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조처 때 파티 개최는 “정권핵심 기준 못지켜”

존슨 총리 사퇴 요구 일축… “경찰 수사 기다릴 것”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2일 하원에 출석해 2020년 5월15일 총리 관저에서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어기고 파티를 한 것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사임 위기로 몰아 넣은 ‘파티 게이트’와 관련해 영국 정부가 정권 핵심에 있는 이들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엄격한 봉쇄 조처가 취해졌을 때 파티를 개최한 것은 “리더십과 판단이 결여된 것”이라며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힘들다”고 결론 냈다. 존슨 총리는 재차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사퇴 요구엔 응하지 않았다.

 

그동안 ‘파티 게이트’에 대해 조사해 온 수 그레이 영국 내각부 제2차관(공직윤리 담당)은 31일 12쪽짜리 보고서를 내어 “몇몇 모임에선 정권 핵심에 있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이는) 리더십과 판단이 결여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몇몇 모임에 대해서는 정당화가 힘들다”면서 “일터에서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것은 어느 때라도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레이 차관은 이번 조사에서 2020년 5월∼2021년 4월 사이에 총리관저에서 이뤄진 16개의 모임을 자세히 살펴 봤다. 이 가운데는 존슨 총리가 참석을 인정하고 사과한 2020년 5월20일 총리관저 파티와 6월 존슨 총리의 생일 파티도 포함돼 있었다. 그레이 차관은 “이 가운데 경찰이 수사했던 사안은 4건뿐이라며 나머지 12건에 관해선 정보를 경찰에 인계했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보고서의 분량도 12쪽 정도로 최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 차관은 이번 조사를 벌이면서 70명이 넘는 사람을 최소한 한 번 이상 개별적으로 면담했고 왓츠앱 메신저, 문자 메시지, 사진과 동영상, 총리실 출입 기록 등을 광범위하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정부 전체에 즉시 전달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가 발표된 뒤 존슨 총리는 하원에 출석해 봉쇄 기간 총리실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우리는 반성해야 하고 더 배워야 한다”고 재차 사죄하면서도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사퇴요구는 일축했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파티 참석 사실에 대해 사죄하면서 “조사 결과가 나오면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큰 비난을 받으며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영국 국민들은 팬데믹 기간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렀다. 존슨 총리는 국민의 희생을 무시하고, 공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여당인 보수당의 앤드루 미첼 의원도 “존슨 총리를 더이상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고, 테리사 메이 전 총리도 “존슨 총리와 주변인들은 해당 규정을 읽지 않았거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면 자신들에게 적용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어느 쪽인가?”라고 되물었다. 길윤형 기자

분위기 ‘백악관 재입성’? 트럼프의 2024년은 오고 있는가

올들어 목소리 높여 “당선되면 1·6 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자 사면”

공화당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54%로 1위 ‘2024년 출마 카드’

 

지난 29일 미 텍사스 콘로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가 환호하고 있다. 콘로/AFP 연합뉴스

 

말썽많았던 정치인 트럼프는 퇴임 1년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뉴스의 중심을 맴돌고 있다. 미국 전직 대통령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가 유일한 사례다. 방송 경력도 화려한 그는 대중의 눈길을 끄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새해 들어 그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정말 정치권 복귀를 노리고 있는 걸까?

 

미국은 격년으로 선거를 치르는 나라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해 11월 둘째 주 화요일엔 중간선거가, 2년 뒤 같은 날엔 대선이 치러진다. 미국을 “선거운동이 영원히 멈추지 않는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선거운동은 투표 다음 날 시작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2년째를 맞은 올해는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중간선거에선 연방 하원의원(임기 2년) 435명 전원과 상원의원 100명의 약 3분의 1(임기 6년), 상당수 주지사(임기 4년) 선거가 치러진다. 연방 하원과 상원의 구성, 주요 지역 주지사의 성향에 따라 차기 대선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중순을 기점으로 추세가 뒤집히면서, 지지율 40%대를 가까스로 방어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올 들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플로렌스에서 열린 대중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 들어 처음이다. 그는 “인종 차별적으로 처방과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백인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접근에서 명백히 차별을 받고 있다”는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을 내놓으며 참석자들을 흥분시켰다. 이어 29일 텍사스주 콘로의 행사에 나타난 그는 다시 ‘출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29일 미 텍사스주 콘로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콘로/EPA 연합뉴스

 

“202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1.6 사태 관련자를 공정하게 대할 것이다. 너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사면도 하겠다.”

 

‘1.6 사태’는 지난해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대선 결과를 최종 확정 지으려 의원들이 모인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사태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한 미 정치권에선 의회 차원에서 조사위원회를 꾸려 지금까지 진상을 파헤치고 있다. 사태를 ‘배후 조종’한 의혹을 사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도 당연히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그는 이날 집회에서 1.6 사태를 포함해 자신을 겨냥한 수사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악질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위법이나 불법을 저지른다면, 워싱턴과 뉴욕, 애틀란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미국의 선거 제도 부패에 맞서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기를 희망한다.” 2020년 대선에서 패한 뒤에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선거 부정’을 주장했던 때와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선동적인 발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될 것임을 뜻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요 지역에서 자신의 지지자가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선거운동을 지원할 모양새다. 이들이 중간선거에서 당선돼 의회로 입성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곧바로 2024년 대선 운동에 뛰어들 것이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12월29일 <로이터> 통신이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맡겨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99%의 인지도와 52%의 호감도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각각 98%의 44%였다. 차기 대선 당내 후보 경선 출마가 유력한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인지도 82%, 호감도 41%)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인지도 92%, 호감도 42%)는 두 가지 지표 모두 뒤처진다. 새롭게 떠오르는 공화당 대선 주자인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인지도(76%)에선 뒤졌지만, 호감도(45%)에선 1%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2024년 공화당 대선 후보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선 격차가 크게 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54%를 차지한 반면 드산티스 주지사는 11%에 그쳤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각각 8%와 4%로 그 뒤를 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부터 드산티스 주지사에 대한 견제에 나서는 한편, 차기 대선에서 그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삼겠다는 주장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29일 미 텍사스주 콘로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지지자들이 ’미국을 구하자’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콘로/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6일 플로리다주의 한 골프장. 휴대전화로 아무렇게나 찍은 화면 속에 모자를 눌러 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여러분은 지금 미국 제45대 대통령의 티샷(각 홀의 첫 타격)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동행한 이의 말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45대 대통령이자 제47대 대통령”이라고 정정한 뒤 골프채를 휘둘렀다. 주변 지지자들 사이에선 찬사가 터져 나왔다.

 

이 영상은 당일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새삼 한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출마’ 카드를 의식적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드를 쥐고 흔드는 한 그의 ‘정치 생명’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의회의 조사와 검찰의 수사에 맞설 든든한 방패로 삼을 만하다. 여러모로 '목불인견'이지만 기묘한 권력의 속성이다. 정인환 기자

항공편 6천편 결항·고속열차 운행 취소…매사추세츠 12만 가구 정전

보스턴 60㎝ 넘는 폭설 예고 '긴장'…시속 134㎞ 강풍 몰아친 지역도

 

29일 눈으로 뒤덮인 미 뉴욕 거리.(뉴욕 UPI=연합뉴스)

 

29일 미국 동부 해안 지역에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주가 속출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버지니아주부터 메인주까지 미 동부 해안지역 10개 주를 눈보라가 강타했다.

 

AP 통신이 '허리케인급'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도가 셌다.

 

이에 따라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뉴저지, 뉴욕, 로드 아일랜드 등 각 주에서 비상사태 선포가 잇따랐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12만 가구가 정전됐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다른 지역에서도 대규모 정전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또 뉴욕과 보스턴,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항공편 4천500편이 대거 취소됐다고 AP는 보도했다. 로이터는 주말까지 6천 편이 결항된 상태라고 전했다.

 

전미여객철도공사 암트랙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워싱턴DC를 잇는 고속열차 운행을 전면 취소했고 눈보라 영향권에 든 다른 지역의 운행도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폭설이 내린 주택가

 

미 언론은 시속 35마일(56㎞) 이상의 강풍 속에 눈이 내려 시계(視界)가 4분의 1마일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이 3시간 이상 계속될 때를 눈보라로 규정할 수 있는데 상당수 지역에서 눈보라의 조건이 충족됐다고 전했다.

 

특히 보스턴에는 눈이 60㎝ 이상 쌓일 수 있다는 예보가 나와 당국이 긴장한 상태다. 고립된 지역에서는 눈이 1m 이상 쌓일 수도 있다고 기상당국은 예측했다.

 

기상당국은 보스턴 지역에 사방이 백색으로 변해 방향 감각을 잃게 되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 통신은 1978년 눈보라가 미 북동부 지역을 강타하면서 보스턴에 70㎝가 넘는 눈이 쏟아져 사망자가 속출하고 주민들이 일주일간 집안에 갇힌 적도 있다고 전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일부 지역에는 이날 오후 눈이 55㎝ 높이로 쌓였고 뉴저지주 베이빌에도 48㎝의 폭설이 내렸다.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에는 강풍이 시속 83마일(134㎞)로 몰아쳤다. 매사추세츠주 동부 지역과 로드아일랜드주에선 시속 60마일(96㎞)의 돌풍이 불었다.

 

뉴햄프셔주와의 경계인 보스턴 북쪽 지역에서는 해안가에 사는 주민들에게 고지대로 이동하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보스턴 남쪽 노스웨이머스 등지에서는 해안 범람으로 도로가 물에 잠겼다.

 

당국은 주민들에게 이동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라는 지침을 내렸다. 가게들은 문을 닫거나 평소보다 늦게 영업을 시작했다.

 

캐시 호컬 뉴욕주 주지사는 회견에서 "아주 심각한 폭풍이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동 자제를 당부했다.

 

AP 통신은 "나무를 부러뜨리거나 전선을 훼손할 가능성이 덜한 마른 눈이고, 주말이라 학교가 닫고 통근 행렬이 적다는 게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전했다.

 

남동부 플로리다주까지 기온이 떨어지면서 나무에서 동면하던 이구아나가 떨어지기도 했다고 WP는 전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는 폭설을 피했다.

 

미국에서는 겨울에 동북부 해안 지역을 강타하는 폭풍을 일반적으로 '노리스터(Nor'easter)'라고 부른다. 이번 눈보라는 일요일인 30일 오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러시아의 재대결, 전쟁 공포에 떠는 동유럽

● WORLD 2022. 1. 30. 04:0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 운명은?

러, 12만 병력 우크라이나 둘러싸 “북·동·남쪽서 공격 가능한 상황”

나토군도 8500명 배치 일촉즉발 ‘두 세계 충돌’로 유럽 전역 불안

 

러시아군이 지난 26일러시아 남부 로스토프 쿠즈민스키 지역에서 궤도형 다목적 수륙 양용 장갑차(MT-LB)를 앞세워 전투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주변에,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면 ‘전운이 감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24일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8500명이 우크라이나 일대에 배치됐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영국 등은 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했고,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도 철수 준비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를 넘어 옛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동유럽 국가들로 긴장이 확산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알라르 카리스 대통령은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나토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며 “에스토니아에 나토군이 더 주둔하길 바란다”고 했다. 전임자인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가 발트해 이웃 나라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반면 지난해 10월 취임한 카리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서방 쪽으로 훌쩍 더 다가섰다.

 

고래싸움에 끼인 옛 소련권 국가들

 

리투아니아는 미국산 스팅어 휴대용 방공시스템과 열영상탐지기 등 군 장비를 우크라이나군에 보내기로 했다. 앞서 미국은 미국산 장비의 제3국 이전을 승인해 리투아니아가 대전차 미사일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해줄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도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무기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소련에 1940년 강제병합됐다가 냉전이 끝나면서 독립한 발트 3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것을 보며 어느 때보다 불안에 떨고 있는 듯하다. 세 나라는 공동성명을 내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약속했다.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러시아, 그에 맞서는 서방, 그 사이에 낀 옛소련권 국가들.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곳은 벨라루스다. 친서방 발트국가들과 달리 크렘린에 찰싹 달라붙은 벨라루스야말로 ‘푸틴의 야심’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보여줄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러시아 국경지대에는 러시아군 병력 12만명가량이 주둔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합동 군사훈련을 명분으로 벨라루스에도 7~10개 대대 약 4200~9000명과 수호이 전투기들을 이동시켰다. 미국 언론들의 표현을 빌리면 ‘우크라이나를 북쪽, 동쪽, 남쪽에서 공격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미국의 우파 분석가들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프레더릭 케이건과 전쟁연구소의 조지 바로스는 의회전문지 <더 힐> 기고에서 “벨라루스로 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략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면서 러시아가 폴란드와 발트 3국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썼다.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거 없는 선동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푸틴은 2000년 취임한 이래로 벨라루스와 러시아를 다시 연합국가로 묶는 구상을 지지했으며 이미 몇년 전부터 벨라루스에 공군기지를 설치하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에는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이 러시아의 압박 앞에서 미적거렸지만, 거센 민주화 시위에 부딪힌 뒤 루카셴코 대통령은 크렘린과 급격히 밀착하고 있다. 2021년 11월 루카셴코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군사적 연합을 비롯해 크렘린이 요구해온 협정들을 거의 모두 수용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핵무기다. 올해 2월 채택될 것으로 보이는 벨라루스의 새 헌법 초안은 ‘중립’과 ‘비핵화’라는 현행 헌법의 핵심 조항들을 무력화했다.

 

 

푸틴은 소련의 해체를 ‘굴욕의 역사’로 보는 인물이다. 그는 동유럽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걸까.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것이 무리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도박은 푸틴의 스타일이 아니다. 지난해 그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합’이라는 장문의 글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한 민족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함께해야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푸틴뿐 아니라 러시아인들 다수가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역사적 감정이다. 푸틴에게,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역사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남의 나라’가 아니다.

 

위험한 군사 배치를 감행하면서 푸틴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나토가 더는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지 않는 것,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영향력 아래에 남겨두라는 것이다. 팽창주의라기보다는 ‘원래 우리 것인 지역을 넘보지 말라’는 위협에 가깝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분노할 상황이지만, 미국과의 대립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야심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옛 세력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니 나토는 너무 설치지 말고, 미국은 너무 압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크렘린은 계속 발신해왔다.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개입한 것도 러시아의 세력권을 세계에 확인시키려는 행보로 분석됐다. 그러나 미국 바이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뜻이 없어 보인다.

 

도박까지는 아니더라도 푸틴이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의 돈줄인 가스프롬을 비롯해 주요 러시아 기업들의 가치는 떨어졌고 루블화도 폭락 중이다.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나토군을 내보내고 싶어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오히려 나토의 보호를 요구하는 역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에도 부담은 크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만일 우크라이나를 건드리더라도 ‘소규모 공격’에 그칠 것이라면서 군사적 대응과는 선을 그었다. 유럽과 미국의 시각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9일 유럽연합 상임의장국 임기를 시작하면서 유럽연합(EU)이 러시아와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가 만나 휴전을 이끌어냈는데, 그 전례를 살린 ‘4자 회담’으로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유럽 뒤흔드는 두 세계관의 대결

 

독일도 미국과는 온도차를 보인다. 발트국가인 에스토니아는 미국산 무기뿐 아니라 러시아제 곡사포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려 하고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다. 옛동독에서 핀란드로, 다시 에스토니아로 소유권이 이전된 곡사포를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는 데에는 독일이 승인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최근 취임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 긴장이 주변국들로 퍼져가는 것을 경계한다. 최근 몇몇 독일 언론에는 에스토니아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넘겨주는 것을 숄츠 정부가 막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전운’만으로도 세계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동유럽을 뒤덮은 이 위기를 <에이피>(AP) 통신은 ‘유럽을 뒤흔들 수 있는 두 세계관의 대결’이라고 표현했다. 우크라이나 신문 <키예프 포스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불독 정신’을 배워 러시아에 맞서자는 글이 실렸다. 45년의 냉전은 진작 끝났고 그 후 다시 30년이 지나갔지만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 사람들의 운명은 여전히 두 냉전국들에 달려 있는 듯하다. ‘두 세계’의 화해는 불가능한 것일까. 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