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제작 다큐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언론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권력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언론은 날이 잘 드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것이 정의를 위해서 쓰일 때에는 그야말로 역사를 진전하게 하는 훌륭한 힘이지만, 그것이 잘못 쓰일 때, 그것이 권력에 결탁했을 때, 그 폐해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이 육성으로 들린다. 화면에 잡힌 곳은 서울 광화문 한복판. 그곳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이 있다. 자신들을 각각 일등신문’ ‘민족정론지라고 일컫는 두 신문은 올해 나란히 창간 100돌을 맞았다. 두 신문은 지난 100년을 일제에 항거하고 독재에 저항한 역사였다고 자랑하고 나섰다. 정말일까? ‘뉴스타파 함께센터가 제작해 31일 주문형비디오(VOD)로 선공개하는 다큐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는 이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

어떻게 조선일보가 과거 일제 앞잡이를 했다고 모독하고 매도하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 출석한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소리친다. 하지만 영화는 곧바로 1앞잡이에서 이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짚는다. 193711일 조선일보는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동아일보도 이에 질세라 이듬해 11일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이때부터 두 신문은 일본의 주요 명절마다 일왕 부부를 신문 1면에 배치했다. 일본 신문보다 더한 충성 경쟁이었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194011일치 제호 위에 일장기를 내걸었다. 흑백신문에 일장기만 붉은색으로 컬러 인쇄했다. 조선일보는 반년 동안 11차례나 일제 주요 기념일에 일장기를 올렸다. 두 신문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 흉악 범죄 등으로 매도하고, 조선인들이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지원하도록 부추겼다. 두 신문은 1940년 폐간한 것을 두고 민족의 존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다가 폐간됐다고 주장하지만, 영화는 조선총독부와 두 신문이 거액의 보상금 거래를 통해 폐간을 결정했음을 밝혀낸다. 두 신문은 해방 이후 반성과 사죄 없이 슬그머니 복간했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2밤의 대통령에선 두 신문이 새로운 권력 편에 서서 몸집을 불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신문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칭송하며 군부 독재정권을 옹호했다. 3선 개헌, 유신 쿠데타 등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때마다 지지와 찬양을 일삼았다. 참다못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언론자유수호운동을 벌였지만, 사주는 이에 가담한 100여명을 해고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시작이었다. 조선일보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해고된 기자 30여명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영화에는 신홍범 전 조선일보 기자,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 등 당사자들이 등장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전두환이 신군부로 떠오르자 두 신문은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경쟁하듯 용비어천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축구부 주장을 맡았으며, 부인이 만든 된장찌개를 즐기고, 애창곡은 김삿갓이라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보도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참여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한 건 물론이다. 신군부는 엄청난 당근을 제공했다. 이 시기 동아일보 매출은 3, 조선일보 매출은 6배나 증가했다. 2등이던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를 추월한 것도 이 시기다. 이때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거대 족벌 기업이 된 이들은 밤의 대통령을 자처하며 스스로 권력이 됐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3악의 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수구 언론의 저항은 완강했고, 언론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두 신문은 이제 시장 권력과 결탁해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사주 집안은 혼맥으로 정계·재계·관계와 결합하고, 전국에 막대한 부동산을 갖고 있다. 독자 신뢰를 무너뜨리는 기사형 광고, 기업과 사이비 종교 단체 돈을 받고 쓴 홍보 기사 등으로 저널리즘 윤리를 무시하고 돈벌이에 나서는 현실을 폭로한다.

<족벌>은 국가정보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자백>, 정부의 언론장악을 폭로한 <공범자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이야기 <김복동>, 한국 핵발전의 현주소를 직시한 <월성>을 만든 뉴스타파의 다섯번째 장편 다큐 영화다.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와 박중석 기자가 연출을 맡았다. 상영시간이 2시간48분에 이르지만, 블랙코미디·스릴러·드라마 등 요소들이 녹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김용진 감독은 두 신문의 문제를 다룬 출판물, 기사 등은 간혹 나왔지만, 더 많은 시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이들의 정체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두 신문이 100년 역사를 자화자찬한 2020년은 역설적으로 이 작업을 하기에 딱 맞는 시기였다. 조선·동아 두 미디어 기업의 겉모습만 보신 분들은 영화를 꼭 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추후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