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지도부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는 동안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경찰 저지선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명대에 다가와 고함을 치며 책상을 두드리는 등 소란을 피워 경찰이 출동해 저지했다.


새정치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 끝내 중단
박 대통령 “국론분열 일으키지 말기를”
불필요한 논란은 누가 일으켰길래…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회귀 강행’ 결정 다음날인 13일 오후,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를 포함해 추미애·도종환·김기식·진성준·유은혜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0여명은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반대”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점심시간 서울 여의도역 부근에서 시민들의 반대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명을 저지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난 어버이연합 회원 100여명과 맞닥뜨렸다. 문 대표 등은 이들과의 충돌을 우려한 끝에 결국 서명운동을 서둘러 접을 수밖에 없었다.

새정치연합 국정화저지특위 위원장인 도종환 의원이 “10만명을 목표로 국정화 반대 서명을 모아 교육부에 제출하고자 한다”고 말하자, 한 시민이 소리를 질렀다. “(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냐?” 도 위원장이 “이간질에 속지 마시라.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를 막아야 한다”고 이어가자, 이번엔 다른 시민이 “뭐가 그렇다는 거냐”며 볼펜을 던졌다. 새정치연합 쪽은 서명 행사를 훼방놓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한 것으로 파악했다. 유송화 부대변인이 나서 “어버이연합에서 오신 듯한데 건강하시라고 박수를 보내드리자. 어르신들 여기서 이러시면 공무집행 방해가 된다. 물러나 주시길 바란다”고 설득에 나섰으나, 이들의 조직적인 행동은 그치지 않았다. “왜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 가지고 이렇게 하느냐…”

 문재인 대표가 직접 나섰다. “어버이연합 회원님들도 오셨으니까 우리 말씀 들어보시고,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시면 함께 서명해주기 바란다. 어제 정부는 절반 넘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우리 경제와 민생이 너무 어려운데 박근혜 정부는 경제와 민생을 내팽개치고, 이념전쟁에 나서고 있다. 이 시기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경제와 민생보다 더 중요한, 정부가 올인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정현안인가.” 그래도 어버이연합 회원 100여명은 고성과 야유로 문 대표의 발언을 막았다.

 새정치연합의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운동은, 전날 신촌의 유플러스 앞에서 진행하겠다고 공지됐으나 어버이연합 등과의 충돌을 우려해 여의도역 부근으로 장소를 급히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이들의 방해로 행사는 30분만에 급히 종료됐다.

 한 시간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미국행을 앞두고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은 전날 교육부의 국정화 발표를 언급하며 “지금 나라와 국민경제가 어렵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올바른 역사교육 정상화를 이루어서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의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은 결국 어버이연합의 반대 탓에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어버이연합이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쪽과의 교감 속에 그런 일을 벌였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의도에서 빚어진 장면은 박 대통령의 발언 속에 등장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는”이들이 누구인지 묻게 한다.
<김보협 최혜정 기자>



18일 낮 12시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의 한 야산 중턱에서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45)씨가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임씨의 차량.


소방대원-상황실 무전·전화통화 녹취록 입수
상황실 “보호자는 어디 있나” 묻자
현장 대원 “직장 동료가 근방에 있어” 답해


국정원 해킹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46)씨 수색 당시, 국정원 관계자들이 소방관들보다 수색 현장에 먼저 직접 투입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수색 현장에 나타난 국정원 직원은 1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고 차량을 이용해 신속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야당 등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국정원 쪽이 먼저 사건현장을 찾아내 현장을 ‘오염’ 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국정원은 이를 부인해오고 있다.

<한겨레>는 6일 경기도의회 양근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안산6)이 경기도재난안전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소방대원과 상황실 등의 무전 및 전화통화 녹취록을 입수했다.

이 가운데 수색 현장의 119구급대원(소방관)과 상황실(현장대응 2단장) 간의 지난달 18일 오전 11시20분 29초~11시24분 12초 사이 통화 내용 녹취록을 보면, 상황실에서 ‘보호자는 어디 계신는데?’라고 묻는다. 소방관은 “보호자는 이쪽에 나온 거 같진 않고 집에 있고, 직장 동료분이 근방에 계셔서 저희랑 한번 만났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소방관은 “직장 동료가 인근에 계셔서 직장은 서울에 있으신 분이고 여기 화산리 쪽이랑 해서 자주 왔다갔다하신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상황실에서 ‘실종자 친구를 만났다면서?’라고 재차 묻자 현장 소방관은 “친구를 만난 게 아니라 직장 동료분이 인근에 있어 보호자한테 연락을 받고 저희랑 지금 만났어요”라고 답했다.

이는 임씨의 ‘직장 동료’인 국정원 직원이 숨진 임씨의 부인한테서 연락을 받고 소방관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임씨를 찾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숨진 임씨의 부인은 이날 오전 11시15분 119에 2차 위치추적 신고를 했다.

또 이날 11시35분 10초~11시36분 33초 사이 이뤄진 수색 현장의 다른 소방관과 119 상황실과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수색 장소 등에 관한 문답이 오가다 상황실에서 ‘그 관계자한테 한번 물어보세요’라고 지시하자 현장 소방관은 “어디 관계자?”라고 답했고, 다시 상황실에서 ‘그 저기… 그 위치추적 관계자 같이 없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현장 소방관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라고 답했다. 이에 상황실은 “그럼 그 사람한테 전화해 가지구요, 도라지골 어디로 올라가는 건지 그쪽도 한번 이렇게 수색을 하라고 하거든요”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의 의문점을 추적중인 양 의원은 “소방관들의 통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임씨 수색 현장에 국정원 직원들이 투입돼 현장에서 소방관들을 접촉한 것은 물론 임씨에 대한 위치추적을 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국회 정보위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27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국정원 해킹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숨진 임씨가 감찰실로부터 위치추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국정원은 위치추적 장치 통해 임씨의 위치를 확인한 뒤 근처에 사는 국정원 직원을 보내 소방대원과 함께 임씨를 찾았다고 해명했지만, 언제 처음 임씨의 위치를 찾아냈는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모르겠다’는 식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임씨의 사망 현장을 국정원이 언제부터 통제했는지 등에 대해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간사인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 당일) 11시11분에 국정원 직원이 부인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타나 소방관과 2~3분간 대화했다. 구조대원들이 11시10분께 2차 수색 동선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국정원 직원이 1분 후 그 자리에 나타났다면 이 사람은 과연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냐”며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김기성, 이정애 기자>




대통령 한마디에…의원 159명 국회법 표결 불참
김무성 사과·청와대 환영 뜻…새정치 “국민 배신”
야당 불참 속 법안 처리 강행…정국 경색 심화

6일 오후, 본회의장 한쪽에 마련된 기표소 앞에 선 이들은 야당 의원들뿐이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거나, 자신들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160명의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투표를 한 이는 정두언 의원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투표를 포기했다.

“투표하세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외침은 수차례 반복됐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투표를 서둘러 달라”고 독려했다. 움직이는 여당 의원들은 없었다. “빨리 투표나 끝내라”라고 야유를 보낼 뿐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나서 야당 의원들을 향해 “그만해!”라고 소리쳤다. 투표가 시작되고 54분이 지나도록 여당 의원들의 움직임이 없자, 정 의장이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재의를 요구(거부권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가 재의결을 시도했지만, 새누리당의 표결 불참(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된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된 지 39일 만의 일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재의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전체 의석 298명(새누리당 160명, 새정치민주연합 130명, 정의당 5명, 무소속 3명) 가운데 과반인 의원 149명의 참석이 필요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재의안 처리는 물거품으로 끝이 났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 등을 포함해 표결에 참석한 의원은 130명에 그쳤다. 국회법 개정안은 여당 의원들에 의해 19대 국회 회기 끝까지 처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재의결 무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집권 여당으로서 그 뜻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과정이야 어찌 됐든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국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누리당의 표결 불참으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이 무산된 데 반발해, 국회법 외에 본회의에서 의결하기로 한 61개 법안 처리에 새정치연합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 절차가 마무리되면 나머지 법안 처리에 협조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의총에서 다수 의원들이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입장을 바꿨다. 새누리당은 이날 밤 9시40분께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크라우드펀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대부업법’(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법안을 처리했다. 야당은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가 무너진 날”이라고 반발했다.

거부권 행사로 국회를 혼돈 속에 빠뜨린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오늘 국회의 결정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며 청와대의 공식입장을 전했다.

한편, 국회법 개정안 재의 절차가 무산됨에 따라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친박근혜계)로부터 사퇴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경욱 기자>



작년 11월 6일 이어 지난달 18일 대구 동성로에 그래피티 그려져
“젊은 예술가들이 지금 사회를 비정상·비상식이라고 느끼는 방증”


지난해 말부터 대구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가 그려진 적은 없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강한 대구에서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가 계속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대통령 풍자 그래피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1월6일이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 5개가 대구 중구 동성로에 그려졌다. 닭 부리를 달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얼굴 그림 아래에는 ‘PAPA CHICKEN’(아빠 닭)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그래피티가 그려진 5곳 가운데 1곳은 대구 중구가 관리하는 박 대통령 생가 터(대구 중구 동성로5길 25)의 안내 표지판이었다. 대구 중구 동성로 야외무대에도 같은 그래피티가 그려졌다. 대구 중구 공무원이 이를 보고 경찰에 알렸고, 수사가 시작됐다.

이 그래피티를 그린 사람은 ‘푸가지’라는 이름을 쓰고 있던 대학생 김아무개(21)씨였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김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는 이 그래피티가 예술과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지난 4월8일 대구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들은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무죄 판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지난 5월15일 대구지법 형사7단독 김도형 판사는 김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2015년 6월 18일 대구 동성로 그래피티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달 18일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주변 건물 벽에 또다시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 6개가 그려졌다. 박 대통령이 왕관을 쓰고 있고, 눈과 입에는 각각 ‘PLEASE’(제발)와 ‘GRIND’(갈다)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영국의 남성 록밴드 그룹인 ‘섹스 피스톨스’가 2012년 6월 내놓은 앨범 표지 그림을 흉내낸 것이다. 이 앨범의 주제곡은 ‘갓 세이브 더 퀸’(신이 여왕을 구해주시기를)이다.

길을 가던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래피티를 모두 지웠다. 법률 용어로 누군가가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것인데, 경찰이 이를 ‘회복’시킨 것이다. 경찰은 주변에 설치돼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수거해 그래피티를 그린 사람을 찾고 있다.

보통 재물손괴죄는 민사사건으로 해결된다. 당사자가 경찰에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제 당사자가 고소·고발을 하더라도 경찰 쪽에서는 대부분 중간에서 민사합의를 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두 사건처럼 당사자가 고소·고발을 하거나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데도 경찰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수사에 뛰어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과거에 없었던 그래피티가 대구에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젊은 예술가들이 지금의 사회를 본능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그래피티로 표현한 것인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과도한 수사를 하면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게 된다”고 말했다.
<김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