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랑 놀면 사람도 개도 좋다

● 토픽 2018. 4. 4. 11:26 Posted by SisaHan

‘동물 매개활동’ 연구결과 긍정적 효과

개와 함께 놀면서 치료하는 ‘동물매개활동’ 결과 참여자의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이 확인됐다. 사람과 함께 논 개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는 개와 사람이 일대일로 놀면 실제로 학생들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학술지 ‘스트레스와 건강’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테라피 수업을 들은 학생 246명이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해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정도나 에너지 등이 증가했다. 또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행복하다는 감정이 좀 더 지속했다. 남녀의 차이는 없었다. 테라피 수업 동안 학생들은 7~12마리의 개와 자유로운 스킨십을 하고, 수업 전과 수업 후 10시간 뒤에 설문에 응했다.


이 대학의 심리학 명예교수이자 논문 공동 저자인 스탠리 코먼은 “10시간 후에도 학생들은 치료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해 부정적인 감정이 적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논문은 “개를 통한 치료 효과가 단기간 지속하는 만큼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증가한 시기에 이런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 활동에 참여하는 개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동일 조건의 실험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개들을 연구한 결과가 지난해 10월 말 발표됐다.
2016년부터 사단법인 위드햅과 함께 ‘동물매개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대 수의학 대학 등에 연구용역을 맡겨 ‘반려동물 매개활동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 가능성 탐색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시츄, 스피츠, 토이 푸들, 진돗개 등 6마리의 강아지를 대상으로 지난해 6월5일부터 9월29일 사이에 스트레스를 측정했다. 측정은 타액의 든 코르티솔 양의 변화와 행동을 분석했다. 코르티솔은 공포 관련 스트레스와 연관된다. 스트레스 받은 개의 행동은 동공 확장, 헐떡거리기, 떨기, 낑낑거리기, 과도한 핥기, 숨기, 몸 자세 낮추기 등이었다. 서울시 동물매개활동에 참여한 이들은 특수성인, 일반아동, 특수아동, 복합성격장애아동 등 4가지 다른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수업은 50분씩 20회가 진행됐다.
그 결과 매개활동에 참여한 개들은 활동 이후 받는 스트레스 정도를 보여주는 코르티솔 변화량이 활동 전보다 전체적으로 낮아졌다.


그렇다면 개와 사람이 함께 노는 활동은 항상 좋은 걸까. 참여한 개들의 스트레스 정도가 높지 않다고 해도 주의할 점은 있었다. 서울시 연구를 진행한 사단법인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은 “개는 대부분 한 사람 혹은 특정 단체의 사람들에 속해 있고 사냥과 망보기 같은 작업에서 사람들을 돕도록 가축화되는 과정을 거쳐 변해왔기 때문에 낯선 이나 침입자를 경계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며 “쓰다듬거나 간식을 주는 등의 단순한 상호작용을 넘어서 매개활동 중에 움직임이 제한된 채로 복종명령과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것은 코르티솔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했다.


< 최우리 기자 >


세계적으로 요통 환자가 급증하고 있으나 많은 경우 치료에 도움에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값비싼 시술이 만연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근래 요통 관련 논문을 시리즈로 다뤄온 세계적 의학전문지 랜싯은 최신호에서 국제학자들이 공동으로 쓴 논문 3편을 싣고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5억4천만 명이 요통에 시달린다.

세계적 의학전문지, 돈벌이 전락한 시스템 개혁 촉구

요통은 가장 큰 신체장애 요인 중 하나다. 이는 국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비슷하다. 요통으로 인한 노동시간 등의 손실이 25년 동안 54% 증가했다. 영국의 경우 손실 일수가 연간 1백만일이 넘는다.
인구 고령화와 비만자 증가 등으로 인해 앞으로 요통 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사람은 중년까지 한 번 이상 요통을 경험한다. 그런데 대부분 의료진도 원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 원인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의학적으로 말하면 ‘무엇인가가 손상을 일으켜 요통이 발생’했지만, 그 ‘무엇’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전체 중에서 극히 일부만 감염이나 암 등 심각한 질환과 척추 부상 등 원인이 분명한 것이다.
물론 비만, 흡연, 운동부족, 자세 불량 등 좋지 않은 생활습관과 관련성은 있다. 또 대부분의 경우 통증이 오래가지는 않고, 3명 중 1명 정도는 1년 이내에 재발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로운 수술, 주사, 위험한 아편성 진통제 등을 처방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논문 저자들은 지적했다.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 등 각종 촬영 검사로 원인을 조사하는 일은 부작용이 많다. MRI는 통증의 원인은 아닐 수 있는 신체의 형태적 이상을 잡아내긴 하지만 영상촬영은 흔히 수술을 비롯한 여러 시술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간 나온 많은 의학 연구 결과들은 척추 추간판(디스크) 융해나 인공 디스크 삽입수술, 주사제 투입 등이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음을 증명해준다.
비싼 첨단 치료술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악화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휴식이 최선이라는 잘못된 믿음도 만연해 있다.
이에 따라 ‘세계적 차원의 대규모 의료과실’이 빚어지는 셈으로 비판받는다. 일부 국가에선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요통의 치료가 의사와 병원들의 매력적인 사업이 되어 있다고 논문 저자들은 꼬집었다.
영국 등 공공건강보험이 강력한 나라들에 비해 미국 같은 의료체제를 갖춘 곳에선 이른바 값비싼 그리고 이른바 첨단 시술이 매우 많이 시행된다.


이들은 요통을 앓는 사람들의 상태 호전에 진짜 필요한 것은 대체로 운동이며, 직장이나 정상적 삶으로의 조기 복귀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제는 각국 정부와 보건의료계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제대로 된 요통 치료와 관리의 기준을 명확하고 강력하게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요통에 대한 보건의료인과 환자, 언론과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는 한편 단편적 치료법과 생체의학적 방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활습관, 질병과 치료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을 포함해 총체적 대책이 필요한 만성질환 중 하나로 여기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나아가 현 상태와 기득권을 유지하는, 견고하면서도 역효과가 많은 금전적 보상과 인센티브 시스템 등의 제도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신 것을 기억하며 보내는 고난주간이다. 기독교 절기에서 가장 슬프고 우울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주간이 단순히 그렇게 우울한 기간이 아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을 여신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고난주간은 우리에게 소망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특별한 주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죄를 짓고 사는 존재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 말은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인류는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끊어져 버려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계속 죄악 속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안타까운 인간의 상황을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기독교의 신비가 바로 이 십자가에 있다. 즉 고난이 없는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될 때 흔히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고난 없는 영광이다. 소위 말해 만사형통의 복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삶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곧 깨지고 만다. 고난이 결코 빗겨가지 않고 어떤 때는 정통으로 내 머리를 치고 나를 넘어뜨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때 갈등이 찾아온다.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포기하든지 아니면 잠시 쉴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럴 때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을 닮아가고 있다고 하는 영적인 확신이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엄청난 고뇌에 찬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그분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결국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다고 했다. 예수님도 그러셨다고 하면 우리 역시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고난을 당함이 은혜이지만 온전한 은혜는 결국 부활의 능력에 있다. 고난이 고난으로만 끝난다면 우리는 정말 소망이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이 부활로 연결되어 온전한 의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의 고난도 결국 부활의 소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 역시 주와 같이 될 것이다. 그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고 고난의 터널을 주의 말씀의 등불을 켜고 잘 통과하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 손명수 목사 - 토론토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그게 뭐길래

● 칼럼 2018. 4. 4. 11:02 Posted by SisaHan

성형전문의 자격을 갖고 있는 우리 가정의는 가끔 내게 묻는다. “혹 보톡스에 관심 있으면 언제든 비서에게 문의하세요”. 신 세대와는 달리 성형에 대해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나는 보톡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거부감이 생긴다. 그런 나도 캐나다에서 태어나 서양인과 결혼한 딸에게 쌍꺼풀 수술을 제안했다가 강한 항변을 되받은 적이 있다. 자기 남편은 현재의 동양적인 자신의 외모와 성품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불가피한 결함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면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 곧 최선의 자기모습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었다. 딸도 어렸을 때 서양 아이들로부터 일자로 찢어져 끝이 살짝 올라간 ‘Chinese eye’로 인해 놀림을 받았다. 다만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후에는 바로 그 점이 한국인인 자신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양인의 눈을 굳이 서양인의 눈으로 바꿔야 할 명분이 없다며 잘못하면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잃기 쉽다고 말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본 TV 단막극이다. 제목이나 작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내용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얼굴 생김새를 가진 청년이 일류대학을 나왔으나 번번히 직장 면접에서 떨어졌다. 거칠게 생긴 못난 외모가 문제였다. 그는 못난 얼굴에 대한 열등감이 죽고 싶을 만큼 컸다. 결국 자살 대신 성형을 결심하고 미남의 남자로 변신하고 만다. 그 후부터 그의 삶에도 변화가 뒤따랐다. 좋은 직장도 얻고, 미모의 여성과 결혼도 하고, 아이 아빠도 된다. 그런데 그들의 아이가 이 청년과 그의 아내를 전혀 닮지 않은 데 문제가 생긴다. 의심은 서로간에 불신을 낳아 끝내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는데 우연히 길에서 한 성형의사를 만남으로서 그 답이 풀리고 만다. 청년은 물론이고 아내 역시 성형을 했던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향해 “당신, 성형을 한 거야” “ 당신도?…” 외치며 자신들을 전혀 닮지 않은 갓난아이에게도 성형을 시켜야 할지 말지 난감해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오늘까지도 시대적,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게 지적한 좋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멋진 외모가 한 개인의 자존감을 높여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보통사람은 생김새가 험악하거나 얼굴이 못생긴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기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외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외모나 결정적인 신체적 결함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실제로 우린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선천적 장애인을 돌보다 결혼하는 건강한 여인과 남성을 보면 참으로 감동을 얻는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는 숭고한 사랑의 힘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나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중환자와도 결혼하는 날개 없는 천사들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조건과 환경을 뛰어넘어 영혼의 합일을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라 여기고 있다.

요즘은 성형이 유행이 된 시대다. 고출력 레이저로 피부관리와 피부치료도 대중화 되었기에 어쩌면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도 시대에 뒤떨어진 건지도 모른다. 신문기사에 의하면 성형수술로 인한 크고 작은 범법자까지 생겨났다. 너도나도 무분별한 성형을 함으로서 그 부작용이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까지 등장한 것이다. 가짜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고, 부주의한 약물로 인한 수술 후유증으로 생명을 잃거나 일생을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가 하면 잘못된 시술이 불가피한 재수술로 이어져 급기야 성형중독에 빠지게 된 경우도 많다. 결국 본래 모습보다 훨씬 못한 성형괴물이 되는 폐해가 뒤따름은 기정사실이다. 범법자가 성형수술로 얼굴을 변형시켜 추적하는데 시간을 소모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5년간이나 추적해온 범인을 바로 눈 앞에서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가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 중 하나지만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할 수는 없다. 만약 아름다움 자체가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분명히 일시적인 기쁨과 만족은 주나 곧 한계점에 이르고 말 것이다. 현대는 개성의 시대라 예전과 달리 외모가 출중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테크닉으로 연예인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자신의 개성을 살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할지, 진정 고민해야 할 시대에 우리가 서있다. 이 모습 이대로 자신있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외모 콤플렉스를 버리고 내면의 힘(만족, 평안, 절제)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