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너지기구 “2017년 CO2 한계치”경고


세계가 5년 안에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를 막을 강력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지구는 영원히 그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경고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의 수석 경제학자인 파티흐 비롤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가 온난화의 한계인 2℃ 이하의 기온 상승을 유지하려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50ppm 이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만들어진 탄소 배출 시설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이미 한계치의 87%인 390ppm까지 이 농도를 높여놨다. 현재 추세라면 이 농도는 2015년 90%, 2017년 100%에 이르게 된다. 농도가 100%에 이르면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번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100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물면서 온난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현재 탄소 배출량은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세계 경기침체가 닥친 2010년에도 전년보다 1.6Gt(기가톤)이 늘어난 30.6Gt의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돼 최고 기록을 바꿨다. 이산화탄소를 주로 배출하는 시설은 화석연료 사용 발전소와 공장, 교통수단, 건물 등이다. 이런 시설은 현재도 계속 지어지고 있다. 
전망은 비관적이다. 이달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는 2012년 효력이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협정을 맺기 위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 러시아 등 여러 나라들은 새 협정을 2018년이나 2020년께 맺기를 원한다. 영국의 그레그 바커 기후변화 장관은 “우리는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미국이나 신흥국인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등이 2015년까지 이 논의에 참여한 뒤에 2020년쯤 합의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비아의 과도정부는 지난 20일 숨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주검 공개를 24일 중단하고, 그의 주검을 25일 사막에 비밀리에 매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격적인 결정은 카다피의 불명확한 최후와 그의 주검 공개에 대한 논란과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과도정부의 한 관리는 “카다피의 주검은 25일 사막 한가운데의 비밀 장소에서 이슬람 족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소한 장례로 묻힐 것”이라고 밝혔다. 시르트에서 카다피와 최후를 함께 한 넷째 아들 무타심도 함께 묻힌다. 
이 관리는 이번 결정이 그의 주검이 그대로 두지 못할 정도로 부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카다피가 사로잡힌 뒤 과도정부군에게 두들겨 맞고 총에 맞아 숨진 점, 그의 주검을 냉동고에 보관하며 시민들에게 공개한 점에 대해, 국제인권단체들뿐 아니라 과도정부를 지원한 서방국가들조차 유감을 표시해왔기에 이를 의식한 조처로도 보인다.


포위망 속 빈 집 전전하며 쌀과 파스타로 연명
카다피 마지막 동행한 측근 NYT와 인터뷰, 수행원 10명…고향 땅서 고립

절대 권력을 누린 독재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버려진 가옥을 전전하며 사람들이 두고 간 쌀과 파스타로 연명했다. 무아마르 카다피와 함께 붙잡힌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22일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시르테에 포위된 카다피 일행의 마지막 날들을 털어놨다. 다오 사령관은 리비아 정보부대이자 지원병 조직인 리비아 인민수비대를 이끌었던 카다피의 최측근이다.
 
그에 따르면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과도정부에 함락된 지난 8월 22일 측근과 수행원 약 10명만을 데리고 거점 지역인 타르후나와 바니왈리드를 경유해 곧바로 고향 시르테에 도착했다. 니제르 행 혹은 남부 사막지대에 은신했다는 등의 추정을 뒤엎은 것이다. 시르테행은 4남 무타심이 외부의 예상을 역이용한 결정이었다. 
다오는 카다피가 외부의 예상과 달리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면서 그가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대신 카다피는 외부와 거의 고립된 채 코란을 읽거나 전화 통화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가 없기도 했지만 있었다 해도 전기가 자주 끊겼다.
카다피는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뿐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 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로 전달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 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에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카다피 본인은 퇴진 가능성도 열어뒀지만 아들 무타심이 특히 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다오는 전했다.
한 번은 포탄이 카다피 일행의 거처에 떨어져 경호원 3명과 요리사가 부상해, 그 때부터 모두 직접 음식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됐다. 2주전 과도정부군의 포위망이 시르테 중심부까지 좁혀오자 카다피 부자는 주거지역인 ‘제2구역’에 있는 주택 2곳을 오가며 공격을 피해다녔다. 궁지에 몰린 카다피는 결국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20일 새벽 3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했다.이날 혼란으로 출발이 지연되면서 차량 40대로 구성된 카다피 일행은 오전 8시에야 이동을 시작했고, 카다피와 최고사령관, 친척, 다오가 탄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30분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파편을 맞고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는 다오는 “리비아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모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신문에 말했다.

한편 첫째 부인에게서 얻은 장남과 지금의 둘째 부인 사피아 파르카시에게서 6남 1녀 등 모두 7남 1녀인 카다피의 자녀 가운데 생존자는 절반뿐이다. 
부인과 장남 무함마드, 5남 한니발, 외동딸 아이샤는 지난 8월 알제리로 국경을 넘었다. 3남 사디는 지난달 니제르로 피신했으며,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2남 사이프 이슬람과 4남 무타심은 20일 시르트 함락 때 아버지와 운명을 함께했다. 6남 사이프 아랍은 지난 5월 나토의 트리폴리 공습 때 카다피의 손자 3명과 함께 숨졌다. 리비아 최정예 카미스 여단 사령관이던 7남 카미스는 8월 트리폴리 남부 외곽에서 리비아 과도정부군과 교전 중 사망했다.


터키 지진, 기적의 생환 잇달아

● WORLD 2011. 10. 29. 15:35 Posted by SisaHan


사망 430여명·부상 1천3백여명 터키 지진
기적의 생환 잇달아

사망자가 최대 수천명에 이를 수도 있는 처참한 재난 가운데서도 기적은 꽃피고 있었다. 생후 2주밖에 안 된 갓난아이가 지진 발생 47시간 만에 생존한 채로 구출되는 등 터키 지진현장에서 기적의 생환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AP 통신은 25일 터키 동부 에르지쉬에서 생후 2주의 여자아이 아즈라 카라두만이 구출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방송은 발가벗은 카라두만이 무너진 아파트 잔해 속에서 구조돼 담요에 싸인 채 의료진에게 옮겨지는 모습을 계속해서 방영하고 있다. 아이는 큰 부상이 없지만 물과 음식이 부족해 탈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대는 몇시간 뒤 아이의 엄마인 세미하 카라두만과 할머니 또한 구조에 성공했다. 아버지는 아직 잔해 속에 묻혀 있지만 생존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터키 국민은 기적적인 생존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 엄마와 할머니를 태운 구급차는 구조대의 환호성 속에 급히 아이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에르지쉬에 살던 귈 카라초반(25)은 18시간 만에 약혼자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다. 건물 잔해에 깔려 움직일 수 없었던 그를 구출한 것은 100㎞ 정도 떨어진 반의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다 달려온 약혼자였다. 지진이 발생하자 바로 달려온 약혼자는 지진 당시에 음식점에서 식사중이었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식당 근처로 달려가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른 끝에 카라초반을 구해냈다. 무너진 인터넷카페 건물 잔해 속에서 세살배기 남아가 발견되는가 하면 토사 더미에서 16살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구출되기도 하는 등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보통 지진 뒤 생존 한계시간으로 일컬어지는 72시간이 다가오면서 인력이 모자란 구조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터키 재난방재청은 동부를 강타한 규모 7.2의 이번 강진으로 건물 2262개가 파괴됐다고 밝혔는데, 구조작업을 벌이는 적십자·적신월사는 사망자가 최대 수천명에 이를 수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25일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는 432명, 부상자는 1352명이다.


“1% 부자들 탐욕,99%가 막자”

● WORLD 2011. 10. 11. 18:11 Posted by SisaHan


자본 탐욕에 항거 자연발생‥「월가 시위」

‘월가 시위’는 애초 온라인 잡지 <애드버스터스>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민주화 시위가 열린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이 모델로, 특정한 지도자나 주도하는 조직 없이 마치 ‘플래시 몹’처럼 시위대의 뜻에 동의하는 누리꾼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 형성됐다. 처음에는 20대 젊은층 수백명이 모이는 정도에 그쳤으나, 시위가 2주일을 넘어서면서 이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중년층도 많이 참가하는 등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지고 있으며, 노조와 좌파 단체들도 속속 결합하는 추세다. 이들은 “우린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니다”라며 특정 정파로 구분되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부자, 금융권·기업 등의 탐욕이 미국 빈부 격차의 주요 원인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들이 장악한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주코티 공원은 ‘해방구’처럼 운용되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총회를 매일 두차례 열어 시위 계획을 결정한다. 식사 때가 되면 기부받은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다. 
시위대의 구호에는 금융권의 탐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가장 많으나, 지구 온난화, 사회 불평등 등 다양한 구호가 섞여 있다. 1일 브루클린 다리에선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쪽으로는 유전자 변형 식품 반대 단체와 지지자들이, 반대 방향인 맨해튼에서 브루클린 쪽으론 빈부 격차를 비판하는 시위대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