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후 교통 봉쇄되자 도보여행사후 검사 코로나19 양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직한 30대 가장이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372떨어진 고향 집까지 걸어가다 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남성은 사후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다.

15일 마이메트로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말레이시아 파항주 무아드잠 샤의 길가에서 3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성은 조호르주 세가맛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을 잃은 뒤 이동제한 명령으로 주(states)간 이동과 대중교통이 끊기자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의 고향 집은 조호르주에서 372떨어진 트렝가누주로, 자동차로는 5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현지 매체들은 이 남성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지난 8일 도보 여행을 시작했고, 창백한 얼굴로 힘들게 걷는 모습을 여러 사람이 봤다고 전했다.

한 목격자는 "사람들이 그에게 음식을 주면서 여행을 계속하지 말라고 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사후 검사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보건부의 누르 히샴 압둘라 보건총괄국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이 남성이 코로나19에 따른 110번째 사망자라고 발표했다.

보건 당국은 그가 어디서 감염됐는지 조사 중이다.

사망자의 가족은 장례비 1500 링깃(42만원)을 낼 돈도 없어 주변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장례식은 코로나19 사망자에 관한 보건지침을 따랐다.


파키스탄 총리·남아공 대통령 등 140WHO 총회 앞두고

공개 서한 통해 촉구미국 우선주의에 제동

                 

전세계 전·현직 정치지도자와 전문가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전 인류에게 무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선점을 시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전세계 전·현직 정치지도자와 전문가 140여명은 오는 18일 세계보건기구(WHO) 총회를 앞두고 14일 유엔 누리집을 통해 이런 내용이 담긴 공동 서한을 공개했다.

이들은 지금은 부유한 기업과 정부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생명을 구한다는 보편적 요구에 앞세우도록 놔두거나, (인명 구조라는) 막중한 도덕적 임무를 시장에 맡겨둘 때가 아니라며 “(백신과 치료법 등에 대한) 독점과 추잡한 경쟁, 근시안적 국가주의가 끼어들 틈을 주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백신과 치료제는 평등과 연대에 기반해 코로나 대응 최전선 종사자와 취약집단, 빈곤국에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서한에는 한국인으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개발연구소장과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이름을 올렸다.

이날 공개 서한은 미국이 백신 공급 우선권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미국은 지난 4일 백신 개발 국제공조 논의체인 코로나19 국제적 대응 약속 온라인 회의를 보이콧하며, 백신 개발 독자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서한에선 공개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모든 수단을 강구해 세계 어느 곳보다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서한이 나오기 하루 전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폴 허드슨 최고경영자(CEO)미국에 백신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허드슨은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이 백신을 가장 먼저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미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투자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양의 백신을 선주문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 프랑스 정부는 금전적 이유를 근거로 특정 국가에 백신 제공의 우선권을 주는 것은 수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코로나19 백신은 국제적인 공공의 이익이 돼야 하며 접근 기회는 공평하고 보편적일 필요가 있다는 논평을 내놨다.

비판이 고조되자, 사노피 프랑스법인장인 올리비에 보질로 사장은 14일 현지 방송 <베에프엠>(BFM)에 나와 사노피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 우선 공급 발언을 철회한 것이다. < 이정애 기자 >



일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所村)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에 서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된 수조의 20124월 모습.

                                   

핵연료 재처리공장 안전대책 승인·전면 가동시 연 7t 추출

2022년 가동 목표"경제성 낮고 핵 비확산에 어긋난다" 비판

일본 사용후핵연료 포화상태재처리공장 없으면 원전 중단 가능성

                 

일본이 핵무기 수천발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이미 보유하고 있음에도 플루토늄 추출 공장의 가동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데 대한 의문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핵연료 재사용을 위해 플루토늄 추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발전용으로 플루토늄을 소비할 시설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의 사업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 일본 내에서는 경제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핵 비확산 기조에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완공 24년 연기된 재처리공장 집요하게 추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이하 위원회)13일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있는 니혼겐엔(日本原燃)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에 대해 내린 결정이 플루토늄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위원회는 재처리공장의 안전대책이 새로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심사서안을 승인했다.정식 결정은 아니지만, 재처리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핵심적인 안전 심사에서 사실상 합격 판정을 내린 셈이다.

니혼겐엔의 계획으로는 나머지 행정절차 등을 거쳐 20221월에 재처리 공장을 재가동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재처리공장은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사성 물질 화학 공장이다.

길이가 4정도인 사용후 핵연료를 34크기로 절단해 질산으로 녹인 후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분리·정제해 분말 상태로 저장한다.

14일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액이 나오며 합계 면적 약 35에 달하는 6개의 건물에 방사성 물질을 분산 수용한다. 방사성 물질이 존재하는 면적이 통상 원전의 약 10배에 달해 위험성이 크며, 사고 등에 대비한 엄격한 안전 기준이 요구된다.

재처리공장은 1997년 완성을 목표로 1993년 착공했으나 공사 지연, 설계 변경 등으로 지연됐고 시험 가동 중이던 2009년에 배관에서 고준위 폐액이 누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24차례나 완공 시기가 연기됐다.

7600억엔이던 건설비는 4배가 넘는 29천억엔으로 늘었고, 설비 유지 비용과 폐지 조치를 포함한 사업비는 작년 6월 기준으로 139천억엔(159827억원)에 달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플루토늄 핵무기 수천발 분량 보유"핵연료 재사용" 주장

일본은 핵연료를 재사용하는 핵연료 주기(사이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재처리공장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플루토늄 산화물과 우라늄 산화물을 섞어서 만든 혼합산화물(MOX)을 연료로 쓰는 원자력발전을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많은 의문을 낳는다.

롯카쇼무라 소재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 모습

일본은 MOX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이른바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고속증식로 '몬주'를 후쿠이현에 건설했으나 1995년 나트륨 유출 사고, 2010년 로내중계(爐內中繼)장치 낙하사고, 2012년 기기 점검 누락 발각 등의 문제가 이어졌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612월 몬주 폐로를 결정했다. 1조엔이 넘는 국비가 투입된 꿈의 원자로 전체 운전 기간은 250일에 불과했다.

일반 원전에서 MOX 연료를 사용하는 플루서멀 발전에서 플루토늄이 사용되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전면 가동하면 연간 최대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약 7t의 플루토늄을 회수할 수 있지만, 현재 일본에서 플루서멀을 하는 원전은 4기뿐이라서 소비량이 연간 2t 정도에 그친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플루서멀 발전 계획이 있는 원전은 이 밖에도 더 있으나 심사나 지방자치단체의 동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플루서멀을 실행하기 쉽지 않은 원전이 많다.

일본은 몬주의 후속으로 프랑스와 함께 고속증식로 '아스트리드'(ASTRID) 개발을 추진했으나 프랑스 측이 비용 등 문제로 사업을 축소하기로 하면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재처리공장 사업을 계속하는 것은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에 따르면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니혼겐엔은 "재처리 사업이 현저하게 곤란해진 경우는 사용후연료를 시설 외부로 반출하는 등 조치를 강구한다"는 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만약 재처리를 포기하는 경우 재처리공장 수조에 보관 중인 약 3t에 달하는 사용후핵연료를 각 원전업체로 돌려보내야 하며 각 원전 내 보관 장소가 거의 포화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롯카쇼무라의 사용후핵연료를 되돌려 보내는 경우 원전을 가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미 대량의 플루토늄이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약 45.7t의 플루토늄을 보유했다.

2017년 말에 원자폭탄 약 6천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인 약 47t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약간 감소했지만, 여전히 대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잠재적 핵보유국'인 셈이다.

재처리공장 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 안전성에 대한 우려, 제한된 플루토늄 소비처 등을 고려하면 일본이 굳이 플루토늄 생산 시스템을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아베 신조 정권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법제를 변경하고 헌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어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다.

일본 정부는 사가현 소재 규슈전력 겐카이(玄海)원전 3호기의 MOX 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 640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에서 2012년부터 제외한 것이 2014년 일본 언론의 보도로 드러나기도 했다.

보고 누락한 플루토늄은 핵폭탄 약 80발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일본은 IAEA에 누락분을 추가로 보고했다.

플루토늄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일본 내각부 원자력위원회는 2018년에 보유량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일본 안보 관련 문제로 인식찬반 엇갈려

일본 언론은 핵연료 주기 정책이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4일 사설에서 "3년 전 일미 원자력협정 연장을 둘러싼 교섭에서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가 핵확산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안전보장의 문제도 있어 주기 정책에서 바로 손을 떼는 것은 곤란하다"고 논평했다.

진보 성향 언론은 일본이 추진하는 핵연료 주기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4일 사설에서 일본의 핵연료 주기 정책이 "이유 없는 국책"이라고 규정하고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위원회 결정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원전에서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려내고 다시 원전에서 태우는 핵연료 주기 정책은 이미 파탄했다. 재처리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핵 비확산이나 경제성 에너지안전보장 등 여러 면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아사히는 "이미 선진국 다수는 핵연료 주기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철회했다. 지금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핵보유국뿐이며 국가가 채산을 도외시하고 추진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플루토늄을 줄이겠다고 공언해놓고 플루토늄을 새로 추출하면 일본이 플루토늄을 줄일 의도가 있기는 한 것이지 혹은 핵보유국이 될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등 "엉뚱한 의심조차 받게 될 수 있다"고 신문은 우려했다.

반면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우리나라의 전력공급에 도움을 주는 큰 진전"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신문은 "핵연료 주기의 확립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확보하는 생명선"이라고 강조했다.

‘12·28 합의윤미향 미리 알았다? 굴욕적 내용은 발표 전까지 은폐

 

윤미향 외교부 3가지만 사전통보, 책임통감·총리사죄·국고거출

기자들에도 같은 내용 미리 알려일본에 얻은 것만 발췌통보한 셈

            2015년 당시 취재기자가 본 전말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의 7일 기자회견으로 촉발돼 이를 빌미로 한 이른바 윤미향 논란이 일파만파다.

논란은 크게 두 축이다. 한 축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상한 회계 처리를 둘러싼 언론의 의혹 제기이고, 다른 한 축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20151228일 합의(12·28 합의) 전후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의 이른바 말바꾸기논란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는 정대협 대표를 거쳐 정의연 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정의연의 이상한 회계 처리논란은, 언론의 의혹 제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모금한 돈을 목적과 달리 쓰거나 개인이 유용한 사례는 드러나지 않았다. 국세청 쪽도 일부 잘못 기재된 게 있지만, 재무제표 결산상으로는 정상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잠정 판단을 내놨다. 한경희 사무총장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데이터(회계) 처리에 대해서는 저희가 사과드린다. 고쳐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정의연 쪽이 거듭 사과개선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논란의 다른 한 축인 이른바 윤미향 말바꾸기논란은 그 전개 양상이 아주 고약하다. 이 문제는 ‘12·28 합의당시 한국 사회의 대응 태도와 닿아 있어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과 진실 규명이 절실하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합의 기반을 침식하고, -일 관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어서다.

윤미향은 미리 다 알고 있었나? 언론의 관련 보도를 압축하면,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가 한-일 국장급 협의 당사자인 이상덕 당시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한테서 사전에 주요 내용을 다 듣고 긍정적 반응을 하고는, 합의 발표 직후 돌연 반대 태도로 돌아서 협상 당사자들이 당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청와대·외교부 관계자들”(<중앙일보> 9일치 10), “당시 협상 과정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조선일보> 9일치 4), “전직 외교부 최고위 당국자”(<동아일보> 12일치 12), “당시 협상을 총지휘했던 전직 외교부 고위당국자”(<국민일보> 13일치 5) 따위다. 모두 익명 주장이다.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1차장이던 조태용 미래한국당 당선자가 10“‘위안부 합의에 대해 윤미향 대표에게 사전설명을 했다는 외교부의 입장을 분명히 들었다. (윤미향 당선자의) 말바꾸기를 주목한다고 한 게 유일한 실명 주장이다. 12·28 합의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이병기 비서실장, 외교부의 윤병세 장관과 이상덕 국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윤미향 당선자는 외교부에서 실제 일본과 합의 관련 내용을 통보받은 때는 20151227일 저녁이다. 일본 정부 책임 통감, 총리 사죄, 국고 거출 세 가지뿐이라고 밝혔다. 정의연도 11일 기자회견에서 정대협 법률자문위원회가 외교부 통보를 두고 (논의한 결과) -일 정부의 합의 발표 공식 기자회견 이후로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계를 20151228일로 돌리자. 기자는 당시 외교부 출입기자로 합의 발표 앞뒤 상황을 취재해 보도했다. 1228일 낮 12~1시 외교부 1·2차관과 차관보가 세 곳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논설위원들을 상대로 ‘12·28 합의를 사전 설명했다.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은 공식 발표 때까지 보도 유예(엠바고)”를 조건으로 발표 요지를 미리 알려줬다. 당시 군의 관여, 일본 정부 책임 통감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 세 가지가 핵심이다. 윤 당선자와 정의연의 기자회견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외교부 청사 3층 국제회의장에서 질문도 받지 않는 일방적 기자회견에서 합의 사항을 각자 발표하기 딱 2시간30분 전까지도 박근혜 정부는 얻은 것만 밝혔을 뿐, 일본에 한 약속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누가 거짓말을 하나? 윤미향인가, 12·28 합의 주역들인가? 익명의 합의 주역은 윤 당선자가 주요 내용 설명을 듣고는 고생했다’ ‘(결과가) 괜찮다’ ‘감사하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다고 언론에 주장했다.(<동아일보> <국민일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설혹 그랬다 한들 윤미향 말바꾸기의 근거가 될 수 없다.

12·28 합의 발표로 상황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임 차관 등이 언론에 미리 밝히지 않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한국 정부는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 노력이라는 숨겨진 비수가 드러난 것이다.

정작 당혹감에 사로잡힌 이는 익명의 12·28 합의 주역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인권·양심세력이다. 보수지 출입기자는 이거 완전 제2의 을사늑약이네라고 탄식하며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에 관한 한 일본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선생은 합의 발표 직후 이번 합의는 일본이 너무 이겨 버렸다. 피해자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탄식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에 구성된 ·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 20171227)에서 12·28 합의에 비공개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굴욕적이다 싶게 내용이 고약하다.

태스크포스 보고서를 보면 이런 식이다. 일본 쪽이 3국 위안부 관련 상·비 설치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함이라 하자, 한국 쪽은 한국 정부로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라고 답한다. 일본 쪽이 한국 정부는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함이라 하자, 한국 쪽은 직답을 피한 채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함이라 답한다. ‘성노예표현 사용은커녕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외교부에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일본 쪽이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지,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고 하자, 한국 쪽은 공개 발표 을 재확인한다. 합의 발표 당일 기시다 외상이 일본 기자들한테 “(소녀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일본 쪽이 정대협 등이 불만을 표명하면 한국 정부가 설득해주기 바람이라 하자, 한국 쪽은 설득을 위해 노력함이라 답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병기-야치 쇼타로(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사이의 비공개 고위급 협의가 12·28 합의를 주도했으며, 합의 발표 여덟달 전인 2015411일 이 창구로 최종 합의와 유사한 잠정합의를 한 사실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른바 윤미향의 말바꾸기가 논란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12·28 합의 주역들의 굴욕적 대일 약속과 발췌 통보’, 은폐가 문제다.

한국 사회가 난데없는 윤미향 논란으로 휘청이는 와중에도 13일 정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1439회 수요시위가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열렸다. 199218일 첫 집회 이후 한주도 거르지 않고 꼬박 29년째다. 12·28 합의 발표 당시 47명이던 생존 피해 할머니(정부 등록 기준)는 이제 18명뿐이다. 12·28 합의 발표 이듬해인 2016년 김숨이 장편소설 <한 명>을 발표했다. 평생을 자책하며 숨어 지내던 피해 할머니가 공식 피해 생존자 두 명중 한 명이 숨져 오직 한 명만이 세상에 남았다는 뉴스를 듣고는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며 세상 속으로 걸어나오는 이야기다. 피해 할머니 없는 세상, 한국 사회가 미구에 맞닥뜨릴 참혹한, 그러나 예견된 미래다. 한국 사회는 허깨비와 씨름할 시간이 없다. < 이제훈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