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옹호하는 검찰과 언론 바로 서야 민생 전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10일 "'개혁이냐 민생이나 양자택일' 논리는 기득권 세력이 주입한 개혁에 대한 두려움일 뿐, 개혁 없는 민생은 없다"고 밝혔다.

 

추 전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검찰·언론개혁 대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민생과 개혁을 나눠 국민과 개혁 집권세력을 이간시키고 개혁 진영 내 분란을 키워 개혁의 힘을 빼려는 '반간계'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내에서 4·7 재보선 참패 후 개혁보다는 부동산과 백신 등 민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선명성을 내세워 보폭을 넓히는 차원으로 보인다.

 

추 전 장관은 "개혁을 천천히 하자는 건 민생을 천천히 챙기겠다는 것이며, 지금 시기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은 지금부터 민생을 포기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혁을 포기하고 민생을 중도화 전략 정도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며 "진정 민생을 짓누르는 건 곳곳에 자리 잡은 반칙과 특권, 극소수에 집중된 부동산 불로소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파트 1평보다 못한 청년의 목숨값을 이대로 둔 채 도대체 민주당은 어떤 개혁, 민생을 원하느냐"며 "특권을 옹호하는 검찰과 언론이 바로 서야 민생의 전진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보수언론과 보수 야당의 간교한 정치적 주문을 쇄신이라 착각하고 개혁의 고삐를 늦춘다면 개혁 세력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라며 "저항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정 민생을 생각한다면 개혁을 멈춰선 안 된다"며 "부디 개혁 부진에 낙담하는 촛불 시민들에 다시 강력한 개혁 진군을 위한 연대와 희망의 손을 내밀 때"라고 덧붙였다.

이동춘 교수 외국 동영상에 포착된 모습 발견
노먼 소프 전 기자 사진 속에도 희미하게 잡혀
“총 맞고 숨진 4살 무명열사와 일치 가능성 커”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가 1980년 5월27일 아침 네살가량 된 남자아이를 안고 군 버스에 앉아 있다. [이동춘 교수 제공]

 

1980년 5·18항쟁 마지막날 군 버스에 실려 가던 4살가량 남자 어린이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처음 발견됐다. 이 어린이의 행방이 41년째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총을 맞고 사망한 뒤 야산에 암매장된 채 발견됐던 ‘4살 5·18 무명열사’와 동일인물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이동춘(62) 목포과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9일 “1980년 5월27일 아침 내가 네살가량 남자아이를 안고 군 버스에 붙잡혀 있는 모습을 5·18 영상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국외 방송사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5·18 영상 속에서 대학생이던 이 교수는 군용 버스 안에서 4살가량 남자 어린이를 안고 있었다. 영상에서 빨간색 상의를 입은 아이는 불안한 듯 버스 밖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5·18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보고 그때 만났던 4살 아이가 떠올라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가 2020년 11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4살 무명열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군 버스 안 4살 아이의 모습은 노먼 소프 전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찍은 사진에도 담겨 있다. 노먼 소프 기자 5·18 특별전(5월7일~7월31일 옛 전남도청)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 속에도 군 버스를 탄 4살 아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포착됐다. 이 교수는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잡힌 뒤 버스에 탔는데 외신 기자가 밖에서 동영상으로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앞자리에 앉은 이가 이 교수와 옛 전남도청 본관 2층 부지사실에 있다가 함께 붙잡힌 고 이종기(1917~1997) 변호사다.

 

이 교수가 이 아이를 만난 것은 5·18항쟁 마지막 새벽이었다.(<한겨레> 2020년 11월30일치 13면) 옛 전남도청에서 총을 들고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저항했던 그는 “도청 앞마당으로 끌려갔는데 먼저 와 있던 남녀 고등학생 2명한테서 네다섯살 정도 남자아이를 건네받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광주의 군부대였던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분류심사를 받으면서 헌병에게 아이를 인계했다고 한다.

 

노먼 소프 전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찍은 사진 속에 이동춘 교수가 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빨간 네모)이 포착됐다. 이동춘 교수 앞에 앉은 이가 이 교수와 함께 붙잡힌 고 이종기 변호사(파란 네모)다.

 

군 상무대 영창으로 함께 실려 갔던 4살 아이가 총기 사고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친동생이 5·18 때 상무대 헌병이었던 지인한테 ‘그때 시민군이 안고 왔던 아이를 기억한다. 군 막사에서 보호하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군에 비상이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며 “나와 함께 군 영창으로 실려 갔던 4살 어린이와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혀 있는 4살 무명열사가 일치하는지 5·18진상조사위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4살 무명열사의 검시 조서.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엔 ‘4살 무명열사’(4-97)가 묻혀 있다. 4살(추정) 무명열사는 1980년 6월7일 광주시 남구 효덕초등학교 건너편 야산(광주대로 바뀐 당시 인성고 앞)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된 뒤 5·18묘지에 묻혔다. 4살 아이 검시 기록엔 ‘좌후 경부 맹관 총상’(왼쪽 뒷목에 탄알이 박힌 채 사망)이 사망 원인으로 돼 있다. 또 ‘사망자를 30대 여성이 군 짚차(군인 지프차)에 싣고 와서 효덕동 소재 인성고등학교 앞산에 매장하고 그 차로 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4살 아이 주검 주변엔 ‘밤색 여자 세타(스웨터)로 싸고 그 속에 한은(한국은행) 1000원권 1매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주검을 수습했던 광주시청 사회과 전 직원 조성갑(78)씨는 “산등서리(산등성이)에다 묻어놓았더라고요. (주검이) 쬐깐해. 뺏뺏하고. 보실보실한 마사토 땅에 누군가 묻어논 거여”라고 회고했다.

 

4살 무명열사의 신원이나 가족 등은 아직껏 규명되지 못했다. 5·18 행방불명자 78명 중 10대 미만 희생자 이창현(7)·박광진(5)군 가족들과 4살 무명열사의 유전자는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광주시는 옛 5·18묘지에 안장된 무명열사 묘 11기를 새 묘역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행방불명자 가족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해 2002년 3명, 2006년 3명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4살 남자아이 등 5명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경률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팀장은 “5·18 군 버스에 탔던 4살 어린이의 가족이나 지인이 나타나 진상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백골단' 설치던 90년대 초…꽃다운 청춘들이 불꽃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1991년 4월27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강경대 학우 살인 규탄대회’를 마치고 교문을 나선 학생들이 경찰의 물대포 세례를 맞으며 “살인정권 타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명지대생 강경대는 전날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백골단’이라 불리던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사흘 뒤인 4월29일에는 전남대생 박승희가, 5월1일에는 안동대생 김영균이, 5월3일에는 경원대생 천세용이 강경대 사망을 규탄하는 교내 집회에서 ‘살인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했다.

 

5월6일에는 구치소에서 부상을 당해 안양병원에서 치료받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시신마저 백골단에 강탈당했다.

 

5월8일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순천 출신으로 중국집 배달원, 가방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윤용하는 5월10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전남대에서 분신했다.

 

강경대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5월18일에는 부평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이정순이 장례 행렬이 지나는 연세대 정문 앞 철교 위에서, 광주에서는 버스기사 차태권이, 전남 보성에서는 보성고교 김철수가 학교 운동장에서 ‘노태우 퇴진, 참교육 실천’을 외치며 분신했다.

 

보성 벌교청년회에서 활동하던 건설노동자 정상순은 5월22일 전남대병원에서 몸을 불사르며 지역 후배인 김철수의 뒤를 따랐다.

 

5월25일에는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노태우 정권 퇴진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가, 10여분 동안 천여 발의 최루탄을 쏘아대며 시위대를 몰아대던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젊음들이, 그해 오월 공권력에 맞아 죽고 공권력에 맞서 제 몸을 불사르며 죽어갔다. 장철규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공매 매물로 넘겨 미납한 벌금과 추징금 환수에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만원의 형을 확정받았다.

 

6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공공자산 처분시스템 ’온비드’를 보면, 이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29번지 땅과 건물이 지난달 28일 경매 매물로 나왔다. 최저 입찰가는 111억2619만3천원으로 1차 입찰 기간은 오는 6월28일부터 같은달 30일까지다. 입찰은 일반경쟁(최고가 방식)으로 진행된다.

 

캠코에 공매 대행을 의뢰한 기관은 서울중앙지검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미납 벌금과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압류한 논현동 사저를 공매 의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공공자산 처분시스템에 올라온 물건사진. 캠코

 

검찰은 앞서 2018년 4월 이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실명 자산과 차명재산에 대해 추징보전을 청구한 바 있다. 추징 보전은 범죄로 얻은 재산을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조처다. 법원은 같은 달 검찰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논현동 사저, 부천공장 건물과 부지 등을 동결했다.

이 전 대통령 쪽은 강제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을 법원에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