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 여부 등 대응 방안
“최종 시한 지나고 밝힐 것”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내일(19일)까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라”고 17일 촉구했다. 마 후보자 임명 시한을 19일로 못박고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헌법 질서 수호라는 막중한 책무를 져버리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최 대행의) 책임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오늘로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2일째,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있은 지 19일째”라는 점을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헌법 수호에 막중한 책무가 있는 권한대행이 앞장서서 헌정질서를 유린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신은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서 ‘헌법 수호의 막중한 책무 때문에 명태균 특검을 거부한다’는 해괴한 말을 늘어놓는 게 정상이냐”고 비판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헌정 파괴로 국가 위기는 지속되는데 (최 대행은) 수습은커녕 오히려 내란수괴 체포 방해, 특검 거부로 내란 수사를 방해하고 있고, 헌재 결정과 현행법을 무시하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회의 뒤 ‘최종 시한이 지나면 최 대행을 탄핵소추 하겠다는 의미냐’고 묻는 취재진에 “그 이후(대응방안)는 원내에서 협의된 안으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탄핵소추나 고발 등을 고려하고 있느냐’ 는 거듭된 질문에도 “그런 방안에 대해서는 최종 시한이 지나고 나서 밝히겠다”고 했다.  < 한겨레 고한솔 기자 >

 

“마은혁 임시 재판관 지위 부여해야” 헌재에 가처분 신청

마은혁 불임명 헌법소원 제기한 김정환 변호사
“재판관 8인 구성은 헌재 결정 정당성 왜곡”

 

 
 
                                       헌법재판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임명이 미뤄지는 가운데, 그에게 임시로 재판관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다.

 

김정환 변호사는 18일 본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마 후보자에 대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식 임명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그가 헌법재판관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하는 가처분을 헌법재판소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피신청인은 최 대행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말 마 후보자의 불임명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국가기관의 지위를 갖는 피신청인(최 대행)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본안사건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기속력을 가지는 응급적이고 잠정적으로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마 후보자가 임명되지 않을 경우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재가 헌법이 예정한 9인이 아닌 8인으로 구성되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이는 헌재 결정의 정당성을 왜곡시킨다”며 “4월18일 일부 재판관의 임기 만료가 예정되어 심리정족수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시지위 가처분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정상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임시적이고 보충적인 조치”라며 “헌정사에 선례가 전혀 없었던 헌재 결정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복에 대해 긴급한 임시조치로 헌법재판의 규범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최 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중 정계선·조한창 후보자만 임명하고, 마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임명을 보류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이 침해당했다고 권한쟁의심판을 냈고, 헌재는 지난달 권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최 대행은 여전히 마 후보자 임명을 보류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한겨레에 “권한쟁의 심판에서 결정이 났는데 (최 대행처럼)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이런 내용의 임시지위 부여 가처분도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 김지은 기자 >

“수출금지 프로그램 소지한 직원
한국행 비행기 탑승하려다 해고”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지난해 상반기 미 의회에 제출한 반기 보고서.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 계약직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적발됐다고 밝히고 있다. 미 에너지부 감사관실 반기보고서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연구소 직원이 수출 금지 품목인 원자로 설계도를 한국으로 반출하려다 적발돼 해고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지난해 상반기 미 의회에 제출한 반기 보고서를 보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는 수출 통제 조사 과정에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계약직 직원을 적발해 해고했다. 에너지부 감사관실은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업무성과를 소개하며, 이 사건을 첫번째 사례로 거론했다.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는 연구소가 보유한 독점적인 원자로 설계 프로그램으로, 미국 연방 규정 10 C.F.R. 810에 따라 수출이 제한되는 정보다. 해당 규정은 에너지부가 관리하는 규정으로, 해외 원자력 활동에 대한 지원을 승인 또는 규제한다.

 

감사관실은 “해당 소프트웨어가 수출 통제 대상임을 확인한 뒤, 해당 직원의 이메일과 채팅 기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직원이 수출 통제 규정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외국 정부와 접촉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현재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공동으로 수사 중이다. ‘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인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한국 외교부는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한 것은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해당 보고서에 적시된 사례가 미국이 문제 삼은 규정 위반 중 하나인 것으로 판단 중인 거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쪽은 어떤 보안 규정을, 어떻게 어겼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주 미국을 찾아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에너지 현안을 협의하면서 이 문제를 논의한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위성락 의원,  “외교부 주장은 본질 가리는 것”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소영 기자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핵 물질, 첨단기술 등을 관할하는 에너지부가 동맹국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해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18일 한밤중 한국 외교부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관련 문제가 이유로 파악됐다”는 공지문을 내놨다. 곧이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국립연구소 직원이 원자로 설계도를 한국으로 반출하려다 적발돼 해고됐고, 연방수사국(FBI) 등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민감국가 지정이 윤석열 정부에서 분출한 핵무장론 때문이라는 지적을 외교부가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수십년 동안 외교부에서 대미 외교와 핵 문제 등을 담당해온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에 “연구소 정보 유출 사건만으로 미국이 한국이란 나라 전체를 민감국가로 지정한지는 않는다”며 정부가 핵무장론으로 인해 벌어진 이번 사태의 본질을 가리려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17~18일 이틀에 걸쳐 위 의원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정보 유출 사건이 민감국가 지정 이유고, 핵무장론과는 관계가 없다는 외교부의 설명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서 한국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유출 사건이 벌어진 것이 민감국가 지정을 촉발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서 한국의 핵무장론에 대한 우려가 없었다면, 이런 사건으로 한국이란 나라 전체를 민감국가로 지정하지는 않는다. 보통 그런 사건이 벌어지면 연구원을 처벌하거나 관련 연구소에 대해 조치를 취한다. 지금 전세계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정치인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핵무장을 주장한 나라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유출 등이 있으니까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 외교부가 보안 문제만 있고 핵무장론과는 아예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은 본질을 가리려는 언론 플레이다.”

 

―한국이 1980년대에도 민감국가로 지정됐다가 제외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1980년대에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도 박정희 정부의 핵무기 개발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사례에 비춰봐도 지금의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 내 핵확산 우려 흐름 속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 에너지부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아이다호연구소에서 한국과 관련한 원자로 소프트웨어 유출 시도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23년인데,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은 2025년 1월이다. 그 사건 하나만이 아닌 전체 핵무장론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국민의힘에서는 민감국가 지정이 핵무장론 때문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친중반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지금 파장이 이렇게 심각한 데도 핵무장론을 주장해 이런 사태를 초래한 사람들이 ‘핵무장론 때문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매우 개탄스럽다. 지금이라도 문제를 인정해야 바로잡을 길이 열린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그동안 핵무장론을 소리높여 주장해온 정부와 여당에 있다.”

 

―정부는 이번 민감국가 지정으로 한미간 기술 협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미국의 확인을 받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동맹 중에 이런 낙인이 찍힌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 쪽에서도 민감국가를 ‘정보 안보’(information security)의 문제, 한국식으로는 ‘정보 보안’ 문제로 본다. 민감국가가 된 한국에는 민감한 고급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고, 기술 분야에서 한-미 동맹이 2류, 3류 동맹이 된다는 뜻이다. 규정만 보면 절차적 제약이지만, 실제로는 ‘질적인 제약’이 일어나게 된다. 매년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를 왕래하며 연구를 해온 2천~3천명 정도의 한국 연구자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에 오는 전문가들도 모두 사전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아야한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는 첨단 분야에서 깊은 수준의 협업과 공동연구, 정보 교류가 어려워진다.”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이 지정된 게 민감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라고 했다.

 

“민감국가 가운데 낮은 단계인 ‘기타 지정 국가’라고 해도 한국이 핵확산 우려 때문에 ‘낙인 찍힌 나라’가 됐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번 사태는 한국 내 핵무장론에 대해 미국의 깊은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초래됐다. 한국이 핵 비확산 문제로 ‘세번째 낙인’이 찍힌 것이다. 첫번째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 시도고, 두번째는 2000년대 중반 한국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우라늄 농축을 시도한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핵확산 우려국’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이번은 ‘경종’을 울린 것이지만, 한국 정치인들이 핵무장론을 계속 주장하고 시도하면 앞으로는 점점 단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지난 주말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 민감국가 지정을 공식 확인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지정했다고 명시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고 부각하면서도, 이것을 뒤집거나 수정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기정사실로 확인했다. 외교부는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었고, 보도가 나오니까 에너지부와 국무부 한국 담당자 등과 접촉한 뒤 명단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고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에너지부가 이미 확정된 것이라고 공표했다. 한국 정부는 자기 중심을 가지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난 2년반 동안 핵무장론이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얘기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모두 공개적으로 핵무장론을 이야기했고, 국민의힘 여러 의원들도 계속 핵무장론을 주장했다. 미국 정치권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그렇다면 당연히 미국 내에서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대비했어야 한다.”

 

―민주당에서도 ‘핵 잠재력’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변화가 있을까.

 

“민주당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핵 잠재력 논의가 정리되어 가고 있다. 핵 잠재력을 주장하던 분들도 심각하게 재고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한국에 최선의 해법은?

 

“한미가 협의를 통해 민감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다.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하는데, 그 책임이 정부와 여당 쪽에 있다. 이후에는 여야가 초당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뤄서, 핵무장과 핵잠재력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명백하게 선을 긋고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 한겨레 박민희 기자 >

 

청소년 사이 자리잡은 혐오 정서와 윤석열 지지자의 극단적 구호 상호작용

교실의 극우화ㅣ‘보통의 학생’ 3명 인터뷰

 
‘애국청소년연대’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시민 100만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지난해 12월7일, 고등학생 이기원(17)군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대통령 탄핵’을 염원하는 시민의 모습을 단체 대화방에 전했다. 한 친구의 조롱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시민 폭동에 참여하는 거? 탱크가 필요하노.”

 

바로잡고 싶었다.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친 참담함,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상계엄 포고령의 문제점을 차분히 설명해보려 했다. 되돌아온 답변은 그저 사진 몇장. 박정희, 전두환, 탱크의 모습이 휴대전화 화면에 번졌다. 그 대화가 이후 교실을 뒤덮을 극단적 목소리의 서막이리라고, 그날 이군은 생각지 못했다.

 

그로부터 석달 가까이 흐른 지난 15일, 청소년 20여명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열었다. 한 청소년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우리가 저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외쳤다. 둘러싼 어른 10여명은 “잘한다” “최고다, 최고”라며 치켜세웠다. 온라인에선 탄핵 반대에 나선 청소년을 북돋우며 ‘MH(무현) 세대’로 부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의미를 담은 혐오 표현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사이에서 자리잡은 혐오 정서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의 극단적 구호가 12·3 내란사태 이후 상호작용하며 확산하고 있는 상황을 고심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청소년의 혐오 정서가 있었지만 오프라인 세계로 넘어와서 꽃을 피우게 된 계기가 이번 계엄 사태였습니다.”(권정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정치권이 탄핵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기존의 혐오를 다 끌어다 쓰는 관계로 보입니다.”(김학준 ‘보통 일베들의 시대’ 작가)

 

한겨레는 17일, 12·3 내란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청소년 3명의 눈으로 지난 3개월여의 교실을 돌아봤다. 민주주의와 정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의 상식이 외려 조롱거리로 내몰리고 숨죽이게 된 ‘전복의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청소년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극단적 내용의 쇼츠 영상을 만드는 또래 제작자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왜’냐는 물음에 답은 간단했다. “재미있으니까.”

 

인식 없는 혐오

 

상식의 자리에서 버텨보려는 학생에게 교실은 이상한 공간이다. 수업 안에서 정치적 발언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또래 사이 장난을 표방한 정치적 혐오는 ‘숨 쉬듯 자유롭게’ 반복된다.

 

박지우(18)군이 그런 교실 풍경을 전하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가 실수를 하면 ‘너 장애인이냐’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고, 남자끼리 몸이 닿기라도 하면 ‘게이’라며 성소수자를 비하해요.” 혐오와 비하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5·18 광주민주항쟁을 ‘광주 폭동’이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이 말투 전반에 녹아 있다. ‘남자는 보수, 여자는 진보’라고 인식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냥 웃고 떠드는 하나의 문화예요. 아예 잘못됐다는 인식을 못 하는 거 같아요.” 어디서 들은 표현인가,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 박군은 “신남성연대 유튜브처럼 남학생들이 웃고 떠들면서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지천에 널려 있다”고 했다.

 

반면 그에 대한 설명과 제지는 기대할 수 없다. 남궁솔(18)군은 “선생님도 엄두가 안 나실 것”이라며 안쓰러워했다. “교사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문제가 되고, 학부모 민원도 받으실 거잖아요.” 진보와 보수의 역사와 맥락이 무엇인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혐오 표현과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왜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지, 극우 유튜브는 어떤 점에서 믿을 수 없는 콘텐츠인지 ‘정치’를 삼가는 학교는 가르쳐줄 수 없었다.

 

그 틈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했다. 박군이 말했다. “고민을 해보고 ‘진보다 보수다’라는 인식을 갖느냐면 단언컨대 아니거든요. 목소리 하나에 꽂혀서 지지하거나 혐오하는 거죠.”

 

머리에 꽂히는 목소리

 

교실은 ‘진공 상태’에 있지 않다. 12·3 내란사태 이후 빈도와 강도를 더한 정치 콘텐츠가 교실에도 전해졌고, “확실히 더 많은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문제는 방향이다. 아이들은 ‘더 세고, 과격하고, 도파민 돋우는’ 꽂히는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기원군이 말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친구도 계엄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는데, 주로 유튜브로 조각조각 사안을 알게 돼요. 단편적이지만 도파민을 확 폭발시키는 것들.” 주로 외국인·야권·노동자·소수자·여성을 ‘적’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합리화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교실에 이전부터 번져왔던 약자를 향한 조롱과 상통한다. 내란 이후 강자에 대한 합리화가 더해졌다. 이군은 “대통령에게는 절대군주 같은 권한이 있는데 왜 국회를 통제 못 하느냐고 인식하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힘과 약육강식’의 세계를 믿는다면 혹할 만한 얘기였다. 더군다나 이런 얘기는 ‘믿을 만한 어른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이기원군은 “국회의원이나 전한길 강사 이런 분들이 얘기하면 믿을 만하겠다는 정서도 많다”고 짚었다.

 

어느덧 극단적인 말은 교실에서 ‘빵 터지고, 쿨한 것’이 됐다. 남궁솔군은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친구들은 반에서 인싸(주류)로 분류되는 친구들”이라며 “이런 말 하면 빵 터질 걸 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나서서 얘기하는 게 ‘쿨하다’거나 멋있다고 여기는 것도 같다”고 설명했다.

 

 

교실이 어른에게 

 

교실 안의 상식은, 그렇게 바깥 사회보다 한발 더 빨리 소수에 놓일 위기다. 학생들은 그 와중에도 또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지우군은 내란사태를 규탄하는 고등학생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들었던 말을 되짚었다. “몇몇 친구들이 공산주의자·빨갱이 이런 이야기도 조금 하고, 수군대기도 했고요. ‘이재명한테 얼마를 받았느냐’는 얘기도 있었네요.” 시국선언 안내를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은 일도 있다. “그런 건 또래가 한 건 아닐 거예요. 그냥 어느 극단적인 분이겠죠.”

 

박군은 또래를 믿으려 한다. “비하와 조롱에 동조하지 않는 학생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색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건 자신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선비다’ 소리 들을 거예요.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도 ‘선비다’ 한마디로 변질시켜버리니까, 섣불리 목소리를 내기보단 그냥 한숨 쉬고 넘기는 거죠.”

 

옳고 그름의 선을 그어주지 못하는 교실에 사회의 극단적 주장이 빈도와 강도를 더해 들이닥쳤다. 학생은 어른에게 하소연했다. “민주주의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중엔 극단적인 목소리도 있을 거예요. 갈등이 커지면서 ‘그래도 된다’고 더 주입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이 주류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하잖아요. 합리적인 목소리로 돌아와주세요.”(이기원) < 한겨레  박고은  정봉비 기자 >

 

‘조롱 밈’ 올리는 10대 “재미가 1순위…좌파들도 만들잖아요”

교실의 극우화

 

‘애국청소년연대’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재미가 1순위예요. 정치인이 죽었다고 성역화돼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 김성민(가명·19)씨는 3년 전부터 유튜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과 음성을 활용해 조롱하는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는 4300여명, 한달에 약 120달러(약 17만원) 정도 번다. 김씨는 “채널 운영의 목적은 재미가 1순위”라고 했다. “다른 정치인의 목소리는 재밌지가 않아서 노 전 대통령 것을 활용했어요. 요새는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을 비판하는 영상을 만들고요.” 김씨는 12·3 내란사태 이후부터는 유튜브 영상을 짧게 편집해 ‘릴스’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기 위해 10여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횡행한 혐오 표현은 일베가 ‘화력’을 잃고 디시인사이드→유튜브→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면서 1020세대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자리 잡았다. 김씨는 그런 밈의 ‘공급자’다. 김씨 유튜브 채널의 시청자층은 만 24살 미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를 ‘보수 자유주의자’라고 지칭하는 10대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1학년쯤 처음 접한 유튜브의 ‘노무현 전 대통령 희화화 영상’이었다.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 작가는 “웃기는 능력 하나만으로 커뮤니티의 ‘네임드’가 되는 게 놀이의 규칙이 됐다. 특히 약한 사람을 비난하는 방향의 웃음이 극우화의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이윽고 김씨는 ‘반페미니즘’과 ‘반피시(PC·정치적 올바름)’를 접했다. 김씨는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여기고 진보 진영 정치인들이 표팔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페미니즘에 반감이 생겨 보수 성향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반페미니즘=남성=보수’의 공식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 등식에 ‘탄핵 반대’가 얹어졌다. 그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윤 대통령 탄핵이 안 되는 게 더 좋은 나라인 것 같아 탄핵을 반대하게 됐다”고 했다.

 

책 ‘한국, 남자’를 쓴 최태섭 사회학 연구자는 “10~20대 남성 사이에는 여성 혐오와 반피시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민주당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고 했다. 다만 “이들이 보수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기보다 자신을 대변해줄 것들을 계속 찾아다니는 상황으로, (계엄이라는) 정치적 이벤트 속에 친연성을 느끼는 대상이 그쪽이었던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김씨는 최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음란 수괴’로 칭하고 ‘이재명 구속, 내란 선동 민주당 해체’를 적은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그간 만든 영상이 혐오나 모욕에 해당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김씨가 답했다. “좌파 진영도 박근혜 전 대통령 누드화 만들면서 보수 대통령 조롱했잖아요. 불만이 있으면 보수 대통령 가지고 영상 만들면 됩니다.”  < 고나린  박고은 기자 > 

 

전문가들 “10대들 도 넘는 혐오 발언 땐 확실한 선 긋기 필요”

교실의 극우화 ㅣ10대 극우화 해법

 

 
 
 

 

12·3 내란을 경험한 2025년 청소년의 혐오 문화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견해를 내놓는다.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쓴 김학준 작가는 “2000년대나 2010년대의 청소년도 혐오 문화는 비슷했다”며 10대라는 연령 특성이 좀 더 강하다고 봤다. 나이가 들어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며 혐오 정서가 완화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을 섣불리 ‘잃어버린 세대’로 진단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미다.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유아특수교육학)는 “이전에도 극우적 생각은 있었지만 계엄 사태를 계기로 공공연하게 오프라인 세계로 넘어오게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격화하는 갈등으로 극단적 주장에 대한 선이 무너지는 상황이 청소년에게도 위협이 된다는 점은 강조했다. 청소년을 혐오로부터 구하기 위해, 도를 넘는 발언에 전방위적으로 ‘분명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우선 부모에게 권정민 교수는 아이와의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라고 강조했다. “관계가 끊어지면 어떤 대화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고통이 많다는 것, 언젠가 그 고통을 우리도 느낄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녀와의 대화 주제로 제안했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합리적인 정치적 표현을 허락해야 한다는 건, 학생들은 물론 전문가의 의견이기도 하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는 “오이시디 국가 중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고등학생 이기원(17)군은 “현대사를 배울 때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정치적이라 시험에 내지 않는다고 한다”며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역사와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교실을 둘러싼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최태섭 ‘한국, 남자’ 작가는 “도를 넘는 혐오는 확실히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는데 윤석열 정부 이후 사회 분위기가 이를 용인했다”며 “특히 대통령처럼 권위를 지닌 사람이 행동하고 발언하는 방식과 내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 한겨레 박고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