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모세의 실패

● 교회소식 2018. 8. 29. 12:39 Posted by SisaHan

모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이도 많고 용기도 부족하고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종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세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또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양자가 되어서 궁궐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고통받는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서양사회에서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기득권을 ‘white privilege’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백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인이 아닌 우리들은 백인들에게 우선권/기득권이 있다는 것을 쉽게 경험합니다. 그런데 만일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white privilege를 깨닫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여성들의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차별 철폐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남자는 참으로 훌륭한 남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자비와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데 있습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광야로 피신한 적도 있었고 십계명을 땅 바닥에 깨트린 적도 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 계명을 가지고 내려와서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이러한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아직 자유인으로 살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금송아지에 제사드린 사람들에게 금송아지 동상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십계명 돌판 2개를 다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두 번 째 돌판은 네가 직접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 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세는 두 번 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목표를 다시 세웠을 것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tyranny of dream, 꿈의 횡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꿈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꿈이 횡포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두 번 째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첫 번 째 돌판이 깨졌을 때 두번째 돌판을 만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세처럼 실패의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 정해빈 목사 - 알파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고려인 (카레이스키)

● 칼럼 2018. 8. 29. 12:36 Posted by SisaHan

나는 얼마 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고려인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게 되었다. 고려인이란 러시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말한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나도 그들과 다름없이 조국을 떠나온 동포 중의 하나이다. 우리 아이들은 2세가 되고, 곧 3세가 될 것이다. 흔히들 해외에 나와 사는 사람(동포)을 이야기할 때, 중국. 북미, 일본 이외의 동포들에 대해선 그들과의 접촉도 없었고, 그들의 살아온 과정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구 소련에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잘 모르고 있었다. 일제 때 사할린에 강제 노역으로 끌려간 동포들의 고향방문 이야기는 어렸을 때, 신문에 뉴스로 간간히 나오곤 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고려인들은 일제 때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갔거나, 또는 만주를 거쳐 러시아로 간 사람들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관계로 그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그리로 이주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였는지 사뭇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허벌판인 곳에서 살아남았으며 어떻게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했는지, 같은 고향을 떠나 온 사람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스탈린의 독재와 강압 정치는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몇 십 만 명을 넘는 사람들이 그의 명령 하나로 이주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벌판인 땅에 버려져 거기서 벼를 심어 농사를 짓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다.


그들은 구 소련이 무너지고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살다가, 그 두 나라가 한국과 교류가 빈번해지고 자유스럽게 왕래하기 시작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고싶어 하고 또 살려고 한다. 이 점은 몇 해 전의 중국의 조선족을 생각하게 한다. 이들은 조선족처럼 외모가 우리와 같았다. 다만 한국어를 못했는데, 이유는 스탈린의 강압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 이내 배울 거라 생각하며 5세까지 내려오며 한국인임을 지켜온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려는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부 빛과 외모에서 오는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3세이든 4세이든 그들은 이웃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이민 3세가 한국으로 오는데, 같이 온 아이들은 이민 4세여서 동포로서의 국내 거주 자격이 없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던 자녀들은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나는 사실 해외 동포 법을 잘 모른다. 해외에 살면서 국민으로 해야 할 의무는 전혀 행사하지 않으면서 어떤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한국민이 아니다. 한국인이다.


많은 이들이 현 해외 동포 법이 북미 같은 잘사는 나라의 동포들을 위한 법이라고 한다. 해외에 흩어져 사는 많은 동포들이 같은 조건 아래 살고 있지는 않다. 또 그에 따라서 조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다. 이제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이곳 캐나다 생활을 접고 역 이민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을 말할 때 한국에 나가 영주하려는 2세나 3세가 얼마나 될지 나는 모른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감정적인 문제가 있고 그 다른 면에는 이성적인 문제가 있다. 그리고 한 국가에는 법과 원칙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바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여 동등한 대우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동포 법이 잘못된 점이 있다고 해도 어느 한 지역의 동포만 다르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다른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살아온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이야기지만 자신은 한국인이라 해서 한국에 왔는데, 너의 부모까지는 동포이고 너는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한국에도 정착 못하고 우즈베키스탄에도 정착 못하는 떠돌이가 된다면…. 고려인 4세와 5세를 진정한 동포로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우리 한국이 작은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미꾸라지와 희망론

● 칼럼 2018. 8. 29. 12:33 Posted by SisaHan

살다보면 기대를 잔뜩 품었다가 어긋나는 바람에 실망할 때가 있다.
그 사람 능력있고 믿음직스러워 기대를 걸었는데 지나보니 실없고 형편없음이 드러나 맥이 풀리기도 하고, 소문난 밥집이나 명소에 들렀다가, 또는 대단한 제품인줄 알았다가 별거 아닌 엉터리여서 실소를 머금고 화가 나기도 한다. 가장 믿었던 친구나 연인이 배신하고 내편이 아님을 알았을 때 치솟는 배신감도 마찬가지다. 기대와 믿음이 큰 만큼 낙담과 상처도 더 클 것은 당연하다.


요즘 잇달아 터져나오는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들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도 법치국가의 최후 보루라는 최고법원의 위상만큼이나 기대와 신뢰의 크기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깨졌을 때는 어떤가. 합당한 비교가 아닐 수는 있어도 대법원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의 강도보다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법원이 법이라는 사회적 성문(成文)규범을 지키는 세상의 마지막 파수꾼이라면, 교회는 영적(靈的)규범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신성한 형이상학적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교회를 정직하고 진실된 곳이라는 인식과 기대를 갖고 본다. 더구나 어느 목회자나 성도들의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인이고 그의 몸인 ‘하나님의 집’이라고들 말한다. 그런 교회가 기대를 저버렸을 때 실망과 지탄이 작고 약하다면 말이 안된다. 10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가 부자세습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가장 큰 교단의 대표적 교회가 목사 자격시비에 사회법규를 어긴 일로 재판에서 망신을 당하는 모습 등에 깊은 탄식들이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교회들의 추락과 타락상을 갈수록 많이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한 성장 신화에 빠져 하나님보다는 돈과 건물을 중시하고, 성경보다는 목사의 입신양명이 더 중요시 되는 ‘회사 같은’ 교회, ‘기업인 같은’ 뻔뻔한 성직자들이 늘고있는 것으로 보여서다.
지금도 교계를 시끄럽게 하는 일부 한국교회들의 분란은 그런 실상을 드러낸다. 퇴임목사와 회계장로가 한통속이 되어 헌금을 멋대로 유용하고는 후임 목사도 그 악행에 끌어들이려다 뜻대로 안되자 쫓아냈다는 이익집단의 모습, 그런데 감독기관인 노회 마저 어찌된 일인지 분별을 못하고 쫓겨난 젊은 목사를 구제하기는커녕 도리어 면직을 시켰다니 성도들이 기가 막히다 못해 배신감으로 떠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교인 1백명도 안되는 교회가 원로목사의 은퇴 예우금 문제로 다투는 모습은 요사이 본분을 잃은 목회자들의 의식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교회 운영조차 어렵다는 재정상황에 아랑곳 없이 그 원로목사는 이렇게 당당히 주장했다. “내가 이 교회에 와서 13년을 지키며 부흥시켰는데, 1억5천만원도 못주나. 큰 교회들은 보통 10억 100억씩도 아무 조건 없이 주는데, 내가 그만큼 달라는 것이 무슨 문제냐!”


하지만 성도들은 재임 동안 교인수가 되레 반토막 났다며 반발했고, 보다 못한 노회에서 1억원을 주라고 중재에 나서 교회는 결국 일부를 일시금으로 주고 ‘잔금’은 5년간 매월 ‘퇴직급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형교회들이 모범을 보이기보다 타락의 본이 되어 가면서 작은 교회들 마저 뒤따라 가는 것은 아닌지, 교회를 흔들고 ‘하나님 욕보이는’ 일부의 일탈 때문에 착하게 섬기는 많은 목사와 성도들 가슴에 못을 박고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자꾸 언론을 장식한다.
성직의 오염과 교회의 세속화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역시 일부의 탐욕스런 모습이 침소봉대 되어 신문지면을 메우는 실망의 현실도 그만큼 기대와 신뢰가 큰데서 연유함이리라.


그러면 희망이 없는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명을 다하는 대다수 교회들의 선행은 흔히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살 듯,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살펴보면 오지에서 묵묵히 땀흘리는 진실된 목회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매사가 그렇듯 수많은 교회에도, 성직자 가운데에도 미꾸라지는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들로 인해 신발끈을 다시 매고 경각심을 새로이 하는 효과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작위적 희망론’에 남은 ‘기대’를 걸어본다. 중세 가톨릭의 부패가 종교개혁을 부르고 개신교의 탄생을 가져 왔다는 반면교사로도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고용 충격’의 진짜 원인

● 칼럼 2018. 8. 29. 12:32 Posted by SisaHan

최근 발표된 ‘충격적’인 고용지표의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선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라며 즉각 이를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으려면 원인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우선 지표를 보면,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건설업 일자리 증가 둔화, 인구구조 변화, 폭염, 자영업 구조조정 등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7월에는 4만7천명 줄었는데, 올해 7월에는 무려 12만7천명이나 감소했다. 건설업 취업자는 지난해 7월 10만5천명 증가한 데 반해, 올해 7월에는 3만7천명 증가에 그쳤다. 둘째, 15살 이상 인구 증가폭은 지난해 7월 31만9천명에서 올해 7월 24만1천명으로 크게 둔화됐다. 셋째, 재난 수준의 폭염이 영세 자영업과 현장노무직, 노인층 등의 경제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세 자영업자가 많이 포진한 도소매업과 음식점·숙박업 취업자 감소폭은 지난해 7월 3만6천명에서 올해 7월에는 8만명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 업종의 부진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폭염, 최저임금 인상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 구조조정 가속화에서 보듯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만병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경제학계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시장 영향은 찬반이 엇갈리는 오래된 논란거리다. 대체로 동의하는 견해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두해 연속 두자릿수 인상이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개연성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뚜렷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올해 7월에 오히려 7만2천명이 늘었다. 주목할 부분은 더 영세할 것으로 보이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0만2천명이나 줄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고용 부진은 우리 경제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제조업 부진은 재벌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과잉투자, 정경유착, 중국의 추격 등으로 기존 대기업 위주 산업경쟁력이 근본적으로 약화된 데 기인한다. 자동차산업은 올해 1~7월 생산은 8.8%, 수출은 9%나 감소했고, 조선업 부진은 몇년째 계속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잘못된 인구정책과 미흡한 사회보장, 저임금 과로노동 등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자영업 구조조정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실업자들이 생계형 자영업으로 몰려들면서 발생한 공급과잉 탓이 크다.

결국, 고용 충격은 소득주도성장의 폐기에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오히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의 세바퀴 성장 전략을 더 강화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 정부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의 방향은 제대로 제시했으나 그 실행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엉터리 세수추계를 통한 초과세수로 오히려 긴축재정을 펴는 우를 범했다. 또 증세를 회피하고자 사회간접자본(SOC) 축소라는 세출 구조조정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건설업 일자리 위축을 초래했다. 지금이라도 복지재원은 증세를 통해 마련하고,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이어가야 한다. 자영업 구조조정의 연착륙에도 나서야 한다. 생계를 지원하거나 직업 재교육, 사회서비스업 확대 등을 통해 새로 임금노동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박현 - 한겨레신문 콘텐츠 2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