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실패 정부 비판 NYT 전면광고

● WORLD 2014. 5. 21. 14:59 Posted by SisaHan

미주한인들, “세월호 진실을 밝혀라” 여론조작 질타

미국 거주 한인들이 “세월호 참사에서 실패한 구조작업은 박근혜 정부의 리더십의 부재, 무능함, 태만함을 보여주었다”는 내용을 담은 전면광고(사진)를 11일 <뉴욕 타임즈>에 싣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 ‘어머니의 날’(Mother’s day)에 맞춰 게재된 ‘진실을 밝히라’는 제목의 이 광고에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모습을 배경으로 ‘세월호 안에 300명이 넘는 생존자가 갇혀 있었지만, 단 한명도 구조되지 못했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그 아래로는 ‘왜 한국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분노하는가’라는 제목을 글에서 ‘무능과 태만’ ‘언론검열과 조작’ ‘언론통제, 대중의 감정조작, 대중의 관심 무시’ 등 3개 항의 소제목을 달아 300명 이상이 희생되거나 실종된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 책임을 조목조목 따졌다.
 
광고에는 “(한국 정부가) 민간인 전문 잠수가들과 미국 해군의 도움 등 외부의 도움을 뿌리치고 정부가 주요 주주인 어느 기업에게 구조권한을 주었다. 한국 정부에겐 필요한 재해 재난 대책과 각 부서간의 원활한 소통이 없었다”며 박근혜 정부가 무능하고 태만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세월호 참사 뒤 미숙한 대처 뿐 아니라 이를 숨기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언론 통제와 조작을 일삼았다고 꼬집었다. “실패한 구조작업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동영상이나 글들은 인터넷에서 지워졌다. 주요 언론은 정부의 나팔수로 왜곡된 뉴스를 내보냈다”며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이 광고는 특히 “주류 언론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보도로 여론을 호도하며 정부에 충성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광고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 없는 할머니를 위로하는 장면 등을 보도한 언론을 사례로 꼽았다. 
이와 함께 “집권당 의원들이 대중의 논의를 막기 위해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라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 등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벌금이나 체포할 수 있도록 법안까지 추진하고 있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광고에서는 “박대통령의 행보는 한국을 과거의 독재시절로 퇴행시키고 있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것을 보기에 분노하고 있다”며 <뉴욕타임즈>에 전면광고를 싣기까지 배경을 설명하고 “한국정부가 행하고 있는 언론 탄압, 진실 검열, 여론 조작, 언론의 자유 억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한국에서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회복하는 대화에 동참해 달라”며 해당 누리집 주소(www.thetruthofsewolferry.com/truth)를 게재해놨다.
이 광고는 미주 최대 여성커뮤니티 미시 USA (www.missyusa.com) 회원을 중심으로 4,129명에 이르는 한인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16만달러(1억6000만원) 가량의 비용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시 USA 회원들은 지난 8일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다”라는 등의 펼침막을 들고 집회를 열기도 했다. 또 미국 50개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참여하는 동시집회를 지난 10일에 이어 오는 18일에도 열 계획이다.

한편 새누리당 지도부는 12일 이 광고를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새 원내 사령탑을 맡은 이완구 원내대표는 “해외 일부 교포들이 이 우리의 비극적인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뉴스를 접하고 정말 참담하다”며 “이렇게 광고비가 몇 만 불 드는데 (차라리) 유가족을 도워줘야 하지 않았나 싶어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광고를)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힘내라’라는 광고 문구가 (뉴욕타임즈에) 떴다면 우리나라가 한 마음 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하는 마음에) 아쉽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해외 미시들이 반찬값 아껴서 5불 10불씩 기금 마련한 뉴욕타임즈 세월호 광고가 드뎌 나왔습니다”며 응원했다. 한 누리꾼(@Tae***)은 “국내 언론만 막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주는 극명한 예시! 나라 망신이라 생각말고 구태의연한 관행들은 이젠 좀 사라졌으면 한다”라고 했다. 또 scan***는 “불리하고 마음에만 안들면 다 선동이고 정치적 세력이라 폄하를 한다”며 “국외에서 뭐라고 하니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안전부절하는 모습을 보니까 찔리는 게 많은가 보네요!!“라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세월호 같은 사고가 났는데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성금이나 내라니? 당신들은 국민 낸 세금으로 넙죽 잘 받아먹으면서, 세금이나 내고 당신들에 복종해라? 하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이밖에 “세월호 신문광고 내기 성금모금운동이 국내에도 있었으면…한인분들 감사합니다”라며 응원을 보낸 누리꾼도 있었다.
< 홍석재·서보미 기자 >


총대 3백여명 모여 회무처리… KPCA, 13~15일 LA서

미주지역 양대 한인교단인 미주 한인 예수교장로회(KAPC)와 해외한인장로회(KPCA)가 2014년 정기총회 시즌을 맞았다. 특히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는 5월20일(화)부터 23일(금)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38회 총회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해외한인장로회는 5월13일(화) 미국 LA의 훌러톤 장로교회에서 제39회 총회를 개막, 15일(목)까지 열고 있다. 
각 교단 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을 새로 선출하고 목사안수식이나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회무처리와 함께 교단의 발전과 새로운 목회 및 선교전략을 모색한다.
 
정관일 목사 총회장 선출예정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총회장 엄민영 목사)는 20일부터 토론토 에어포트 메리어트 호텔(901 Dixon Rd.,M9W 1J5)에서 3박4일간 미주 각 지역 목회자와 장로 등 총대 3백여 명이 모여 회무를 협의한다. 모처럼 토론토에서 열리는 이번 총회에서는 현 부총회장인 정관일 목사(가든교회 담임)를 새 총회장으로 선출할 예정이다. 총회는 첫날인 20일 오후2시부터 총대 등록을 시작하고 5시부터 저녁식사를 한 후 7시부터 개회예배와 성찬식를 거행한다. 앞서 오전 10시에는 공천부 회의가 먼저 열린다. 신임 총회장 선거 등 새 임원진은 예배 후 개회되는 총회 첫날 회무처리 일정에서 선출된다. 
총회는 둘째날과 셋째날 회무처리와 선교의 밤, 친선사절 인사 및 관광 등을 진행하며, 23일 아침 폐회예배를 드리고 총회를 마치게 된다. 
이번 총회를 앞두고 호스트인 캐나다노회(노회장 최영철 안디옥교회 담임목사)는 직전 노회장 이상일 목사(베리소망교회 담임)를 위원장으로 하는 총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부터 행사준비에 임해왔다.
 
캐나다 동노회 40여명 참석
한편 5월13일 LA 훌러톤장로교회에서 ‘빛의 자녀와 빛의 열매’(엡5:1~14)라는 주제로 개막한 해외한인장로회 총회는 첫날 회무처리에서 총회장에 노진걸 목사(훌러톤장로교회, 서중노회)를 선출하고 부총회장에는 목사 부총회장에 후보로 나선 이승재 목사(은혜교회, 동북노회)와 김종훈 목사(뉴욕예일장로교회, 뉴욕노회) 가운데 투표로, 장로 부총회장에는 단복 입후보한 박순태 장로(얼바인열린교회, 서남노회)를 각각 선출한다. 총회는 이어 23일까지 주요 회무처리와 경건회, 세미나, 선거보고 등 일정을 소화한 후 폐회할 예정이다.
LA 총회에는 캐나다동노회(노회장 고승록 참좋은 복된교회 담임목사) 에서 40여명의 목사와 장로 등 총대들이 참석했다.
해외한인장로회는 이번 총회를 앞두고, 서북노회가 총회의 재판과 행정지시를 거부하는 등 총회 헌법 권위에 명백히 불복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규정, 총회 접수를 받지 않고 총대로도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성도 토론토서 총회열어
이에앞서 미주성결교회는 제 35회 총회를 지난달 4월21일부터 23일까지 토론토에서 개최, 새 총회장으로 김병곤 목사(토론토 새순교회)를, 부총회장에는 조종곤 목사(사우스베이 선교교회)와 최대현 장로(시온성교회)를 각각 선출했다. 김병곤 목사는 서울신대와 고려대 대학원, 토론토대와 맥마스터대학을 나왔으며, 전북대학생선교회 대표간사, 기성 미주 동부지방회장, 캐나다지방회장, 미주총회 서기 등을 역임했다.


[1500자 칼럼] 딸이 심은 라일락

● 칼럼 2014. 5. 20. 16:48 Posted by SisaHan
새벽녘 뒤뜰을 내다보며 화들짝 놀랐다. 마치 요술담요를 타고 얼음왕국에 도착한 듯 온 세상이 유리알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무와 잔디, 멀리 있는 숲과 도로, 그리고 전신줄까지도 온통 얼음으로 덮여있는 게 아닌가. 밤새 내린 비가 기온이 내려가면서 얼음비(freezing rain)로 변하며 불과 하루 만에 딴 세상을 만든 것이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반사된 한 여름의 불타는 햇살보다도 한층 영롱하고 신비한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잠깐, 뒤늦게 그 얼음 밑에 깔려 신음하고 있는 생물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사력을 다해 버둥댔는지 수 십 년 동안 지탱해온 나무들의 생가지들이 허연 살을 내놓은 채 부러지고, 더러는 뿌리 채 뽑혀 나와 그 모습이 참담했다. 얼음왕국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대가치고는 무자비하였다.
 
십여 년 전 퀘벡과 온타리오 킹스톤 지역이 얼음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적이 떠오른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이 일주일이 넘도록 도시 전체에 전기도 물도 공급이 끊긴 암흑상태라 아무도 오가지도 못하고 있었을 때 마치 엔테베 작전에서나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킹스톤을 탈출했었다. 개인 헬리콥터를 가진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토론토를 포함하여 온타리오 동남부 지역을 강타한 얼음비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 연휴를 암흑 속에서 불편과 추위와 싸우며 지내야 했었다.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물질문명의 반작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겪어본 시간이다.
 
그날 우리도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딸과 남편은 두 그루의 라일락을 뒤뜰에 심었었다. 30년 전에 심은 그 흰빛, 자줏빛 라일락은 울타리가 없는 우리 집 뒷마당의 경계선으로 수문장 역할을 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보호해 줄 듯이 뒤에서 떡 버티고 서있다가 매년 5월이 오면 겨우내 무디어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윤기 나게 만들었다. 라일락이 한창 꽃을 피울 땐 향긋하고 은은한 향내로, 소담스러운 꽃송이로, 집 주위의 품격도 높여주었다. 몇 송이 잘라 꽃병에 꽂으면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수많은 개미떼가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와 멀리서 명화를 감상하듯 하였다. 매년 5월이면 잡초 하나 피어나지 않은 푸른 잔디 위에 우뚝 선채 여왕다운 위용을 한껏 품어내는 자줏빛, 흰빛 라일락을 바라보노라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며 결혼한 딸의 어릴 적 추억을 불러왔던 것이다.
 
단 하루 밤사이 내 딸 같이 정겨운 그 자줏빛 라일락이 네 동강이가 났다. 비록 비스듬히 기울어지긴 했어도 네 가지 중 성한 가지 하나를 살릴 수 있어 천만다행이긴 하였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모범수(樹)로 올곧게 잘 자란 자줏빛 라일락은 무참하게 부러진 데 비해 심을 때부터 불량하여 삐딱하게 기울어졌던 흰빛 라일락은 잔가지 몇 개만 내버린 채 멀쩡한 게 아닌가. 마치 삶의 길목에서 인생의 거센 비바람을 헤치며 자란 사람의 강인함을 흰빛 라일락에서 보는 듯 했고, 아무 어려움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닥친 난관 앞에서 무참하게 쓰러진 연약함을 자줏빛 라일락에서 보는 듯 했으니 말이다.
라일락은 ‘젊은 날의 추억’ ‘첫 사랑의 감동’ ‘아름다운 맹세’라는 감상적인 꽃말을 지녀 젊은 연인들에게 사랑을 속삭여주고, 시정(詩情)을 일으키며,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에겐 딸이 심은 라일락인 만큼 세월이 흐를수록 연정(戀情)보다는 자식을 향한 모정이 더 절실하게 느껴왔다. 특히 타국에 살고 있는 딸과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라일락 향기와 빛난 자태에 취하여 눈시울이 젖는 그리움에 빠져들곤 하였다.
 
그런데 지난 3월, 십 년을 기다려온 외손녀를 얻었다. 기다림에 지쳐 희망을 접어가고 있었을 때 귀엽고 건강한 외손녀를 순산하여 놀라운 희열을 누릴 수 있었다. 나와 딸과 사랑스런 외손녀로 3세대간 이어진 생명의 신비감은 이제 겨우 가냘픈 목숨줄 붙잡고 여린 꽃망울을 내밀기 시작한 자줏빛 라일락에서도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몸체 대부분이 잘려나간 가련한 자줏빛 라일락, 그것이 살붙이를 떼어낸 고통을 딛고 어떤 꽃을 피어낼지 사뭇 기다려진다. 

< 원옥재 -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2000),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수필집「낯선 땅에 꿈을 세우며」여성동인집「세여자」 외 2권

 

[한마당] 세월호와 평균인간의 가슴

● 칼럼 2014. 5. 20. 16:45 Posted by SisaHan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대상 기관 가운데 청와대는 ‘선망받는’ 출입처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데다, 취재대상인 고위인사들과 접촉 기회가 많고 그만큼 고급정보도 다양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각 신문사나 방송국 정치부에서 경력과 경험이 오랜 유능한 기자이거나 회사측이 각별히 챙기는 기자, 혹은 대통령이나 청와대 고위인사와 연줄이 있는 중견기자를 골라 출입기자로 보내는 게 관례였다. ‘1호 기자’라는 지칭도 그런 연유다. 
청와대 의중과 정보가 정국과 정책을 좌우하는 풍향계가 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일부 언론 대기업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청와대 고급정보를 이용하거나 고위 인사와의 유착으로 이권을 챙기며 사세를 불리기도 했으니, 출입기자의 역할과 중요성은 단지 취재기자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청와대 기자는 기사자료를 모으고 취재는 하되 기사 쓰는 일 보다는 회사에 정보보고를 하고 연락관 역할을 하는, 흡사 ‘정보원’ 혹은 ‘조정관’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출입기자들 가운데 나중 회사중역이 나오고 때론 정치인도 배출하는 구조가 그런 데서 비롯됐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막 끝난 무렵, 후배와 동료기자들의 선망 속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어 처음 발을 디딘 청와대는 기대와는 달리 삭막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후 번듯한 춘추관을 지어 시설이 넓고 안락해졌지만, 당시는 비좁은 공간에 몇몇 되지도 않은 기자들이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다가 대변인실에서 브리핑 자료를 챙기는 데 그치는 날이 빈번했다. 기사 쓸 거리도 많지 않은데다 늘 보안을 강조하는 삼엄한 분위기에 모두 근엄한 모습들이어서 다른 출입처 같은 정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좀 익숙해지면서 나름 요령이 생기기는 했지만, 취재거리가 있으면 몇몇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거나 면회실을 거쳐야만 하는 비서동으로 건너가서 실장이나 비서관들의 바쁜 시간을 빼앗아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 국회와 정당을 출입할 때의 자유분방하던 취재활동이나 법원 검찰청을 드나들 때 사건기자가 느끼는 긴박과 기민, 때로는 통괘 등의 묘미는 도통 찾아 볼 수가 없는 무미건조였다. 그럼에도 늘 만나는 대상이 최고의 권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요, 오가는 이야기가 국정을 망라한 고급스런 내용들이니, 신문사에서는 청와대 소식을 듣고싶어 했고, 주위에서들 공연히 우대를 해주는 바람에 ‘기사로 승부하는 명기자’라기 보다 어줍잖은 ‘출입처 자부’에 안주하는 ‘고위급기자’가 되어가기 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에야 백명을 헤아린다는 청와대 기자실 분위기가 달라졌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엊그제 청와대 기자단이 세월호 참사 와중의 이른바 ‘황제라면’ 교육장관 기사 보도를 이유로 몇몇 신문사 기자들을 출입정지 시켰다니, 세월은 가도 여전히 ‘청와대 공무원급’ 기자들이 득세하는 춘추관(기자실) 분위기가 읽혀진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전제)를 깬 괘씸죄로 청와대가 제재를 가했다 해도 어불성설일 텐데, 기자들이 기자를, 그것도 무능으로 질타를 받는 정부고위직들의 경망스런 언행을 보도한 것을 ‘왜 했느냐’고 동료 정죄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송사의 보도국장이 억울하게 생수장 당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교통사고에 비유했다 해서 직을 떠났다. 그런데 ‘공영’이라는 또 다른 방송의 전국부장이 유족들을 비판 한데 이어 보도국장은 아예 ‘깡패’라고 까지 희생자 유족을 모독했다는 보도다. 비판받는 정부와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는 아니다. 오히려 약자편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본령이다. 무엇보다 언론인도 직업인이기에 앞서 가슴 따뜻한 인간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취재와 기사작성에 아무리 탁월한 솜씨를 가졌다 해도, 감동과 눈물이 없다면 한낱 기계적인 작문가 밖에 더 되겠는가. 언론인의 덕목으로 철학과 품성…인간 됨됨이가 중요함은 고위지도자들 못지않은 공공적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 품을 벗어난 병아리 한 마리, 어미를 잃은 강아지 한 마리만 죽어도 가슴 아파하는 게 정상적인 사람의 감정이다. 하물며 3백명이 넘는 어린 학생과 희생자들이 살 기회를 외면당한 채 귀한 생명을 죽임 당했는데 그 부모와 가족의 심정, 온 국민이 슬퍼하는 상황을 이해 못한다면 평균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좀 지나면서 다시 고개드는 ‘정치선동’이니 ‘깡패’니 ‘종북’이니 매도하는 정신상태들이 기이할 뿐이다. 
얼마나 일처리가 무능하고, 제대로 알지도 알리지도 않고, 조작만 일삼는데 울화가 치밀었으면, 4천여명이 거액을 모아 남의 나라 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로 하소연을 했을까.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보다, 웃겨놓고 웃었다고 화내는 게 진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