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문정인 칼럼]

● 칼럼 2021. 9. 6. 06:0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8월15일 카불이 함락됐다. 온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우리에게는 한층 더 그랬다. 6·25 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와 1975년 4월30일 사이공 함락의 혼란과 비극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 “인천공항이 카불공항처럼 되지 말라는 법 있느냐”는 정치인들의 말은 이를 흡사 데자뷔처럼 생생히 되살려냈을 것이다.

 

외국 언론도 한몫했다. “한국이 이런 종류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미국의 지원 없이는 빠르게 붕괴해버릴 것”이라는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마크 티슨의 트위터 글이 언론 지면을 뒤덮었다. 한반도 문제를 오래 다뤄온 원로 외신 특파원 심재훈과 돈 커크도 “대만, 일본과는 달리 평화와 데탕트라는 공허한 슬로건을 남발하며 한-미 동맹을 저해하고 한-미 군사연습을 축소하는 문재인 정권 아래서 한국의 안보는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 사태 이후 한국의 안보와 관련해 쏟아져 나온 말들은 크게 세 갈래다. 이를테면 ‘나비효과’다. 첫째, 우리 군에 대한 걱정이다. “현 정권은 우리 군을 적이 없는 군대, 목적 없는 군대, 훈련하지 않은 군대로 만들었다”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아프간 사태에 빗대어 나온 말이라 하겠다. 둘째, 평화협정 무용론이다. 카불 함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2020년 2월 체결된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도하 평화협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도 아프간과 같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은 주한미군과 동맹 문제였다. 주한미군 없이 안보를 담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워싱턴은 국익에 따라 언제든지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을 붙잡아 두기 위해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카불 철수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서고자 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인계철선 같은 과거의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미군에게만 기대려 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비판, 주문은 다분히 황당하게 들린다. 우선 한국군을 아프간군과 비교하는 것은 모욕에 가깝다. 아프간 병력의 90% 이상이 문맹이고 30만 병력 중 6만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유령 군대였다. 각 종족과 부족에서 충원되어 이질적 오합지졸로 구성됐다는 근본적인 한계에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지휘통제체계가 겹쳐, 미국의 군수병참은 물론 공중 및 정찰감시 지원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깡통 군대이기도 했다. 세계 수위의 전투력과 겹겹이 쌓아올린 전력투자비를 자랑하는 70년 전통의 한국군을 아프간군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 군내 성폭력 문제 등 몇몇 사례를 들어 군의 안보 의식과 전투력, 기강을 도맷금으로 폄훼하는 일은 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도하 평화협약이 문제투성이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과 월맹 사이의 1973년 파리 평화협정도 그러했다.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는 아프간 정부를 사실상 배제한 채 탈레반과 무리한 협상을 전개했고, 아프간의 국내정치적 안정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 병력의 감축과 철수에 합의했다. 당시 협상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그러나 이를 문재인 정부의 평화구상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종전선언이 미군 철수와 동맹 붕괴로 이어질 것처럼 주장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상징적 제스처이자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종전선언이 한-미 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위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일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시적으로 연동돼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평화협상을 주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프간과는 크게 다르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갈수록 강화되는 북한의 핵 능력에 억지태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 자산이다. 그러나 아프간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동맹과 미군을 상수로 간주하는 타성에서 벗어나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을 통해 한국의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카불 철수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서고자 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인계철선 같은 과거의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미군에만 기대려 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

 

이렇듯 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스스로 비하해 상대의 오판을 초래하거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객관적 현실을 왜곡하고 국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그리고 동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자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상식이다. 다만 눈앞의 이익 때문에 상식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어서 문제다.

홍준표 · 유승민 · 장성민 등 다른 주자들이 맹공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을 방문, 한국교회 대표연합기관 및 평신도단체와 간담회를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대선 도전을 선언하고 ‘정권교체 대세론’을 이어오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총장 재직 시절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 안팎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당내에선 윤 전 총장 본인이 직접 관여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앞서 불거진 ‘처가 리스크’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도층·2030세대로의 외연 확장은 지지부진하고 지지율마저 박스권에 갇힌 상황에서 악재만 쌓여가는 형국이다.

 

윤 전 총장은 해당 의혹을 ‘정면돌파’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5일 오후 3시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리는 ‘공정 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경선 후보자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 예정이다. 전날 윤 전 총장 캠프 김병민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도대체 어떤 세력과 추잡한 뒷거래를 하고 있길래 이런 허무맹랑한 기사를 남발하는가”라며 “(보도를 한 해당 매체는) 윤 후보가 검찰에 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증거,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가족 정보 수집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지금 즉시 밝히기 바란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당내 경쟁 후보들의 공세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홍준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곧 드러날 일을 공작정치 운운으로 대응하는 것은 기존 정치인들이 통상 하는 무조건 부인하고 보자는 배 째라는 식 후안무치 대응”이라며 “차라리 ‘총장 시절 하도 총장 찍어 내기가 심해 그렇게라도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솔직하게 대응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적었다. 해당 의혹에 대해 ‘권언 정치 공작’이라고 반발하고, 해당 매체에 “있으면 (증거를) 대라”고 요구한 윤 전 총장의 태도를 꼬집은 것이다.

 

홍 의원은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진실을 고백하고 대국민 사과하라”며 “정직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대통령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은 “이대로 가면 결국 윤석열의 리스크가 정권교체의 리스크로 연결되면서 그토록 국민이 갈망해 온 정권교체라는 희망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해명이 안 된 의혹의 짐을 진 사람을 대선판에 올리겠다는 당도, 그런 의혹의 짐을 진 사람에게 유리한 경선판을 만들겠다는 선관위도, 더 나아가 의혹의 짐을 진 당사자가 대선판에 나서겠다는 무모함이 모두 ‘상식과 공정’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전날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보도된 윤 후보의 고발 사주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검찰총장의 공권력을 사유화한 헌법 유린 범죄”라며 “윤 후보는 이 고발 사주 의혹 사건 관련 서류의 작성과 전달과정을 알고 있었는가? 알고도 묵인했는가? 지시했는가? 만약 알고 있었거나 관여 혹은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후보직을 사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윤 후보 본인의 분명한 답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관훈토론회에서 ‘당무감사에서 의혹을 파악하겠다’고 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4월 범여권 인사들을 고발해달라는 고발장을 전달받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인사들이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한국방송> ‘일요진단 라이브’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당 공식기구인 법률자문위원회에) 공식 접수된 바는 없고 회의에서 거론된 적도 없다는 것까지는 확인했다”면서도 “개별 위원들에게라도 연락 오거나 접수된 게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데, 법률자문위가 상당히 큰 조직이어서 개별적인 확인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워싱턴포스트’ 전 아프간사령관들 조명

군수업체 이사회·강연료 넉넉한 퇴역생활

“전쟁 영속화한 장군들 재평가 필요해”

 

스탠리 매크리스털

 

전쟁에선 졌어도 인생에선 승리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패전’의 후폭풍에 시달리는 가운데, 전쟁을 이끈 전직 최고위급 장성들은 사기업 취업과 강연 등으로 넉넉한 전역 후 삶을 누리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4일 보도했다.

 

미군이 20년간 진행한 아프간전에서 여러 4성 장군들이 지휘를 맡았다. 미군에서 최고위인 대장까지 지낸 이들은 명성이 높은 탓에 적잖은 기업들과 청중들이 그들의 경험을 듣기 위해 몰린다. 하지만, 많은 전우가 희생된 ‘실패한 전쟁’의 경험담 등을 말하며 지나친 돈벌이에 나서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08~2018년 아프간 주둔 미군을 이끈 장군 8명이 20곳 이상의 기업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2009년 미군 3만명 증파를 이끈 스탠리 매크리스털의 전역 후 활동이 가장 눈에 띈다. 매크리스털은 이듬해 아프간 정책 등을 놓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현 대통령)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언론 인터뷰를 한 뒤 워싱턴으로 불려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직후 사임한 인물이다. 그는 전역 후 적어도 10곳의 기업에서 이사회 구성원이나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업 이사로서는 수억원, 강연료로는 수천만원씩을 챙겼다. 자기 이름을 딴 컨설팅 업체도 차렸다. 그가 취업했던 제조업체 나비스타 인터내셔널의 자회사는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서 해병대가 사용한 장갑차 가격을 사기적 방법으로 부풀렸다는 시비 끝에 올해 초 5천만달러를 토해내기로 합의한 바 있다.

 

조지프 던포드

 

2013~2014년 아프간 주둔 사령관을 하고 합참의장도 역임한 조지프 던포드는 미군과 거래하는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의 이사회에 지난해 합류했다. 던포드에 앞서 아프간 주둔 미군을 이끈 존 앨런은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에 취임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 3년간 군수업체 노스롭그루먼으로부터 150만달러(약 17억3천만원)를 기부받은 곳이다. 앨런의 전임자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자산운용사 케이케이아르(KKR)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명성을 높이는 데는, 지금은 실패한 전쟁으로 명백히 판명된 아프간전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전쟁의 전개와 방향, 경험을 놓고 의견을 피력하며 인기 있는 강연자로도 활동해왔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직 미군 아프간 최고사령관들은 실패한 전쟁을 이끈 경험으로 전역 후의 삶을 꾸려간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퍼트레이어스는 “난 (아프간 주둔 사령관) 임기 동안 우리가 한 일과 그것에 대한 보고를 확고하게 지지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역임한 그는 여러 기업이 경험을 사기 위해 자신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려 했다고 말했다. 던포드 역시 “난 대통령이 지시한 대로 정확히 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 퇴역 군인들을 위한 일 등 비영리 활동에 자기 시간의 80%를 쓴다고 했다. 매크리스털도 자신의 사업은 과거의 전우들을 위한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있다고 반론했다.

 

아프간 전쟁에 두 차례 투입됐던 예비역 육군 중령 대니얼 데이비스는 전쟁을 20년이나 끌게 만든 이들의 리더십에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그는 “전쟁이 완벽한 재앙이 되는 수년간은 다른 한편에서는 장군들의 월급날이었다”고 했다. 이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