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권영세 증인채택도 불발… “하나마나 낙제점”

지난 16·19일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는 내외 국민들의 큰 관심과 기대에도 불구,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감싸기와 민주당의 무능력, 증인들의 선서 거부와 ‘모르쇠’ 전략 등으로 별무 소득인 채 하나마나한 청문회가 됐다.
정치 평론가들은 한마디로 낙제점 청문회였으며 제도 자체를 크게 보완해야 할 문제점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를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민주당 요구를 새누리당이 거부하면서, 21일 3차 청문회는 사실상 무산됐다. 
정치 전문가들은 국정원과 경찰을 엄호하고 나선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의 태도를 진상규명을 가로막은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했다. 마치 국정원과 파트너처럼 변호인 역할에 몰두한 새누리 특위원들의 태도는 국정원의 ‘셀프 개혁’을 주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가 방어전략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 훼손 등 청와대의 우려에 대해 알아서 처신한 것 같다는 지적이다.
 
과거의 청문회와는 달리 청문회를 무시하고 무력화시킨 증인들의 선서 거부와 조직적인 말 맞추기 등도 실패로 몰아넣은 원인으로 꼽혔다. 과거 청문회 증인들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경우가 대체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원세훈·김용판 증인뿐 아니라 서울경찰청 증거분석관 13명도 일사불란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여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냄새를 물씬 풍겼다.
비록 ‘낙제점 청문회’였지만,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지난해 12월15일 점심 의혹’ 제기와 그의 ‘위증’ 의혹이 불거진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라는 시각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의 증언으로 김 전 청장의 위증 논란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성공단 재개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7차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이 14일 개성공단에서 열렸다. 사실상 마지막이 될 이날 회담은 공단 존폐를 가늠하는 고비다.
최대 쟁점은 지난 6차례의 회담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유사사태 재발방지 문제와 이번 사태의 책임주체 문제로, 남북한이 모두 긍정적 태도로 회담에 임해 정상화 합의 기대를 높였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본 개성공단 모습이 평화스럽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현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1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한 국정원개혁국민운동본부 천막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외면을 규탄한 뒤 시청역 지하철 출구에서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천막 설치 첫날이던 8월1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2도였다. 땡볕이었다. 천막 안에서도 밖에서도 더위를 피할 수 없었다. 광장의 유일한 그늘은 ‘한강으로 피서 가요’라는 글귀가 적힌 서울시 애드벌룬이 만들어준 3×3㎡ 크기의 그림자뿐이었다. 그림자가 움직일 때마다 예닐곱 명이 옹기종기 따라다녔다. 누군가 “음지에서 일하는 건 그 사람들인데”라고 하자 다들 폭소를 터뜨렸다.



서울광장에 울려퍼지는 “남·해·박·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민주당 천막 상황실에는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시청역 4번 출구 앞에서 홍보물 배포에 나섰다. 지나던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전단지를 받아갔다. 평일 낮 서울광장에 사람이 많을 리 만무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은 조를 짜 인근 지역을 돌아다녔다. 김 대표에게서 전단지를 받아든 안아무개(73)씨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늘 민주당이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광장 한쪽에서는 서로 처음 만났다는 40~50대 남성 5명이 ‘시국 토론’을 하고 있었다. “제가 못 배워서 대학 나온 사람은 다 우러러봤는데, 지금 국정원 사건 돌아가는 걸 보면 배운 사람들도 별거 아니더라고요.” “배웠다는 놈들이 더해.” 전병헌 원내대표로부터 전단지를 받아든 한 20대 여성은 “출근하는 길이에요. 별로 관심 없어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남·해·박·사!”

서울광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구호다. 시국선언에도 빠짐없이 나오는 얘기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을 해임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라는 것이다. 촛불과 시국선언은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와 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장외투쟁 선언으로 국정원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촛불’이 어떤 양상으로 번져나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건 국정원에 ‘셀프 개혁’을 주문한 뒤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목소리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는 점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새누리당과 얘기하는 건 이제 무의미하다.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민심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 담판 회담을 제안했다(<한겨레> 8월3일치 1면). 이용득 최고위원은 8월2일 천막 상황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은 대통령이 묵묵부답하고 있다 해서 오히려 물타기로 일관하고 있다. 너무 격이 낮고 역사적으로 창피하다. 새누리당은 억지놀음을 그만두라. 박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월29일부터 4박5일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전가의 보도가 된 ‘대선 불복론’

‘휴가’는 민주당이 광장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7월28일 기자들에게 “다른 의원들은 쉬는데, 특위 위원들만 일하고 있다. 7월 마지막 주는 너무 덥다”고 말했다. 7월26일로 예정됐던 국정원 기관보고를 8월5일로 미룬 뒤 한 얘기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휴가에 맞춰 줄줄이 여의도를 떴다.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했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7월30일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에 참석한다며 폴란드로 출국했다. 최경환 원내대표와 국조특위 의원들도 지역구에 내려갔다. 민주당에서는 “국정조사는 휴가 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박지원 의원)는 자조가 터져나왔다. 민주당은 7월31일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박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휴가지에서 찍은 ‘저도의 추억’ 사진을 ‘셀프 공개’한 다음날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침대축구를 하고 있다. 축구장에 거의 드러누워 경기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국정조사를 수행할 수 없다. 제대로 하려면 국민의 힘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외투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무력화에 성공했다고 낄낄대고 있는 듯하다”(김한길 대표), “새누리당은 민생에 무능하면서 나쁜 짓에는 유능하다”(전병헌 원내대표)는 민주당 지도부의 말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민주당이 무능하고 무력했다는 고백과 다름없어 보인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선 불복 프레임’을 들이대고 나섰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대선을 통해 증명된 국민의 선택을 거부하고 대선 불복 운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굴욕적인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저항했던 ‘2008년 촛불’도 대선 불복이라고 끼워맞춘다. 권성동 의원은 “민주당이 2008년 대선에 불복하면서 촛불집회를 일으켜 나라를 아주 어지럽힌 전례가 있다. 이번 대선에도 불복하는 심리가 민주당 저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계파주의는 새누리당이 ‘대선 불복 프레임’을 들이대는 데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윤상현 원내수석 부대표는 민주당의 장외투쟁 선언을 비난하면서 “계파 우선주의를 벗어던지기를 촉구한다. 한 지붕 두 가족이 아니라 두 지붕 두 가족이 되는 야당발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까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소수 친노 강경파에 끌려다니는 민주당 지도부가 안쓰럽다”고 말했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을 포함한 수구 언론들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대선에 불복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촛불연대’가 조심스러운 민주당

민주당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프레임이다. 김한길 대표는 8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대선 불복이나 선거 무효 주장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대선 불복이 아니냐고 억지를 쓰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이 ‘촛불연대’를 적극 꾀하지 못하는 데는 민주주의 회복 요구를 대선 불복으로 몰아붙이는 프레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8월3일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보고대회’를 열기로 했다. 1시간 뒤 같은 장소에서 참여연대·민변 등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에는 당 차원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제한적 연대’인 셈이다. ‘대선 불복 프레임’이 오히려 새누리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촛불집회에 ‘박근혜 OUT’ ‘대선 무효’ 등의 구호나 손팻말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를 야당의 공식 요구 또는 선거 불복이라고 주장하는 건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국민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정작 급한 당사자는 새누리당 아닌가? 떳떳하다면 새누리당이 먼저 죽기 살기로 나서서 관련자 모두를 국정조사에 불러들여 의혹을 낱낱이 밝히는 게 상식 아닌가? 진실을 규명하자는 국민의 요구를 대선 불복으로 몰아붙이는 새누리당의 정치 공세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새누리당에 돌아갈 것이다.”(이정미 정의당 대변인)

“여당이 왜 그렇게 국정원 국정조사를 거부했는지 모르겠다. 국정조사가 이뤄지면 뭔가 국민이 모르는 엄청난 것이 터지나 하는 의혹만 키워놨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이부담은 다 집권당한테 갈 거다. (새누리당이) 그렇게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8월15일이 시한인 국정조사 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물밑 협의를 이어가는 등 국정조사 정상화의 길을 열어둔 상태다. 다만 여야가 증인 채택 등에 합의해 국정조사가 재개되더라도, 서울광장 천막은 걷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남·해·박·사’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천막을 친 것은 우리지만 걷는 것은 박 대통령의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생각’을 보여줄 것인가

요즘 인터넷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국가정보원에는 기밀이 없고, 국가기록원에는 기록이 없고, 민주당에는 능력이 없고, 새누리당에는 양심이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생각이 없다’는 만평(<한겨레> 8월2일치)도 등장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민주당은 능력을, 새누리당은 양심을, 박 대통령은 생각을 보여줘야 할 때란 얘기다.
<이지은 기자, 김외현 기자>


그동안은 못 했나 안 했나?

● Hot 뉴스 2013. 7. 26. 18:49 Posted by SisaHan

지난 7월1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시의 시공사 사옥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한 미술품을 트럭에 싣고 있다.


기자: “추징금은 언제 내실 건가요?”
전두환: “당국에서 알아서 하겠지, 뭐.”

이순자: “그런데요, 잘 아시겠지만 그 돈은 우리가 낼 수가 없어요. …각하 거는 성의껏 다 냈어요. 그건 알고 계세요.”

전두환(82)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74)씨는 지난해 4월11일 오전 서울 연희동 주민센터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만난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날 “깨끗한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던 전씨의 성의가 부족해서였을까. 그가 말한 ‘당국’이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받아내겠다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징금? 당국이 알아서 하겠지 뭐”

검찰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전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이었다. 지난 7월16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집행팀’(팀장 김형준, 이하 특별집행팀)과 외사부는 김민형 전담팀장과 수사관 7명을 보내 재산 압류 절차를 시작했다. 국세징수법에 따른 미납 추징금의 압류였다. 수사관들은 7시간 동안 전 전 대통령의 집을 훑으며 ‘압류 딱지’를 붙였다. 이날검찰은 시가 1억원이 넘는 이대원 화백의 대형 그림과 이순자씨의 자개장롱 등을 압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관들은 집 안에 숨겨둔 금고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금속 탐지기도 동원했다.

같은 시간 검찰은 전씨 친·인척의 자택·사무실도 찾아갔다. 전씨의 큰아들 전재국(54)씨와 둘째아들 재용(49)씨, 딸 효선(51)씨, 처남 이창석(62)씨, 동생 전경환(71)씨와 그의 부인 손춘지(69)씨의 자택 등 5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재국씨가 대표로 있는 서울 서초동 시공사와 그 계열사,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 재용씨가 대표로 있는 비엘에셋 등 사무실 12곳도 압수수색했다. 전씨가 친·인척 등을 통해 은닉하고 있는 재산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검찰은 80여 명의 수사관을 투입해 이뤄진 압수수색에서 내부 문서와 회계자료, 금융자료, 전산자료 등을 확보했다.

압수수색은 사흘 내내 이어졌다. 시공사 사무실 등에서는 300점이 넘는 미술품이 쏟아져나왔다. 재국씨 소유인 것으로 알려진 이 미술품은 전 전 대통령의 재산으로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국고로 귀속된다. 아직 진위가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압수 미술품 가운데에는 박수근·천경자 등 우리나라 근·현대 유명 작가들의 그림과 불상, 병풍, 공예품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파주 시공사의 창고에서 많은 양의 미술품이 발견되자, 검찰은 미술품 등을 운반할 때 쓰이는 무진동 차량을 보내 이송했다. 검찰은 압수한 물품을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조를 받아 국립 미술관 가운데 한 곳에 보관하기로 했다. 실제로 미술품의 구입 자금 출처 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씨는 전체 추징금의 4분의 1만 낸 상태다. 1997년 내란 및 뇌물수수 혐의로 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받은 그는 그동안 533억원만 납부했다. 앞서 검찰이 미납 추징금을 걷기 위해 2003년에도 그의 재산을 공개해달라는 ‘재산명시 명령’을 법원에서 받아내 전 전 대통령의 자택 별채와 동산 등을 가압류해 경매 처분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택 내부에 들어가 재산 압류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전두환에게 사형 구형했던 검찰총장

이번 특별집행팀의 미납금 추징 활동은 과거와 달리 단순한 시늉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특별집행팀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채 총장은 전씨가 법정에 섰던 1996년 5·18 특별법에 따라 꾸려진 특별수사본부의 검사였다. 채 총장은 당시 반란 수괴와 상관 살해 미수, 뇌물 등의 혐의를 적용해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바 있다. 법정에서도 채 총장은 전씨와 설전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 이런 전씨와의 ‘악연’으로 미뤄볼 때, 전씨 일가의 은닉 비자금을 종합적으로 밝혀내겠다는 검찰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미납금 환수의 바탕이 되는 법적 근거도 탄탄해졌다. 추징 작업도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특별집행팀을 꾸린 것은 전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 시효가 오는 10월 만료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특별집행팀은 미납 추징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채 총장의 지시로 지난 5월 꾸려졌다. ‘추징 여론’이 높아지자 정치권에서도 미납 추징금 환수 시효를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추징금 환수 시효가 2020년 10월까지 늘어나 특별집행팀도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이 법안은 추징 대상을 당사자에서 가족 등 제3자로 확대해서, 전씨 일가와 측근이 소유한 재산 가운데 그 뿌리가 전씨의 비자금이라는 사실만 밝혀내면 추징이 가능하게 됐다.

검찰은 지난주 동안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계좌 추적 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씨가 친·인척 명의를 빌려 차명계좌를 개설해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의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국씨가 해외에 비자금을 빼돌렸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재국씨는 2004년 조세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인 ‘블루아도니스’를 세우고 아버지의 비자금을 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씨 일가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3억~5억원씩 쪼개 수백 개의 가명 및 차명 계좌에 넣은 뒤 평균 석 달마다 계좌를 옮겨 자금을 세탁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일가 보험 가입 현황까지 조사

‘숨은 비자금 찾기’는 검찰의 계좌 추적뿐만 아니라, 전씨 일가의 보험 가입 현황 조사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차명 거래나 현금납입이 가능한 보험상품이 고위층의 비자금 은닉처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검찰 특별집행팀은 서울국세청 조사4국과 함께 지난주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신한생명·삼성화재 등 보험사 5곳에 전씨 일가와 측근이 가입한 보험 계약 정보를 넘겨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전씨 일가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채권의 출처를 얼마만큼 밝혀내는지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현금 거래가 많고 유통 경로가 복잡한 그림·불상 등 미술품과 달리 채권은 자금 출처를 파악하기가 좀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특별집행팀의 수사가 성공적으로 끝나, 전씨 일가의 ‘변명’이 더는 들리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 김성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