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중의원 결선투표... 노다 눌러

제2·3야당, 자당 대표 투표로 '유임' 용인

제3야당과 정책별 협력 '부분 연합' 모색…지지율 하락시 '식물총리' 전락 우려

 

총리지명 선거 참여한 이시바 일본 총리 (도쿄 로이터=연합)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왼쪽)가 11일 중의원(하원)에서 진행된 총리지명 선거에 참여해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과 함께 손뼉을 치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달 1일 취임 이후 40여일 만에 11일 총리로 재선출됐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특별국회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지명 선거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중의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1·2위인 이시바 총리와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결선 투표를 치렀다.

중의원에서 1994년 이후 30년 만에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총리는 전체 465표 중 221표를 얻어 160표에 그친 노다 대표를 따돌렸다.

캐스팅 보트를 쥔 제2야당 일본유신회와 제3야당 국민민주당은 1차 투표에서와 마찬가지로 결선 투표에서도 각각 자당 대표에게 표를 던져 이시바 총리 연임을 사실상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총리와 노다 대표 이외 후보 이름을 적은 표는 모두 무효표로 처리됐다. 무효표는 84표가 나왔다.

중의원과는 별도로 진행된 참의원(상원) 총리지명 선거에서도 이시바 총리가 전체 239표 가운데 142표를 얻어 총리로 재선출됐다.

이번 총리지명 선거는 중의원 1차 투표, 참의원 투표, 중의원 결선 투표 순으로 진행됐다.

지난 9월 말 자민당 총재가 된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1일 제102대 총리로 취임했고, 이날 103대 총리로 재선출되면서 제2차 이시바 내각을 출범시키게 됐다.

이시바 총리는 1차 내각 각료 중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을 비롯해 외무상, 방위상 등 16명은 유임했다.

다만 지난달 27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낙선한 자민당 출신 각료 2명과 연립 여당 공명당 대표로 취임한 국토교통상은 교체했다.

제2차 내각 법무상으로는 스즈키 게이스케 전 외무성 부대신, 농림수산상으로는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 국토교통상으로는 공명당 인사인 나카노 히로마사 전 경제산업성 정무관이 각각 기용됐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밤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경정예산안과 법안 심의 대응 방침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로이터 연합]
 

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9일 중의원을 조기 해산하고 내각 발족 한 달 만에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은 기존 의석수보다 64석 적은 215석을 얻는 패배를 경험했다. 자민당·공명당 의석수 합계는 옛 민주당에 정권을 넘긴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 뒤 자민당은 2012년 옛 민주당 내각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2017년, 2021년 등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공명당과 함께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다져왔다.

이시바 총리는 소수 여당 체제에서 우여곡절을 거쳐 일단 총리로 재선출됐지만, 향후 국정 운영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공명당 의원에 자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을 합한 범여권 세력 의석수가 절반 이하여서 야당 협력 없이는 예산안과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이시바 총리는 총리지명 선거에 앞서 전날부터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주요 야당 대표와 각각 만나 협력을 요청했다.

그는 이날 야당 대표들과 면담한 이후 기자단에 "야당 의견을 성실하고 겸허하게 들으면서 모든 것을 결정해 가고자 한다"며 몸을 낮췄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정책 지향이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는 국민민주당과 정책별로 협력하는 '부분 연합'을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할 방침이다.

총선에서 '실수령액 증가'를 공약으로 내걸고 의석수를 4배로 늘린 국민민주당은 여당에 이른바 '103만엔의 벽' 개선을 요구했다.

국민민주당은 103만엔의 벽과 관련해 근로소득자 면세 기준인 103만엔(약 936만원)을 178만엔(약 1천617만원)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민당은 국민민주당 도움이 절실하지만, 면세 기준을 높이면 세수가 감소해 재정 여건이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이시바 총리는 야당과 불안한 협력을 이어가면서 자민당 내부를 결속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야당과 불협화음을 빚고 지지율이 '퇴진 위기' 수준으로 평가되는 30% 미만으로 하락하면 자칫 '식물 총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부에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  도쿄=연합 박상현 경수현 특파원 > 

 

재판장 "총장에 검사 인사권 없다" 시정요청에 조처없어 

검찰 "과거부터 정착돼 적법"  관행 강조..집단 퇴장 추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주문 - 검사 정승원에 대하여 퇴정을 명한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재판부가 공소를 지휘하는 주임검사에게 퇴정을 명령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당황한 검찰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겠다'며 반발했고, 끝내 집단으로 퇴정하는 추태를 보였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허용구)는 11일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피고인 7명의 뇌물공여·뇌물 등 혐의 사건 공판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공판 시작과 동시에 "부산지검 소속인 정승원 검사는 검찰총장 명의로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1개월 단위로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고, 지난해 5월부터 이 사건 공판기일에 해당하는 날짜에 1일 단위로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다"면서 "이는 검찰청법 5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돼 위법하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 "검사 위법 상태 용인, 재판의 존엄 훼손하는 것"

그러면서 재판부는 "검찰에 스스로 수정하기를 요청했음에도 시정 조처하지 않았고, 시정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면서 "검사의 위법 상태를 사회의 이목이 쏠리는 이 법정에서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재판의 존엄과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사건에서 검사들은 '검찰총장은 전국 검찰청을 관할하고 있으므로 다른 검찰청 소속 검사들 상호 간에도 직무대리 발령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총장에게 검사 개인에 대한 인사권이 없는 점, 검찰청법에서 정한 관할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서 정 검사에 대한 퇴정명령 사유를 구체화 했다.

이에 대해 정 검사는 "재판부의 소송지휘권 남용이며, 공소 진행을 방해하는 자의적 해석이 명백하다. 재판부 기피 신청도 하겠다"며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검찰청법 제5조에는 '검사는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속 검찰청의 관할구역에서 직무를 수행한다. 다만, 수사에 필요할 때는 관할구역이 아닌 곳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검찰근무규칙 제4조에도 직무대리 발령은 직무수행상 필요하고 또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그 관할에 속하는 검찰청의 검사 상호 간'에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재판부는 검사들이 집단으로 퇴정하자 "검사들이 모두 퇴정해 더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면서 이날 공판을 마쳤다. 다음 기일은 오는 25일 열린다.

성남FC 의혹 사건 공판에 참여하는 검사들은 선임 검사인 정승원 검사를 포함해 5명이다. 그런데 이들 다섯 검사 중 현재 성남지청에 소속을 두고 있는 검사는 단 한 명뿐이다. 정 검사는 부산지검에 소속을 두고 있고, 나머지 검사들은 각각 수원지검, 서울중앙지검, 대구지검 등에 각각 소속돼 있다.

앞선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러한 부분을 검찰에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정 검사는 법정에서 "자신의 성남FC 사건 송무 관여는 퇴근한 다음, 야근 업무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중 직무대리발령과 상관이 없다"면서 검사가 마치 '투잡'을 뛴다는 식의 터무니 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6~2018년 성남시장 재임 당시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시 공무원과 공모해 두산건설·네이버·차병원 등 기업들로부터 후원금 133억5000만 원을 유치하는 대가로 이들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 변경 등의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 오마이 김종훈 기자 >

 

민주, '성남FC' 직무대리 검사 법정 퇴정에  "불법관행 철퇴"

"재판부에 박수…위법 결정받은 검사 고발 조치"

 

발언하는 이재명 대표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1.11 
 

 더불어민주당은 11일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재판부가 관할 검찰청이 아닌 다른 청에 소속된 검사가 공판기일마다 '1일 직무대리' 발령을 받아 공판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해당 검사에 '법정 퇴정'을 명령한 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민주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검찰의 불법적 관행에 철퇴를 내린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허용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기일에서 재판장은 "부산지검 소속인 A 검사는 지난해 9월부터 한 달 단위로 검찰총장 명의로 '1일 직무대리' 발령을 받아 공판에 참여하는데 이는 위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 검사의 이 사건 소송 행위는 무효이므로 즉각 퇴정하라"고 명령했다.

검찰독재위원회는 이에 대해 "A 검사는 작년 9월부터 1개월 단위로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로, 이와 겹치는 기간에 수원지검 성남지원 재판일에는 성남지청 검사로 각각 1일 직무대리 명령을 받았다"며 "도대체 어느 청 소속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근무규칙에 따르면 성남지청 소속 검사 상호 간에만 직무를 대리할 수 있다"며 "검찰은 직무대리 기간이 1개월을 넘으면 법무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피하려 A 검사의 직무대리 명령을 1개월 단위로 연장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이러고도 법과 원칙을 말할 자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검찰독재위원회는 "재판부의 올바른 재판에 박수를 보낸다"며 "법원이 위법 부당함을 결정한 A 검사 등에 대해 고발 조치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 박경준 안정훈 기자 >

"공권력 동원 정권 보위 나선 윤석열 정부 독재화 빠른 속도 진행"

 

 
 
         9일 밤 국립부경대 캠퍼스에 투입된 경찰 모습. 유튜브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공천 개입 의혹이 불거지며 ‘정권퇴진 운동’이 세를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틀어막으려는 정부의 대응도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공권력을 동원해 정권 보위에 나선 윤석열 정부의 독재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지난 9일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를 불법으로 지목하고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있다. 경찰과 시민 간의 물리적 충돌로 시민 10여명이 부상을 당했고 ‘과잉 진압’ 논란이 일었지만 경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은 경찰이 애초부터 강경 진압을 준비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광희 민주당 의원은 “경찰은 이미 행진 경로를 알면서 일부러 좁은 구역에 집회를 허가하고 집회 참가자가 허가구역(밖)으로 나올 것을 기획한 듯 제지했다”며 “경찰은 삼단봉과 방패로 무장한 특수진압 옷을 입은 경력도 투입했는데, 최근 도심 집회에서 이렇게 중무장한 경력이 투입된 적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지호 경찰청장은 “일부 참가자들이 신고 범위를 일탈해서 도로 전 차로를 점거하는 등 불법행위가 상당 기간 지속됐고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시민의 불편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불법행위를 제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집회시위 진압 과정은 위협적이고 위험천만했다. 경찰이 마치 충돌을 유도한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신정훈 행안위원장의 지적에 대해서도 “충돌을 유도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총궐기를 ‘불법’으로 기정사실화하며 진압의 정당성만 강조한 것이다. 야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도 일축했다.

지난 9일 밤 부산에 있는 국립부경대에는 퇴진투표 부스 설치를 놓고 학생들과 학교 쪽이 갈등을 빚고 있는 캠퍼스에 경찰 200여명이 들이닥쳤다. 부경대 학생들과 부산대학생겨레하나, 윤석열퇴진대학생행동(준)은 부산 남부경찰서에 11월7일부터 12월5일까지 학내에서 퇴진투표 활동을 하겠다는 집회신고를 한 뒤, 캠퍼스에 부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학교 쪽이 퇴진투표를 제지했고, 이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자 학교 쪽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 9명이 퇴거불응 혐의로 부산 남부경찰서에 연행된 뒤 10일 새벽에 풀려났다. 부경대 관계자는 한겨레에 “학교 내에서 정치, 종교, 영리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시설물 사용 허가 지침’에 따라 (부스를) 허가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경대 4학년 왕혜지씨는 “(정치 행사는 불허한다는) 학교의 지침이 헌법상 권리인 집회의 자유보다 앞설 수 있느냐”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 내는 학생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진투표를 제지하는 정부 움직임은 공무원 조직을 향해서는 더욱 직접적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5일 퇴진투표와 관련해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검찰청 등에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여 불이익을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아예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호소문 등을 전교조 누리집에 게시한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등을 지난달 31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퇴진투표 독려는) 정당한 노조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석열퇴진 국민투표 서울추진본부 등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를 주최한 활동가들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찰, 교육부 등에서 투표 막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를 규탄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공권력과 정부 권한을 이용해 정부 비판 운동을 옥죄는 움직임에 곳곳에서 경고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도심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다며 “1980년대 백골단이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하던 현장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독재화 길을 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데 더해서 그 위에 국민들이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하는 데서 경찰에 구타당하고 다치고 피 흘리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어 “경찰은 지지율 17%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보위가 아니라, 집회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린 국민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한겨레 고나린  이지혜  엄지원 기자 > 

 

 

"상황의 엄중함 깨닫고 특검법 수용하며 질서 있는 퇴진을" 

 

 
 
                        서울대학교. 
 

윤석열 대통령이 졸업한 서울대학교에서 그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나왔다.

서울대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 게시판 등에는 ‘불공정과 비상식의 대명사, 윤석열 동문의 퇴진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글쓴이는 본인을 ‘평범한 서울대학교 모 학부생’이라고 밝혔다. 작성일은 지난 8일이었다. 작성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파국적인 결과를 맞이하기 전에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특검법을 수용하며 질서 있는 퇴진을 논의해야만 한다”며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기자회견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글쓴이는 “정치 경력이 전무한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역 없는 수사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공정을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달리 아내에게만 충성하는 대통령 윤석열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절망감을 안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공천개입 의혹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특검법을 정치 선동이라고 말하며 제 아내를 감싸기에만 급급한 모습은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유를 스스로 저버린 셈”이라며 “자신과 아내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법안마저 ‘반헌법적’ 운운하며 거부권을 남발하는 윤 대통령은 자신보다 마흔살 어린 학생들과 같이 정치학원론 수업부터 다시 들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와 관련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얼마나 자격 미달인지 보여주며, 그 부끄러움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고 했다. 연금·의료·노동·교육 등 윤 대통령의 4대 개혁을 두고는 “10퍼센트대 지지율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윤 대통령은 이미 국가 지도자로서 신뢰를 상실했다. 국민들은 남은 2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얼마나 더 망칠 수 있을지 우려할 뿐”이라고 했다.

글쓴이는 “우리 서울대학교에는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다”며 김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을 비교하기도 했다. 글쓴이는 “민주화의 거목이자 국가 발전을 이끈 지도자였던 김 전 대통령의 이름 옆에 윤석열 세 글자가 새겨진다는 것은 서울대학교의 수치“라며 “작금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 공동체에 당신의 이름이 설 자리는 없다”고 적었다. 다음은 대자보 전문.

불공정과 비상식의 대명사, 윤석열 동문의 퇴진을 촉구한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에 이르렀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며 국민적 기대와 함께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공정과 비상식으로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검찰총장 윤석열이 국민의 신임을 발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역 없는 수사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공정을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달리 아내에게만 충성하는 대통령 윤석열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절망감을 안기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인사 및 공천개입 의혹 등 수많은 혐의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특검법을 정치 선동이라고 말하며 제 아내를 감싸기에만 급급한 모습은 윤석열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유를 스스로 저버린 셈이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있는 힘껏 “영끌”하여 사용하고 있다. 비상시에 예외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하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라고 말한 대목에선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 아래 비로소 이루어지며, 자신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을 절제하여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통치자의 기본적인 미덕이자 상식이다. 자신과 아내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법안마저 “반헌법적” 운운하며 거부권을 남발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보다 마흔살 어린 학생들과 같이 정치학원론 수업부터 다시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과 비상식적인 행보는 글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친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촉발된 국정 개입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얼마나 자격 미달인지 보여주며, 그 부끄러움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충신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누구보다도 보수궤멸을 위해 앞장서며 지난 총선의 대패를 이끌어내고 보수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되지도 않는 궤변을 내세우며 대통령과 여사의 행태를 옹호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연금·의료·노동·교육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하지만, 10퍼센트대 지지율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인 의료 개혁마저도 1년 가까이 죽 쑤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도 의사단체 및 의대생과의 협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한 윤석열 정부가 의회와의 협치를 이끌고 다른 개혁을 실현해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국가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상실하였다. 국민들은 남은 2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얼마나 더 망칠 수 있을지 우려할 뿐이다.

우리 서울대학교에는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다. 민주화의 거목이자 국가 발전을 이끈 지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름 옆에 윤석열 세 글자가 새겨진다는 것은 서울대학교의 수치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파국적인 결과를 맞이하기 전에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특검법을 수용하며 질서 있는 퇴진을 논의해야만 한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작금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 공동체에 당신의 이름이 설 자리는 없다.

2024년 11월 8일

평범한 서울대학교 모 학부생

<  한겨레   임재희 기자  >