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과 극우정치가 초래한 민주공화정의 위기

● COREA 2026. 7. 21. 11:5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빅테크·금융·인공지능 시대가 제기하는 도전
기술혁명보다 권력 이동 방식의 변화 주목해야
초국적 빅테크들이 새로운 올리가르키로 등장

 

민주적 정당성 없는 권력이 시민의 삶 좌우
새로운 권력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 과제

 

2026년 6월 29일, 청와대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한자리에 모여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국가 미래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첨단 반도체와 AI 산업을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으로 제시하며 장기적으로 수천조 원 규모에 이르는 투자와 국가적 실행계획을 함께 내놓았습니다(MBC, 2026.6.29.; 한겨레, 2026.6.30.). 이재명 대통령은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두 기업의 총수에게 "국민 영웅"이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산업정책 발표를 넘어, 오늘 우리가 맞이한 시대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경제적 영향력은 웬만한 국가의 재정 규모와 비교될 정도로 커졌고,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들은 경제를 넘어 외교와 안보, 정보와 여론 형성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세계적 기업의 총수가 국가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 현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처럼 거대해진 새로운 권력은 과연 민주적 통제와 시민적 책임이라는 원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이 질문은 대한민국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거대 기술기업들이 국가정책과 안보, 외교, 공론장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른바 '빅테크 올리가르키(Big Tech Oligarchy)'라는 표현이 정치학계와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권력은 더 이상 국가 안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금융과 플랫폼, 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군사기술이 서로 결합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권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의 발전 자체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미래 국가경쟁력입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을 시민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한 원리와 제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 오늘, 민주공화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할까요.

 

민주공화주의는 절대군주정에 맞서 국민주권이라는 원리를 확립했고, 20세기 전체주의의 참사를 거치며 인간존엄을 헌정질서의 핵심 원리로 받아들이며 확장해 왔습니다. 이제 인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금융과 플랫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권력은 기존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전제했던 권력의 형태를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또 어떤 새로운 원리를 발전시켜야 할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민주공화주의를 왜 다시 시험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언제나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권력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 앞에서도 민주공화주의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확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왜 민주공화주의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시험하는가

 

앞선 세 편의 칼럼에서 살펴보았듯, 민주공화주의는 국민주권에서 인간존엄으로 스스로를 확장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는 어느 한 시대에 완성된 정치철학이 아닙니다. 시대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권력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발전시켜 온 살아 있는 헌정질서입니다. 권력의 모습이 바뀌면 민주공화주의가 감당해야 할 과제도 달라집니다. 오늘날 민주공화주의가 다시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이 글에서 말하는 민주공화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정치철학에서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서로 다른 전통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정당성과 주권의 주체를 묻고,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에서 두 전통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선언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 역시 국민주권과 권력통제라는 두 원리가 결합된 하나의 헌정질서를 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민주공화주의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와, 그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공화주의가 결합된 현대의 헌정질서를 의미합니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주인을 결정하는 원리라면,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사유화되지 않고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도록 만드는 운영원리입니다. 저는 민주공화주의를 이 두 원리가 결합하여 하나의 질서로 작동하는 살아 있는 헌정질서로 이해합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이념이 아닙니다. 하나의 헌정질서를 떠받치는 두 개의 날개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듯, 민주공화주의 역시 국민주권과 권력통제라는 두 원리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다만 두 날개가 언제나 같은 힘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닙니다. 시대마다 민주공화주의가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18세기와 19세기 민주혁명의 시대에는 절대군주와 세습권력으로부터 권력의 주인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일이 가장 시급했습니다. 그래서 민주공화주의는 국민주권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인류는 또 다른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체주의 국가는 인간의 존엄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집단학살은 국민주권만으로는 인간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전후 세계는 인간존엄을 민주공화주의의 핵심 원리로 받아들였고, 세계인권선언과 각국의 헌정질서는 이를 새로운 시대의 기준으로 제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주의가 하나의 원리를 버리고 다른 원리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었고, 인간존엄 역시 국민주권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토대가 되었고, 인간존엄은 국민주권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의 역사는 앞선 가치를 폐기해 온 역사가 아닙니다. 시대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기존의 원리를 더욱 성숙시키고, 그 위에 새로운 원리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온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주의는 완성된 정치철학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살아 있는 헌정질서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국민주권과 인간존엄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 원리를 더욱 굳건히 지키기 위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새로운 권력을 어떻게 시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둘 것인가를 묻는 데 있습니다. 민주공화주의가 다시 새로운 시대적 질문 앞에 서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경제와 국제질서를 뒤흔든 거대한 변화가 축적되면서 지금의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출발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직면한 미국과 영국은 기존의 경제정책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해법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였습니다.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는 정책은 곧 미국과 영국을 넘어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로 확산되었습니다.

 

이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빠르게 통합되었습니다. 자본과 상품, 기술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초국적 기업들은 세계를 하나의 생산기지이자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와 번영을 약속했고, 세계화는 인류에게 더 큰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확대될수록 그 성과는 사회 전체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세계경제가 만들어 낸 부는 점차 초국적 금융자본과 거대 기업으로 집중되기 시작했고, 미국은 제조업과 중산층이라는 산업국가의 기반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생산비 절감을 위해 제조시설을 해외로 이전했고, 금융시장은 실물경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했습니다. 세계화는 막대한 부를 창출했지만, 그 혜택은 사회 전체보다 소수의 초국적 자본에 더욱 집중되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미국 경제를 떠받쳐 온 산업국가의 기본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했고, 금융은 실물경제를 압도했습니다. 중산층은 약화되었으며 소득과 자산은 극소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산업도시는 쇠퇴했고 지역 간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사회적 위기와 정치적 분열 역시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변화는 공동체의 해체였습니다. 제조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었습니다. 공장이 사라지자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중산층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었으며 공동체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상실감과 사회적 불안은 기존 정치와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훗날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는 이러한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규제 없는 금융시장과 시장만능주의는 세계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고,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인류의 보편적 발전모델이라는 시대적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흔들렸다고 해서 권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력은 새로운 형태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자본은 가장 높은 수익을 찾아 새로운 시장으로 향했고, 바로 그 무렵 인류는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권력은 바로 이 두 흐름, 곧 신자유주의가 남긴 금융자본의 집중과 디지털 기술혁명이 서로 결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시험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혁명 자체가 아닙니다. 권력이 이동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었습니다. 시장의 자유는 확대되었고 금융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보다 금융이, 국가보다 시장이, 정부보다 초국적 자본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경제의 성장과 기술혁신을 촉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의 중심축을 국가에서 초국적 자본으로 이동시키는 역사적 전환이기도 했습니다.

 

 

2025년 1월 20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로툰다(Rotunda)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의 제2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빅테크 CEO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이러한 질서의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금융 중심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동원해 금융권을 구제했지만, 수백만 명의 실업자와 파산자가 겪은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금융위기의 대가는 거대 금융기관보다 시민과 노동자, 그리고 중산층이 먼저 떠안았습니다. 제조업 공동화와 지역경제의 쇠퇴,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기존 정치에 대한 시민의 불신 역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금융자본은 다시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 산업으로 이동했습니다. 데이터는 새로운 생산수단이자 새로운 권력의 원천이 되었고, 알고리즘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예측하고 조직하는 권력으로 발전했습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역시 더 이상 하나의 산업기술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그것은 경제와 안보, 외교와 군사, 언론과 교육, 나아가 시민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권력의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했습니다. 국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금융으로, 다시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권력의 중심축이 옮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주의가 다시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역사적 변화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정치학과 언론에서는 '빅테크 올리가르키(Big Tech Oligarchy)'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빅테크 올리가르키란 민주적 선출이나 시민의 통제를 거치지 않은 소수의 거대 기술기업이 금융자본과 결합하여 경제와 정보, 안보와 외교, 공론장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과두권력을 의미합니다.

 

민주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문제는 기업의 성공이 아닙니다.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권력이 시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절대군주정의 시대에는 왕권이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20세기에는 전체주의 국가가 인간의 존엄을 위협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후 금융과 플랫폼, 인공지능과 군사기술, 그리고 극우 정치가 결합하여 형성한 새로운 초국적 권력질서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어떤 원리로 다시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할까요.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 민주공화주의는 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가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 1968~)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 1972~)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2018)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학자는 현대 민주주의는 더 이상 군사쿠데타나 혁명으로만 붕괴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세력이 민주주의의 규범과 제도를 조금씩 잠식하면서 내부에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은 민주주의 밖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조금 바꾸어 묻고자 합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민주공화주의는 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가?"

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공화주의를 묻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오늘날 흔들리는 것은 선거제도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그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공화주의의 원리가 동시에 시험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민주주의만의 위기도, 공화주의만의 위기도 아닙니다. 민주공화주의라는 헌정질서 전체가 새로운 권력 앞에서 시험받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국가보다 시장을,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세계질서를 확산시키며 권력의 중심을 국가에서 금융과 초국적 자본, 그리고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문제는 권력이 이동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민주공화주의를 떠받쳐 온 공공성과 사회적 신뢰, 그리고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민들이 경험한 것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삶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좌절감, 기성 정치가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상실감, 공동체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존 정치와 제도에 대한 신뢰는 흔들렸고,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깊은 회의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안이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불안과 분노를 가장 빠르게 조직한 것은 극우 정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티파티 운동이 등장했고, 이후 MAGA로 대표되는 새로운 극우 포퓰리즘이 성장했습니다. 정치학자 야샤 몽크(Yascha Mounk, 1982~)는 『국민 대 민주주의(The People vs. Democracy)』(2018)에서 경제적 불안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포퓰리즘 성장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극우는 과거와도 다릅니다. 과거의 극우가 정당과 집회, 전통 언론을 통해 대중을 동원했다면, 오늘날의 극우는 플랫폼과 알고리즘, 인공지능을 통해 시민의 감정과 분노를 실시간으로 조직합니다. 경제적 불안은 문화전쟁으로 번역되고, 사회경제적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로 치환됩니다. 분노는 정치적 자원이 되고, 플랫폼은 그 분노를 증폭시키는 새로운 정치기계가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질문은 민주공화주의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선거제도나 권력분립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떠받치는 시민적 신뢰와 공공성, 공동체의 규범이 함께 약화될 때 민주공화주의는 내부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극우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정권교체를 추구하거나 기존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민주공화주의를 떠받치는 공동체의 규범과 공적 권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역사 논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선거부정론과 음모론, 문화전쟁이 확산되는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정치의 공통점은 시민들이 함께 신뢰해야 할 역사와 제도, 공적 권위와 헌정질서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규범이 무너지면 공론장이 무너집니다. 공론장이 무너지면 시민은 더 이상 사실과 거짓을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진영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의 한쪽 날개와 공화주의의 다른 한쪽 날개가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를 하나의 헌정질서를 떠받치는 두 개의 날개에 비유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어느 한쪽 날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허위정보와 음모론,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인지전은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날개를 약화시키고,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초국적 기술권력과 플랫폼 권력은 공화주의의 날개를 흔듭니다. 두 날개 가운데 어느 하나만 약해져도 민주공화주의는 제대로 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위기가 민주주의만의 위기도, 공화주의만의 위기도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25년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보고서』(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5)는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뉴스 소비와 공론장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는 가운데 허위정보와 신뢰의 위기가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uters Institute, 2025). 이것은 단순한 언론환경의 변화가 아닙니다. 시민이 무엇을 사실로 믿고 무엇을 공공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영향 아래 놓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오늘날 민주공화주의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기술혁명이 아닙니다. 권력의 이동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아직 충분히 시민의 통제 아래 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절대군주정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국민주권이라는 원리를 발전시켰고, 전체주의 앞에서는 인간존엄이라는 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금융과 플랫폼, 인공지능과 군사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권력 앞에서는 어떠한 원리가 필요할까요.

 

저는 이제 민주공화주의가 세 번째 역사적 확장을 요구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주권이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었다면, 인간존엄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에게 두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권력은 더 이상 국가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 역시 시민의 자유와 선택, 공론장과 국가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공화주의는 이러한 새로운 권력 역시 시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해답을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이 제시한 비지배(non-domination)​의 원리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권력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권력의 시대에 걸맞은 민주공화주의의 세 번째 역사적 확장을 함께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권력에 맞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과제 역시 그 역사적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 이병권 인문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