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전 사회로 확산… 페이스북 페이지 호응 폭발적

대학가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세대·지역·계층을 뛰어넘은 전국적 현상이 됐다. 대학가는 물론 고등학생과 평범한 직장인, 주부들도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은 대자보를 쓰고 있다.
처음 고려대에 대자보를 붙인 주현우(27.경영학과)씨와 함께 ‘안녕들 하십니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강태경(25.철학과)씨는 16일 “호응하는 대자보가 너무 많아서 현재 정확한 집계는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누리꾼은 이날 오후 23만명을 돌파했다. 이들은 대자보 1228건의 ‘인증샷’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응답하라 1228’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내 대학에 이어 대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는 10여명이 대자보를 붙였다. . 서울 성공회대와 인천대 등에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동참도 두드러진다. 시국 비판이나 교육 문제 등 소재는 다양하다. 이날 전북 군산여고 채자은(16)양은 “국가정보원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나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안녕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생이니까. 하지만 3.1운동도, 광주학생운동도 모두 학생이 주체가 되었다. 우리도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적은 대자보를 학교 외벽에 붙였다. 경기도 성남시 효성고 정현석(18)군은 “학생들이 요구하지 않으니, 정작 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매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하다”라고 썼다. 또 사회참여에 소극적이던 시민들도 대자보 쓰기에 나섰다.


캐나다에서 투자와 위험관리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관리이며 투자의 성패는 위험관리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투자대상 선택이나 금융거래상 실수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사실 캐나다는 지난 금융위기 때도 큰 영향이 없이 잘 피해갈 수 있었을 만큼 안전한 보호장치들을 갖추고 있지만 한인들 중에는 캐나다에서 발생했던 사기사건 등으로 캐나다 투자에 대한 불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된 토론토 모 증권사 한인의 사기사건이나 지난 2009년에 밴쿠버 모 한인교회를 주 무대로 교민 200여 명으로부터 고수익과 정부가 보장하는 안전한 투자라고 하며, 사기행각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캐나다의 투자자에 대한 보호법규를 올바로 알고 있었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기 않기를 기대하며 칼럼을 통해서나마 캐나다 금융관행에 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캐나다에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방법과 투자자 보호제도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금융거래시 수표나 어음은 반드시 수신인을 개인 명의가 아닌 믿을 수 있는 회사의 명의로 발행해야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회사나 법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발생했던 투자자들의 피해사고들은 개인명의로 발행된 수표나 공신력이 없는 개인회사 명의로 발행된 수표를 사용해서 발생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금융거래 시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회사명의로만 발행해야 한다.
또한 투자와 관련하여 만기가 되면 원금을 돌려주는 원금보장(Guarantee)에 대한 오해가 많다. 계약당사자간 보장은 당사자가 충분한 신용이나 자산이 있을 땐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러한 보장은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나 계약당사자가 아닌 충분한 자산이나 신용도가 높은 제3의 기관이나 개인이 추가로 보증을 할 경우에는 투자자산은 그만큼 안전하다. 예를 들어, 은행은 예금자에게 만기시에 원금의 환불을 보장한다. 그러나 은행이 문제가 생겨 파산한다면 원금상환보증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10만 달러까지 보장을 해주는 제3의 보증기관인 CDIC(예금보험공사)를 믿고 10만 달러까지 예금을 한다면 은행이 파산을 해도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주식, 채권, 선물, 옵션, 펀드 등을 중계하는 증권회사의 경우는 증권회사가 파산할 경우 제3의 보험회사인 CIPF(Canada Investors Protection Fund) 가 최고 2백만 달러(일반계좌, registered계좌-RRSP, RRIF등 각각 1백만 달러)까지 손실을 보전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증권회사가 CIFP회원에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세부 내용은www.cipf.ca 참조). 일반 뮤추얼펀드 투자도 MFDA IPC(Mutual Fund Dealer Association Investor Protection Corporation)에 가입한 회사에 투자한 경우 펀드회사가 파산할 경우 증권회사의 CIPF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IPC로부터 최대 2백만 달러까지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세부 내용은www.mfda.ca). 또한 연금보험투자도 보험회사가 파산할 경우 투자나 연금보험상품에 대해 보장금의 최소 85% 이상을 제3의 보증회사인Assuris가 보상해 준다. (www.Assuris.ca)

< 김경태 - 은퇴투자 상담사, Maxfin 증권·보험 >
투자 상담 및 문의: 416-512-9018


[1500자 칼럼] Whistle Blower

● 칼럼 2013. 12. 24. 19:40 Posted by SisaHan
Whistle Blower
- 호루라기 부는 사람 -

올해도 한 해가 다 저물어 간다. 유독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며, 잠시라도 생각을 하며,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기쁘고 보람 된 일도 많았겠지만, 적지않은 사람들에게는 슬프고 후회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늘 이번 겨울이 가장 춥고 길듯, 나는 올 한해가 가장 힘이 들었고, 슬픔 많은 해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루어 놓은 일 하나도 없이….

해가 가면 갈수록 생활은 단조로워지고, 느낌도 생각도 없이 살아지는 것 같다. 내가 사물을 또는 사회를 보는 눈마저 좁아져, 모든 것을 내 좁은 눈으로 보려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이 선동처럼 하는 몇 마디에 쉽게 흥분하고 그리곤 잊어버리며 그리곤 이내 호수처럼 잔잔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단조롭고 변화없는 캐나다 생활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민민할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사회는 역동적이랄까? 끊임없이 부닥치고 변하는 사회다. 올해 유난히도 깜짝 놀랄 사건들이 많았다. 하나 일이 터지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도 어느 사건 하나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꼬리를 물고 터져나온 사건 때문에 잊혀졌을 뿐…. 그 어느 해보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한해였건만, 한 해가 끝나는 마당에 나는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몇 명의 개인적인 희생만 있었을 뿐….

영어에, ‘Whistle Blower’라는 단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란 뜻인데, 정확한 뜻을 번역하자면 그런 뜻이라기 보다 ‘내부 고발자’ 또는 ‘양심선언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 조직내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내의 잘못과 비리를 외부에 공개하는 사람이란 뜻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나 쉬운 일이 아니다.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에서는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을 키워주고 먹여주었던 조직, 그리고 오랜 시간 같이 했던 동료들을 배신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자신의 처지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엄청나게 매도되고 나아가서는 생명까지 위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비리를 폭로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심적으로 한 행동과 말 때문에도 조직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특히 위에서 보낸, 보이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거절하는 경우이다. 
그냥 시키는대로 했으면 눈치껏 알아서 했으면, 최소한 그냥 보고도 못본 체 하고 입다물고 있었으면 그들의 자리는 조직내에서 보장이 되고, 앞날은 탄탄대로가 되거나 가속도가 붙어 수직상승을 할지 모른다.

한국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유기체적인 사회다.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직장(조직)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하나의 생명체이다. 만약에 거기서 이탈한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뿐더러, 밖에서도 서있을 자리를 못찾는다. 
금년 한해에 신문지상에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고 내렸지만, 나는 채동욱, 윤성렬, 그리고 권은희, 이 세사람의 이름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이들은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 그냥 맡은 바 책임을 소신껏 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튀어나온 못이 망치질 당한다고, 한국적인 상식과 정서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보면 그 막강한 자리에서, 도덕적 의심을 받아가며 물러나고, 중요한 직책에서 물러나고, 앞으로 또 어떠한 개인적인 불이익 등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도 후회하고 있을지도, 그냥 입다물고 시키는 대로 했을 걸 하며…, 
사실 그들의 행동의 잘잘못을 내가 판단할 처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이 당당해 보이는 것은 웬 까닭인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