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서 “86억 뇌물에 동일 기준 적용해야

이재용  국격 맞는 삼성 만들어 아버지께 효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이 구형됐다. 서울고법 형사1(재판장 정준영) 심리로 30일 열린 이 부회장 결심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법정 스크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헌법 제111항을 띄우며 수사와 기소, 재판은 헌법 11조에 따른 평등의 원리가 충실하게 구현되는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대상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법치주의와 평등의 원리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이든 최고의 경제적 권력이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삼성물산 직원이 10억여원을 횡령한 사건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의료의혹을 받았던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6천여만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은 사례도 언급했다.

특검, 재판부 감형우려에양형 가중요소 11가지 제시

특검이 평등과 공정을 앞세우며 결정한 중형 구형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감형을 우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 1심에서 이 부회장은 뇌물액 89억원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지만, 2심에서 뇌물 인정액이 36억원으로 크게 줄면서 집행유예(징역 26개월에 집행유예 4)로 풀려났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이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단하며 2심에서 무죄로 본 혐의도 뇌물공여로 인정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 뇌물액은 다시 86억원으로 늘었다.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곧 삼성 법인 자금 횡령액이기도 한데,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규정돼 실형이 불가피했다.

이에 특검은 이날 이 부회장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권고형량 범위는 징역 5~165개월 사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횡령·뇌물공여·위증 등 여러 혐의별 양형 범위를 다수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처리 기준에 맞춘 결과다. 최종 구형량은 양형 가중·감경 인자를 고려했다. 특검은 혐의별 양형 가중 요소로 다수의 피해자 발생 범행 수법 불량 불법적 청탁 등 11가지를 제시했다. 다만 최종 형량은 양형 구간에서 중간에 가까운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적정하다며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재벌 봐주기 위한 요식행위 비판 우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도입을 통한 양형 심리 계획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부회장 사건이 기업의 조직적 범죄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준감위 도입과 그 실효성을 평가해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이례적인 구상이어서 특검은 봐주기 양형을 위한 재판부의 사전포석 아니냐는 의심을 재판 내내 거두지 않았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신청을 하는 등 양쪽 갈등이 격화됐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전문심리위원단 제도를 통해 준감위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특검은 이날 결심공판에서도 전문심리위원단 평가 절차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고 전문위원 검증 결과 재벌 총수가 두려워할 정도의 실효성은 충족되지 않았다며 감형 요인을 삼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불법이 발견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위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취해야 하는 조처 등이 모두 미흡평가를 받은 이상 유리한 양형사유로 작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재용 쪽 준감위 도입 재판부에 감사양형 반영돼야

반면 이 부회장 쪽은 여전히 박 전 대통령에게 흘러간 뇌물은 “(대통령의) 직권남용에 의한 수동적인 지원이라며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질책을 받는 관계였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이 사건 이후 대폭 강화된 점은 양형에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준감위는 “(이 부회장의) 진지한 반성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 역시 최후진술에서 재판부의 준감위 제도 도입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 부회장은 미리 적어 온 최후진술문을 꺼내 재판 과정에서 삼성과 저를 외부에서 지켜보는 준감위가 생겼고,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준법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이재용이 어떤 기업인이 돼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화두를 던져주었다. 재판부에 깊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별세한 고 이건희 회장의 이야기를 꺼내며 최근 아버지를 여읜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새 삼성을 만들어 존경하는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다며 선처를 구했다. 이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될지, 집행유예가 유지될지는 다음달 18일 선고기일에 결정된다. 장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