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조연설, 9.19 군사합의 파기 등 비판

 
 
20일 오전 전남 영암군 호텔 현대 바이라한 목포 컨벤션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전남 평화회의'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북한과의 신뢰 구축과 대화를 위해 흡수통일 의지가 없음을 거듭 표명해온 역대 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20일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을 맞아 전남 목포 호텔현대에서 개최된 ‘전남평화회의’ 기조연설에서 “현 정부 들어 9·19 군사합의는 파기됐고 한반도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며 “(현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만을 외치며 대화를 포기하고, ‘자유의 북진’을 주장하며 사실상 흡수통일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구도가 새롭게 강화되고 있다”며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한층 강화되고, 대한민국이 첨예한 대결구도의 최전선에 서면서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신냉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평화의 중재자’로서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대화가 선행되고, 그것을 통해 북미대화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비핵화도 북미 간의 문제로만 미루지 말고,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며 “미국의 대선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북미대화 재개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때 ‘패싱’을 당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 “대화를 하자며 북한의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을 말한다면 대화가 될 리 없다. 대화의 상대를 더 강경하게 만들고 관계를 경색시킬 뿐”이라며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현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 고한솔 기자 >

SCMP "김건희 디올 백 무혐의에 한국 대중 좌절"

김건희 주가조작·공천 개입 의혹도 거론
국정 지지도, 갤럽 이어 리얼미터도 최저

"윤석열, 계속해서 폭풍 같은 비판 직면"
"윤 근본 문제는 누가 뭐래도 제 길 고집"

 

"(한국의) 유권자 대다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된 정치적 관리, 대통령 부인의 추문들, 그리고 높은 생계비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홍콩의 유력지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의 '블리딩덕'(피 흘리는 오리) 윤, 형편없는 지지율에 타격…위기 고조>란 17일 자 기사를 통해 이렇게 전하고 최근 윤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상세하게 다뤘다.

 

31일 서울 시청역앞~숭례문 대로에 열린 105차 촛불대행진의 모습. 이호 작가 사진.
 

'윤석열 실정' 외국 언론 본격 조명 예고

디플로매트 이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이는 나흘 전인 13일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가 '한국 윤석열은 왜 그리 인기가 없는가'란 기사를 통해 취임 후 최저인 윤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내놓은 데 뒤이은 것으로서 윤 대통령 '실정'에 대한 외국 언론의 조명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디플로매트는 윤 대통령 지지율 추락의 주요 요인으로 △의사 파업 △언론탄압 △야당 무시와 불공정 수사 △거부권 남발 △북한 관리 실패 등을 거론했지만,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추문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SCMP는 이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 백 수수 등 부정·비리 혐의와 공천 개입 등 국정농단 혐의 같은 김 여사 관련 논란을 다뤘다.

기사에서 SCMP는 지난 13일과 16일 각각 발표된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두 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먼저 한국갤럽이 10일~12일 전화면접 방식으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윤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3.1%p)에 따르면, 긍정은 취임 이후 최저치인 20%를 기록했다. 취임 직후인 2022년 6월엔 53%로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갤럽이 13일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2024. 09. 13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국정 지지도, 갤럽 이어 리얼미터도 최저

"윤석열, 계속해서 폭풍 같은 비판 직면"

또 리얼미터가 16일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9~13일 자동응답 방식으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3명을 상대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2.0%p)에 따르면, 긍정은 27.0%로 일주일 전보다 2.9%p 하락했고, 기존 주간 최저치였던 2022년 8월 1주차(29.3%)보다도 낮았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에 대해 SCMP는 "윤 대통령이 계속해서 폭풍 같은 비판에 직면하면서 지지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며 "분석가들은 이런 하락이 그의 무능한 정치적 관리, 한국의 치솟는 인플레이션, 현재 진행형인 그의 부인 김건희를 둘러싼 논란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로 널리 인식됐던 지난 4·10 국회의원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참패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야권이 총 300석 중 192석을 얻어 압승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리얼미터를 인용한 SCMP는 특히 추석을 맞아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면서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졌다면서 윤 정부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회복지예산 지출 추정치가 경제 현실과 괴리됐다는 분석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성과 보고회 및 3기 출범식에 참석해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의 인사말 뒤 박수를 치고 있다. 2024. 09.13 [대통령실 통신사진기자단, 연합]
 

"블리딩덕 윤, 얼마나 위태로운지 몰라"

"근본 문제는 누가 뭐래도 제 길 고집"

이와 관련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16일 <디스 위크 인 아시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위기가 윤 대통령에게 몰리고 있다면서 △악화하는 의료 비상사태 △정치적 은폐 공작 의혹들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추문들을 대표적 위기 사례로 제시했다. 최 원장은 "윤 대통령은 자기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르는 것 같다"며 "이토록 낮은 지지율로는 힘의 투사나 통제 유지가 거의 불가능하나 그는 문제의 인정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남은 2년 반 동안 공무원 대부분이 복지부동할 우려가 큰 만큼, 리더십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최 원장은 "그는 지금은 레임덕(lame duck)일 뿐 아니라 블리딩덕(bleeding duck)이다"라면서 "윤(대통령)이 변화를 꺼리고 다른 누가 뭐라고 말해도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건희 씨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생명의 전화'를 살펴보며 대화하고 있다. 2024.9.10 [대통령실 제공.,연합]
 

"김건희 디올 백 무혐의에 한국 대중 좌절"

SCMP, 주가조작·총선 공천 개입 의혹 거론

특히 SCMP는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도 따졌다. 신문은 "대통령 부인 김 여사의 호화 핸드백을 선물로 받은 데 대해 검찰이 3개월 수사하고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들로 대중의 좌절은 악화돼왔다"며 "검찰은 미국 거주 목사에게 받은 선물은 대통령의 공식 직무와 관계가 없는 만큼 형사 고발할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SCMP는 "그러나 김(여사)은 주가조작 의혹들과 총선 후보 공천 개입을 포함해 지속적인 루머들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SCMP는 그러면서 김 여사가 한동안 잠행하다 지난 12일 모습을 드러냈고 서울 마포대교를 방문해 자살 예방 조치를 점검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끝으로 신문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윤성석 교수를 인용해 "윤(대통령)이 극우 또는 친일 관점을 지닌 인물들을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대중의 불만에 기름을 더 붓고 있다"고 전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

끝까지 비루했던 '피에로' 검찰총장, 이원석

● COREA 2024. 9. 18. 13:0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강직한 검사'라는 기만적 연출, 실상은 정권 하수인
비장한 척하다 어이없게 꼬리 내리는 행태 되풀이

"지구 멸망해도 정의 세운다" 퇴임식까지 '정신승리'
검찰개혁 완전히 거꾸로 돌린 윤석열 정권 첫 총장

'살권수' 웃픈 광대놀음 끝에 김건희 '면죄부 쇼'만
"검찰 망친 주요 배역 수행"…역설적 기여가 될까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편집이사

 

기자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검찰의 사건 조작에 관한 기록과 증언들을 접하고 몸서리를 친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에서도 2020년 10월 KBS '시사직격'을 통해 방영됐던 <메이드 인 중앙지검>의 한 장면이 종종 악몽처럼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내가 접했던 국회의원들 가운데 가장 양순하고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김재윤이 2021년 6월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뒤로 그의 노기 가득했던 절규가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입법 로비' 사건이 조작극임을 절규하다 생을 마감한 김재윤의 경우

소위 '입법 로비' 사건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신학용 의원과 함께 기소됐던 3선 중진 김재윤은 의원직을 상실한 채 4년 형기를 다 마치고 출소했다. 그러자 입법 로비 당사자인 김민성 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서종예) 이사장이 김재윤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다. "짜여진 틀에서 저로 인해서 피해를 보신 분들이 (감옥) 안에 계실 때도 저 역시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검찰은 김재윤을 특가법상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한 뒤 징역 7년을 구형한 반면, 정작 금품 로비를 했다는 김민성 이사장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로비 진술을 하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이유로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교비 횡령으로만 기소해 결국 집행유예를 받게 해줬다. 김민성은 나름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했지만 그 '짜여진 틀'이라는 게 뭔지 구체적인 사정은 털어놓지 않았는데, 방송을 보면 전후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재윤 : 만나자는 이유가 뭡니까?

김민성 : 저로 인해서 큰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죄송하다는 말로 용서를 구하는 게 제일 빠른 것 같아서.

김재윤 : 용서를 구한다고 그러면, 사죄한다고 그러면 끝나는 거예요? 진정 용서를 구하는 게 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세요.

김민성 : 죄송합니다.

김재윤 : 용서를 구한다고? 나한테 용서를 구할 자격이 있어요?

김민성 : 제가 그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김재윤 의원 : 무슨 상황이요? 얘기해 봐요. 얘기해 봐요. 그 상황이 뭔지. 그래서 막 나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살고 싶어? 진실을 말해!!!

 

2020년 10월 KBS '시사직격'을 통해 방영됐던 '메이드 인 중앙지검 - 1부 어떤 수사' 중 김재윤 전 의원의 모습. K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김재윤은 출옥한 뒤에도 당시 검찰 수사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의 기획 하에 이뤄진 하명 수사이자 조작극임을 주장하며 주변에 울분을 토했고, 누명을 벗지 못하는 처지를 괴로워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뇌물이 전달됐다는 직접적인 물증은 없고, 검찰에 뒷덜미를 잡혀 궁박한 처지에 놓였던 김민성의 진술뿐이던 이런 유형의 조작 (의심) 사건들이 한국 현대사에 얼마나 많았던가. 반대로 '내 편'의 부정‧비리는 최대한 덮어주는 적나라한 봐주기 수사는 또 얼마나 부지기수였던가.

인혁당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납북 어부들 간첩 조작 사건, 각종 긴급조치 위반 사건, 김근태 고문 은폐 사건, 부림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전두환·노태우 등 쿠데타 및 광주 학살 일당 불기소 결정,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떡값 검사 등 삼성 X파일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KBS 사장 배임 사건, PD수첩 사건, 용산 참사, 이명박 주가 조작 및 BBK·다스·도곡동 땅 실소유 모조리 무혐의 처리, 이명박 관련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 이상득 관련 신한금융 사건, 천신일 비리 사건, 한상률 국세청장 로비 사건,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하베스트 유전 등 자원외교 비리 사건, 장자연 리스트 사건, 김학의 사건, 한명숙 사건, 노무현 사건, 정윤회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부산저축은행 사건, 엘시티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 벤츠 여검사 사건, 윤우진 사건​, 옵티머스·라임 사건,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 조국 사태, 윤미향·정의연 사건, 고발 사주 사건, 울산 고래 고기 사건,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 사건, 문재인 정부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태양광 비리 사건, 통계 조작 사건, 뉴스타파 등의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사건, 그리고 윤석열‧김건희‧최은순의 숱한 '본부장' 사건들….

검찰 적폐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의 현주소…윤 정권 들어 더 악화

상대가 적군이면 광기 어린 사냥개, 아군이면 꼬리만 흔들어대는 애완견 노릇을 하며 극단적인 편파 수사를 일삼고 공소권을 제멋대로 행사해온 상당수 검사들의 적폐가 윤석열 정권 들어 가히 극한으로, 적어도 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은 다수 국민이 공유하는 주지의 사실이다.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설문 문항이 100개가 넘는 시사IN의 대형 프로젝트 '대국민 검찰 여론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검찰청법은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라고 정의하지만 이게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잠꼬대 같은 소리인지 여론조사의 주요 결과를 보자. '다음 진술에 동의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2023년 10월 16일~18일, 한국리서치, 웹조사, 1000명, 95% 신뢰수준에 ±3.1%p)

-검사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다 : '그렇다' 37.4% / '그렇지 않다' 58.2% / '모르겠다' 4.3%

-검사는 권력자의 부패와 기업의 비리를 단호하게 수사하고 있다 : '그렇다' 27.6% / '그렇지 않다' 67.9% / '모르겠다' 4.4%

-검사는 동료 검사 및 검사 출신 인사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게 하고 있다 : '그렇다' 17.4% / '그렇지 않다' 77.1% / '모르겠다' 5.5%

-검찰은 국민의 세금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있다 : '그렇다' 20.4% / '그렇지 않다' 67.3% / '모르겠다' 12.3%

-검찰이 언론에 제공하는 정보는 신뢰할 만하다 : '그렇다' 28.7% / '그렇지 않다' 62.1% / '모르겠다' 9.2%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으로 검찰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졌다 : '그렇다' 19.9% / '그렇지 않다' 72.8% / '모르겠다' 7.3%

-윤석열 정부 이후 검찰은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다 : '그렇다' 23.5% / '그렇지 않다' 66.6% / '모르겠다' 9.9%

-윤석열 정부 이후 검찰은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 대해서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다 : '그렇다' 26.2% / '그렇지 않다' 64.0% / '모르겠다' 9.8%

 

시사IN에서 2023년 11월 8일 보도한 '윤석열 정부는 검찰공화국인가, 시민들에게 물어봤다' [대국민 검찰 여론조사 ①] 중 한 문항.
 

시사IN은 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검찰 공화국'이라고 생각하는지도 시민들에게 물었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출간한 저서 〈디케의 눈물〉에서 한 문단을 발췌하고, 이 글이 누구의 진술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동의 여부를 질문했다.

"군사독재 시대에서는 검찰권이 정치권력의 의도대로 운영되는 정도였다면, 이제 검찰 자체가 정치권력을 잡았다. '권력의 시녀'가 권력 자체가 된 것이다. 검찰청이 경찰청, 국세청, 관세청 등 17개 청 위에 군림함은 물론, 정부 각 부서 요직에 전현직 검사를 배치해 검찰 가족이 지배하는 나라가 만들어졌다."

윤석열 정부와 검사 집단에 관한 이 서술에 대해 62.4%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진보층의 86.5%, 중도층의 59.9%, 보수층도 46.0%가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25.7%에 불과했고, '모르겠다'는 11.8%였다. 아울러 검찰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판단을 물었더니 '보수 쪽에 가깝다'는 응답이 53.4%로 절반을 넘겼고, '진보 쪽에 가깝다'는 12.0%에 그쳤다. 이밖에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다' 16.2%, '모르겠다' 18.3%였다.

어떤 검찰개혁 방안을 더 선호하는지 물으면서 검찰개혁 방안 10가지를 제시했더니 '위법한 잘못을 저지른 검사를 파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가 찬성 84.5%로 1위를 차지했다. '검사는 법률 전문가이므로 검찰개혁은 그들 자신의 손에 맡기는 것이 옳다'라는 방안은 찬성이 21.5%밖에 안 나와 10가지 방안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시사IN은 이 같은 대국민 여론조사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검찰 집단에 우호적인 이들의 범위는 대략 17~32%인 반면 부정적인 이들은 57~72%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비장한 척하다 어이없게 꼬리 내리기 반복…처음 보는 검찰총장

이것이 검찰을 둘러싼 여론의 현주소다. 시민들은 검찰이 매우 불공정하고, 윤석열 정권 들어 상황이 더 악화돼 '검찰 공화국'이 됐으며, 스스로 개혁할 자정능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특수부를 중심으로 한 일부 정치검사들의 작태이든, 검찰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든 이 통제 불능의 폭주 기관차에 급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절박한 상황 인식이다. 그럼에도 검찰독재정권을 떠받치는 정치검사들은 자신들을 '정의의 화신'으로 설정한 가상현실 속에서 국민을 속이려 들고, 그 매소드 연기에 도취해 스스로도 속는 기만극을 태연하게 벌인다. 그런 정신 승리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원석 검찰총장이었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이자 사병으로 밑바닥까지 타락하는 데 큰 책임이 있는 이원석 총장이 15일자로 퇴임했다. 그는 '용산'에 항거라도 하는 것처럼 짐짓 비장한 척 언론을 향해 한마디 꺼냈다가 다음날이면 곧바로 입을 다무는 기묘한 행태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검사 보스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었다. 물론 '직을 걸겠다'고까지 나아가거나 '사표 제출'과 같은 액션은 절대 취하지 않았다. 그 웃픈 처세술은 슬픈 표정의 얼굴 분장을 하고 행동거지는 우스꽝스러운 피에로를 연상케 하곤 했는데, 추석 연휴 전에 앞당겨 퇴임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기하는 듯 비현실적인 너스레를 장황하게 늘어놨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4.9.13. [연합]
 

"별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는 비바람과 거친 파도에 맞서 힘겹게 사나운 바다를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 검찰이 세상사 모든 일을 해결해 줄 '만능키'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검찰을 '악마화'하는 사람들, 양측으로부터 받는 비난과 저주를 묵묵히 견디고 소명의식과 책임감으로 버텨온 시간이었습니다. 마주하는 모든 일마다 오로지 '증거와 법리'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판단하고 국민만 바라보고 결정하려 노력했습니다만…."

"2022년 5월 '수사권 조정'과 소위 '검수완박'을 겪고 난 검찰은 말 그대로 병들어 누운 환자였습니다. 우선 법령과 제도를 바로잡고 정비하여 수사가 업(業)의 본질인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있게끔 복원시켰습니다. 병들어 누운 검찰을 겨우 일어나 앉게 하고, 두 다리로 버티어 서게 하고, 그다음 걷고 뛰도록 만들었습니다. (…)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기소를 통해 공동체의 헌법 질서를 지켜내고자 하였습니다."

"검찰의 주된 존재 이유는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 검찰은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옳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하여 하나하나의 사건마다 '지구가 멸망해도 정의를 세운다'는 기준과 가치로 오로지 증거와 법리만을 살펴 접근하여야 하고, 개인이나 조직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 검찰은 '법의 지배', '법치주의'의 원칙을 끝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강직한 검사'라는 기만적 연출, 실상은 정권 하수인 역할에 충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쏟아낸 퇴임사는 마블 히어로 영화의 대사 같기도 했다. '피에로 총장'은 시종 숙연한 표정으로 지구의 정의를 다 짊어진 듯한 의로운 검사 흉내를 내서 많은 국민을 웃기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헛웃음, 비웃음의 '썩소'라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뭉스러운 연기가 검찰 조직 내에서는 잘 먹힌다고 판단해 마지막 날까지 관객인 후배 검사들 앞에서 혼신의 열연을 펼쳤을 것이다. 임은정 검사는 일찍이 '이원석 선배'를 가리켜 "강직한 검사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그래서 유능하고 괜찮은 검사라고 다른 사람들도 속일 수 있는 검사" "치세에 능수능란한 검사, 난세에 간교한 검사"라고 평한 바 있다.

 

챗GPT가 그린 피에로 일러스트.
 

임은정 검사가 예견했던 대로 이원석 총장은 "검찰을 망치는 주요 배역을 수행하고" 임기 2년을 무사히 채웠다. 2022년 5월 총장 공석 시기에 대검찰청 차장으로 임명돼 총장 직무대행 업무를 수행한 기간까지 합하면 총 2년 4개월간 그는 문재인 정부가 그나마 일궈놨던 검찰개혁 제도 전반을 퇴행시키고 정적 제거를 위한 칼잡이 노릇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그 주변에 대한 전방위적 '인간 사냥'은 이 총장 취임 이후 본격화했다. 이원석 검찰은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의혹, 위증교사 의혹, 쌍방울그룹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대북 송금 의혹, 경기도 법카 유용 의혹 등을 수사하거나 창작하며 지금까지 이 대표를 상대로 2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5차례에 걸쳐 기소해 총선 기간에도 이 대표를 법정에 가두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중이다.

아울러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중 이뤄진 온갖 정책 결정 사안을 권력형 비리 사건인 것처럼 몰아가다 기어이 문 전 대통령 본인까지 '뇌물수수 피의자'로 정조준하는 작업도 이 총장 체제에서 9부 능선을 넘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명예훼손'했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언론인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이 잡듯 압수수색하고 주변 지인과 일반 시민들까지 포함해 무차별적인 통신조회를 벌인 만행도 빼놓을 수 없다. 헌정사상 초유의 제1야당 중앙당 압수수색 세 차례를 비롯해 '나올 때까지 샅샅이 터는' 빈번하고 광범위한 강제수사는 이원석 검찰에서 아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고발 사주' 사건의 피고인 손준성 검사를 도리어 '검찰의 꽃'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온갖 개인적 비위 및 사건 조작에 관한 증거와 정황이 차고 넘치는 이정섭·김영철·박상용·엄희준 검사 등에 대해 감찰 한번 안 하거나 시간만 끌면서 은폐로 일관했다. 이 총장은 심지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물론 불구속기소에도 반대했었다. 윤석열 정권의 첫 검찰총장인 이원석 체제에서 검찰권의 오·남용이 얼마나 극심하게 자행됐는지는 참여연대가 발간한 '윤석열 정부 검찰 보고서' ☜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사IN은 지난해 10월 진행했던 여론조사를 토대로 검찰 집단에 부정적인 국민이 최소 57%, 최대 72%라고 추산했지만 지금은 더 증가했을 게 분명하다.

'살권수'라는 웃픈 광대놀음 끝에 퇴장…"검찰 망친 주요 배역 수행"

'윤석열 사단' 출신인 이 총장은 정권의 충복 역할에 여념이 없다가 막판에 '강직한 검사' 연출에 미련을 못 버렸는지 특유의 슬픈 표정을 머금은 채 '법 앞에 성역도 특혜도 없다' '원칙대로 수사' 타령을 반복했지만 용산에서 코웃음을 치면서 위아래로 발길질을 당하다 맥없이 꼬리를 내렸다. '원칙대로 수사'의 정체가 김건희 씨 공개 소환이나 기소, 또는 대국민 사과 유도도 아니고 단지 '비공개 검찰 소환'을 지시한 게 전부였다는 사실은 더욱 쓴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 이토록 초라한 검찰총장…인사 '패싱'에도 자리에 급급 ☞ 김건희, 무혐의로 가닥…검찰정권의 노리개 이원석

 

이원석 검찰총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4.9.10. [연합]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검사들이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뺏긴 채 '여사님 알현'을 한 데 이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기본적으로 '친검' 성향 인사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다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명품가방을 건넨 당사자인 최재영 목사를 배제한 '반쪽짜리' 회의를 강행하는 면죄부 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얼마나 콩가루 집안인지도 여실히 드러냈는데, 일개 부부장검사까지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화가 난다"며 항명성 사표를 던지자 검찰총장이 "사직 의사 철회와 복귀"를 당부하고, 이에 해당 검사는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와 처리를 위해" 사표를 취소한 소동은 압권이었다. 결국 이 부부장이 속한 김건희 씨 명품가방 전담수사팀은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와 처리' 끝에 오매불망하던 무혐의 결론을 냈고, '찐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이 총장은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고 만족스럽게 치하했다.

최재영 목사의 기소 여부를 심의할 수심위가 오는 24일에야 열리게 되면서 이 총장은 임기 내에 이 사건을 종결짓지도 못하고 퇴임했다. 하물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처리는 언감생심이었다. "(주식 시장에서) 한 번이라도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경우에는 일벌백계로 다스려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고 했던 그 자신의 큰소리는 늘 그랬듯 자학적 개그였을 뿐이다. 이렇게 이원석 검찰의 '살권수'는 총체적인 엉망진창에 난장판으로 막을 내렸다.

'방구석 여포'로 허장성세를 부리던 이 총장의 비루하면서도 우스운 퇴장은 정치검찰의 일그러진 초상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많은 시민의 뇌리에 각인됐을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검찰이 기소청으로 전환하는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면 "검찰을 망치는 주요 배역을 수행"한 이 총장의 기여가 재평가될지도 모르겠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신우익의 범람, 우리는 어떤 지식인을 길러야 하나

● COREA 2024. 9. 18. 13:0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국 청년들 ‘누구 돈’으로 ‘누구 위해’ 연구?

일본 재단, 낙성대 학파 등 신우익에 장학금
일본, 김태효 하나 키워 천·만배 남는 장사?

신우익 기승 근현대사보다 사회과학 더 심각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얼마 전 작고한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스코트(James Scott)는 자신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서 버마 현지조사를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한편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역시 자신이 미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아 중국 공산주의를 연구했다는 것을 나중에 반성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비판하는 <역풍(Blowback)>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젊은 시절 미국의 동아시아 반공주의 전략 구축을 위한 지역연구 작업에 동원되었으나 68혁명 이후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 된 예외적인 학자들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 위해 지식 동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국화와 칼>과 같은 일본 연구도 태평양 전쟁 시기 미 국무부가 일본과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지원한 연구용역의 산물이었다. 사실 1950년대 냉전 초기, 1960년대 후반 데탕트 시기 이후 남미, 동아시아 연구를 한 미국의 사회과학자 중에서 미 국무부나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국가 정치경제 질서의 기둥이 되자 국가와 대학, 국가와 연구개발의 관계는 더 깊어졌다. 세계적 정치학자인 헌팅턴(Samuel Huntington) 등의 비교정치학 이론, 민주주의 이행론도 이런 정보기관의 지원 위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촘스키는 MIT 대학 예산의 90%는 펜타곤(국방부)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이후 서구의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이나 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제국주의 국가나 패권국가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도구로 지역연구 성격이 강했다. 제국이나 패권국은 지역연구를 통해 수립된 이론과 정책을 표준적 지식으로 만들어 자국과 식민지 출신 청년들을 교육한다. 이런 표준 지식을 기반으로 제국의 세계 질서를 유지했다고 하겠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그리고 9·11 이후에도 미국은 적국의 특성과 저항 세력 진압, 그리고 적국 민간인의 동태 파악을 위해 전투부대의 외곽에 사회과학자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정치, 종교, 문화를 연구시켰다. 이런 현장 조사를 토대로 미국은 제3세계 일반에 대한 이론과 거시정책을 수립했다. 19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제국의 세계 경영은 언제나 지식과 이론, 담론과 개념의 지배를 수반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과학의 주류와 지배적 담론이 된 근대화론이나 1990년대 이후의 세계화론, 신자유주의 이론, 특히 규제 완화나 민영화 만능론은 모두 이러한 제국의 세계 지식경영의 틀 속에 있다.

 

문재인, 이재명이 종북좌파라고 주장하며 적대하는 극단적 뉴라이트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의 주변이 아니라 핵심 요직들에 들어가 있다 - MBC '스트레이트'가 취재 보도한 뉴라이트 인사들 현황
 

후발국 지식인, 제국의 눈으로 앞날 고민

남미와 아시아의 후발 국가는 제국의 대학과 연구 기관에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보편 이론으로 정립되어, 거꾸로 이들 나라의 지식인과 관료에게 학습, 전파, 주입되는 표준 지식이 된다. 특히 과거의 식민지나 후발국 출신의 청년 연구자들은 제국의 대학에 유학하여, 자기가 겪은 일들이 자료가 되어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된 과정을 자각할 틈도 여유도 없이. 그들 제국의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해석하고, 그 틀 위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포로가 된다. 박정희 정권 이후의 근대화론, 경제개발이론, 그리고 김영삼 정부 이후의 신자유주의 이론, 오늘 한국의 신우익이 주창한 식민지 근대화론도 모두가 이 제국의 지식 지배의 자장 안에 존재한다.

결국 오늘날 신우익이 주창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 거대한 지구적 지식생산과 재생산 체계 안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그냥 ‘토착 왜구’, ‘밀정’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론 이들의 성격과 이들이 등장하게 된 정치적 맥락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달리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부모님이 준 학비로 공부한 사람에게는 부모님의 기대가 언제나 뒤 꼭지에 따라다니고, 고향의 기업가들이 마련한 서울의 기숙사에서 공부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한 사람들은 고향 어른들의 기대를 의식한다. 국가가 특정 연구 활동을 지원할 때는 당연히 국가의 기대나 요구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런 학비나 연구비를 받아서 교수, 학자가 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준 기관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그 빚을 갚으려 할 것이다.

 

 

일본 재단, 낙성대 학파 등 신우익에 장학금

그렇다면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 대학이나 재단의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받아 국내에서 교수가 되고, 자신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 국가나 재단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까? 만약 이들 국가나 재단이 특정 연구 주제를 제시하였고, 자신이 박사 교수가 되거나 연구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그들이 제시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면, 자신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지원자의 관심과 문제의식의 틀에 들어가지 않을까?

신우익의 대부 격인 안병직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일본 도요타(豐田)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후 출간된 연구서 서문에서 그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였다. 일본에서 연구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안병직은 일본인 학자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의 중진자본주의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기존 시각, 식민지 반봉건주의론을 전면 수정했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을 과거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 정책에서 찾았다. 그의 제자이자 현 신우익의 대표 격인 이영훈 교수 역시 도요타 재단의 지원을 받아 ‘근대 조선의 수리조합 연구’를 수행한 이후, 공동연구를 구상하고 출판을 지원한 재단 측의 인사가 “관대하면서도 헌신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낙성대 학파의 경제학자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본 유학 이후 과거의 ’좌파‘ 이론을 버렸다.

 

일본에서 출간된 이영훈의 또다른 책
 

과거 영국이나 미국도 후발국 청년들에게 그렇게 했지만, 일본의 국가나 기업은 왜 한국 학자들을 지원했을까? 왜 일본은 한국 경제발전이라는 연구 주제를 일본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도록 지원했을까? 결국 일본이 ‘한국 경제발전’이라는 연구 주제를 내걸고 그러한 주제를 연구하는 한국 학자를 육성하려 한 것은 당연히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일본의 국가와 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조직은 단 1원도 손해나는 곳에는 투자하지 않는 법이다. 미국의 포드 재단이나 록펠러 재단이 서유럽과 제3세계에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연구비를 지원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김태효 하나 키워 천·만배 남는 장사?

냉전기 미국의 연구지원은 대체로 거시적인 미국의 국가 이익, 즉 대소련·대중국 견제를 위한 지적 보루, 이데올로기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정보 전쟁,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 질서 구축의 일환이었다. 과거 동아시아나 만주에서 제국 경영의 경험이 있는 일본도 영미의 전례를 따랐다.

과거 일본의 전쟁범죄자인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인 사사카와 요헤이(笹川 陽平)가 주도한 사사카와 평화재단이 연세대 등에 아시아 연구기금의 명목으로 지원한 것도 그렇게 봐야 한다. 과거 고려대의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출간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서울대 인구및발전문제연구소가 행한 일련의 한국의 근대화 연구 작업 등도 겉으로는 민간 재단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으나, 배후에는 미 정보국이나 국무성이 자금 세탁 등의 방식으로 개입된 의혹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6일 “강제징용 판결 문제의 해법을 발표한 건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일본 정부가 미래 지향적인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KTV
 

초기 한국의 여러 대학의 연구소들이 이런 지원을 받아 성취한 연구 성과가 한국 현대사와 경제발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지원한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 경제적 목적을 생각하면, 그런 지원을 통해 한국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고, 어떤 유형의 한국 지식인을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려가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일본 정부와 재단의 지원을 받는 학자들이 모두 신우익, 신친일파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원을 한 측에서 본다면 열 명 중 한두 명이라도 그 나라의 영향력 있는 지식인, 핵심적인 관료나 정치가가 되어 자국의 이익, 자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지 대리인’ 역할을 한다면, ‘투자’한 액수의 천배 만배를 회수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미국의 피바디 대학은 한국의 청년 교육학도들을 훈련시켜 한국 교육 정책의 기초를 마련하도록 했고, 그들이 이후 한국의 교사 양성, 교과서 집필을 관장하여 미국의 대한 정책을 원활하게 만드는 친미적인 여론 형성, 자유주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려 한 것이 아닐까? 제국의 이런 연구지원 정책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일본 문부성 장학생 김태효가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가 현재의 친일 일변도의 대일정책을 집행하는 것이야말로 일본 입장에서 보면 천배 만배 남는 장사가 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이 1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상반기 KDI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규철 경제전망실장. 2023.5.11. [연합]
 

신우익 기승 근현대사보다 사회과학 더 심각[

신우익이 본격적으로 세력화된 이명박 정부 시기의 교과서 포럼이나 한국 근현대사연구회의 활동은 한국 학계 전체의 판도에서는 그다지 위협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학문’을 내걸고 있으나 주류 보수세력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매우 정치화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990년대 말 일본의 극우파가 자신들의 지속적인 집권을 위해 ‘자유주의’ 사관을 내걸고 그것을 반영한 교과서 발행을 위한 일에 많은 물적 자원을 투입했듯이, 한국의 신우익도 한국의 권력과 자본의 후원을 받아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찬양’, 그리고 ‘1948년 건국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결국 윤석열 집권으로 그들은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다.

그러나 사실 사회과학 영역은 근현대사 분야보다 더 중요하다. 특히 시장주의를 종교처럼 받드는 경제학자들은 신우익 집단처럼 요란하게 등장하지 않아도 외환위기 이후, 아니 1990년대부터 한국 주요 대학의 교수진, 정부 국책연구소 연구진의 자리를 독점하여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으로 사회를 획일화하는 기둥 역할을 했다.

서울대. 고대. 연대 등 주요 대학의 교수진과 한국개발원(KDI) 등 국책연구소, 핵심 경제부처는 거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미국 경제학 박사들로 채워졌다. ‘개발주의’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는데 왜 ‘한국개발원’이 여전히 건재한지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개발’을 연구한다는 기관이 왜 100% 미국 유수 대학의 박사들로만 채워지는지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대학의 훈련 과정, 교수진의 학문적 우수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인 점도 있지만, 우리 자체의 독특한 문제가 있고, 그것은 외국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요 대학의 경제학자들, 국책연구소의 경제학 박사들이 과거 한국의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에 어떤 경고 사인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경제문제, 특히 양극화와 불평등, 그리고 산업전환의 큰 위기 상황에서 어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다.

 

비가 내린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열린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을 마친 졸업생들이 교문 인근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22.8.29. [연합]
 

한국 청년들 ‘누구 돈’으로 ‘누구 위해’ 연구?

그렇다면 한국의 국가, 대학,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각종 연구소는 과연 한국의 국가 이익, 국민의 이익을 위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사명감을 지닌 연구진을 육성하고 있는가? 사실 국가주의는 낡은 가치이지만 19세기 이후 어느 나라도 국가의 기간산업, 안보, 국민의 기본적 삶에 관한 문제를 사기업의 지원에 맡긴 적이 없다. 기초연구나 장기 지원은 오직 국가만이 할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국가의 물질적 정신적 토대 구축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권 국가로 구성된 세계 질서를 부인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국립대학이나 국책연구소는 일차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지식인을 양성해야 하고, 국가의 미래, 국가의 안보와 지속가능성, 다수자인 국민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을 양성하는 임무가 기본이다. 부자 한국은 어떤가?

오늘 이 신우익의 정치화는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의 대학원 박사과정의 공동화, 대학연구소의 사실상의 연구기능의 취약성, 정부의 임기응변적 대학 정책, 학문 정책의 부재, 장기적인 기초분야 연구지원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개념을 갖지 못한 경제부처나 교육부 관료, 그리고 야당 정치세력의 학문과 지식인 정책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신우익의 정치화, 국민의 상식을 비웃는 그들의 도착적인 일제 식민지 지배 미화론을 보면서 분노하거나 한탄하기 이전에 누가 이런 논리를 갖는 사학자나 경제학자들을 길러냈는가를 물어야 한다. 즉 우리는 지금 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한국의 청년들이 ‘누구 돈’으로 ‘어떤 주제의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지식 수입국, 연구자 수입국의 처지에 머물면서, 강대국의 이해를 마치 자신의 것 인양 받아들이는 ‘마름’형 지식인만을 만들어낼 것인가?

기업 등 민간 연구소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국 기업 중 SK(과거의 선경)처럼 미래지향적 엘리트 양성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올라선 한국의 대기업들이 미국의 포드, 록펠러 재단, 일본의 도요타 재단 정도의 장기적 지식투자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시민사회의 취약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대학과 국책 연구기관의 역할을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민족 사학, 민족 사회과학을 제창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나 민간 모든 영역에서 한국은 국가나 민족,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미래는 물론 더 나아가 지구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지식인을 양성할 수 있는 고등교육, 연구 지원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1948년 건국론, 식민지 근대화론 따위를 둘러싸고 한국인들끼리 치고받는 것은 너무나 한심하고 창피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