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테헤란과 군사시설 등 …대응 수위 따라 확전 갈림길

핵·석유시설은 안 때려…확전 관리 위해 보복수위 조절했나

 

보름달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이스라엘군 F-35 스텔스 전투기 [EPA 연합]
 

이스라엘이 장고 끝에 26일(현지시간) 이란을 겨냥해 재보복을 감행하면서 작년 10월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 온 중동 정세가 또 다시 기로에 섰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자국 본토를 겨냥해 약 200발의 탄도 미사일을 날린 시점으로부터 25일째인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 등지를 겨냥해 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군(IDF)은 이날 성명을 내고 "몇 달 동안 이어진 이란의 공격에 대응해 이란의 군사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란 국영 TV와 반관영 언론 등은 이날 테헤란과 인근 카라즈 시에서 몇번의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고, 소셜미디어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이란이 이번 공격에 대응해 재차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다면 이미 가자지구에서 레바논으로 확전된 전쟁이 이란과의 전면전으로까지 번지면서 중동 전체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이란 당국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이란이 이달 1일 이스라엘을 겨냥해 대량의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돼 왔다.

지난 7월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됐을 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공언해 온 이란은 지난달 27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마저 이스라엘의 폭격에 목숨을 잃자 이를 명분 삼아 미사일 200여기를 동원해 이스라엘에 공격을 가했다.

미사일 대부분이 중동 주둔 미군과 이스라엘 방공망에 막힌 까닭에 피해는 군사시설이 일부 파괴되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스라엘은 즉각 재보복을 공언했다.

 

이스라엘로 떨어져 내리는 이란제 탄도 미사일의 궤적들 [신화 연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고,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우리의 공격은 치명적이고 정밀하고 무엇보다도 기습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스라엘의 이번 보복은 이란내 핵시설이나 이란 경제의 생명줄인 석유시설을 때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스라엘 측이 확전을 막기 위해 보복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CBS 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이날 공격은 이란 군사목표물만 겨냥했고, 핵·석유시설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보도했고, 이란 언론도 자국내 정유시설에는 화재 등 피해가 없고, 별다른 인명 피해도 없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언론도 현재까지 이란의 드론·미사일 공장, 미사일 발사대 등 이란 내 전략적 군사 시설 수십 곳을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무대응'에서부터 '탄도미사일 1천여기 발사'까지 시나리오별로 다양한 대응을 준비한 채 "비례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해 왔다.

앞서 이란 정부 관계자들은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광범위한 파괴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상응한 보복을 하겠지만 피격 대상이 군사기지 등에 국한된다면 대응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 기준에 비춰보면 이번에도 이란이 확전을 불사하며 대대적 대응에 나설 정도는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란은 올해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도 요격 준비를 갖출 시간을 주거나 군사 시설만을 노렸다.

이스라엘 역시 지난 4월 이란 공격에 따른 반격 당시 이란 중부 이스파한을 겨냥해 소규모 드론 공격으로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아 그동안의 양국의 직접 충돌은 사실상 '약속대련'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은 바 있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떨어진 이란제 탄도 미사일의 잔해 [AFP 연합]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보복하기까지 25일이나 걸린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4월 이란이 수백기의 자폭 드론(무인기)과 탄도·순항 미사일로 자국 본토를 때렸을 때는 닷새 만에 이란 핵시설이 위치한 중부 이스파한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한달 가까이 장고를 이어갔다.

이런 상황엔 내달 5일 대선을 앞둔 미국이 가자 전쟁이 레바논에 이어 이란과의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스라엘에 보복 시점과 수위를 조절할 것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보복 공격 준비 상황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 2건이 온라인에 유출된 것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보복 공격을 늦추도록 만들었다는 관측도 있다.

해당 문서에는 이란 공격을 위한 이스라엘 공군의 군수품 운반과 전투기를 동원한 훈련, 드론(무인기) 부대의 공격 준비 상태 등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한편, 미국 폭스뉴스는 "이스라엘 측이 이날 공격을 감행하기 직전 백악관에 관련 계획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중동으로 파견해 네타냐후 총리 등을 만나게 했다. 블링컨 장관은 영국 런던을 거쳐 25일 귀국길에 올랐고 이스라엘은 그 직후 이란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 연합 황철환 기자 >

 

이스라엘, 이란 수도 테헤란·남부 시라즈 2차 보복 공격

 

이란의 수도 테헤란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대한 보복 공격 직후 곧바로 2차 공습을 단행했다.

로이터와 AP통신 등은 26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을 인용, 이스라엘의 1차 공습 직후 테헤란에서 또 다시 4차례에 걸친 추가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란 남부 시라즈 역시 2차 보복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이란 국영 TV는 테헤란에 대한 2차 공습 직후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방공 시스템이 작동해 폭발음이 발생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이날 이란의 군사 시설을 대상으로 예고돼 온 보복 공격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란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25일 만에 이뤄진 것이다.

이란은 지난 1일 이스라엘에 탄도미사일 약 200기를 쏘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 등이 살해된 것의 보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대응 공격 방침을 확인하고 재보복 시기와 방식을 숙고해 왔다.  < 연합 김경희 임지우 기자 >

“쿼터 파운더에 쓰인 안 익힌 슬라이스 양파 오염 추정”

 

 

               미국에서 식중독을 일으킨 맥도날드의 ‘쿼터 파운더’ 햄버거. AP 연합
 

미국에서 맥도날드 햄버거의 식중독 피해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5일(현지시각) 미국 13개 주에서 75명이 맥도날드 ‘쿼터 파운더’ 햄버거의 O157:H7 대장균에 의한 식중독 증세를 보인 것으로 집계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이가 22명이고 노인 1명은 숨졌다. 또 입원 환자 2명은 급성 신부전을 일으키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 증세를 보였다.

앞서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지난 22일 10개 주에서 49명이 식중독 증세를 보여 1명이 숨지고 10명이 입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흘 만에 환자가 급증한 것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쿼터 파운더에 사용된 익히지 않은 슬라이스 양파가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식중독 발병 사례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와 관련한 식중독 증세는 콜로라도, 캔자스, 유타, 와이오밍, 아이다호, 아이오와, 미주리, 몬태나, 네브래스카, 네바다, 뉴멕시코, 오클라호마, 미시간 등에서 나타났다.

맥도날드는 이날 성명을 내어 농산물기업 ‘테일러 팜스’의 콜로라도 시설에서 문제의 양파가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들 양파의 납품을 무기한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들 양파는 맥도날드의 900여개의 매장에서 납품받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한겨레 박병수 기자 >

 

휴전안 믿었던 헤즈볼라 나스랄라 무참히 피살
우크라전쟁, 북한-이란 핵문제 키운 것도 미국

전 CIA국장 "우리는 사기 치고, 속이고, 훔친다"
'망상에 가까운 패권 전략' 미국 역사 그 자체

 

미국 대선과 총선이 채 두 주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 내에선 당연히 관심이 높지만, 세계인들의 눈과 귀는 미국 대선 이상으로 요동치는 세계 정세에 쏠려 있다. 러시아의 승리를 목전에 둔 우크라이나 전쟁, 3차대전의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이란-이스라엘의 격돌, 고조되는 중국-미국의 경제전쟁과 군사적 긴장 등.

여기서 기이한 것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싸워 승리!’를 외치는 우크라이나, 국제적 고립과 전략적 패배를 알면서도 ‘학살, 암살, 테러, 공습!’을 외치는 이스라엘, 불길한 후폭풍을 예감하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자극하는 남한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의 행태다.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을 뒷배로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이 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친구라고 믿다간 죽어.” 이들에게 미국의 정체를 간명하고 날카롭게 묘사한 키신저의 경구를 일깨워주고 싶다. 적이든 동맹이든 필요하다면 가차 없는 폭력과 사기에 가까운 이중성을 발휘하는 게 미국이다. 이런 미국을 제일 믿는 건 이스라엘이다. 힘을 믿고 밀어붙이고 있지만, 둘 다 국제적 고립이라는 전략적 패배의 딜레마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 일촉즉발인 이란-이스라엘 격돌의 결정적 계기는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의 암살이다. 그의 죽음은 이 금언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믿을 걸 믿어야지, 미국을 믿다니.’

임시 휴전안 수락 발표 직전 H. 나스랄라 암살?

이미 널리 알려졌듯, 한 달여 전인 9월 27일 이른 밤(베이루트 시각),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남쪽, 헤즈볼라 사령부를 공습, 회동 중인 지도자 나스랄라를 포함, 일군의 정치 및 군사 지휘부를 암살했다.

 

(왼쪽) 폭격으로 깊게 파인 헤즈볼라 사령부 공습 현장. 출처: 뉴욕 포스트 9월 30일 (오른쪽) 나스랄라 암살에 사용된 미제 무기 벙커버스터. 출처: 인도 매체 리퍼블릭 TV. 9월 30일
 

당연한 일이지만, 헤즈볼라는 지도부의 안전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암살 관련 보도나 시사 유튜브를 종합해보면, 그날 헤즈볼라의 경계는, 이란의 사전경고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왜 그랬을까? 결정적 이유는 임시 휴전안 때문이다.

9월 하순 유엔총회 및 안보리 기간, 프랑스와 미국 등은 헤즈볼라-이스라엘 간에 21일 동안의 임시 휴전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휴전안은 레바논을 통해 헤즈볼라로, 미국을 통해 이스라엘로 전달됐고, 두 당사자도 동의했다. 그래서 유엔 주변에서는 네타냐후가 금요일, 27일의 총회 연설에서 휴전안 수락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금요일 오전(뉴욕 시각), 총회장으로 가기 직전, 네타냐후는 군의 헤즈볼라 지도부 암살 작전을 승인했다.(사진 참조).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을 나섰다.

 

유엔총회 참석차 머문 뉴욕 숙소에서 전화로 군의 헤즈볼라 공격을 승인하는 네타냐후. 서 있는 사람 왼쪽 비서실장, 오른쪽. 군 각료. 출처: 9월 27일 예루살렘포스트에 실린 총리실 배포 사진
 

회의장에 도착, 연단에 선 네타냐후는 1시간 가까운 연설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모든 곳, 또 중동 어디도 공격할 수 있다’가 핵심 메시지였다. 맘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그 협박을 사실로 입증하듯, 연설이 끝난 직후, 이스라엘 공군은 베이루트로 출격, 나스랄라에 대한 테러 공습을 벌였고 죽였다.

미국의 이중 플레이

나스랄라는 휴전안을 믿었다. 프랑스와 미국 역시 외교 노력이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미국, 나스랄라 모두는 속았고, 그는 처참하게 살해됐다.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휴전은커녕 더 큰 전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4일 후인 10월 1일, 이란은 철통같다는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망을 뚫는 대규모의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그동안 미국의 공식 입장은, ‘헤즈볼라와의 군사적 대결은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이 우려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레바논 공격 자제를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 미국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를 벌였다.

 

‘이스라엘에 헤즈볼라 공격을 은밀히 부추긴 미국 관리들’이라는 제목의 9월 30일 자 온라인 매체 폴리티코의 기사.
 

일군의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미국의 공식 입장과 반대로 이스라엘에 대 헤즈볼라 군사작전을 부추기고 다녔다.(관련 기사 사진 참조) 이해영 교수는 “바이든은 NSC(국가안보위) 중동 조정관과 이스라엘군 출신 안보 보좌관을 통해 ‘사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전쟁을 추동해 왔다”고 지적했다. 즉, 협상을 강조하지만, 백악관은 이스라엘의 작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이들은 레바논 공격을 준비하던 네타냐후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달리 말하면 휴전안을 미끼로 벌인 미국의 이중 플레이에 나스랄라는 암살되고, 가자에서 레바논, 시리아, 결국 이란까지, 전쟁은 확대됐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이젠 레바논에 주둔한 유엔평화유지군까지도 공격하고 있다.

거짓과 속임수는 미국의 주특기

트럼프 정부에서 CIA 국장을 지냈던 M. 폼페오는, 지난 2019년 한 대학 강연에서 “웨스트포인트 생도규범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속임수 쓰지 않는다,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지만, CIA는 사기 치고, 속이고, 훔치는 조직이다”라고 자랑하듯 털어놓은 적이 있다.(사진 참조). 그것이 실은 CIA뿐 아니라 국무부와 백악관을 포함, 미국 정부의 일관된 대외정책의 기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민스크 협약이 사실상 사기였다는 데서 출발한다. 전쟁 발발 한 달여 만에 이뤄진 종전 협상마저 미국의 반대로 파기됐다. 대리전에 나선 우크라이나는 패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북한의 핵을 오늘날처럼 키운 계기도 미국의 협력 약속 불이행이다. 1994년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조건으로 제시한 제재 해제, 발전소 건설 및 에너지 지원 약속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철천지원수(?)처럼 대하는 이란과의 문제 한복판에도 미국의 책임이 놓여 있다. 2015년 미국과 이란은 독일, 러시아, 영국, 유럽연합, 중국, 프랑스 등과 함께 ‘포괄적 이란 핵협정(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약칭 JCPOA)’을 타결한다. 이란 핵무기 개발중단과 경제제재 해제를 맞교환한 것으로, 이란과 미국의 오랜 긴장 관계를 푸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협정 타결의 이면에는, 핵발전 연료 생산을 위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즉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미국의 약속이 있었다. 이란은 협정을 준수했고, 이는 국제적으로도 확인됐다. 그런데 정작 제재 해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트럼프는 2018년, ‘부실한 협정이고 이란이 약속을 위반했다’며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애초부터 협정반대-협정탈퇴를 위해 노력해온 이스라엘 정부와 로비 단체는 트럼프의 결정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들에게 미국의 외교는 사기에 가까운 이중적 행태의 다른 말일 뿐이다.

스스로에게도 사기 치는(?) 미국

생각해 보면 키신저의 말은 다른 나라는 물론 미국 자신도 되새겨야 한다. 더는 사실이 아닌 ‘미군 최강! 미국 최고!’를 믿는 것이 스스로에게 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과 세 개의 핵전쟁을 동시에 치러 승리할 수 있다며 자신을 독려한다. 목전에 다가온 우크라이나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미국 중동외교의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 암살 테러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참수 작전의 승리라고 자축(?)한다. 중국과의 격돌을 감당할 역량이 모자라면서도 군사적 긴장상태를 조성한다. 남한, 대만, 일본, 필리핀 같은 나라들이 중국을 자극하도록 부추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다극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지정·경학적 변동의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G7 다른 한쪽에는 브릭스를 그린, 다극화 시대를 상징하는 삽화.
 

요약하면 미국은 자신이 지구적 범위의 난장판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동시에 미국 밖에서 지구적 범위의 거대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 때문에 미국의 위상과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미군 최강, 미국 최고’라는 망상,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자유, 민주, 가치 질서 같은 허황한 구호가 합작해 빚어내는 엄중한 현실이다. ‘믿을 걸 믿어야지, 미국을 믿다니’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미국 스스로에게도 해당하는 금언이다.

패권 망상에 매달리는 미국

협상이 아니라 사기에 가까운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대화가 아니라 우선 총부터 드는 미국.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국 역사가 그렇다. 미국은 건국 이래 19세기까지 조약 파기는 물론, 침략과 정복 전쟁으로 원주민 인디언을 죽이고 밀어내며 영토를 확장했다. 거의 같은 방식으로 남미를 장악했고,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거스르거나 반대하는 정부나 집단은 봉쇄, 암살, 회유, 쿠데타, 경제제재, 전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어 또는 제거하고 있다.

두 번째는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이 수립한, 특히 1960년대 이후 변함없이 이어지는 미국의 헤게모니, 즉 ‘패권 유지’라는 거대전략이다. 군사적 개입과 상대를 기망하는 이중적 외교는 이 전략의 실천 전술 중 하나고,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주체는 군산정언학 복합체다. 이 복합체의 일부로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트럼프가 자신이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은 좀 더 일찍 수습에 들어가겠다는 것일 뿐, 미국의 패권 전략이나 군사 개입 노선 자체를 바꾸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패권은 하락 중이고 패권 전략은 안팎의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미국은 강한 나라다. 그러나 영구전쟁으로, 이중적 사기술로, 천문학적 빚더미로 위기 극복의 역량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이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9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볼가강 유역의 도시 카잔에서는, 이번 22일부터 24일까지 열여섯 번째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린다. 다른 세계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 민들레 김평호 전 단국대교수,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