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세계 피겨 월등한 기량, 4년만에 또 금

‘피겨 퀸’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건 지난 16일 온타리아주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 빙상경기장 시상식 때 종전과는 다른 특별한 애국가 울려퍼져 전세계 한국인을 감동시켰다.
 
그동안 시상식 때는 녹음된 국가를 틀어주는 게 관례였으나, 이날 애국가는 합창단이 부른 라이브 음악이어서 ‘외국인 합창단이 우승국인 한국을 위해’ 애국가를 부르는 아름다운 모습이 경기장내 한인들은 물론, TV나 인터넷을 통해 시청한 지구촌의 한국인들 가슴에 찡한 감동을 안긴 것이다. 이날 애국가를 부른 합창단은 런던 아마빌레 합창단(Amabile Choirs of London)으로, 거의 완벽한 발음과 화음으로 애국가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28년의 역사를 지닌 이 합창단은 이번 대회 시상식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우승 예상국들의 국가를 두 달여 전부터 미리 연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연아 선수는 “처음에는 그냥 음악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광판에 노래 부르는 모습이 나왔고,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외국인이 한국말로 노래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런던에 사는 한 유학생은 트위터에 “나도 따라 부른 뒤 런던거리로 뛰어나와 환호하며 길을 가다 아까 애국가를 불러준 합창단원을 만났다. 생큐 생큐하니까 반가워하며 애국가를 두 달 연습했단다. 고맙다”라고 대견스러워했다. 또 한 트위터는 “연주되는 애국가가 아니라 부르는 애국가, (대회를 주최한) 캐나다의 세심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날 김연아 선수는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선수로 나와 148.34점을 획득, 합계 218.31점으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이후 4년 만의 세계선수권 제패, 2010 밴쿠버올림픽 뒤 3년 만의 메이저 정복이다. 점수도 밴쿠버올림픽 때 세운 세계신기록(228.56점)에 이어 역대 두번째 기록이다. 김연아는 “내가 할 수 있는 100%를 다 했기에 좋은 점수를 기대했지만, 이렇게 높게 나올 줄은 몰랐다”며 감격해 했다. 그녀에겐 경쟁자가 없었다. 무결점 연기로 “아무도 이길 수 없다”는 외신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2위 카롤리나 코스트너(197.89점:이탈리아)를 20점 차 이상으로 따돌렸다. 2위에 20.42점 앞선 것은, 현 채점 방식이 도입되고 치러진 9번의 세계선수권에서 최대 점수 차이다. 미국 <시카고 트리뷴>은 “세계선수권을 두 그룹으로 나눈다면 김연아와 그밖의 경쟁자였다. 라이벌에 한참 앞서는 단독 무대였다”고 표현했다. 
김연아는 17일 멋진 갈라쇼를 끝으로 대회를 마치고 19일 귀국했다.



“재능도 노력이 뒷받침 돼야죠”
여왕 복귀 김연아 솔직 인터뷰

‘피겨 여왕’ 김연아(23)는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정상에 우뚝 섰다.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큰 무대에 섰을 때 밀려드는 엄청난 중압감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 넘어지고 비틀거렸으나 김연아는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했다.
4년 만에 화려하게 돌아온 ‘피겨 퀸’은17일 대회가 끝난 온타리오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그동안 대회를 많이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연습한 만큼 실전에 (점수가)나오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라며 “이번에도 연습에서 거의 실수를 하지 않아 실전에서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할 수 있었다”는 그는 “주변에서는 저보고 ‘강심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도 컨디션이 안 좋거나 준비가 덜 됐다 싶으면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그리고 그렇게 불안하고 긴장할 때는 그게 시합 때 고스란히 나온다”고 했다. 그녀는 2007·2008 세계선수권대회의 예를 들었다. 당시는 대회 직전 부상을 당해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다. 결과는 두 대회 연속 3위였다.
 
“매일 매일 얼음 위에 서는 게 사실 너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 연습 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면서 “반대로 실전에서 이건 연습이라고 생각하려 애쓴다”고 그는 덧붙였다. 
연습한 만큼 결과가 따라온다고 강조했으나 그것만으로 그녀의 성취를 온전히 설명하긴 어렵다. 더 열심히 그리고 혹독하게 훈련하는 선수 중에서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김연아는 “어느 정도 타고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면서 “솔직히 주변을 보면 저보다 노력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런 선수들을 보면 타고난 것 같긴 하다”며 웃었다. 
“하지만 반대로 재능이 무척 많은데 그걸 모르고 노력을 안 하는 선수들도 많다”면서 “그러면 아무도 그 선수가 재능이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타고난 것도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피겨를 하면서 배운 인생의 교훈도 소개했다.
 “선수들이 쇼트프로그램을 망쳤을 때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걸 빨리 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보통 사람들도 살다가 고통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지 않느냐”면서 “그런 걸 생각하면 걱정하고 힘들어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클린(실수 없는 연기)이 더욱 돋보였던 것은 그녀가 앞선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플립 점프 때 롱에지(잘못된 스케이트날 사용) 판정을 받았음에도 이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롱에지 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면서 “제가 판정 나온 것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무시하려 했고 프리스케이팅에서 더 잘하자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제 성격 자체가 워낙 무덤덤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뜻대로 안 된다고 해도 운이 안 좋았나 보다고 생각하려 애쓴다”는 그는 “올림픽 때 제가 금메달을 못 땄으면 아마도 저는 금메달을 못 딸 운명이었나 보다고 선선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또 다른 의미에서 값진 결과다. 4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제패에다 덤으로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3장이나 따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한국 피겨 선수들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라며 “큰 대회에서 잘하든 못하든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도움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추억이 된다”고 지적, “우리나라 선수들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큰 대회 경험이 부족해서 아무래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거나 국내에서는 최고라는 생각에 자칫 방심하기 쉬운데 큰 대회에 나가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해보면 느끼는 게 많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그래서 그런 좋은 기회를 저만 겪지 않고 후배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돼서 만족한다”면서 “나머지 2장을 누가 따든 간에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에 기분이 좋다”고 흐뭇해했다.
김연아는 자신에게 최고의 대회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함께 2009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대회를 꼽는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첫 우승한 대회다.
 “2007·2008년 세계선수권대회 두 차례 모두 3등을 해서 세계선수권과는 인연이 없는 건가 싶었다”면서 “올림픽은 4년마다 열리지만 세계선수권대회는 매년 개최되기에 꼭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때 우승해서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고 땀 흘린 끝에 따냈던 보람을 회고했다.
 
김연아는 당분간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준비 체제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그는 현 코치진에 대해 강한 믿음을 표시, 재계약 가능성을 비쳤다. “신혜숙 코치는 코치 경험과 대회 경험도 많아서 선수가 해야 하는 행동이나 심리적인 상태를 잘 안다”면서 “다른 코치들보다 저를 더 편안하게 해준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모두 외국인 코치였는데, 제가 영어를 다 알아듣더라도 영어와 한국말은 다르니까 편안함이 다른 것 같다”면서 “더군다나 어렸을 때 코치 선생님이어서 제게는 더 편안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몸에 익으면 10월 중하순경 시작되는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할 예정”이라며 “잘 풀린다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할 것이고 그 다음 대회가 올림픽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모든 대회에서 잘하고 싶고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하려 애쓴다”고 밝힌 그는 “올림픽도 대회만 올림픽이지 똑같은 대회다. 올림픽이라고 더 노력하고 그랑프리라고 덜 노력하고 그런 건 없다. 똑같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피겨 라이벌’ 김연아-마오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김연아(23)는 2010년 펴낸 에세이집 <김연아의 7분 드라마>(중앙출판사)에서 아사다 마오(23)와 처음 맞섰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4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그랑프리 파이널. 당시 14살이었던 김연아는 주니어 최강자 마오와 맞섰다. 마오는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을 펼치는 등 압도적인 기량으로 합계 172.25점을 받아, 2위 김연아(137.75점)를 크게 앞질렀다. 아사다 마오는 열두살 때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천재. 점수 차이도 30점을 넘었다. 세계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마오를 넘어야만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 김연아의 심정이 불만스러웠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180도로 달라졌다. 17일(한국시각) 캐나다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와 마오는 15번째 맞대결을 펼쳤다. 그런데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의 환한 표정과 달리 3위를 한 마오의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여왕’의 자리를 확인한 김연아 옆에서 가끔씩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거워 보였다. 마오에게 김연아는 선의의 경쟁자이고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묵중하게 짓눌렀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이후에는 김연아의 존재가 큰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주니어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마오는 성인무대에서 최고의 자리를 두고 김연아와 끈질긴 승부를 펼쳐왔다. 성인무대 첫 맞대결은 2006~2007 시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이뤄졌다. 이 때 마오는 김연아에 1위 자리를 내줬고, 이후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다섯 번의 그랑프리 맞대결에서 2개씩의 금메달을 나눠가졌다. 상대 전적은 3승2패로 마오가 약간 우세했다.
 
본격적으로 명암이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 김연아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치고 나갔고, 여세를 몰아 2009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합계 207.71점으로 정상에 오른다. 김연아는 피겨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한 여자 선수가 됐다. 반면 마오는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에서 트리플 악셀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지 못하고 4위(188.09점)에 그쳤다. 마오는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본점수와 가산점이 높은 고난도의 트리플 악셀에 집착했다. 하지만 부담감이 더해지고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점수를 깎아 먹었다.
김연아와 마오의 인연이 악연의 절정으로 치달은 것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올림픽 무대를 꿈꿔온 둘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아사다 마오는 갈고 닦은 트리플 악셀을 세 차례나 구사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연기를 펼치면서 처음으로 합계 200점을 넘겨 205.50을 받는다. 하지만 김연아가 있는 한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었다. 김연아는 228.56점이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정상에 올랐고, 은메달을 목에 건 마오는 한 계단 높은 곳에 서 있는 김연아 옆에서 아쉬움을 삼켰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둘의 라이벌 대결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연아는 목표 의식을 잃었고, 마오는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둘의 드라마는 지난해 김연아의 1년8개월 공백 뒤 복귀를 시작으로 불꽃이 점화됐다. 김연아는 2012년 12월 독일에서 열린 NRW 대회에서 우승했고, 은근하게 실력을 끌어올린 마오는 2월 일본에서 열린 사대륙 선수권대회에서 합계 205.45점으로 정상에 오르면서 슬럼프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2004년 주니어 시절부터 시작된 둘의 끈질긴 인연은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처음에는 마오가 우세했고, 나중에는 김연가가 뒤집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김연아의 완승으로 1라운드가 끝났다. 하지만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만 1년을 앞두고 열린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마오의 기를 먼저 꺾었다.
허승 기자 >


▶고영민 노회장 앞에서 선서하는 (왼쪽부터) 여태동·최종식·김성민 목사.


KPCA 동노회 목사 임직식… “자기목회도 중시”권면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 동노회(노회장 고영민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는 3월10일 주일 오후 토론토 영락교회(담임 송민호 목사)에서 제62회 정기노회 속회를 열어 여태동(영락교회 한어권 중등부), 최종식(참좋은 복된교회 교육부), 김성민(큰빛교회 다운타운, 한어권 중고등부) 전도사의 목사 임직예배를 드렸다.
고영민 노회장의 속회선포로 시작된 예배는 노회서기인 석대호 목사(옥빌 한인교회 담임) 인도로 부노회장 고승록 목사(참좋은 복된교회 담임)의 기도와 영락교회 호산나성가대 찬양에 이어 노회장 고영민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고 목사는 ‘자기를 목회하라’(엡 5: 28~30)는 제목의 설교에서 “최근 지역에서 목사안수가 남발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연 뒤 “집사나 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목사가 되는 사례나 신학교 난립 등은 교회와 기독교전체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로, 의사나 변호사가 통신교육으로 될 수 없듯이 목사도 무분별하게 안수를 주는 것은 안 될 일이며 성직자는 뼈아픈 자기 성찰 및 더욱 엄격한 훈련과 과정을 거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 “우리 노회가 엄중하게 안수하는 전통이 이어지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기독교 위상을 높여나가게 되기를 축원한다”고 밝혔다.
고 목사는 이어 임직자들에게 “목회를 교회목회와 자기목회(Self Ministry)로 나눌 때 흔히 교회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목회에 소홀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 “목회는 일종의 사람 비즈니스이며, 목회현장의 문제들은 자신이 사람임을 잊는 데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 어떤 의미에서 교회목회 보다 자신의 육제적·정서적·영적인 것을 잘 돌보고 자신을 사랑하며 보양하는 자기목회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 목사는 또 “아내(남편)사랑이 곧 자기사랑인 만큼 하나님과 아내(남편)을 잘 섬기고 거기서 나오는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겨 나가자”고 임직자와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이어 임직식은 안수대상자 3인 소개와 서약, 안수, 선포 및 각 교회 담임목사들이 성의를 증정하고 기념패를 수여한 뒤 큰빛교회 윤병준·영락교회 중고등부 찬양팀이 각각 축가를 불렀다. 
직전노회장 이요환 목사(염광교회 담임)는 축사와 권면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로 사명을 다하여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예배는 여태동 목사의 축도로 마치고 고영민 노회장은 정기노회 폐회를 선포했다.
< 문의: 905-842-0938 >


교협 확인 방북단은 국경폐쇄로 일정 미뤄

온타리오 한인교회협의회(회장 임현수 큰빛교회 담임목사)와 토론토 한인회(회장 이진수)가 작년 12월부터 지난 1월말까지 공동으로 전개해 모금한 ‘북한 고아 2만명 돕기(동복보내기)’ 성금으로 만든 동복이 북한 주요지역의 고아원에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현지 배포상황을 확인하려던 임현수 목사 등 교협 방북단은 최근의 북한 핵문제로 인한 긴장심화로 국경이 폐쇄됨에 따라 중국 심양에서 대기하다 입북하지 못하고 일정을 미뤄 추후 확인키로 한 뒤 지난 9일 돌아왔다.
 
교협 임현수 회장은 11일 “이번 방문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예상되긴 했지만 (유엔 제재 등으로 인한) 북한 내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외부인 입국이 전면 금지돼 들어가지 못하고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그러나 ”고아들에게 전하는 동복은 원단을 구입해 보냈었고, 제조가 끝나 이미 해주와 원산 등 고아원에 2월까지 대부분 전달됐으며 분량이 워낙 많아 일부만 홀딩상태“라면서 ”상황이 풀리면 곧 들어가 전하고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교협과 한인회의 북한 고아돕기 모금운동에는 총24만 7,128달러가 답지했다.

< 문의: 647-209-2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