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대학 강사가 공용물건 손상죄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몇 달 전에는 익명으로 6년간 8억5000만원을 기부한 탤런트 문근영씨에 대해서 “기부천사라는 배우 문근영은 빨치산의 손녀”라는 글을 쓴 보수 논객 지만원씨를 비판하면서 “지만원, 지는 만원이나 냈나”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누리꾼에 대한 모욕죄 유죄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지경에 있는지 웅변해주는 판결들이다.
법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이 사건들을 기소한 검사들이나 유죄를 선고한 판사들을 위해서도 변명을 할 수 있다. 우선 공용물건 손상죄나 모욕죄가 엄연히 형법전에 존재하고, 기존의 판례에 따르면 포스터에 낙서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소재로 조롱을 하는 것도 범죄로 볼 여지가 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과연 이런 정도의 행동에 형벌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다른 사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풍자나 조롱에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1910년 2월7일 영국 해군의 기함인 드레드노트호에 ‘아비시니아’라는 나라의 왕자들이 방문한다는 전신이 도착한다. 외무부 부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전신이었다. 해군 장병들은 외국의 왕족들을 정중하게 맞았고 사열을 받았다. 몇몇 장교들은 아비시니아의 명예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왕자들은 “붕가! 붕가!”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전함을 둘러본 뒤 자리를 떴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왕자들’이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중에는 심지어 여자도 있었다. 젊은 시절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였다. 울프 남매와 네 명의 친구들이 변장을 하고 장난을 친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기함 선상에서 단단히 망신을 당한 대영제국의 해군은 분노했다. 군이 보기에 반전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동기부터 불순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외무부 부장관의 서명을 위조한 것이고 일종의 공무집행 방해다. 공문서 위조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기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장난에 불과한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풍류시인 김삿갓은 지방 유지들과 다툰 뒤 그들의 이름을 소재로 조롱하는 시를 썼다. 각각 원씨, 문씨, 서씨,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원숭이, 모기, 쥐, 벼룩에 빗대는 내용이었다. “지만원, 지는 만원이나 냈나”라는 글이 모욕죄에 해당한다면 김삿갓의 시도 분명 범죄다. 하지만 조선 왕실은 김삿갓을 처벌하지 않았다. 심한 욕설도 아닌 이 정도의 조롱이 범죄에 해당한다면 서로 놀리면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은 매일같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결론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만원 사건이나 쥐 그림 사건 판결문을 읽어보면 나름대로 유죄판결의 근거를 상세히 적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영국이나, 심지어 조선 사회에서도 처벌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볼 때 과연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지극히 의문이다.
영국 정부가 버지니아 울프를 처벌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국의 법질서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드노트호가 독일의 잠수함을 격침시켰을 때 축하 전문의 내용이 “붕가! 붕가!”였다. 장난은 이런 식으로 받아넘겨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쥐 그림 사건 담당 검사는 이 사건을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한 조직적 범죄행위”로 규정하면서 징역 10월을 구형했다고 한다. 정말 우리 사회가 정부의 홍보 포스터에 풍자적인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해서 교도소에 10개월을 갇혀 있어야 하는 사회가 된 걸까.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말할 수 없이 부끄럽다.
<금태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