부른 장본인들과 사후 처리 책임자들이 몰매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선장과 선원들과 선사, 해경과 언딘이라는 구난업체, 정부 관료들과 대통령 등 줄줄이 질타와 한풀이의 제단에 올라있다. 참사와 구난의 직접 책임이 있으니 어차피 과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는 선장의 책임하에 운항하고, 해난구조는 해경에게 맡겨진 책무이며,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는 대통령이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선장을 잘 못 만나면 승객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원래 지도자가 어리석고 무책임하면 구성원들이 고생을 하고 자칫 목숨도 위태로워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임금과 지도자의 무능으로 백성이 고초를 겪은 사례는 우리 역사에도 수없이 기록돼 있다. 죄없는 민초들은 시달리고 죽어가며 원망조차 제대로 못했다. 근대에만 해도 나라를 빼앗기고 학살당한 동학 농민들의 원혼, 일제 식민치하의 핍박과 설움, 6.25 당시 이승만의 철면피한 행보로 죽어간 양민들, 박정희의 철권통치로 스러져간 민주인사들, 전두환의 5.18 만행 등…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 나면서 선량한 국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울분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왕조시대도 아닌 이 시점에 일어난 세월호 참극도 과연 그들 지도자의 책임이요 직접 당사자들만의 ‘죄악’으로 가름하고 말 일인가. 참사의 뒤안길 연원을 파헤칠 때마다, 너무도 뿌리깊고 폭넓은 총제적 부실의 복합체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모두들 이중 트라우마의 늪에서 가슴을 치게 된다. 사실은 알고도 덮어두었던 화농이 터진 것이요, 오래 전부터 잉태된 부실과 부정의 불량산품이라는 사실을 통절히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아 세월호는 바로 ‘한국호’ 그 자체였구나, 우리 모두가 껍질만 거대한 불량선박에 타고서 위험한 항해를 즐기지 않았던가 하는 자책의 업습이다. 안전대비가 허술해도 그러려니, 과적을 해도 괜찮겠지, 물 새는 것을 모른 체 하고, 악천후에 출항을 해도 제지하거나 하선하지도, 선장을 나무라지도 않고서는 마침내 죽음의 바다에 이르러 다함께 침몰하니 아우성대고 있는 것이구나…, 민주화 되고 풍요로워졌다는 자만에 빠져 귀중한 표를 바람따라 연줄따라 소홀히 행사해 왔다. 때묻은 인물 걸어온 길이 부도덕해도 찍어주고는 뽑은 뒤 감시에도 태만했다. 그들이 세금을 탕진하든 속이고 분탕질을 하든 모른 체, 권력에 취해 거짓 선전과 편가르기와 차별과 갈등을 부추겨도 에라 귀찮다, 나만 편하고 나 혼자 잘살며 내 자식 잘 되면 그만하지 오불관언, 아니 나라고 질소냐, 더불어 편승하며 살아왔다….
이민 땅에서 사는 우리들은 어떤가. 세월호를 보며 한탄만 하면 그만인, ‘한국호’에는 타고있지 않은 국외자들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엔 모국의 잘못을 깨우치며 민주화 운동을 적극 뒷받침한 열정과 애국혼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국의 폐습을 나무라고 호통치기는커녕 오히려 흉내내고 따라하며 무조건적인 부화뇌동에 급급하지 않는가. 모국의 불의한 모습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우리들 아닌가. 근래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 불법적 행태에 대한 비판을 적대시 하고 종북몰이에 영합하는 모습들에서 선진국에 사는 민주시민답지 않은 상식의 침몰과 변질된 애국의 민낯을 본다. 재외국민을 길들이려는 예산지원에 몸달아하며 몇푼 더, 연줄대기에 바쁘고 꼭두각시 노릇 하기에 익숙한 모습들은 세월호로 입증된 민-관 유착고리의 그 것과 다를 바 없다. 피땀 어린 국민의 세금이라고 생각한다면 모국에서 생활고로 자살하는 숱한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충정은 배부른 망상인가. 빛과 소금이라는 본질을 잊은 채 물량주의에 현혹되고 권력을 맴돌며 다툼과 질시를 서슴지 않는 종교계는 모국의 현실과 무엇이 다른가.
 
엄청난 참사에서 이제 지도자는 물론 온 국민이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하듯이, 해외의 디아스포라 한인들도 모국의 비정상과 불의를 방관하고 동조하고, 때론 감싼 책임을 통감하며 참회해야 한다. 조국과 아픔을 함께하며 재도약을 소망한다면, 친정을 거들듯이 조국이 잘못되고 혼탁할 때 매섭게 호통치고 나무라는 것이 ‘참 애국’의 발로임을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