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나빠진 남북관계, 이대로 둬선 안 된다

● 칼럼 2014. 11. 11. 20:0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남북이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하기로 한 고위급 접촉이 무산되고 남북 관계가 그 전보다 더 나빠졌다. 양쪽의 경직된 태도가 모두 문제지만 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무엇보다 상황 악화를 방치하는 듯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고위급 접촉 무산의 직접적 원인이 된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더욱 강경해졌다.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이제는 전단 살포 자제를 당부하는 말이 사라졌다. 이것이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겠다는 뜻이라면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할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10월31일 탈북자단체가 경기 포천시에서 대북 전단 100만여장을 살포하는 동안 경찰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주장하는 극소수 단체가 남북 관계를 쥐고 흔드는 것을 그대로 용인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경기 김포시 최전방의 애기봉 등탑 철거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관할 해병대의 지휘관이 지난달 중순 이 등탑을 철거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 이 지휘관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등탑을 철거하기로 하고 국방부 쪽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철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며칠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이를 질책했고, 이후 정부는 철거 경위를 조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북한이 이 등탑의 십자가 조명 등에 반발해왔으므로 등탑 철거는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안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이 전단 살포 중단을 고위급 접촉의 조건으로못박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사안을 논의하고 싶으면 고위급 접촉에서 의제로 제기하면 된다. 북한이 이 사안을 최근 유엔에서 논의 중인 대북 인권 결의안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북한은 ‘우리의 존엄(김정은)과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흐름에 눈감는 독단일 뿐이다. 이제 올해 안으로 남북 관계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곧 육·해·공군이 함께 벌이는 대규모 호국훈련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악화를 막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부는 앞장서서 전기를 마련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평신도 글마당] 은사에 대한 고찰

● 교회소식 2014. 11. 11. 19: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일 사랑 하신다. 피조물 중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영과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사탄이 이를 알고 유혹으로 죄를 짓게 함으로써 흑암의 세상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죽게 하시면서까지 계속 함께 하시려고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시다.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은사에 대하여 살펴보면 은사란 하나님께서 인간 각자에게 각각 다른 재주와 능력을 주신 재능으로 세상에 살아 가면서 재능에 따라 서로 협력하며 선하게 살아 가도록 하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수많은 꽃을 창조 하시면서 꽃마다 크기, 모양, 색갈, 향기 등 예쁘게 만드시고 여러 꽃이 모인 예쁜 화병을 인간들이 보고 기뻐하듯이, 하나님께서 몸소 주신 인간들의 모든 은사들이 서로 모여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 하실까 생각 해본다.
 
각자의 은사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예로 화가의 은사는 그림으로 아름다운 감상을 주며 가수의 은사는 희로애락의 감동을 주며 시인들의 은사는 정서와 감성을 주고 있다. 심지어는 건장한 신체의 노동의 은사 또한 정치 종교 문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들의 수많은 은사들이 모여서 조화를 이루어 사회에 봉사하여야만 인간 세상이 유지되는 것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 10).
단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믿는 자들의 집합체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대표적인 성령의 은사 9가지만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은사에 대하여도 주시하시며 관찰하고 계심을 성경에서 보여주고 계시다. 성경에 보면(마25:14-30) 달란트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로 시작 된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분명히 인자이고 그 종들은 믿는 자를 포함한 인간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머리칼까지 세신 바 되시는 주님께서 몸소 주신 각자의 재능을 알고 계시기에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주고 떠났다. 이는 각기 사람의 재능(능력)에 따라 해야 할 책임이 다른 것을 암시하고 있다. 처음 두 종은 각기 다른 액수를 가졌지만 균등한 열심으로 인해 두 배의 재산을 이루었으므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시면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찌어다 라고 말씀하셨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않고 이익을 남기지 못한 채 변명만 하였다. 하나님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을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명령하셨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은 영원한 징벌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 누가 복음에서(눅19:11-27) 은 열 므나의 비유와도 흡사하다. 단지 차이는 은 열 므나를 열명의 종에게 한 느므나씩 같은 액수를 나누어 준 것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각각 주셨는데 은사를 제대로 사용 하는지, 또한 은사를 자기만을 위한 이익이나 악을 위해 남용하거나 오용하는지 아니면 은사를 가장하여 도용하는지 이 모두가 엄청난 죄를 짓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관찰하시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은사의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이다. 즉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모든 은사의 사용은 결국 본인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서로서로 사랑하는 원동력이 되어 사랑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과 같이 우리들도 서로서로 죄짓지 않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봉사하며 인도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주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발휘하여 이 세상의 축복은 물론 내세에서도 영원한 영생의 구원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

 

홀엄마와 자녀들에 용기 준 음악회

● 교회소식 2014. 11. 11. 19: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조이모자 선교회 자선음악회, 독창·합창 등 훈훈한 선율

싱글맘과 그 자녀들을 위한 선교 봉사단체 조이모자선교회(대표 박영희 목사)가 11월1일 저녁 7시 토론토 영락교회(담임 송민호 목사)에서 제12회 자선음악회를 열어 후원자와 음악팬, 각계 참석자 등에게 깊어가는 가을 밤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다.
 
박영희 목사의 감사인사와 신동철 목사(열린한마음교회 담임)의 개회기도로 시작된 음악회는 열린 오카리나앙상블의 양성석 씨 독주 ‘넬라 환타지아’로 무대를 열어 ‘나의 죄를 씻기는’ 등 합주로 분위기를 돋웠다. 이어 김혁 피아니스트, 이명희 첼리스트와 차유진 클라리네티스트로 구성된 피아노 트리오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등을 연주하고 박철 테너의 ‘하나님 사랑’ 등과 이영송 소프라노의 ‘눈‘ 등 독창에 청중이 큰 박수를 보냈다. 선교회 사역소개 동영상 상영과 헌금 및 박청자 목사의 헌금기도에 이어 후반은 영락 어린이합창단이 ’뜻을 세운 아이들‘등 3곡을 고운 소리로 들려주었다. 또 박철 테너와 이영송 소프라노, 피아노 트리오가 차례로 연주한 뒤 이영송-박철 듀엣이 ’기도‘등 3곡으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선교회 박영희 목사는 “홀 엄마와 자녀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후원에 감사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하며 변함없는 성원을 부탁했다.
 
< 문의: 416-505-7918 >


[기쁨과 소망]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

● 교회소식 2014. 11. 11. 19: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충청도의 어느 마을에 살던 외국인이 머리 깎으러 이발소에 들렸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충청도 말로 인사말을 합니다. “왔시유?” 이 외국인 손님은 이 아저씨가 서투른 영어로 What see you? 라고 하는 줄 알고 친절하게 답변을 합니다. 지금 거울을 보고 있기 때문에 “미러(mirror).” 한참 후에 그 외국인은 완전히 빡빡 밀어버린 자신의 시원한 머리를 감싸 안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발소 아저씨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는 외국인 손님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문제인지 몰라서 당황해 합니다.
 
 인간의 삶은 의사소통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소통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도 생명력도 없습니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막힘이 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성장,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의 사회학자인 마셜 맥루언은 ‘인간은 소통의 동물이고, 점점 진보하는 기술과 함께 소통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과 대중매체 등 우리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주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첨단 기술이 그러한 소통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갈수록 사회 곳곳에서 서로 바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어떤 면에서 보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통신수단은 엄청 발달했지만 사람들 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은 꽉 막혀 있습니다. 불통입니다. 정치인과 국민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나이든 사람들과 젊은 세대 등 사회 곳곳에서 서로 의사가 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이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의 기초는 경청입니다.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사회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전에 내 생각, 내 주장, 내 의견을 먼저 쏟아냅니다.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힘으로, 아니면 거짓말로, 자신의 신분이나 직위를 가지고 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사회의 모든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상대를 기만합니다. 자신의 의견만을 쏟아내어 나의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내 머리만 밀어버리는 웃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의사소통이 잘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면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가장 마음과 마음, 영혼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관심이 사랑하는 상대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 얼굴 모습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필요 없어도 생각과 마음이 전달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모든 곳에 소통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 강성철 목사 - 우리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