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헤그세스가 지난 2017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수장들이 군사력 사용을 선호하는 강경 매파로 채워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개입한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들 인사들은 해외에서 미 군사력 확대를 지지해 왔다.
트럼프 당선자는 12일(현지시각) 차기 국방장관에 퇴역군인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44) 폭스뉴스 진행자를 지명해, 미국 외교안보 분야의 빅3인 국무·국방·안보보좌관의 진용이 드러났다. 앞서, 트럼프는 국가안보보좌관에 마이클 왈츠(50)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해외에서 미 군사력의 확대 및 개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대중국 강경노선, 중동에서 이스라엘 옹호 및 이란 세력에 강경대응 등이 공통점이다. 다만,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한 뒤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등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해왔다.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헤그세스는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뒤 관련 퇴역군인 단체를 이끌다가 폭스뉴스 진행자로 일하며, 트럼프를 옹호해왔다. 그는 프린스턴대학 시절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적극 옹호하며 “강력한 군은 세계에 장기적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데 절대적으로 본질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군인들의 사면을 주장하는 운동을 펼쳤고, 2012년까지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자유를 위한 퇴역군인들’은 이라크·아프간에서 미군 주둔 확대를 주장했다.
그는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때 마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를 지지하다가 적극적인 트럼프 지지자로 전향했다. 그 이후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 해외에서 미군 철수 등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폭스뉴스 프로그램 진행자 때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김정은은 “아마 하루 종일 자신의 인민을 죽여야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제재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과의 사진을 원하기 때문에” 트럼프와 만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미 국방장관의 범주에서는 벗어나는 그는 고위 군 인사 및 의회에서 반대를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그의 경험 및 경력 부족은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도 인준에 대한 우려와 진통이 예상된다.
국무장관 지명이 예상되는 루비오는 네오콘 성향의 대표적인 대외정책 강경 매파다. 그는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에 적대적인 강경 입장을 유지해 왔다. 민주당 하원의원에서 트럼프 지지자로 전향해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털시 개버드는 루비오가 “네오콘 전쟁광 기성세력”의 일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루비오는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으나, 강경한 대외정책 노선이 탈락의 한 이유로 거론된다.
루비오는 지난해에도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는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법안을 공동발의해,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조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법을 신속히 지지했다. 루비오는 중국 공산당 통치자들은 “미국을 희생시키면서 부상하려는” 적들이라며, 중국과의 경제·통상·군사 모든 분야에서 강경한 대결정책을 지지해왔다. 그는 중국 기술을 사용하는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세금공제를 막는 법안 등을 도입했다. 중국은 2020년 그를 포함한 미국 의원들이 “홍콩 문제에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며 제재 조처를 내렸다.
그는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압도적으로 선출되자, 적극적인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 4월 950억달러의 우크라이나 원조법안에 반대했고, 종전을 위해 러시아와의 타협 협상을 주장했다. 그는 “나는 러시아 편이 아니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방식은 협상된 타협”이라고 말했다.
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 역시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도널드 럼스펠드 및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의 참모로 일하는 등 해외에서 미 군사력 확대와 개입을 주장한 전통적인 공화당 매파에서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했다. 그는 의회에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아프간 철군 정책을 반대하며 이를 막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해, 나토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강 압박 및 중국, 이란 등에 대한 강경책을 지지해왔다.
그는 지난해 폭스뉴스 기고에서 “의회가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를 주는 시대는 끝났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회의론을 주장했다. 그는 러-우 협상에 대한 트럼프의 주장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서도, 러시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은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장거리무기 사용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역시 의회에서 하원 중국태스크포스팀에서 일한 대표적인 대중 매파이다.
루비오와 왈츠는 또 대북한 문제에서도 군사 대응도 불사하는 강경 노선을 유지해왔다. 루비오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뒤 “북한의 다른 지도자들이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빨리 ‘폭군’ 김정은을 제거해야 한다”며 “김정은이 핵 프로그램 해체를 내걸고 쇼를 벌였다”고 비난했다. 왈츠는 북미정상회담 직전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 폭탄 싸움 때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은 필요한 선택지이다”고 말했다. 왈츠는 또 “경제 제재로 북한의 목을 짓눌러야, 북한이 협상에 나올 것”이라며 “모든 군사적 방안도 고려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대외정책에서 미 군사력 확대 및 사용을 앞세우는 이들은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의 노선에서 협상과 타협보다는 군사력과 대결 쪽에 더욱 방점을 찍게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는 12일 차기 정부의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존 랫클리프(59)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지명했다. 랫클리프는 변호사이자 텍사스주 히스 시장, 텍사스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으로 보수색이 짙은 인사로 평가된다. 그는 2020년부터 이듬해까지 트럼프 1기 체제에서 국가정보국 국장을 지냈다.
트럼프는 주이스라엘 대사에는 마이크 허커비(69) 전 아칸소주지사를 임명한다고 밝혔다. 허커비 지명자는 개신교(침례교단) 목사 출신으로 매우 친이스라엘적인 인물로 꼽힌다. 2008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참여해 “팔레스타인인 같은 것은 없다”고 발언했다. 2016년 공화당 경선에도 참여했다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는데, 이때 국제사회가 불법이라고 비판하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지지하고 서안지구가 이스라엘의 “내부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임명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서안지구 합병 구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짚었다.
트럼프는 12일 중동 특사에는 부동산 사업가인 스티브 위트코프(67)를 지명했다. 위트코프는 트럼프의 골프 친구로 유대인이며, 지난 9월 골프장에서 발생한 2차 암살 시도 때 골프를 치던 트럼프와 함께 있었던 이다. 알려진 외교 및 중동 관련 경력은 없다. < 한겨레 정의길 김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