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편소설 쓸 때마다 질문들 견디며 그 안에 산다“

 

 
 
7일(현지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스톡홀름/로이터 연합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수백여명의 청중이 한강 작가만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1979년 4월 여덞 살 적 지은 시를 고요히 읽어 내려갔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7일(현지시각)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한강 작가의 연설 제목은 ‘빛과 실’로, 그의 한국말은 나긋하지만 한 공간을 가득 매웠다. 유년기 광주에 살았던 그는 곧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될 것이란 걸 알게 된 뒤 공책과 문제집, 일기장에 끄적였던 시들을 모아 ‘시집’을 만들었다. 한강 작가는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매해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 주간(Nobel Week·5∼12일)에 참석해 자신의 성취물이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한강 작가도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공개한 자리이기도 한 한림원 그랜드홀을 찾아 대중을 만났다. 그는 1993년 작가 생활을 시작한 뒤 31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필한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며 만난 질문은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했다.

7일(현지시각)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이 열린 스웨덴 한림원에 비치된 한강 작가의 작품들. 사진 볼리비아 저널리스트 하비에르 클루어(Javier Clure) 제공

소설가의 일, “질문들을 견디며 사는 일”

한강 작가는 장편소설을 쓰는 일을 “질문들을 견디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장편소설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7일(현지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스톡홀름/로이터 연합뉴스

질문과 함께 사는 소설가는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과 끝마친 시점에 있어 같은 사람일 수 없다. “변형된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며 새로운 소설로 나아간다. 한강 작가는 장편 ‘채식주의자’와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을 내놓기까지 품어 온 질문을 이 자리에서 나눴다.

특히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끊고자 한 주인공 영혜와 언니 인혜, 그 주변 인물들을 다룬 책 ‘채식주의자(2007년 출간)’ 앞에서 한강 작가는 이렇게 질문한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한강 작가는 이 책을 통해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맨부커상 국제 부문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인지도를 지닌 작가로도 발돋움했다.

한강 작가가 7일(현지시각)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을 했다. 지난 10월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던 마츠 말름 상무이사(왼쪽)와 한강 작가(오른쪽). 스톡홀름/AP 연합뉴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는 특히 광주 항쟁을 다룬 책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다룬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며 품어 온 질문을 소개하는 데 연설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012년 ‘희랍어 시간’을 발표하기까지 그는 주로 개인을 향한 폭력과 그 내면을 파고들며 인간다운 삶과 생명의 의미를 물었다. 희랍어 시간을 쓴 뒤엔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도 애썼다.

하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서가에서 우연히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발견했을 때 껴안은 질문을 다시 마주한 것이다. 이 사진집엔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에 저항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이 담긴 사진과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병원 앞에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의 사진이 함께 놓였다. 인간의 상반된 모습이 담긴 이 사진들을 본 한강 작가가 품은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1년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쓸 때도 비슷한 질문을 곁에 뒀다.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정심’은 오빠의 유골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애도를 종결하지 않으며 끝끝내 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한강 작가는 이 책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았다.

7일(현지시각)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 청중들이 집중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던, 한강의 소설

이렇게 절실한 질문의 끝에서 한강 작가가 되돌아온 곳은 45년 전의 어렸던 그가 “사랑이란 어디에 있는지, 사랑은 무엇인지” 묻고 답한 시였다. 어린 한강은 사랑이 “나의 심장”이란 개인적 장소에 위치하고, 사랑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라고 답했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뒤, 소설을 읽고 고통을 느낀 독자들을 보며 이들의 고통이 자신이 소설을 쓰며 느낀 고통과 “연결”돼 있었다고 했다. 이 고통의 이유를 두고 그는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라며 처음으로 사랑을 생각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정심’을 들여다보면서는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 물음의 끝에서 결국 한강 작가는 자신의 모든 소설이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의 모양을 한 대답을 내놓았다. 

7일(현지시각)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리는 한강 작가의 연설을 듣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쓰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

한강 작가의 다음 소설은 어떤 사랑에 관한 질문을 던질까.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이후 그는 새 소설을 쓰고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책을 완성한 뒤 다음에 쓸 소설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소설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일 것이라는 힌트를 남겼다.

그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한강 “장편소설 쓸 때마다 질문들 견디며 그 안에 산다“

노벨상 강연문 전문

 

 
 
7일(현지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스톡홀름/로이터 연합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7일(현지시각) 스웨덴 한림원에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1979년 4월 여덟 살 때 지은 시를 읽어내려가면서 시작한 강연에 수백명 청중은 귀를 기울였다. 6개 노벨상 중 문학상 수상자만 한림원에서 연설을 한다. 한강 작가의 연설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표가 매진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음은 한강 작가 강연문 전문.

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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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강 “맨손으로 무장 군인 껴안으며 막는 모습…용기 느껴”

스톡홀름 노벨상 수상 기념 회견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축제와 같은 12월을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지만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 들어선 현재, 한강 작가는 가장 먼저 계엄의 밤을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

한강 작가는 이날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사회자가 한국의 정치 혼란을 언급하며 “이번주가 어떠셨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 소년이 온다 ’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에 대해 공부를 했었”다며 “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 1980년 5월과 이번 겨울의 차이라고 짚었다.

그는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는” 모습,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 “총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는 잘 가라고 마치 아들들한테 하듯이 소리치는 모습”을 언급하며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일 밤 국회에 투입됐던 “젊은 경찰”과 “젊은 군인”들이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이어 “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답변을 마무리했다.

지난 10월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언론 접촉이나 행사 참석을 최소화했던 한강 작가가 처음으로 전세계 독자와 대중을 향한 메시지를 낸 것이다.

세계 언론은 ‘민주주의 모범국’ 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사태를 연일 주요하게 보도하며 이날 회견에서 한강 작가가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촉각을 세웠다. 특히 그가 2014년 작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령이 내려진 1980년 광주의 상흔을 세심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이날 한 스위스 언론도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한강 작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실을 언급하며 표현의 자유 훼손에 대한 우려가 되지 않는지 물었다. 한 작가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언어는 눌러 막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계속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낙인…“가슴 아프다”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를 둘러싼 국내의 오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최근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는 이 소설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라며 초·중·고교 도서관 비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소설은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려는 주인공 영혜를 남편과 언니, 형부의 시각에서 다룬다. 이에 대해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는 2019년 스페인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한국과는 다른 스페인의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은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라며 “(책은)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게 이 책의 운명이란 생각도 든다. 책을 쓴 사람으로선 이 소설에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를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또한 채식주의자가 “어떤 사람이 완벽하게 폭력을 거부하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녀(주인공 영혜)를 둘러싼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가하는 점”이라며 “영혜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녀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 세계의 폭력이 더 미쳐있는 것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의자에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2023년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서명 보인다. 스톡홀름/AP 연합
 

 

그래도, 다시 ‘희망’을 말한다

지금의 혼란과 실망에도, 기자회견 말미에서 한강 작가가 말한 건 ‘희망’이었다. 그는 “때로는 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대 문학의 의미를 되짚는 질문엔 “문학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을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행위다. 이를 반복하며 내적인 힘이 생기게 된다”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문학은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이날 일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노벨 위크(Nobel week·5∼12일)’ 활동에 참여한다. 그는 “처음엔 제게 쏟아지는 개인적 관심에 부담스러웠지만, 이 상은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이제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되었다. 오늘 이후로 노벨 주간을 즐기려고 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에 가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를 펴낸 스웨덴의 대표 아동문학 작가다.

한강 작가는 7일 수상자 강연을 마치고, 10일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한강이 기증한 ‘작은 찻잔’…“날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톡홀름 노벨상 박물관에 기증한 소장품인 작은 찻잔. 연합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을 찾은 한강 작가는 6일(현지시각) 노벨상 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당시 썼던 ‘작은 찻잔’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는 “찻잔은 나를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과 같았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축하하는 ‘노벨 위크(Nobel Week·5~12일)’ 이튿날인 이날, 수상자들은 노벨상 박물관에서 처음 만났다. 박물관이 준비한 수상자 소장품 기증 행사에 선 한강 작가는 옥색빛이 감도는 작은 찻잔을 기증했다. 수상자에게 의미가 있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건 노벨 주간 이뤄지는 오랜 전통이다. 박물관은 이 물건을 영구 전시하고, 관람객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한다. 한강 작가는 이날 오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찻잔은) 내게 굉장히 친밀한 사물이었다. 조용하게 한마디를 건네는 느낌이 좋아서 (기증한) 거였다”며 하루에 몇 번씩 책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딱 그 잔만큼 홍차를 마셨다. 찻잔은 계속해서 저를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6일(현지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스톡홀름 노벨상 박물관에서 수상자만을 위한 특별한 방명록인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을 남긴 뒤 의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 작가가 찻잔을 기증하며 함께 보낸 자필 메모엔 이렇게 적혔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1.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한강 작가는 올해로써 작가로 활동한 지 31년이 됐다. 그는 “메모에 쓴 것처럼 그 루틴을 지키면서 살았다면 아주 큰 거짓말이고, 대부분은 방황하고 무슨 소설을 쓸지 고민하고 잘 안 풀려서 덮어놓고 걷고 그런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그 찻잔을 사용할 땐 열심히 했다. 가장 열심히 했던 때의 제 사물을 기증했던 것이다” 라고 말했다. 차를 즐겨 마신다는 한강 작가는 지난 10월10일 노벨문학상 선정을 알리는 노벨위원회와의 첫 통화에서도 “차를 마시고 싶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며 소감을 전했다.

수상자들은 박물관 레스토랑에 놓이는 의자에 친필 서명을 하는 것으로 축제의 막을 열었다. 노벨상 제정 100주년인 2001년부터 이 전통이 만들어진 뒤 수상자들은 해마다 특별한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다. 검정빛 정장을 차려입은 한강 작가도 의자 바닥면에 서명한 뒤 환한 미소를 띄웠다.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찻잔과 함께 남긴 메모. 연합

< 한겨레 스톡홀름 장예지 특파원 >

 

언론단체 “국민의힘은 내란 수괴 윤석열 비호한 반헌법 세력”

7일 윤석열 탄핵안 폐기 뒤 긴급성명

 

 
 
국민의힘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일제히 퇴장하고 있다. 앉아 있는 이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윤운식 선임기자
 

투표 거부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폐기를 주도한 국민의힘을 향해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11개 언론현업단체가 “내란 수괴를 비호한 반헌법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윤 대통령 탄핵안이 폐기된 직후인 7일 밤 긴급 성명을 내어 “내란 동조 국민의힘은 해체하라”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에 탄핵 찬성표를 던졌던 보수정당이, 불법계엄으로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으려 했던 내란 수괴 윤석열을 끝내 비호하는 세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라며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해 모인 시민들의 염원을 짓밟고, ‘질서 있는 퇴진’을 빙자해 이제는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폭군의 안정을 보장하고 말았다”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이 나라가 극도의 정정 불안, 경제 위기, 신인도 추락에 빠져도 자신들만 살면 된다는 반민주·반헌법 세력임을 국민 앞에 선언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들은 또 “언론현업단체는 이 조직적 투표 거부와 탄핵안 폐기를 주도한 국민의힘에 더 이상 공당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선언한다”며 “지난 3일 밤 국회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쿠데타에 투표 거부로 동조한 국민의힘이 어떻게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민주 정당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내란공범을 자인한 국민의힘은 이제 명백한 위헌정당, 민주주의의 적이다.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넘어 내란에 동조한 위헌정당 해체에도 발 벗고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 참여해 부결시킨 뒤 곧바로 퇴장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정족수(200명)를 채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야당 192명과 국민의힘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세 의원이 표결에 참여했으나 의결 정족수 5명이 모자라 탄핵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됐다.   < 한겨레 박강수 기자 >

 

5·18단체, 탄핵안 폐기에 “국민 뜻 배신한 국힘 책임 끝까지 추궁”

 
7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정족수가 부족해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된 것과 관련해 광주 5·18단체들은 불의와 독재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공법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된 7일 입장문을 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는 반란군 수괴의 충견들로 무시당하고 또 한 번 처참히 짓밟혔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이어 “탄핵안 부결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국민의 힘이 반란군의 충성스런 개가 돼 국민의 절규를 외면한 결과”라며 “5·18 역사적 가치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데 앞장서온 윤 정권을 국회가 용인하고 탄핵을 부결시킨 것은 민주주의를 희롱하고 국민을 배신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탄핵안 부결은) 독재와 불의에 동조한 정치 세력과 그 잔재들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5·18 단체는 결코 이 부당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과 그를 비호한 모든 세력의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겠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 정대하 기자 >

 

교수·연구자 단체, 탄핵 표결 무산에 “셀프 면죄부…끝까지 투쟁”

 
주요 시민단체와 노조가 4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퇴진광장을 열자! 시민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교수·연구자 단체인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 무산에 대해 ‘셀프 면죄부’를 받았다며 규탄했다.

민교협은 8일 ‘이제 우리 시민은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이름으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 사형을 선고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해 “7일 국민의힘은 끝내 윤석열 탄핵 표결을 무산시켰다”며 “3일 밤의 끔찍한 친위쿠데타 기도는 윤석열의 ‘우리 당’에 의해 셀프 면죄부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민교협은 “탄핵 부결이 초래할 국가의 위기와 분열은 짐작할 수 없이 심각하다”며 “향후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윤석열과 반란의 공범·종범들, 또 추경호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체는 “저희 교수·연구자들은 이 정권이 완전히 종식돼 새로운 공화국의 기틀이 마련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교협의 내부 단체인 전국교수노동조합 또한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 “100만에 이른 군중들이 대통령 탄핵을 외쳤”으나 “국민의 공복인 국회의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내팽개쳤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며 “우리 교육 노동자들은 더는 참을 수 없어 광장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친다”고 밝혔다.              < 한겨레 신소윤 기자 > 

한국노총 “반역자 무리들,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국회 앞 탄핵집회 연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7일 “윤석열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대통령 자격 없다는 것을 시인했다”며 “내란범죄 수괴 윤석열과 윤석열의 수괴 김건희에게는 비참한 최후만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3차 총궐기 대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김 위원장은 “내란 공범 국민의힘도 준엄한 국민의 심판 칼날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의원으로서 국민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하지 않겠다. 잘 하라고 않겠다. 그러나 마지막 양심은 지켜달라”고 했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탄핵 반대 의견이 다시 힘 얻고 있는 것에 대해서 비판한 것이다.

이날 5시,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부결돼도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반역자 무리들은 쓸어버리고 역사의 심판대에서 처단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 탄핵 부결된다면 한국노총 150만 조합원은 용산으로 달려가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역 세력들하고는 1분 1초라도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단 마음으로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최후 승리하는 날까지 한국노총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 반드시 승리해서 반역 무리 윤석열과 김건희 일당을 쓸어버리자”라고 말했다. < 경향 고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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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안 자동폐기에 민주당 광역단체장 “국민의힘이 국민 배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투표 불성립'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
     

    국회에서 대다수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의 불참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자동 폐기되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즉각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7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자동 폐기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스엔에스)에 “국민의힘이 국민을 배신했다. 어떻게 쿠데타를 용납할 수 있나. 다시 쿠데타 정당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 아닌가”라며 “조기 퇴진, 질서 있는 퇴진은 국민 기만에 불과하다. 가장 질서 있는 퇴진은 즉시 퇴진, 즉시 탄핵밖에 없다”라고 했다. 김 지사는 이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에도 “사과가 아니라 사퇴만 남았다. 즉시 퇴진, 즉시 탄핵뿐”이라는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렸고 국회 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여했다.

    강기정 광주시장도 이날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오늘 국민의힘 의원들은 투표를 거부하면서 ‘실패한 쿠데타’에 면죄부를 줬다”며 “지금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만 국민은 강하고, 역사는 발전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도 “(탄핵소추안 폐기로)국민의 분노가 어떻게 치솟을지 예단키 어렵다”며 “결과와 관계없이, 반헌법적 계엄에 대한 책임은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글을 통해 주장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분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는 글을 올렸고,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내란죄에 동조한 이들이 국민을 끝끝내 배신했다”고 했다.   <  한겨레  이승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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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인 처단” 포고령 반발, 병원단체들 ‘의료개혁특위’ 참여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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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 연합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별위원회(특위)에 참여하던 병원 단체 3곳이 모두 참여를 중단했다. 올 연말 예정된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등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8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5일 대한병원협회(병협)가 특위 참여 중단을 발표한 데 이어, 대한중소병원협회(중소병협)와 국립대학병원협회(국립대병협)도 참여를 중단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중소병협 관계자는 한겨레에 “병협과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특위에서 의료 정책을 논의할 병원 단체는 한 곳도 없게 됐다.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대한의학회는 지난 4월 특위 출범 때부터 합류를 거부해왔다.

병원·의사 단체들은 지난 3일 밤 발표된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48시간 이내 복귀 위반 시 처단’ 등의 조항이 담긴 데 반발하고 있다. 포고령 제5항은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였다.

정부의 의료개혁 일정도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애초 정부는 올해 안에 비급여 진료·실손 의료보험 개선 방안 등을 담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료기관 대표와 의사들이 특위에서 빠지면서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워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특위 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해도 올 연말까지 2차 방안을 마치기가 빠듯했다”며 “(의-정 또는 정부 부처 간에) 의견이 부딪치는 쟁점이 있는 상황에서 (일부 위원이) 특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논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20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의대 교수 시국 선언 대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의대 증원 중단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의료계엄 규탄 집회’를 연다.  < 한겨레 천호성 기자 > 

 

국경없는기자회 “윤석열, 비상계엄으로 언론 검열 시도” 비판

5일 오후 ‘계엄 사태’ 관련 긴급성명 발표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지난 5일 오후 긴급 성명을 통해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우려 입장을 나타냈다. 국경없는기자회 누리집 갈무리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비상계엄을 통해 언론 검열·통제를 시도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한국 정치인을 상대로 언론 자유 악화에 맞서달라고 당부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 5일 오후 성명을 내고 “한국의 비상계엄이 연장되었더라면, 한국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 단체는 “비상계엄의 빠른 종식은 언론 자유에 대한 법치와 언론 자유에 대한 한국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며 “다만 대통령의 언론 통제 시도는 한국의 언론 자유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우리는 한국 정부가 지금의 우려스러운 상황을 확실히 매듭지어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앞서 계엄사령부는 지난 3일 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포고령(1호)을 내고 언론·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고 했다. 또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며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검열·통제 의도를 드러냈다.

세드릭 알비아니 국경없는기자회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비상계엄이 신속히 해제되지 않았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 검열과 정보에 대한 통제 권한까지 갖게 됐을 것”이라며 “그가 대통령 당선 이후 비판 세력을 상대로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한국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언론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해줄 것과 우리가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목격한 언론 자유의 후퇴에 맞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언론 자유와 언론인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로 1985년 설립됐다.            < 한겨레 최성진 기자 > 

군 통수권은 여전히 윤석열…대북 대비태세 문제없나

 

유사시 윤이 통수권 행사할지, 군이 명령에 따를지 등 모든게 불투명

대비태세 불확실성 해소 필요…야당 "군 통수권도 박탈해야"

 

'국정 수습' 공동 담화문 발표하는 한 총리와 한 대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4.12.8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퇴진과 함께 외교를 포함한 국정 무관여를 발표하면서 국군통수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대표는 8일 대국민담화에서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 판단"이라며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는 국방 분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 군 통수권은 여전히 윤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군통수권은 아직 위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군통수권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이관되겠지만, 그런 법적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한 총리가 군통수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때 대북 군사상황이 발생하면 국방장관 대행(김선호 차관)이 지휘하겠지만, 김 차관은 국군통수권자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유사시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윤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윤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려 할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또한 이미 신뢰를 잃은 윤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한다 해도 군이 명령을 이행할지도 알 수 없어 대북 대비태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사태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서둘러 해소해 군 통수권자를 정점으로 하는 명확한 지휘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덕수-한동훈 공동담화 관련 질문에 답하는 김민석 최고위원 =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공동담화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2.8 
 

야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고 한 윤 대통령이 계속 군을 통솔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 대표의 담화 발표 직후 열린 국회에서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직무정지만이 유일하게 헌법에 정해진 절차이고, 그 외 어떤 주장도 위헌이자 내란 지속 행위"며 "(윤 대통령의) 군 통수권도 박탈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심을 잡아야 할 국방부도 김용현 전 장관이 비상계엄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 김선호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신임 국방장관 후보자로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지명됐지만, 아직 인사청문회 태스크포스(TF)도 본격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취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 전망이다.

장관 직무대행인 김 차관은 전날 저녁 전군 주요지휘관과 국방부·합참 주요 직위자들이 참여한 화상 회의를 주재하며 철저한 대비태세를 당부했다.

김 차관은 회의에서 "지금의 국내·외 안보상황을 무겁게 인식하면서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굳건한 대비태세 유지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 연합 김호준 김지헌 기자 > 

 

윤, 좁혀오는 수사망에 일촉즉발 위기…야 '매주 탄핵' 압박도

검·경, 계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 긴급체포·압수수색

수사기관 간 경쟁 양상…조만간 수사기관 칼날 윤 향할 듯

대통령실·경호처, 사상 첫 강제수사 대상 될지 주목

 

'비상계엄' 후폭풍 탄핵 표결 앞둔 대통령실 = 비상계엄 사태 뒤 후폭풍이 대한민국 전체를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계엄 해제 발표 이후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사진은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외경. 2024.12.6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폐기로 간신히 한숨을 돌렸지만,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다시 코너에 몰리는 모습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8일 오전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체포했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김 전 장관의 공관과 국방부 장관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별도의 고발사건을 접수하고 사건을 수사4부에 배당했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를 두고 검찰과 경찰, 공수처 간 경쟁 구도마저 펼쳐지는 양상이다.

'6시간 계엄'의 핵심 인물인 김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수사기관의 칼끝은 조만간 직접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지만, 내란 또는 외환의 죄는 제외된다. 윤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를 받는 이상 탄핵 여부와 관계 없이 수사기관의 수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을 겨눌 수사기관의 칼날을 예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면서 대통령실도 모든 기능이 마비된 상황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구성원 대부분이 외부와 소통을 중단했고, 간혹 연락이 닿는 관계자 역시 "저도 잘 모르겠다", "드릴 말씀이 없다"만 반복하고 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출근은 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런 상황은 정말 처음이다. 대통령실 안에 있지만 저희도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탄핵 표결 전 대국민 담화, 인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마치며 인사하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돼 있다. 2024.12.7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경호처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대통령실과 경호처에 대한 강제수사가 진행될 경우를 대비해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 되면 대통령 집무실과 김 전 장관이 지난 8월까지 수장으로 근무한 경호처 역시 강제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 인력이 대통령실과 경호처 경내에 진입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집행할 경우 사상 최초의 일이 된다.

그간 경호처는 형사소송법상 '군사·공무상 비밀 유지가 필요한 장소는 감독관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들어 수사기관의 청와대·대통령실 경내 진입을 불허해왔다.

이에 따라 청와대 시절 수사기관은 경내에 진입하지 않고 외부인의 출입이 가능한 청와대 연풍문 등에서 임의 제출한 자료를 받아오는 형식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다만, 윤 대통령과 직전 경호처장인 김 전 장관이 내란 혐의를 받는 이상 이번에도 경호처가 강제수사를 거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호처 측은 관련 질의에 "현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여기에 야당은 임시회 회기를 일주일 단위로 끊어가며 매주 토요일 탄핵과 특검을 추진하겠다며 윤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첫 탄핵의 고비는 가까스로 넘었지만, 주말마다 탄핵안 표결이 이뤄지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여당 내 여론도 탄핵 표결 하루 만에 '질서있는 퇴진'에서 '질서있는 조기 퇴진'으로 옮겨가는 등 악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오고 야당은 압박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여당과 대통령실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        < 연합 김승욱 기자 >

 

"계엄모의" 또 탄핵 몰린 이상민 행안…행정체제 개편 '올스톱'

10일 탄핵안 국회 표결·가결 가능성↑…'이태원 참사' 탄핵 이어 두 번째

윤·박용현·여인형과 고교동문 '충암파'…윤정부 출범과 함께 장관직 수행

'행정체제 개편 권고안' 해 넘길 듯…'민선자치 30년' 기념사업도 차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발언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 현안 질의를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2.5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불법 계엄을 사전 모의하고 옹호한 혐의가 있다며 7일 국회에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면서 이 장관이 또 한 번 탄핵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이 장관은 작년 2월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직무가 정지된 바 있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 7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그해 7월 직무에 복귀했으나, 불과 1년 5개월 만에 탄핵 위기의 수렁 속에 다시 빠지게 됐다.

이 장관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이후 6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와 관련해 "(회의에 참석한) 모든 국무위원이 다 우려했고, 저도 여러 번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에 정부 각료가 막아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대통령께서는 헌법적 절차와 법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계엄을 한 것"이라고 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을 내놨다.

또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국회를 제대로 봉쇄했으면 이런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회의 권한을 막으려고 마음먹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야당 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군인 탑승 추정 차량 국회 진입 막는 시민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인이 탑승한 차량이 국회로 들어가려 하자 시민들이 막고 있다. 2024.12.4 
 

이 장관 탄핵안은 올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국회 표결에 부쳐진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수(150명)의 찬성이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야권이 이 장관 탄핵 추진에 함께하는 만큼 표결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의결서가 이 장관에게 송달되면 직무는 정지된다.

판사 출신인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4년 후배다. 비상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를 수행한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함께 이른바 '충암파'로 불린다. 그는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이기도 하다.

2022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사회위원장을 맡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대외협력 특보를 맡아 새 정부 출범을 준비했다.

그는 정부 출범 때부터 행안부 장관을 맡아 윤 대통령을 보좌해온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행안부 내부는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수장의 탄핵 위기에 뒤숭숭한 분위기다.

행안부가 지방소멸에 대응하고자 중점 추진해온 '미래지향적 행정 체제' 개편 작업을 비롯해 대구·경북 행정통합 지원,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편 작업 등 주요 업무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행안부는 올해 5월 미래지향적 행정 체제 개편방안 마련을 위해 전문가 위원회를 꾸려 집중적인 논의를 벌여왔다. 최근에는 권역별 의견수렴을 마치고 최종 결과물 성격인 권고안을 이달 발표하기로 했으나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은 '민선 자치 30년'을 맞는 해다. 관련 기념사업 준비가 행안부를 중심으로 한창이었으나, 계획대로 추진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8일 "말씀드릴 게 많지 않다"며 "총리실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 부처 운영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연합 양정우 기자 > 

 

국방부, 국회·선관위 병력 파견 방첩사 장성 2명 직무 정지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리가 6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마친 뒤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연합
 

국방부는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 및 요원을 파견한 방첩사령부 소속 장성 2명에 대한 직무정지를 단행했다고 8일 밝혔다.

국방부는 “현 상황 관련 관계자인 정성우 방첩사 1처장(육군 준장 진급 예정자)과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해군 준장) 등 2명의 직무정지를 위한 분리 파견을 오늘부로 추가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무정지된 대상자들은 조사 여건 등을 고려해 수도권에 위치한 부대로 대기조치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지난 6일 비상계엄 선포 때 병력 및 요원을 국회와 선관위에 파견한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등 계엄군 지휘관 3명에 대해 직무정지 및 분리파견을 단행한 바 있다. < 한겨레 신형철 기자 >

 

‘12·3 내란’ 때 K-1 소총 무장한 경찰, 선관위 투입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시티브이 영상. 계엄군이 사전투표 관련 통합 명부시스템이 있는 에이구역의 서버를 촬영하고 있다. 시시티브이 영상 갈무리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과천)에 투입된 경찰 일부가 소총으로 무장했던 것으로 7일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3일 밤 11시48분부터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선관위로 출동한 경찰 일부가 K-1 소총을 소지했다. 이들은 과천경찰서 소속이다. 당시 초동대응팀 4명을 선두로, 서장을 비롯해 기동대까지 모두 110여명이 현장 투입 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총을 소지한 이들은 초동대응팀으로, 삽탄(실탄 장착)을 하지는 않았으나 따로 실탄이 든 탄통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3일 밤 선관위 과천청사뿐만 아니라 관악청사, 수원 선거연수원 등에 300여명에 이르는 계엄군이 투입됐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 위원장은 6일 “계엄군은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청사 출입 통제 및 경계 작전을 하는 등 3시간20분 동안 과천청사를 점거했다”며 “국민주권기관인 선관위 청사를 계엄군이 점거한 목적과 근거를 주권자인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 한겨레 임인택 기자, 연합뉴스 >

 

선관위 뚫은 계엄군, 선거시스템 핵심 ‘선거인명부 서버’ 촬영 

계엄군, 계엄령 즉시 선관위 진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시티브이 영상. 계엄군이 사전투표 관련 통합 명부시스템이 있는 에이구역의 서버를 촬영하고 있다. 시시티브이 영상 갈무리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진입했던 계엄군이 선관위 서버실을 진입해 사전투표 관련 서버를 촬영해 간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겨레에 제공한 선관위 시시티브(CCTV) 영상을 보면, 계엄군은 3일 밤 10시33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침입한 뒤 곧장 청사 건물 2층에 있는 서버실을 향해 이동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실은 크게 4가지 구역으로 나뉜다. 에이(A)구역 서버에는 사전투표 관련 통합명부시스템이 담겼고, 비(B) 구역에는 업무행정시스템, 시(C) 구역에는 보안 관련 장비, 디(D)구역에는 통신 시스템이 있다.

이날 계엄군은 서버실 에이구역, 즉 사전투표 관련 ‘통합선거인명부’ 서버를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통합선거인명부’는 사전투표소에서 선거인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명부인데, 전국의 투표구별 선거인명부를 하나로 통합해 만든 명부이다. 지난 4·10 총선의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해 온 시민단체 등은 ‘통합선거인명부’가 부정선거의 핵심 증거라며 선관위가 이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  한겨레 허윤희 기자  >

야 3당 “검찰 못 믿어…국수본, 윤석열 당장 체포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신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야 3당 의원들이 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해 긴급체포된 것을 두고 “검찰은 믿을 수 없다”며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주범들을 서둘러 체포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등 행안위 소속 야 3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수본이 12·3 내란 사태를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우려가 크다”며 이렇게 밝혔다. 국수본이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소속 피의자와 경찰 기록 등만 조사하면서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 검찰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지적이다. 김 전 장관이 검찰에 ‘셀프 출석’까지 하자 야당은 국수본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당장 윤석열 내란 범죄 혐의자를 체포하고 구속하라.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 내란에 관여한 모든 혐의자를 체포하고 관련 기관 압수수색을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윤석열 정부의 검찰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국수본이 김 전 장관의 신병을 즉각 확보하고 검찰의 월권 수사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정훈 행안위원장은 김 전 장관의 셀프 출석을 놓고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 위한 도피성 자진 출석”이라고 말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내란 가담 세력인 조지호 경찰청장 직위를 해제하거나 탄핵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국수본이 원활하게 수사할 수 없다는 게 경찰 일각의 설명”이라고 했다.  < 한겨레 엄지원 기자 >

 

경찰 '계엄' 합동수사 일축 "독립적 수사는 경찰만 가능"

 검찰 제안 거절…"검찰은 계엄회의 참석한 법무장관이 수사 지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경찰이 검찰과의 합동수사 가능성을 일축했다.

경찰 핵심 관계자는 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수사본부는 현시점에서 검찰과 합동수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박세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이 브리핑에서 "경찰이 합동 수사를 제안하면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이다.

이 관계자는 "내란죄는 경찰의 수사 소관"이라며 "검찰과 군검찰이 합동 수사를 한다고 하지만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우리가 검찰보다 먼저 신청한 만큼 수사 우선권이 있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해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아 이번 사태를 수사할 수 있는 곳은 경찰밖에 없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비상계엄 선언 당시 국무회의에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모두 참석했는데,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있지만 행안부 장관은 법적인 수사지휘권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검찰 모두 소속 부처 장관이 수사 대상이지만, 경찰은 장관이 수사에 개입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 연합 이영섭 이동환 기자 >

 

 

경찰 국수본, 수사관 30명 증원···150명 규모 ‘계엄 특별수사단’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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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향신문 

 

120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경찰이 수사관 30여명을 추가 투입해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으로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8일 비상계엄 관련 고발사건의 전담수사팀에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포함한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범죄정보과 수사관 30여명을 추가로 투입해 150여명 규모의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 경향 전현진 기자 >

경찰, ‘12·3 내란’ 핵심 김용현 전 장관 공관·집무실 압수수색

경찰이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관과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이 김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한 가운데 경찰도 앞다퉈 수사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은 8일 “비상계엄 관련 고발사건 전담수사팀은 김 전 장관의 공관, 국방부 장관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가수사본부는 120여명의 전담 수사팀을 꾸려 12·3 내란사태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6일에는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총경) 등 3명의 휴대폰을 압수해 분석에 들어가기도 했다.

검·경은 이번 내란 사태 수사에 각각 특별수사본부와 전담수사팀을 꾸려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 새벽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 전 장관을 조사하고 긴급체포한 바 있다.  < 한겨레 이지혜 기자 >

 

검·경 ‘12·3 내란’ 수사 속도 내지만…“특검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검찰과 경찰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윤석열 내란 의혹’ 수사에 각각 특별수사본부와 전담수사팀을 꾸리며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군검찰 인력도 파견받아 합동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인데 내란죄 직접 수사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경찰 역시 ‘내란죄 수사권’을 주장하고 있어 당분간 두 갈래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사 공정성 확보를 위해 특별검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검찰청은 6일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이번 비상계엄 관련 사건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세현 서울고검장이 본부장을 맡았다. 대검은 또 특별수사본부에 군검사 등 군검찰 인력을 파견받아 합동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실제 계엄군이 투입됐고, 계엄 선포와 지시 과정에 군 고위 지휘부 등이 관여한 점을 고려한 조처로 보인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특수본을 꾸린 건 내란죄 수사의 주도권을 검찰이 쥐고 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방부와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의 폭로가 잇따르며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짙어지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내란죄 수사에 착수할 수 없지만 직권남용 수사에 나선 뒤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로 내란 혐의까지 확대하는 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내란죄 직접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경찰 역시 이날 120여명 규모로 전담수사팀을 꾸려 본격적인 수사 채비를 마쳤다. 김산호 경찰청 안보수사지휘과장은 “내란 관련해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은 경찰이다. 이 때문에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경 두 기관이 경쟁적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두 기관 모두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을 잇달아 불기소하며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고, 경찰 역시 조지호 경찰청장 등이 계엄 관련자로 고발된 상태라 ‘셀프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법조계에선 신속한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에 참여했던 정민영 변호사는 “검·경 모두 이 사건을 수사해야 조직을 보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신속 수사에 나선 것”이라며 “검·경 두 갈래 수사를 정리해줄 컨트롤타워도 부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인멸이 이뤄지지 않도록 빠른 조처가 필요하지만 그동안 검·경 수사를 보면 검·경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빠른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겨레  강재구  이지혜 기자 >

 

검찰, ‘12·3 내란사태’ 핵심 김용현 긴급체포

 
 

‘12·3 내란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체포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이날 새벽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 전 장관을 조사하고 긴급체포했다. 또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주도한 김 전 장관을 국회 국방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인 5일 아침 면직했다. 이후 검찰은 김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를 내린 바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특수본은 앞서 김 전 장관 쪽과 조사 일정을 조율 중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 쪽은 특수본의 조사 일정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갑자기 이날 새벽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은 수사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 김 전 장관의 새벽 조사를 진행했다.

김 전 장관 조사 이후 이번 내란 사태에 관여한 군 관계자 조사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도 빠르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한겨레  정혜민 기자 >

“김용현, 계엄 1주 전 북 풍선 ‘원점타격’ 지시…국지전 유도”

민주 이기헌 “합참의장이 반대하자 질책”…합참 “그런 적 없어” 부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행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비상계엄 선포를 1주일 가량 앞둔 지난 주 북한 쓰레기 풍선을 원점타격하라는 지시를 김명수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에게 내렸다는 주장이 7일 제기됐다. 북한 쓰레기 풍선에 과잉 대응해 남북 국지전을 야기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합참은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 3일 비상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선포 전 북한에서 보내는 오물풍선을 빌미로 대북 국지전을 야기하려 했다는 제보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김 전 장관이 지난주부터 김명수 합참의장에게 ‘북에서 오물풍선이 날아오면 경고 사격 후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고, 김 의장이 이에 반대하자 질책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밝혔다. 김 의장에 이어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도 이를 반대한 것으로 안다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현재 북한 쓰레기 풍선에 대한 합참 방침은 풍선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등 ‘피해 발생시 원점 타격’인데, 김 전 장관이 ‘풍선 부양시 원점타격’이란 과잉 대응을 주문해서 남북 국지전을 유도했다는 이기헌 의원 주장의 취지다. 지난 5월부터 북한은 지금까지 32차례 쓰레기 풍선을 한국으로 보냈는데, 지금까지 풍선을 추적 관찰하다 땅에 낙하하면 수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합참은 북한 쓰레기 풍선이 계속 넘어오자 지난 9월 “우리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군은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쓰레기 풍선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풍선을 띄운 곳(원점)을 군이 자주포 등으로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군 당국은 북한이 군사분계선 이북인 황해도 13곳에서 풍선을 띄우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합참은 이날 문자 공지를 통해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쓰레기 풍선 부양 시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시가 없었으므로, 합참의장이 이를 거부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풍선 부양시 국지전을 유도하기 위한 원점 타격 지시는 없었다”며 “군은 다양한 작전상황에 대한 토의를 수시로 실시한다”고 말했다.              < 한겨레  권혁철 기자 >

 

검찰, 김용현 구속영장에 내란 혐의 적시 방침

 
2024년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12.3 내란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 혐의에 내란죄를 포함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8일 새벽 내란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 전 장관을 조사한 뒤 긴급체포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긴급체포를 한 경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풀어줘야 한다.

검찰은 48시간 안에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영장 혐의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내란죄를 동시에 적시할 방침이다. 앞서 특수본은 내란죄의 경우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직권남용 혐의를 중심으로 수사를 하며 내란죄를 연관된 범죄로 함께 수사하기로 했다.

수사개시 범위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수본이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내란죄를 적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김 전 장관의 윗선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라도 헌법상 내란과 외환죄는 기소할 수 있다.

특수본의 적극적인 수사는 심우정 검찰총장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심 총장은 이번 사건 초기부터 국방부 장관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김선호 차관에게 직접 연락해 군 검찰 파견을 요청하면서 비상계엄 관련 자료 폐기 금지 등 수사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수본을 꾸린 지 이틀 만인 이날 오전 1시30분께부터 김 전 장관을 조사했다. 또 김 전 장관이 휴대폰을 교체하고, 해외 도피 가능성이 제기된 점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김 전 장관의 긴급체포를 결정했다. 김 전 장관은 현재 서울동부구치소로 이송된 상태다.  <  한겨레  배지현 기자  >

 

‘긴급체포’ 김용현, 수사 시작되자 휴대전화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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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월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동자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가 시작되자 개인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그를 긴급체포했다.

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김 전 장관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을 확인했다. 특수본이 수사 초반 김 전 장관과 조사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김 전 장관의 휴대전화 교체 때문에 연락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수본이 이날 새벽 김 전 장관을 조사한 뒤 긴급체포한 사유 중에는 휴대전화 교체를 통한 증거인멸 우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은 이날 김 전 장관을 긴급체포하면서 김 전 장관의 휴대전화도 압수했다.

앞서 김 전 장관은 전날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새로 가입한 것도 확인됐다. 김 전 장관과 정진석 대통령실장은 각각 전날 오전 10시50분과 오전 11시25분 나란히 텔레그램에 가입한 상태로 표시됐다. 새로 가입한 정황이다. 이날 밝혀진 대로 휴대전화 교체에 따라 새로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텔레그램 탈퇴는 증거인멸 의혹으로 번질 수 있다.

형사소송법상 검찰이 김 전 장관 신병을 계속 확보해두기 위해서는 긴급체포 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구속기간은 열흘이고 한 차례 연장해 최장 20일까지 수감 상태에서 수사가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하고 계엄 실행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는 김 전 장관은 형법상 내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다.  < 경향 >

내란 혐의 피고발인 ‘대통령 윤석열’···공범·방조범 고발된 인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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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주철현·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윤석열 외 7명 내란죄 고발’ 기자회견을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등에 대한 내란 혐의 고발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엄을 최종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계엄 관련자를 처벌해달라는 고소·고발이 쏟아지고 있다. 고소·고발에는 윤 대통령 외에도 10여명 이상의 계엄 사태의 주요 관련자들이 공범과 방조범으로 명시됐다.

8일까지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에 고소·고발 사건으로 접수된 사건들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 10여명의 관련자들이 내란과 직권남용, 반란 혐의 등 혐의로 고소·고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고소·고발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등 원내 정당을 비롯해 정의당 등 원외 정당들과 시민단체들까지 잇따라 제기한 사건들이다.

우선 모든 고소·고발장 맨 위에는 윤 대통령의 이름이 적혔다. 윤 대통령은 내란 혐의의 최종 지시자로 지목돼 있다. 이어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같은 혐의로 검·경·공수처에 모두 고소·고발돼 있다. 계엄사령관으로서 계엄군을 지휘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역시 같은 혐의로 고소·고발됐다.

군에서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과 이진우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내란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이번 사태의 지휘부로 꼽히는 인물들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특전사 및 수방사 소속 병력이 주로 투입되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사람들이다. 방첩사 요원들 역시 이들과 함께 중앙선관위 장악, 국회의원 체포 등을 시도해 수사 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계엄에 동원된 부대의 지휘관들도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 수사 대상이다.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 이상현 제1공수특전여단장, 김정근 제3공수특전여단장, 안무성 제9공수여단장, 김세운 특수작전항공단장, 김창학 군사경찰단장 등이다.

경찰 간부들 역시 국회를 봉쇄해 국회의원 출입을 막는 등 계엄에 공모했다는 이유로 줄줄이 고발됐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내란, 직권남용, 반란 등 혐의로 나란히 경찰과 공수처에 고발됐다. 오부명 서울경찰청 공공안전부 차장과 주진우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은 직권남용과 반란 혐의로 공수처에, 목현태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내란과 반란 혐의로 경찰에 각각 고발됐다.

이번 계엄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주요 국무위원도 고발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내란, 반란,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과 공수처에 고발됐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비슷한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내란 및 내란 방조,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과 공수처에 고발됐다. 추 원내대표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의결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국회가 아닌 국민의힘 당사로 모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이후 국회에 있으면서도 자기는 표결을 하지 않으면서 비상계험 해제를 방해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 경향 >

 

수괴 혐의 윤석열, 중요 임무자 김용현…‘내란 사건’ 수사 대상은?

한덕수, 이상민, 추경호, 박안수, 조지호 등도 대상 꼽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신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검찰과 경찰이 6일 동시에 ‘윤석열 내란’ 사건 수사에 나섬에 따라 수사 범위와 대상에 관심이 모아진다.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물론, 한덕수 국무총리 등 계엄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등 군 관계자, 국회 봉쇄를 지시한 조지호 경찰청장 등이 1차 수사 대상으로 꼽힌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관련 조처를 지시한 윤 대통령은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모의에서부터 선포 후 구체적인 후속 조처까지 모든 것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로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밝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최고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을 만나 계엄 선포를 논의하고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한 총리는 내란 공모 및 방조 혐의를 받는다. 국무회의 전 윤 대통령을 먼저 만난 한 총리는 비상계엄 문제를 논의할 당시 윤 대통령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상계엄을 심의하기 위한 국무회의가 열리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을 갖추게 했다. 한 총리는 또 국무회의 때는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비상계엄 선포 4시간 반 전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내란 공모가 의심된다. 당시 울산 행사에 참석해 있던 이 장관은 김 장관의 전화를 받은 뒤 행사 도중 서울로 올라왔다. 사전에 계엄 선포 계획을 알았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국무위원은 행안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둘뿐이다. 이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계엄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라며 “대통령의 권한을 (국무위원들이) 못 막는다”고 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후 법무부 간부 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계엄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대책을 논의한 것이라면 내란 공모에 해당한다. 박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6일 국회에 출석해 “국무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을 냈다”면서도 “내란죄 판단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무회의에서 계엄에 반대하지 않고 후속 대책까지 논의했다면 내란 공모 혐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계엄 관련 회의라면 참석할 수 없다”며 거부한 뒤 사표를 냈다. 내란 행위에 동조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국무위원 가운데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힌 최상목 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외에 나머지 국무위원들도 최소한 내란 방조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다수 의견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당 의원들의 국회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표결을 미뤄줄 것을 요청하는가 하면, 여당 의원들에게 국회가 아닌 당사로 모이도록 문자를 보내 결과적으로 친한동훈계 의원 18명만 표결에 참여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6일 추 원내대표를 내란 공범으로 고발했다.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등 비상계엄에 가담한 군 관계자들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김 전 국방장관과 함께 가장 먼저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6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 3명의 직무를 정지했다. 국방부 감찰단은 이들과 박 총장 등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비상계엄 당일 경찰력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도 내란 공모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계엄사령관 등의 요청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지만, 대법원은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에 따른 하급 간부들에게도 내란에 가담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 한겨레 이춘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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