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론 ‘반드시 완주’ 공언하며 물밑에선 ‘구애’

‘다당제 정착’ 소신이라며 ‘합당’도 앞뒤 안 맞아

자신이 반대해온 ‘닥치고 단일화’와 뭐가 다른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3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후보직을 사퇴했다. 지난달 27일 전남 여수 유세에서 ‘이순신의 12척’를 언급하며 완주 의지를 밝힌 지 나흘 만이다. 투표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이뤄진 단일화로 ‘4자 대결’로 진행돼온 선거 구도가 급변하게 됐다.

 

안철수 후보는 이날 오전 8시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후보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미래 지향적이며 개혁적인 국민통합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두 후보는 “정권 인수위원회와 공동정부 구성까지 함께 협의하겠다”고 했다. ‘정권교체론’이 꾸준히 우위를 지켜온 여론 지형을 고려하면, 야권 후보들이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자 구도에서 ‘승리를 위한 단일화’는 결선투표가 없는 현행 선거 제도 아래선 공학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을 배제하기 힘든 탓이다.

 

하지만 모든 단일화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화는 유권자의 선택지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행위라는 점에서 ‘목적’뿐 아니라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원칙 없는 단일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두 후보는 이날 ‘국민통합 정부’라는 공동의 목표를 내걸고 ‘더 좋은 정권교체’를 명분 삼아 ‘인수위 공동 구성’ 등 단일화 후속 프로세스를 국민 앞에 제시했지만, 이런 내용은 지난달 27일 안 후보가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기 전부터 양쪽이 논의했던 것들이다. 불과 나흘 사이에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는’ 어떤 사정 변경의 사유가 생겼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닥치고 단일화’ ‘무조건 단일화’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망스러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거듭 ‘완주’를 공언해왔다. 지난달 제안한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가 거부당한 뒤에는 유세 차량 사고로 숨진 당직자의 ‘유지’까지 언급하며 ‘철수 불가론’에 힘을 실었다. 지난달 23일 울산 유세에선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무능한 후보를 뽑으면 1년이 지나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할 것”이란 얘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또 “(윤 후보의 당선은) 진정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적폐교대”라는 말은 수시로 해왔다.

 

‘다당제’가 소신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밝혀온 안철수 후보가 ‘선거 후 합당’에 합의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합당’이 안 후보에게 당대표나 총리, 수도권 광역단체장 같은 정치적 미래를 열어줄지 모르겠으나, 그의 소신이라는 다당제 정착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2일 마지막 TV 토론회 뒤 단일화 담판을 요청한 게 안 후보 쪽이었다는 보도는 충격을 더한다. 밖으로는 ‘단일화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물밑에선 접촉을 이어가며 단일화 성사에 매달렸단 말인가. 지지자와 국민에 대한 명백한 기만이다.

 

4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되고 엿새 뒤엔 본투표다. 두 사람의 단일화가 명분 있는 선택인지, 권력 나누기식 야합인지는 유권자들이 평가할 몫이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내세운 비전과 공약뿐 아니라, 그동안의 말과 행동에 진정성이 있었는지도 면밀히 따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윤-안 국민 모욕”…민주, 역풍 타고 중도층 지지 확산 기대 

선대위 24시간 비상체제…‘위기극복 총사령관, 유능한 경제대통령’ 강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일 오후 서울시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 광장에서 열린 '영등포를 일등포로, 이재명은 합니다!' 영등포 집중 유세에서 후보를 사퇴하고 지원유세에 나선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3일 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단일화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선거대책위원회를 비상 체제로 전환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민주당은 ‘명분 없는 단일화’에 대한 역풍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고, 중도 부동층도 이 후보 쪽으로 돌아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 유세에서 “왕조시대에도 백성을 두려워했거늘 1인 1표 국민주권 국가에서 감히 정치인 몇몇이 이 나라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냐”고 비판하며 “국민의 손을 잡고 꿋꿋이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이재명은 지금까지도 국민과 역사를 믿고 이 자리에 왔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앞서 열린 서울 종로 유세에서도 “세상에 잔파도는 많지만, 민심의 도도한 물결은 파도가 거부할 수 없다”며 “정치인들의 정치 행위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국민의 현명한 선택을 호소했다.

 

민주당은 윤·안 두 후보가 국회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시작한 오전 8시 본부장단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회의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티브이(TV)토론이 끝나고 새벽에 기습적으로 만나서 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정치 행위”라며 “양측 지지자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형태의 단일화는 효과를 발휘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당제 정치개혁을 주장하다 국민의힘으로 합당을 선택한 안철수 전 후보를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박광온 선대위 공보단장은 브리핑을 통해 “(안 후보는) 선택권을 확대하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정치를 말했고 (단일화는) 그것을 기대해온 국민들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오히려 양당제를 강화하는 이 야합은 정치 교체가 아니라 기만 정치”라고 지적했다.

 

선대위를 비상체제로 전환한 민주당은 “당원과 지지자들은 비상한 결의로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쳐온 상황에서 단일화가 미칠 파장에 긴장하면서도 단일화 역풍으로 중도층의 이 후보 지지 확산과 민주당 지지층 결집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새벽 밀실 합의 같은 게 중도 부동층이 가장 싫어하는 ‘구 정치행위’”라며 “역풍이 불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선대위 핵심 관계자도 “안 후보의 지지자 가운데 절반은 이 후보의 지지층”이라며 “그간 이 후보를 찍기를 망설였던 분들도 위기감 속에서 투표장에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민주당은 ‘위기극복 총사령관·경제대통령’ 전략을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우상호 본부장은 “막판에 변수 하나가 발생했지만 ‘유능한 경제대통령’이라는 인물론을 주요 기조로 계속 가져가기로 결정했다”며 “단일화와 무관하게 권력분산과 다당제 논의 등 정치개혁 의제를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도 “굳이 전략에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지금처럼 ‘경제·민생 대통령’을 가져가는 게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선대위 안에선 안 후보와의 연결고리였던 ‘정치 개혁’의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애초 안 후보와의 연대를 염두에 둔 ‘통합 정부’ 구상에서 국민의힘은 배제돼 있었던 만큼 윤 후보와 합당을 앞둔 안 후보는 협치 상대에서 제외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정치개혁안은 단일화의 조건이 아니라 국민과 한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겠지만 동력이 많이 약화되긴 할 것”이라며 “안 후보가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완주를 해서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면 정치 개혁안이 더 힘을 받았을 건데 아쉽다”고 말했다. 또다른 선대위 핵심 관계자도 “정치 개혁안의 원칙은 제3당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논의의 틀이 사라진 건 사실”이라며 “(파트너십의) 실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긴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채경화 심우삼 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