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재건에 1250억원 지원하기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5일(현지시각) 라말라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라말라/AP 연합뉴스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의 휴전을 안정화하려 시도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재건에 1억1200만달러(약 125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은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폐쇄했던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을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와중에 약화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격상하려는 시도다.

 

이스라엘-하마스 사이의 불안한 휴전을 안정시키기 위해 중동을 방문하고 있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5일(현지시각)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난 뒤 이렇게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7500만달러 규모의 경제개발원조를 의회에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밖에도 가자지구 긴급재난 지원금 550만달러와 팔레스타인 난민을 돕는 유엔 기구를 통해 32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가 재건하는 것들을 앞으로 하마스가 더 많은 로켓 공격을 하기로 결심한다는 이유로 다시 잃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자지구 재건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하마스가 선제공격하자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에 미사일 폭격으로 응수해 250명 이상이 숨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내부의 비판 속에도 이스라엘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격상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다시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주재 미국 영사관은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소통 창구 구실을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그 기능을 축소했다.

 

블링컨 장관이 이같은 지원 방안을 내놓은 것은 무장정파인 하마스에 견줘 팔레스타인에서 지도력이 약화된 아바스 수반의 입지를 넓혀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링턴 장관은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휴 총리도 만나 지역 안정을 논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국경을 넘어 로켓 공격을 해올 경우 “매우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아사드 7년 임기 대통령 당선 기정사실

반세기 집권 ‘아사드 부자’ 정권은 건재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한 남성이 대통령 선거 투표를 마친 뒤 잉크가 찍힌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다마스쿠스/로이터 연합뉴스

 

2010년 ‘아랍의 봄’ 이듬해 시작된 내전이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 26일 임기 7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열렸다. 내전 희생자는 38만명을 넘지만 반세기에 걸쳐 시리아를 철권통치 중인 ‘아사드 왕국’은 건재하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입증했다.

 

26일 실시된 대선에서 이미 21년째 집권 중인 바샤르 아사드(56) 대통령 4선이 확실시된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아사드 가문의 시리아 지배는 이미 51년째다.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아사드가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그의 사망 뒤 바샤르 아사드가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오전 7시에 투표소 문이 열리자 수천명이 투표를 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통신은 전했다. 아사드 대통령이 등장하는 대형 포스터와 “우리는 미래를 선택한다. 우리는 바샤르 아사드를 선택한다” 같은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 거리 곳곳에 걸렸으나, 상대 후보 2명의 포스터가 걸린 곳은 적었다고 덧붙였다.

 

선거 전부터 아사드의 당선은 기정사실과 다름없었다. 시리아 헌법재판소는 대선 후보 신청자 51명 중 아사드 대통령을 포함해 3명의 후보 등록만 허용했다. 연속 10년 이상 시리아에 거주하지 않은 사람의 후보 등록을 금지해 망명 중인 야권 인사들의 출마는 원천 차단했다.

아사드 정권은 내전 중인 지난 2014년 대선 때도 아사드가 89%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투표는 아사드 정권 통치력이 미치는 지역에서만 치러졌으며, 쿠르드족이 장악한 북동부에서는 진행되지 않았다.

 

정부군이 장악한 남부 다라 지역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번 선거가 “적법하지 않다”며 보이콧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독일 <도이체 벨레>는 “국제사회는 이번 선거를 우롱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독일·영국·이탈리아 외무장관은 공동으로 이번 대선이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는 성명을 냈다.

 

 

아사드는 아버지인 하페즈 아사드가 2000년 6월 69살 나이로 숨진 지 한달 만에, 35살에 유일한 대선 후보로 나와 97% 득표율로 당선됐다. 두달 뒤인 9월 지식인 100여명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한 ‘다마스쿠스의 봄’ 사태가 벌어지자, 이듬해 10여명을 체포하며 탄압했다. 하지만 이는 더 큰 탄압의 전주곡이었을 뿐이다.

 

2010년 말 튀니지 노점상 모하마드 부아지지 분신 이후, 중동 각국에서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이 일어났다. 이듬해인 2011년 3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등에서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아사드 정권은 군을 동원해 잔혹하게 탄압했고 시민들은 반정부 무장 투쟁으로 맞섰다. 시리아 내전의 시작이었다.

 

반군 연합체인 자유시리아군(FSA)는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아사드 정부군과 맞섰다. 아사드 정권은 시아파지만 시리아 국민의 다수는 수니파다. 반군은 2012년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 등을 장악하며 공세를 펼쳤지만, 아사드 정부군은 2013년 중반부터 반격에 나섰다. 미국, 사우디, 터키, 러시아의 개입 그리고 이슬람국가(IS)까지 얽히며 시리아 내전은 복잡한 국제전 양상으로 번졌다. 2018년께부터는 아사드 정부군의 우세가 굳어졌다. 내전 초기 시리아 국토 30% 정도밖에 통제하지 못했던 아사드 정권의 영향력은 이제 전 국토 3분의 2가량으로 확대됐다.

 

이번 대선은 시리아 내전의 승자가 아사드로 굳어져 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뉴스라인 인스티튜트의 니콜라스 헤라스는 <에이피>에 “아사드가 자연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이유로 사망하지 않는 한, 과거 그리고 미래의 시리아 대통령일 것”이라며 “그와 그의 동맹은 이 사실을 밀어붙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에 걸친 내전 과정에서 38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11년 내전 발생 이후 660만명이 난민이 됐고 670만명은 국내에 흩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합치면 1300만명 이상이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셈인데, 시리아 전체 인구 2100만여명(2011년 기준)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아랍의 봄 때 민주화 요구 시위로 중동 독재 정권 상당수가 무너졌다. 튀니지의 자인 엘아비딘 벤 알리,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현재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곳은 튀니지 정도밖에 없다. 이집트에서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압둘파타흐 시시가 정권을 잡았고 예멘은 내전 중이다.   조기원 기자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 [AFP=연합뉴스]

 

프랑스 대형 에너지기업 토탈이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돈줄로 꼽히는 합작 법인에 현금 지급을 중단했다.

토탈은 미얀마 군부가 관리하는 국영 석유·가스 회사 MOGE 등과 합작으로 설립한 가스 수송회사 MGCT의 지난 12일 주주총회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AFP 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불안정한 미얀마의 상황에 비춰봤을 때 주주들에게 현금 분배가 중단된 시점은 지난달 1일부터로 볼 수 있다고 토탈은 설명했다.

MGCT 지분은 토탈이 31%, 미국 정유 기업 셰브런이 28%, 태국 국영 석유기업 PTTEP가 25%, MOGE가 15%씩 나눠 갖고 있다.

 

MOGE가 천연가스를 판매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0억 달러(약 1조2천억원)에 달한다.

이 수익은 미얀마 군부로 흘러 들어가기에 국제 시민·인권단체는 토탈과 셰브런 등에 대금 지급 중단을 촉구해왔다.

토탈은 "미얀마에서의 폭력과 인권유린을 규탄한다"며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이 미얀마 군부를 제재한다면 이를 따르겠다고 했다.

 

다만 토탈은 미얀마와 태국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가스 생산은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MGCT 송유관은 토탈이 운영하는 야다나 가스전(田)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태국까지 전달한다.

미얀마에서는 지난 2월 1일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동생 1988년부터 민주화운동…형은 쿠데타 후 차관 겸 경찰청장 올라

 

군경에 끌려갔다 숨진 꼬 모 소 흘라잉(왼쪽)과 내무차관 겸 경찰청장인 형 [이라와디 캡처]

 

쿠데타 군사정권의 핵심 인사를 형으로 둔 한 민주화운동 인사가 군경에 체포됐다가 사망했다.

26일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온 꼬 소 모 흘라잉(53)이 이틀 전 사망했다.

꼬 소 모 흘라잉은 지난 22일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군부 정보원의 밀고로 체포됐다.

 

그는 체포 당시 군경이 휘두른 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심하게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뒤 밤에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숨졌다는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았다.

꼬 소 모 흘라잉의 친구들은 그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굳은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8년 민주화운동 당시부터 민주화 관련 활동을 해왔다고 매체는 전했다.

 

1988년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인 전(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서도 활동했다.

이후 그는 아웅산 수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 등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1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고 이라와디는 전했다.

석방 이후 그는 바고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주민 복지를 위한 활동을 벌였고, 아이들에게 무료로 가르치기도 했다.

 

이는 군부 핵심 인사로 악명이 높은 형과는 전혀 다른 삶이라고 매체는 보도했다.

형인 딴 흘라잉 중장은 2월1일 쿠데타 이후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군경이 미얀마 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잔인한 유혈진압의 원흉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이라와디는 전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전날 현재까지 군경 폭력에 사망한 이는 827명에 달한다.

꼬 소 모 흘라잉과 함께 옥살이했던 한 정치범 출신 인사는 매체에 "그의 가족은 군부 출신이었지만,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시위 참여부터 학생 무장단체 가입 등에 이르기까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했다"며 추모했다.

그는 아내와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